아시안 잉글리시 - 영어를 삼킨 아시아, 표준 영어를 흔들다
리처드 파월 지음, 김희경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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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어로서 영어는 그 위상이 독보적입니다. 아시아에서도 영어는 서로의 의견을 전하는 주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의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의 영어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싱글리시(Singlish)가 있고, 태국에는 타이글리시(Thaiglish)가 있으며, 필리핀에는 타글리시(Taglish)가 있습니다. 오늘날 쓰이는 영어는 모두 새로운 영어이며 영어를 계속 사용한 곳에서도 영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아시아인들이 지역 특색이 강한 영어로 막힘없이 의사소통하는 것을 보면 아시아에서 통용될 영어의 적합한 모델은 아시아 너머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자인 리처드 파월은 아시아 영어가 영어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은 이른바 원어민 영어라는 것이 중심에 있습니다. 원어민이라는 개념은 언어학의 범위를 넘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오륀지 사건 또한 원어민 발음에 대한 사회적 욕망을 단적으로 표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영어 원어민이라고 해서 영어를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규칙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제1언어의 문법을 설명하는 일은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오히려 문법을 나중에 배워서 익혀야 했던 교사들이 더 잘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외국어를 배웠던 기억을 살려 언어 습득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원어민 같은 사람들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더 어리고 경험도 모자란 외국인 교사들보다 뒷전으로 밀리는 게 당연시되곤 합니다.

원어민 발음에 대한 집착이 말해주는 문제는, 우리가 구어체 영어보단 문어체 영어에만 신경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한국, 일본, 태국 등과 같은 사회에서는 영어의 지역적인 변형을 영어의 잘못된 사용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회의 영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표준문법과 발음을 중시하는 태도는 그들이 대화하고 싶은 외국인 상대가 미국인일 것이라는 통념을 말해주지만, 세계적으로 영어 회화의 대부분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영어의 본고장이 훨씬 다양하고 특이한 사투리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원어민이라 생각하는 백인들,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대화하기 위해 표준문법과 발음을 익히지만, 막상 원어민들은 영국 표준 발음이나 미국 표준 발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표준 발음과 문법에 대한 압박은 학문적으로 영어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1986년 외래어 표기법에 중국어가 포함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국립국어원 심의 결과 '자장면'으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밑줄을 무시하고 자장면 대신 짜장면으로 표기하고 있다.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심의 전에도, 심의 결과가 나온 지 벌써 한참이 흐른 지금에도 '자장면'을 파는 중국식당은 없기 때문이다. 언어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한번 정해진 원칙을 고수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에서 버림받고 언중들의 관행과도 동떨어진 어떠한 언어순화론자들의 노력도 성공할 수 없음을 언어정책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다. -《짜장면뎐》p.143 

미국의 언어학자 세실 넬슨과 래리 스미스는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요소로 단어를 명료하게 인식하는 식별력, 단어의 뜻을 아는 이해력, 말하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는 해석력을 지목합니다. 만약 일본사람과 영어로 대화할 때 일본의 대화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능숙한 문법과 발음으로 영어를 말한다고 해도 그 회화는 제대로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언어에는 상황마다 특수한 환경이 주어지며,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래리 스미스가 주장하는 핵심은 한 가지 언어를 나이 들어 배운 사람은 그 언어를 국어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사람보다 듣는 사람들의 특별한 요구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와이대학의 래리 스미스는 영어를 제1언어, 제2언어로 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뒤 아시아인들은 서로의 영어 발음을 비 아시아인의 영어 발음보다 더 잘 알아듣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는 말을 알아듣도록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는 원어민 영어라는 가정에 의심을 품게 했다. - p.57 

언어학자들은 국제어로서 영어가 지닌 단순화된 문법과 발음이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불규칙동사, 문화와 얽힌 숙어투성이 원어민 영어보다 더 적합하다고 지적합니다. 영어를 제2언어로 쓰는 사회는 영어의 지역적인 변용이 이루어집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말끝마다 라, 아 를 붙이며, 필리핀 사람들은 타갈로그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쓰고, 파키스탄 사람들은 단순 시제 대신 진행형을 쓰는 관행 등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현상은 혼성어인 피진이 되기도 하고, 좀 더 정교한 혼성어인 크레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용 영어들 또한 영어이며, 세계의 영어 사용자들이 아시아에서 온 말들을 사용하면서 영어는 훨씬 풍요로워졌다는 점입니다. 인도 작가들이 인도 영어로 된 작품으로 영연방 국가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교육자들은과 언어학자들은 영어가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되면서 영어의 역사적 고향에서 만들어진 변형보다 훨씬 다양한 변형들이 만들어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충분히 효율적이고, 문학작품을 한층 더 풍성하게 했다고 인정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어의 변용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영어는 표준 영어에서 세계 영어들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싶자면, 공부하는 영어, 완벽한 영어의 제약에서 벗어나 통하는 영어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영어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도, 영어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도, 영어에게도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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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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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과거에 자신의 저서《총, 균, 쇠》를 통해 인류 문명의 탄생과 진화과정을 말하고,《문명의 붕괴》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문명이 어떻게 위기가 왔으며, 어떻게 멸망해가는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인류학적 인식에서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어제까지의 세계》에서는 현대 문명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주목합니다. 시민간의 갈등, 육아문제, 세대갈등, 각종 질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통과 현대의 문명을 비교분석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위기에 도움이 되는 열쇠 중 하나는 책의 부제에 적혀 있는 것처럼, 바로 전통사회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전통사회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 사회가 인간의 삶을 체계화하기 위해서 수만 년 동안 지속된 자연적인 실험들이 집약된 공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사회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기 때문에, 어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다양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한정되고 비전형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만을 근거로 인간 본성을 일반화하는데, 좀 더 일반화된 인간 본성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연구 범위를 전통사회까지 크게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전통사회는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하기도 하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지금 사회의 이점에 고맙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전통사회의 유산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수천 곳의 사회를 재설계해서 수십 년을 기다린 후에 그 결과를 관찰하는 식으로 그 실험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실험을 시도한 사회들을 연구할 수 있으며,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겪은 수많은 경험에다가 덧붙여서 이 빈곤한 부족사회의 경험을 교훈으로 소화시킬 수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교훈은 예전의 신선함을 지니고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다. (중략) 또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신세계가 앞으로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기회는 아주 없을 것이라는 것도 가르쳐준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되돌아와서, 애초에 우리 세계가 신세계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여러 임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만 그 시절, 그 위치에 우리들 자신을 다시 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픈 열대》p.706 

전통사회의 구조와 그 환경이 낳은 삶의 모습은 우리가 원하는, 혹은 원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전통사회의 공간과 경계는 개인과 개인이 친밀한 사이일 경우 따뜻한 정과 믿음으로 가득차 있지만, 적이나 이방인일 경우에는 자연적인 잔혹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는 누구나 이방인으로 만듬으로서 전통사회가 가진 장점을 퇴색시켰지만, 동시에 전통사회가 가지지 못했던 장점, 이동과 여행의 자유 등을 얻게 되었습니다. 개인간의 사고가 났을 때 현대사회는 법에 근거한 동등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지만 판결 이후 개인간의 관계는 거의 단절되는 반면, 전통사회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책임을 물을 지 알기 힘들지만 개인간의 관계, 단체의 결속력에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사회의 이혼재판과 같은 경우에 그 후속조치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시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미래인 어린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한 관점도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분만, 영아 선택, 젖떼기, 수유, 아이와 어른의 접촉 등 다양한 관점에서 유아관의 장점과 단점이 나타납니다. 수렵사회는 어린아이를 자주적인 주체로 인정하며 욕구를 인정하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칼을 들고 놀아도, 모닥불에 가다가 불에 데일 수 있어도 말리지 않습니다. 반면 전통사회는 아이와 어른의 접촉이란 면에서 현대사회보다 장점을 보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같이 자며, 외출시에도 직접 안고 다니는 등 현대사회보다 많은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서구 사회에서 아기를 데리고 다닐 때 흔히 사용하는 유모차는 신체 접촉을 기대할 수 없고 아기의 자세가 고정되며, 아이의 시선이 어른과 일치되지 못합니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입증했듯이, 유아에게 있어서 신체적 접촉은 어느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해리의 연구실은 사랑의 역설적인 본질을 증명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관계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하나의 관계, 최초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들을 휩쓸어 침수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중요한 관계이다. 최초의 애착이든, 상호 작용 관계든, 사회에 대한 연결점이든, 뭐라고 부르던 간에 이 최초의 관계가 그토록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보다는 아이 쪽에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 《사랑의 발견》p.335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외에도 노인의 대우, 종교, 언어, 건강 등과 같은 측면에서 전통적인 관습을 받아들인다면 상당한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대사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전통사회의 삶을 그대로 추종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전통사회, 뉴기니의 자연과 사람들을 사랑하면서도 현대사회, 미국에 돌아온 것처럼, 전통사회에는 현대사회에서 과감히 버림으로서 다행이라고 여길 만한 관습이 많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가 이룩한 높은 수명과 자유로운 이동, 다양한 사상의 자유 등 현대사회의 진보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이룬 뜻깊은 가치들입니다. 이러한 가치에 전통사회의 장점을 흡수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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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서중석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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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6년 전, 대한민국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전개된 민주화운동인 6월 항쟁은, 광복 이후 일어난 수없이 많은 민주화 투쟁 중에서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 혁명,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한 부마민주항쟁, 전두환의 신군부에 항거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은 중요한 역사의 분기점이였습니다. 6월 항쟁 이후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6월 항쟁은 87년 체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을 종결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 서중석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민주화운동 측면에서 바라본 6월 항쟁을 넘어서 전두환 정권 측의 자료도 검토함으로써 아직 이 땅에 살아 숨쉬는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짚어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6월 항쟁의 발화점은 책상을 탁 치자 갑자기 억 하며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였습니다. 하지만 물이 끓기 위해선 계속 가열을 해야 하듯이, 전두환 정권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전에도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계기를 계속 만들고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유성환의 국시발언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2.7 추도대회, 3.3 평화대행진, 4.13 호헌조치, 5.3 인천사태 등이 계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함정에 몰아넣고 사건을 키워 일망타진하는 수법을 사용했고, 우종원군이나 김성수군 등이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2.12 총선에서 드러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과 유권자 의식이 싹트고 있었고, 잡지『말』에서 언론 보도지침을 폭로하는가 하면, 1986년 전두환 정권에 굴복한 언론사였던 KBS에 대한 시청료 거부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 체제에서는 숱한 비리와 의문사 사건이 계속 일어났는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만은 유독 즉각적인 추모와 항의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특별한 것은, 그간 자행된 사건들과 달리 박종철은 피의자로 끌려간 게 아니라 수배된 학생을 찾아내기 위해서 참고인으로 끌려갔다는 점입니다. 이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운동권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박종철과 똑같이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이런 상황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테러리즘적입니다. 한 신문 사설에서 주장한 바대로 박종철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되었고, 이러한 위기감은 즉각적인 반발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특수성 덕분에 6월 항쟁의 시작은 기존의 민주화운동과 달리 어머니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6월 항쟁의 초기에는 학생들의 활동이 부진했습니다. 당시의 인식은 민주화운동의 핵심은 학생들이라는 것이였는데, 6월 항쟁 이전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봤을때 이러한 해석은 타당한 것이였습니다. 전두환도 3월 19일에 "학교가 조용하면 우리나라가 다 조용해요"라고 말한 것처럼 이러한 인식은 보편적이였고, 전두환은 학생들을 탄압하는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학생운동이 소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이 진전된 이유는 민주화운동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정당다운 정당, 시민다운 시민이 없을 때에는 학생운동이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였지만, 이제는 학생에서 시민이 민주화 운동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6월 항쟁에 참여한 사회구성원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대학생, 고등학생, 시민들, 언론인, 공장노동자, 농민, 운수노동자, 넥타이부대, 상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었고,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와 같은 종교인들도 투쟁에 나섰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김승훈 신부가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축소,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6월 항쟁의 불길을 더했고, 명동성당에서 벌어진 농성투쟁은 서울 최대 격전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6월 항쟁은 지역적으로도 다양했는데, 6. 10 국민대회의 경우 22개 도시에서 40만명이 참여했고, 6. 18 최루탄 추방의 날은 18개 도시에서 150만명이 참여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계층을 가리지 않고 호헌철폐투쟁, 군부독재타도투쟁 및 직선제 쟁취투쟁을 외친 6월 항쟁은 그 성격적인 면에서 대단한 민주화 운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두환은 민주화운동에 맞서 금강산댐 위협론, 김일성 사망설 등 다양한 프로파간다를 펼쳤고 1986년에 비상수단으로 친위쿠데타 같은것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전두환은 6월 항쟁에서 군대를 출동시키지 못했습니다. 전두환이 군대를 출동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군대 투입이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온 광주의 기억이 있었고, 걸핏하면 군대를 출동시킨 박정희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부도 또 다른 광주사태의 우려를 하고 있었으며,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상황이였기 때문에 군 상층부는 출동을 꺼렸습니다. 결국 6월 항쟁에 군이 동원될 경우 군대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전두환은 군대 투입을 포기했습니다. 6월 항쟁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인해 계속 타오르고 있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민정당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이어졌으며, 6.26 평화대행진까지 성공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결국 전두환 정권은 백기를 들고 6.29 선언에 이르게 됩니다.

6.29 선언으로 마무리된 6월 항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뜻깊은 민주화 운동이였습니다. 전국적이였고, 범국민적이였으며,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운동이였습니다. 투쟁방식도 기존보다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민주사회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재 정권이라는 눈앞에 보이는 명확한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사회운동의 성과를 지목하면서 세계 혁명, 아시아에 대한 속죄, 약자구제 등의 막연한 주제밖에 갖지 못하는 바람에 안정적인 사생활의 보장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일본의 사회운동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이런 지적은 6월 항쟁이 만든 87년 체제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인식시켜줍니다. 슬라보예 지젝도 언급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 독재 정권이라는 적은 없어졌습니다. 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이라는 선명하고 격렬한 대립구도는 이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찾아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분노하지 않고, 더 행동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사회운동가들은 과거의 민주화운동 세력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펼쳐질 지난한 과제들을 해결하기에 앞서 과거 이룩한 민주화 정신, 6월 항쟁의 뜻을 돌이켜보는 것은 사회정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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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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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라는 사회형태는 구성원에 대해 일정한 국민의식을 요구합니다. 많은 국가들은 이성을 넘어 무제한적인 귀속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을 키움으로써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이 맡은 역할은 큽니다. 역사는 개개인에게 일종의 정의를 부여하며,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 연구의 성과와 모순되는 논의가 제공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납니다. 역사는 단순히 말하자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개인마다, 국가마다 다릅니다. 과거의 역사는 자기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찬양하는 이야기로서의 역사였으며, 이런 민족주의적인 역사 이해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김시덕은 과거 역사기록이 지닌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동북아시아의 국제전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당사자인 조선, 명나라, 일본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세 일본 사회의 임진왜란상을 결정지은 것은 고문서를 통한 역사기록보다는《다이코기》,《도요토미 히데요시보》,《조선정벌기》,《에혼 다이코기》와 같은 베스트셀러들이였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로 예를 들면 김진명의 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것들이였습니다. 일본의 문헌이 보여주는 임진왜란상이 역사서로서 사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책이 말하는 내용을 사람들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 인식이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상, 이러한 인식을 알아두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가 치른 전쟁은 모두 방위를 위한 전쟁이고, 외국이 싸운 전쟁은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된다. 자기 나라가 외국을 정복할 때는 문명을 확대하기 위해,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높은 도덕이나 그 밖의 고귀한 것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믿도록 교육된다. - 버트런드 러셀,《교육과 사회체제》 

일본 근세의 야사, 외전, 군담소설이 묘사하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모습은 우리의 인식과 많이 다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원인을 조선 측에서 찾는 것이 근세 일본 임진왜란 문헌의 특성인데, 옛날 고려가 원나라 군대를 인도해서 일본을 쳤으니 일본이 이 원한을 조선에 갚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명, 조선으로부터 여러 차례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명, 조선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방위, 복수전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임진왜란은 명나라에게 받던 치욕을 갚은 전쟁이며,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등장한 청나라가 일본을 건드리지 못한 것도 일본의 위력에 놀라서였다는 논리를 폅니다. 즉 임진왜란은 일본의 위엄을 전 세계에 빛낸 위대한 전쟁이며, 이러한 인식은 저자의 지적대로 훗날 등장한 제국주의 일본의 맹아적 형태로 나타납니다.

일본의 문헌은 조선은 관료부터 병사까지 무능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였고, 이러한 인식은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과 일본 사이에서 무력했던 조선이라는 담론은 어느정도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한 블로그에서 본 정보에 따르면, 임진왜란에 관련된 공식 기록상 총 전투횟수에서 조선측의 승리가 더 많다고 합니다. 사료와 인식의 불일치는 일본과 명나라의 임진왜란상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증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측은 임진왜란의 3대첩을 1593년 벽제관 전투, 1597년 울산 전투, 1598년 사천전투을 말하는 반면, 한국은 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시작된 조선 통신사를 보는 관점도 조선측은 임진왜란때 발생한 포로 문제와 일본의 국정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일본은 조선이 다시 일본에 복속되었기 때문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문헌이 서양 세력이 접근함에 따라 일본 내에선 국수주의적 움직임을 보이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헌의 성향이 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시인《일리아스》,《오디세이아》같은 형태를 취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토 기요마사인데, 조선측은 가장 잔혹한 장수였다고 평가한 데 비해 일본의 문헌에서는 자기 병사들을 사랑하고, 60~70만의 용맹한 조선, 명나라 군대가 가토 기요마사 한 사람의 용맹함으로 인해 물러날 정도로 용맹하며, 조선 사람들이 가토 기요마사를 신으로 숭앙하고 있을 정도로 적에게 자비로운 영웅으로 표현됩니다. 훗날 유성룡의《징비록》등이 일본에 들어가면서 조선의 영웅들도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순신의 재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문헌에서 이순신을 영웅시한 이유는 이순신과 같은 조선 영웅을 이긴 일본 장군은 더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였습니다.

생존 경쟁 속에서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 역사로부터 무기를 주조하는 것은 모든 민족의 권리이다. 어느 민족에게서나 역사는 민족 영웅의 노래이다. 한 민족의 영웅이 다른 민족의 영웅일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1937  

저자는 근세 일본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것은 일본을, 일본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저자는 과거의 역사학이 사료에 근거해 임진왜란의 사실을 추구하다보니, 일본인들에게 유행했던 이야기는 사료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야기에 등장한 진구코고가 삼한을 정복했다는 진구코고 담론이 일본뿐만 아니라 도고를 통해 미국까지 건너가 미국 대통령과 미군 장교들까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건 아니건 간에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역사학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사는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연대기 작가와 달리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 과정이나 그 사건이 끼친 영향까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역사서의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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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가슴 - 문명을 초월한 가슴의 문화사 한길 히스토리아 2
한스 페터 뒤르 지음, 박계수 옮김 / 한길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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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중 재닛 잭슨의 가슴이 몇초 정도 공중파를 탄 적이 있습니다. 니플게이트라고 불리우는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외설 여부는 법정까지 가게 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방송중에 가슴이 노출되는 등의 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분명히 방송사고, 혹은 사건으로 구별됩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MBC가 만든 다큐멘터리『아마존의 눈물』을 보면 아마존 원주민들의 가슴이 여과없이 방송을 탑니다. 방송에서 아마존 원주민들의 가슴은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가슴을 가리지 않고 살기 때문에 가슴이 에로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저자 한스 페터 뒤르는 이 책《에로틱한 가슴》을 통해 오늘날의 서구사회 및 전통 사회에 관한 잘못된 이미지가 근대 인간들이 그 이전의 인간들보다 동물적 본성을 더 잘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노베르트 엘리아스의《문명화과정》을 통해 잘 나타나는데, 엘리아스는 문명화야말로 사회적 행동기준의 장기적 발전기준이며 개인의 행위를 외부로부터 규제하는 규범이 문명화과정을 통해 내면화된다고 보았습니다. 엘리아스의 사상은 현대는 중세나 그 이전과 달리 문명화된 사회이며, 이런 생각은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이 내세웠던 다른 야만인 국가를 문명화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외쳤던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뒤르는 현대인들은, 특히 서양의 선진국들의 현대인들은 과거의 사람들과 다른, '문명인'이 되었다는 엘리아스의 주장에 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엘리아스의 주장에서 현대인들이 문명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배설, 나체, 섹스 등 수치심을 느끼는 행위들을 사회생활 외부로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아마존의 눈물』에 등장하는 아마존 원주민들처럼 나체로 공동생활을 하거나, 일본, 러시아 등지에서 존재하는 혼욕문화 등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원숭이같은 행동이며 문명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르는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도덕적 관점에서 수치심의 기준이 변화한 것이 아니며, 관습상 나체가 통용되는 것이 수치심으로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뒤르에 따르면 나체에 대한 수치심은 인간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뒤르는 자신의 '문명화과정의 신화'시리즈를 통해 학문적으로 주류 패러다임이 된 문명화과정을 반박합니다.《나체와 수치》,《은밀한 몸》,《음란과 폭력》,《에로틱한 가슴》,《성의 실태》에서 여성의 음부에 대한 수치심, 인간의 성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 가슴이 지닌 의미와 변화과정 등을 통해 주로 서구에서 문명인이 되었다고 자부해왔던 인류는 사실상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 일어났던 제노사이드나 전쟁 등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뒤르는 오히려 왜 유럽은 여성 육체의 성적 매력 발산을 점점 더 강하게 제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여성 육체의 성적 상품화가 더 강하게 이루어졌느냐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이 책《에로틱한 가슴》에서 뒤르는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을 반박하기 위한 주제의식을 훌륭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화사로서의 가치도 충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어떻게 가슴을 보여주고 감춰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과거 가슴 윗부분의 공공연한 노출은 귀족의 특권이기도 했고, 나폴레옹 이후 패션계는 도덕적인 경향을 강화시키며 코르셋의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젊고 둥글며 탄력있고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여성의 가슴은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보편성의 확인입니다. 가슴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부드러운 자극원이며, 가슴은 단순히 시각적이며 촉각적인 면에서 매력적일 뿐 아니라 후각적인 관점에서도 그러합니다. 가슴은 이성을 유혹하면서 동시에 진정시키는 냄새를 발산합니다.

심하게 마른 여자는 우리 눈에 특히 거슬린다. 풍만한 여성의 가슴은 남성에게 특별한 매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가슴은 여자의 광고 기능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며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충분한 영양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여성의 가슴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남자의 가슴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에로틱합니다. 가슴이 왜 에로틱한지에 대한 설명은 아마 필요없을 것입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가슴은 여성의 엉덩이를 대치합니다. 발정기에 접어들면 엉덩이의 색이 변하는 동물들에게서 알 수 있듯이, 동물에게 있어서 엉덩이는 중요한 매력포인트이며 성을 상징합니다. 인간은 이러한 상징성을 뒷면의 엉덩이 뿐만 아니라 앞면의 가슴에도 가짐으로써 더 나은 종의 사랑을 가능케 합니다. 뒤르가 지적했듯이 수치심은 인간의 본질이며, 여성의 가슴을 에로틱하다고 느끼는 것도 인간의 본질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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