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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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수많은 삶의 조언에서 굉장히 자주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이 메인 요리에는 "인생은 짧으니" 라던지, "부자가 되고 싶으면" 같은 조미료가 첨가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아름다운 꿈이며, 성공한 삶이며, 노동의 이상입니다. 그러한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갔던, 그리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출현은 새로운 노동윤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열정 노동자'들 입니다.

한국에서 열정 노동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90년대에 태동됩니다. 문화산업과 컴퓨터의 보급이라는 사회적 변화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아이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싹튼 신인류의 꿈은 일이 더 이상 인생의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움이자 취미인 세상이였습니다. 오타쿠와 마니아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문화산업의 동력이 됩니다. 때마침 등장한 문화산업의 성공은 정부에게 소프트 파워의 위력을 실감케 했고, 대대적인 문화 산업 육성책을 펴게 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기반은 열정 노동자의 등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열정 노동의 대상은 연예인, 프로게이머, 영화인, 만화가 등 문화 산업의 종사자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었는데, 열정 노동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노동윤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외부 세계를 침략하고 정복함으로써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더이상 개선이 힘들어질때 생산성을 향상시킬 방법은 내부에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혁신적 노동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노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은 노동의 미학화였습니다. 자본은 기존의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관계에서,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라는 이름표에서 탈피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하늘에서 사장님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덤프트럭 운전자, 심지어 성매매 종사자마저 스스로를 고용하는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열정 노동자들도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노동력들은 스스로를 창작자, 첨단 산업 종사자, 개척자 등으로 여겼으며, 노동자라는 낡은 꼬리표를 다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도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그들은 노동자입니다.

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 - 이명박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머물던 열정은 산업의 내부로, 노동으로 유입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열정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윤리를 가져 왔습니다. 이 새로운 윤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정노동의 명분을 통해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열정이라는 미명 하에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정노동은 일은 더 열심히 시키면서도 돈은 더 적게 줄수 있는 최적화된 착취를 가능케 합니다. 또한 자기계발서로 대표되는 경영 담론은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탁월한 전략이였습니다. 열정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적은 수입에 힘들어해도 그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노동 강도는 높았고 처우는 형편없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네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 p.182 

한국의 젊은이들이 열정 노동자군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은 그들이 열정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기대했던 수준의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착취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내던집니다. 그리고 열정 노동자는 비단 영화인, 프로게이머, 만화가 등 문화산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전 분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열정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임금 인상이나 신규 채용에는 부정적이면서, 인력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시스템 도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더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 앞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열정을 과시해야 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수해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열정을 당연하다는 듯이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신음을 틀어막고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의 주문이였습니다. 하지만 마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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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찌와 버마 군부 - 45년 자유 투쟁의 역사
버틸 린트너 지음, 이희영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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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근현대사 시기에 타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식민통치에 맞서 싸운 독립영웅이 존재했으며, 그 독립영웅이 암살당했습니다. 또한 쿠데타를 통해 군사 독재자가 등장했고, 군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으며, 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부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미얀마입니다. 이 책은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존재,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단순히 아웅산 수치라는 민주투사를 찬양하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웅산 수치 여사의 한계점을 지목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지적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미얀마의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과의 관계를 원했고, 일본 또한 태평양 전쟁에서 미얀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력체계가 이루어졌습니다. 독립 운동가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아웅산 장군과 네윈 장군이였는데, 일본은 군국주의에 네윈이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네윈을 더 신뢰했습니다. 미얀마는 결국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어냈지만, 독립을 앞두고 아웅산 장군은 암살당합니다. 그 후 1962년에 네윈은 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미얀마를 독재체제로 만들게 됩니다.

어떤 나라의 어떤 역사에서건 독재정권은 민주화의 열망과 마주하게 됩니다. 미얀마도 예외는 아니였고, 1988년에 민주화 시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정치적 의도를 보이지 않았던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대 앞에서 첫 공식적인 정치 연설을 하게 됩니다. 감동적인 연설과 버마의 독립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배경은 아웅산 수치를 순식간에 민주화 운동의 핵심 인물로 부각시켰습니다. 아웅산 수치는 민족민주동맹(NLD) 사무총장을 맡았고, 가장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이자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상징적 인물로 부각됩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의 위력을 실감했고, 결국 그녀를 가택 연금하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군부는 어느정도는 사회장악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990년에 선거를 허용했지만, 선거 결과 485석 중 392석을 NLD가 차지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국민들은 아웅산 수치를 지지했고, 심지어 군인들의 마을에서까지 NLD가 승리했습니다.

군부는 선거에서 졌지만 권력을 이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에 대해 1990년에 불교 승려 수천 명이 시위를 일으켰지만, 군부는 군인들에게 승려들을 향해 자동소총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합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나라에서 승려들의 움직임은 군부에 가장 심각한 위기감을 불러 왔습니다. 군부는 사찰을 습격하고 승려들을 체포하고 투옥하고 살해했습니다. 군부는 미얀마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집단인 승려들까지 가혹하게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아웅산 수치를 가택연금하고 야당 주요 정치인들을 제거 혹은 회유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은 사그러들었습니다. 1991년 아웅산 수치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국민들은 여전히 아웅산 수치를 민주화의 상징이자 희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른바 '아랍의 봄' 중 하나인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다룬 와엘 고님의 책《레볼루션 2.0》을 보면,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계기는 칼레드 사이드라는 한 청년의 죽음이였지만 운동을 위해선 사람들을 모아 줄 수 있는 상징적 존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그 존재가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였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모하메드 모스타파 엘바라데이 박사였습니다. 엘바라데이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했지만 사람들은 엘바라데이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생각했고, 결국 무바라크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웅산 수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아웅산 수치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군부독재 종식을 갈망하며, 그의 이름을 외침으로써 더 쉽게 결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운동이 아웅산 수치라는 한 개인의 존재와 지도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 약점은 아웅산 수치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아웅산 수치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군사정권과 NLD, NLD와 민주화 세력 사이에 어떠한 개인숭배도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버마의 민주주의는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에 의해 정착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어떤 특별한 힘도 없으며,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힘으로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 본인에 대한 개인숭배는 이미 미얀마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불가피하게 아웅산수치 자신도 막을 수 없는 아웅산수치에 대한 개인숭배로 이어진다. 억압적인 군사정권이 대표하는 악과 부패, 영웅적인 민주 투사의 순결성과 능력, 이 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질수록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한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조직의 연속성은 점점 더 위협받게 된다. - p.202 

또한 미얀마 정치체제의 미성숙함이나 사회적, 지적 구조의 약점이나 결점 등을 언급하지 않고 종교적 개념을 민주화 투쟁으로 연결시키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이는 오랜 자택연금 생활과 아웅산 수치의 어머니 영향이 크다고 분석합니다. 종교국가에서 아웅산 수치의 정신적 가치 추구와 버마 국민들의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개인숭배가 그녀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했지만, 아웅산수치를 둘러싼 이런 현상들은 버마 정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조건에서 대업을 이루어 낸 간디나 넬슨 만델라와 비교해 보면, 간디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노련한 정치가였고, 넬슨 만델라는 오랜 감옥생활중에서도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유능한 인재들이 투쟁을 이끌었고, 만델라가 사회에 나왔을 때에도 그의 정당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웅산수치는 오랜 자택연금 때문에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연금기간에 NLD는 군부에 의해 와해되어 이름만 남은 정당이 되었습니다.

책은 이런 아웅산 수치의 약점을 지목하고 있지만, 그녀의 약점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뿐, 존재의 부정을 말함은 아닙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필요하며, 약점을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얀마는 오랜 시간 동안 독재를 유지해왔고 효과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지만, 민주화 운동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끌었던 NLD는 힘을 잃었지만, 새로운 민주화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88세대라 불리우는 이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투쟁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들 또한 아웅산 수치를 정신적 지도자로 받들고 있습니다. 1990년에 미얀마의 민주세력은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했음에도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군부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NLD의 정치적 역량 부족이 큰 원인이였습니다. 아웅산수치에게 필요한 건 고승들에게 지혜를 묻는 영적인 인물이라는 자화상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개혁가임을 입증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2007년 이 책이 나올 당시에는 여전히 군사정권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저자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민주화의 열풍은 다시 미얀마에 찾아왔습니다. 민간정부가 출범했고, 2012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는 다시 한번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여전히 군부가 지원하는 여당의 세력이 막강하며, 오랜 독재시기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내린 군부의 영향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얀마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미얀마 민주화를 이끈 아웅산 수치의 선택은 더욱 중요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아웅산 수치가 더 노련한 사회적, 정치적 개혁가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아직 유효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민주혁명의 동력은 아웅산수치에서 미얀마 시민의 이름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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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신드롬 - 여성처럼 느끼는 남성, 남성처럼 느끼는 여성
레온 카플란 지음, 박영구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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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는 당신의 가족, 형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상당한 사회적 이슈를 불러왔던 커밍아웃으로 유명한 홍석천씨가 TV프로그램에서 한 이 발언은, 동성애의 역사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비율적으로 따져보면, 전체 인구중에서 왼손잡이일 확률이나, 동성애자일 확률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회가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직도 왼손잡이들은 많은 사회적 불편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호모포비아적인 반응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동성애자에 대한 일반인의 고정관념이 오해와 편견이였음을 지적합니다.

동성애의 시작은 아마 인류의 출발과 그 궤를 같이 할 것입니다. 오리와 같은 다른 동물들의 경우에도 동성애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기록도 굉장히 오래되었는데,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플라톤 또한 동성애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곧 금기시되고 차별과 박해를 받았는데,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던 가장 큰 원인은 종교에, 특히 기독교에 있습니다. 정작 예수는 동성애에 대해서 한번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자들은 기독 신앙에의 영접을 거부당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르 9세 시절엔 동성애에 대한 처벌을 한층 강화했는데, 당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기는 조물주에 의해 오로지 생식의 목적에만 쓰이도록 만들어졌으며, 성기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죄가 되며,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죄라고 주장하며 윤리 신학적 토대를 만듭니다.

남녀 할 것 없이 거의 무제한으로 나타나는 성애에 대한 욕구는 역으로 그것이 둘의 공동생활과 유대 관계의 생성 및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구애의 신호들은 확고한 관계가 구축된 뒤에도 성적 만족을 통한 반복된 보상과 마찬가지로 줄곧 유지된다. 또한 성애와 성적 만족은 남녀 쌍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 동성애나 자위행위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동성애는 성을 생식 활동으로만 여기는 경직된 사고에 의해 많은 오해를 받았고, 비정상적인 행위로 낙인찍혔다. 그런 협소한 사고방식으로 보면 동성애자들은 '번식'이라는 유일무이한 지상과제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는 자위행위도 죄악으로 분류된다. - 《미의 기원》, p.319 

인간에게 있어서 성은 단지 생식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성이 후손 생산에만 쓰였다면 인간은 2, 3년마다 한 번, 혹은 몇 번 성행위를 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또한 동성애자는 성교를 최우선적인 관심사로 삼는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이런 생각은 오히려 남성 이성애자들이 여성을 바라볼때의 시각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동성애는 성의 활용에 있어서 이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이성과의 결합을 할 수 있고, 가정을 꾸릴 수 있으며,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오랜 배척의 역사를 가져 왔으며, 동성애자를 배척하려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남성 이성애자들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호모포비아적 사고방식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에게는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성들에게 있어서 레즈비언은 선호되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성인 남성 잡지에서 레즈비언의 출연이 증가하는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가설이 등장했지만, 저자는 동성애자가 되는 여부는 임신중에 테스토스테론이 태아의 혈액순환에서 보이는 농도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는 파트너 선택과 성적 태도를 담당하는 뇌 조절중추의 발달정도를 결정합니다. 이 수치에 따라 이성애자가 될 수도, 동성애자가 될 수도, 양성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임신 중에 알콜섭취 비중이 높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혈중농도가 큰 영향을 받으며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 강간경험, 자주 벌어지는 부부싸움, 전쟁시 일어나는 일들과 같은 상황이 이에 해당하는데,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지역에서 동성애자가 태어나는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동성애는 단순히 신체적 차이일 뿐, 심리학적 문제는 아닙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동성애자는 결코 병든 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 《자연의 농담》, p.56 

분명히 인간에게 있어서 동성애자는 소수이며, 이성애자는 다수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일 뿐이지 괴물이 아닙니다. 이시도르 조르푸아 생틸레르는 "괴물들은 자연의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오히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자연은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이성애자와 동등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일부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은 남을 더 잘 도우며 동료애가 깊고 사회적으로 적응력이 좋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런 남성적인 감정과 여성적인 감정의 융합은 인간사회에 큰 득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힘은 그와 같은 화합에서 생겨 나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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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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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인도의 최하층 신분인 달리트 출신의 나렌드라 자다브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상 책은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님인 다무와 소무의 일기이며, 바바사헤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하던 시기에 카스트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바바사헤브와 그에 감명받은 다무와 소무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일기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무와 소무의 계층은 카스트의 4단계, 사성제의 노예계층인 수드라 계층보다도 낮은 아웃카스트, 불가촉천민입니다. 1950년 인도헌법은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했지만, 아직도 뿌리깊은 카스트제도의 차별은 남아있습니다. 그에 대항해 불가촉천민 계급의 해방을 이끈 인물로 바바사헤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는 뛰어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훗날 인도정부 초대 법무장관을 지내게 됩니다.

다무는 전형적인 달리트로, 그의 역할은 마을의 하인 역할입니다. 가축의 시체를 치우고, 귀빈의 방문을 노래로 찬양하며 신발을 신을수 없고, 오로지 남이 주는 음식을 빌어먹는것만이 허락된 노예입니다. 그런 그가 살던곳에서 도망쳐 일자리를 구하던중 얻게된 바바사헤브 운동단체에서의 일은 그의 자긍심과 인권을 향상시켰고, 그로인해 부모님과 아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을 겪게 됩니다. 그는 변함없이 바바사헤브가 주장한 인간의 평등에 대해 주장했고 결국 그의 아내인 소무 또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게 됩니다.

다무와 소무는 신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면서 삶은 변화했습니다. 여전한 계급차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식들을 교육시켰고 그 결과중 하나로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처럼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신은 불가촉천민들에게 있어서 족쇄에 불과했습니다.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내치는 것임을 다무와 소무는 삶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일기를 바탕으로 씌여졌기 때문에 읽는이로 하여금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다무와 소무라는 한 가정이 노예계급에서 인권을 깨닫고 사회활동을 하고 참정권을 행사하고 종교를 바꾸는 과정이나 개인적인 결혼이나 직장을 얻었던 일, 다투는 일 등을 보며 우리네 1950~70년대즈음 가정도 이러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은 당연스레 생각하는 시민의 권리, 남녀평등, 계급평등, 종교의자유 등이 이루어질수 있었던 과정을 느낄수 있기에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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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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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신경정신과의 교수 출신으로 수용소에 생활하면서 그의 직업다운 관점으로 수감자들을 바라봅니다. 수용소생활을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수감사들을 죽음으로 이끈것은 단순히 가혹한 강제수용소의 환경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인한 자포자기가 사망률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제시합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가혹한 노동조건,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닌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의 상실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저자 빅터 프랭클을 비롯한 생존자들의 공통점은 아내를 보고싶다는 상상,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싶다는 상상, 글을 쓰고싶다는 상상 등의 삶의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믿음의 유무는 가스실로 가는것을 결정하는 장교의 손과는 상관이 없었지만요.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 이라는 사실이였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였다. 수용소에서 우리는 이를 닦을수 없었고 모두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때보다도 건강했다. 세수는 고사하고 손하나 씻을수 없는 환경에서 찰과상을 입어도 - 동상에 걸린 경우만 제외하면 - 상처가 곪는 법이 없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라고 묻는다면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 pp.46~48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생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프로이트 정신학 -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춘 정신학 - 과는 다른 로고테라피 -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정신학 - 을 창안합니다. 이 책의 2부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본 개념이 씌여져 있는데, 기존의 정신분석이 환자가 의사에게 회고하고 성찰하는 방식이라면 로고테라피는 의사가 환자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데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3가지 방법으로 찾을것을 권고하는데,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하는것, 자연과 문화 등을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체험하는것, 시련을 받아들이는것 을 권고합니다.

인간은 여러개의 사물속에 섞여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였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것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이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 p.215  

로고테라피를 통해 기존의 정신질환을 치료할수 있음을 직접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치료를 하나의 테크닉이 아닌 환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으로 변화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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