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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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삶의 조언에서 굉장히 자주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이 메인 요리에는 "인생은 짧으니" 라던지, "부자가 되고 싶으면" 같은 조미료가 첨가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아름다운 꿈이며, 성공한 삶이며, 노동의 이상입니다. 그러한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갔던, 그리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출현은 새로운 노동윤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열정 노동자'들 입니다.

한국에서 열정 노동은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90년대에 태동됩니다. 문화산업과 컴퓨터의 보급이라는 사회적 변화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아이들을 등장시켰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싹튼 신인류의 꿈은 일이 더 이상 인생의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움이자 취미인 세상이였습니다. 오타쿠와 마니아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문화산업의 동력이 됩니다. 때마침 등장한 문화산업의 성공은 정부에게 소프트 파워의 위력을 실감케 했고, 대대적인 문화 산업 육성책을 펴게 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기반은 열정 노동자의 등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열정 노동의 대상은 연예인, 프로게이머, 영화인, 만화가 등 문화 산업의 종사자에서 더 나아가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었는데, 열정 노동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노동윤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외부 세계를 침략하고 정복함으로써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더이상 개선이 힘들어질때 생산성을 향상시킬 방법은 내부에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에게 혁신적 노동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노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은 노동의 미학화였습니다. 자본은 기존의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관계에서,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라는 이름표에서 탈피하라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하늘에서 사장님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덤프트럭 운전자, 심지어 성매매 종사자마저 스스로를 고용하는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열정 노동자들도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노동력들은 스스로를 창작자, 첨단 산업 종사자, 개척자 등으로 여겼으며, 노동자라는 낡은 꼬리표를 다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도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그들은 노동자입니다.

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 - 이명박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머물던 열정은 산업의 내부로, 노동으로 유입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열정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윤리를 가져 왔습니다. 이 새로운 윤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며, 그러므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정노동의 명분을 통해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열정이라는 미명 하에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정노동은 일은 더 열심히 시키면서도 돈은 더 적게 줄수 있는 최적화된 착취를 가능케 합니다. 또한 자기계발서로 대표되는 경영 담론은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탁월한 전략이였습니다. 열정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과 적은 수입에 힘들어해도 그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노동 강도는 높았고 처우는 형편없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네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 p.182 

한국의 젊은이들이 열정 노동자군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은 그들이 열정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기대했던 수준의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착취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내던집니다. 그리고 열정 노동자는 비단 영화인, 프로게이머, 만화가 등 문화산업 종사자 뿐만 아니라 전 분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열정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임금 인상이나 신규 채용에는 부정적이면서, 인력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시스템 도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더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 앞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열정을 과시해야 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수해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열정을 당연하다는 듯이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신음을 틀어막고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의 주문이였습니다. 하지만 마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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