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전쟁 - 기후변화가 불러온 사회문화적 결과들 세미나리움 총서 25
하랄트 벨처 지음, 윤종석 옮김 / 영림카디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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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후변화는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이 말해 온 사회적 이슈입니다. 기후변화의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기후변화는 건강적인 측면이던, 경제적인 측면이던 간에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다양한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저자는 그러한 형태 중에서 폭력이라는 형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라는 관점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듯이, 기후와 폭력이라는 모습 또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이유로 사람들이 폭력성을 띄게 된다면, 그러한 폭력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데까지의 고찰,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지각변화에 대한 관찰 등을 담고 있습니다. 종교적 분쟁, 사상적 분쟁과 같은 고전적인 형태의 폭력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라는 테마 또한 다른 분쟁 못지않게 강력한 폭력성을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후적인 측면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폭력은 과거부터 있어 왔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공통점이라면,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의 땅 덩어리와 같은 수원지에서 발원하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점이며, 이러한 기반이 변화한다면 이는 곧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입니다. 사막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강수량은 줄어들고 있으며, 초원지대의 방목, 숲이 남벌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의 경우 독립 이후 40퍼센트의 숲이 사라졌으며, 유엔 환경계획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숲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기후변화가 폭력과 내전의 한 원인을 이룬다는 사례가 바로 수단에서 있었는데, 사막화에 따른 농지 변화는 유목민과 농부들 간의 이해관계에 금을 가게 만들었고, 결국 폭력적인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연관성은 3세계라 불리우는 지역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2005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서부를 강타했을때도 사람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는데, 총격전과 폭력사태, 상점 약탈 등이 이어지는 바람에 주 방위군까지 출동해야 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재앙에 대한 하나의 교훈을 전해주는데, 그것은 바로 재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닥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허리케인이 다가오자 부유한 주민들 대다수는 대피할 수 있었던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파괴된 도시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트리나의 사회적 결과를 연구했던 존 R 모건에 따르면, 도시의 빈곤지수와 재난의 파괴도는 유사한 상관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재난은 생활과 생존의 기회들에서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연을 가장 오염시킨 사람들은 그 고통을 가장 덜 받고, 자연을 가장 덜 오염시킨 사람들은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후변화의 피해가 상처받기 쉬운 사회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다른 요인보다도 더 폭력성을 증대시키고 난민 및 이민을 증가시키며 증대된 난민이 또다시 더욱 큰 폭력성을 증대시킨다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에 대항해 잘사는 나라들은 안보의식을 더욱 강화시키고 안보를 바탕으로 한 폭력수단의 강도를 더 증가시킵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테러주의에 정당화를 제공하고 강화시키며, 이는 자살폭탄과 같은 그리고 더 독특한 형태의 테러리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전적인 형태의 국경분쟁은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국제 지역분쟁이 생겨났습니다. 즉 나라와 나라의 전쟁보다 더 급박한 사안이 대두된 것인데, 이른바 밀입국과의 전쟁입니다. 이러한 밀입국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문제지만 기후문제 또한 무시할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원인입니다. 아프리카의 사막은 계속 넓어지고 있고 강수량이 줄어들고 숲이 사라지고 있으며, 대규모 댐 공사로 강제 이주를 당했거나 농사를 더이상 지을 수 없게 되었거나 내전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밀입국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밀입국으로 문제가 되는 지역이 호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아프리카와 유럽 등이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변화에 벽을 높게 쌓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2006년 멕시코와의 국경에 1125km의 최첨단 철조망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전체 국경선 3360km중 33%에 해당하는 엄청난 길이인데, 철조망이 설치되지 않는 지역은 사막이거나 산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이 철조망 때문에 국경에서 1954명이 국경을 넘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밀입국자들을 막기 위해 2005년 생긴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역외국경 작전협력을 위한 관리처, 줄여서 프론트엑스 라는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20대의 비행기와 30대의 헬기, 100척 이상의 배를 보유한 이 최첨단 기관은 기존 난민방어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경선을 자국 영토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획기적인 개념입니다. 프론트엑스는 국경선에서 난민을 막지 않고, 유럽 근처의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조해서 난민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프론트엑스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는데, 2006년에만 3천여명에 달하는 익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결과물들에 대해서 시민들의 의식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의식 또한 변화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인간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어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실험 결과 늙은 어부에 비해 젊은 어부들은 근해에서 사라진 어종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어획량의 감소에도 큰 걱정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 또한 기후문제를 막연하고 모호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기회로 지각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점에서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지, 그 원인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도덕과 실제의 부조화를 축소시키며 폭력성의 증대에도 기여합니다. 기후변화가 가져다 주는 대규모 폭력은 테오도르의 표현대로라면 야만의 귀환이거나, 댄 다이너의 표현처럼 문명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대적 시도가 낳은 결과물입니다. 고전적인 분쟁들과 달리 기후변화가 가져다주는 폭력은 예측하기 힘들며, 때문에 더 극적입니다.

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나는 기후변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구조, 사람들의 심리적 적응과 폭력의 순환은 21세기를 20세기보다 더욱 강한 폭력성의 시대로 만들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합니다. 어떤 사소한 분쟁이, 전세계적인 재앙으로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과 농작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일으킨 잡초를 둘러싼 투쟁이 50만명이 넘게 죽었던 다르푸르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과학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보급 등으로 인해 기후변화로 인한 폭력이 20세기의 세계대전과 같은 집단학살과 같은 형태로 나아가기는 힘들것이라고 예상되지만,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자기 생존에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이전엔 결코 생각하기 힘든 급진적 해결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됩니다. 현재 환경변화와 생존 경쟁으로 인한 폭력 때문에 고향을 등진 환경난민의 숫자는 2억 5천만명이 넘는데, 이러한 변화가 계속되면, 2050년에는 현재의 10배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때가 되면 기존의 국제관계는 와해되고, 선진산업국들 또한 이 변화의 영향에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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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6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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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랩 -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는 선거 캠프의 비밀
사샤 아이센버그 지음, 이은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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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선거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독재자들도 명목상이긴 하지만 선거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선거는 정치학의 발달에 힘입어 계속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적 변화를 짚어보고, 새롭게 등장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오바마의 선거전략입니다. 오바마는 혁신적인 선거전략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책이 나온 후인 지금은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러한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습니다. 기존의 선거 전략은 19세기엔 지역 가르기형 전략이였고, 20세기엔 언론 홍보 중심의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엔 유권자 개개인을 의미 있는 개별 단위로 다루는 분석법이 등장했습니다. 결국, 선거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학의 발달로 시작됩니다. 1892년에 개교한 시카고대학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치학이라는 학과를 만듭니다. 당시 정치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역사 중심의 학과목이 일반적이였다는 점에서 별개의 학문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현대적이였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정치학은 과학이 아니였는데, 당시 정치학 교수들은 과학적 지식을 정치와 관련짓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드로 윌슨은 정치학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인간관계는 과학으로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통찰력과 공감, 이해력이 핵심이기 때문에 정치는 관찰하는 학문이지 실험과학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러한 사고방식에 반대했고, 정치학에 점차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고즈넬과 메리엄은《기권》이라는 책을 통해 왜 여성에게 선거권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투표 참여가 급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했는데, 이는 정치학 분야에서 인구통계학적 속성에 따라 무작위 표본추출로 시행한 최초의 연구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하버드대학교의 홀콤은 지금까지 미국 정치인들이 과학적 방법을 대접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정치학자의 잘못이 크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평했습니다.

그 후 많은 선거전략에서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변화에 의한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워터게이트 사건입니다.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시행된 선거자금 개혁 중에 출발했는데, 처음으로 개인 기부금에 제한이 생기면서 거액 기부자가 더 이상 선거 운동에 무제한 수표를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증품은 1인당 정해진 한도가 1,000달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난데없이 선거 캠프들은 투표자 연합을 구성할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기부자의 기반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일부 선거 캠프와 정치 위원회는 전화 마케팅에 부분적으로 의지했지만 선거자금 모금에 가장 유용한 수단은 편지를 읽은 기부자가 상대 후보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어 그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당장 수표를 쓰게 하는 일종의 중상모략 편지였습니다. 때문에 편지를 보낼 대상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지지자와 부동층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필요성으로 인해 결국 과학적인 데이터가 절실해집니다.

과학적인 접근은 그동안의 전략에 내재되어 있던 비효율성을 감소시키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과거의 선거 전략은 확실한 지지층과, 어떤 말을 해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 상대 지지층에 대해 쓸데없는 자원을 소모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확실한 지지자에겐 선거홍보물을 보낼 필요도, 전화를 걸어 표심을 확인할 필요도, 정치인이 직접 가서 악수를 청할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대신, 부동층과 상대 지지층을 공략함으로써 전략적인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워싱턴포스트〉는 2004년 대통령 선거 운동에 총 22억 달러가 들었으며 부시와 케리가 거의 동일한 금액을 사용했다는 선거비용 분석 기사를 게재했는데, 이 기사에서 부시가 선거전략에서 타겟포인트를 제공해주는 회사와 계약하는데 사용한 325만 달러가 그 해 가장 현명하게 소비한 비용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익명의 민주당 정치전문가 또한 이를 인정하며, 민주당의 표적 설정능력이 공화당에 비해 선거를 한 번 치르를 기간만큼 뒤져있다고 말합니다. 부시는 확실한 자기기반에 덜 신경쓰는 대신, 유권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마이크로타겟팅 전략을 사용해 케리의 지지자들을 빼오는데 성공함으로써, 결국 2004년 선거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정치학은 행동과학 뿐 아니라, 행동심리학의 기법들 또한 동원합니다. 이러한 심리학 기법을 통해 어떠한 심리요소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은 선거캠프에서 전략으로 변화합니다. 많은 심리학 연구 중에서 마크 그레브너의 연구는 특히나 인상적인데, 그레브너는 선거가 끝나고 난 설문에서, 사람들의 10퍼센트가 투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줄이고 투표율을 높일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35만명의 사람들에게 총 4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각 편지에는 다가오는 선거를 상기시키는 내용과 함께 충고하거나, 꾸짖거나, 협박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모든 편지가 편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투표율이 상승시키는 결과를 보였지만, 투표가 사회적 의무라는 것을 강조한 편지는 그 효과가 저조했습니다. 투표 여부를 가족들에게 공개하겠다는 편지는 좀 더 높았고, 투표 여부를 이웃들에게 알리겠다는 편지가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주변 이웃들에게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알리겠다는 협박 편지는 투표의 중요성을 친절하게 상기시켜주는 것보다 몇 배나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협박편지라는 방법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후보나 사회단체가 자기 이름으로 그런 우편을 보내려 하지 않을 것임은 명확했습니다. 투표율은 올라가겠지만, 상대방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러한 강력한 정전기를 쓸모 있는 전류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중입니다.

텔레비전 광고가 성장하면서 신문 광고가 외면당했듯 버스 정류장 벤치나, 대중교통 광고도 한동안 외면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약 다가가야 할 27명의 유권자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 모인다면 버스 광고 벤치에 광고를 할 것입니다. - 오바마 선거캠프의 래리 그리소라노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한 선거캠프들은 꾸준히 높은 성공률을 보여 왔습니다. 미국의 민주당이 대부분 참패했던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으로서 승리한 콜로라도 주의 베넷의 사례, 최초의 마이크로타겟팅 기법을 도입한 미트 롬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정보 분석가 알렉스 게이지는 이러한 선거의 변화를 정보의 군비 경쟁이라고 비유하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오바마 진영의 선거캠프는 특히 뛰어납니다. 오바마 진영은 자신들의 확고한 지지자를 뺀 사람들의 데이터를 1억명이 넘는 수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행동분석을 통해 점수를 매김으로써, 가장 최적화된 타겟팅을 찾아냈습니다. 대통령 선거쯤 되면, 광고 계획에 버스 광고 등의 실외 광고를 넣는다고 하면 환영할 후보는 별로 없었지만, 오바마는 유권자가 있는 곳이면 버스광고든 지하철광고든 편견없이 달려갔습니다.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거 전략을 점검한다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집중한 이 광고 전술을 통해 오바마 선거 캠프는 전망이 없다고 치부되어 많은 이들에게 외면당했던 분야의 광고 전략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고, 이는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선거 운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과학의 발달로 선거의 모습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말에 극에 달했던 미디어를 통한 선거 정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누가 왜 투표하는가에 관한 정교하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레 정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개인에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선거는 선거 운동이 유권자를 다시 사람으로 대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당, 개인, 심지어 민주주의란 가치에 있어서도 모두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정당은 같은 노력으로 더 효율적인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개인은 좀더 특화된 선거정보를 제공받음으로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더 값진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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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이 세상을 바꾼다 - 여성화된 남자, 초신인류의 등장
우시쿠보 메구미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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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남성들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이들을 가리쳐 초식남이라고 명명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남성들과 달리, 술도 즐기지 않고, 담배도 거의 피우지 않으며, 심지어 결혼적령기에 도달했음에도 연애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품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 새로운 남성들은, 기존의 남성들인 육식남에 비하면 너무나 달랐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들에 대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 초식남들은 소비 시장과 연애 시장에서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바야흐로 초식남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초식남의 등장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품경제로 인해 일본사회는 호황기 시대를 맞았고, 소비지상주의가 도래했습니다. 버블 전성기였던 1989년, 당시 여성들의 유행어는 '자동차로 언제든지 와 주는 남자, 밥을 사 주는 남자, 명품을 사 주는 남자' 였는데, 학력이나 연봉이 많은 남자를 사귀면서 그가 자동차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고, 명품을 선물 받는 여자가 괜찮은 여자라는 가치관이 세상에 만연했습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초식남 바로 위의 세대인 단카이 세대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 세대는 어릴때부터 좋은 회사에 들어가 아무 걱정없이 살 거라고 교육받았던 세대였는데, 회사가 줄도산하고 1999년에 정부에서 노동자 파견법을 완전 자유화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초식남의 전 세대인 단카이 세대로 하여금 화려한 소비보다는 견실하게 하루를 보내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대로 변화시킵니다. 버블 시대 경험의 유무는 착실함과 물건에 대한 집착, 인기에 대한 욕구, 금전 감각 등에서 남성의 차이를 낳았고 이는 단카이 이후인 초식남들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초식남들은 불황기를 청소년기에서 맞았고, 이전 세대보다 어렸을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향은 초식남들의 가치를 만들었는데, 초식남의 핵심은 생활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초식남들은 버블 세대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체 앤 가바나 혹은 루이비통 등으로 도배하는 행위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초식남들은 1,000엔짜리 셔츠를 입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돈을 투자하는 등, 필요한 곳에만 돈을 씁니다. 초식남들에겐 데이트할 때마다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자동차로 에스코트를 해야 한다며 애쓰는 30~40대 남성들이 이해 불능이며 어리석은 존재로 비춰집니다. 철이 들 무렵부터 경기는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고, 버블세대처럼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도, 퇴근 후에 밤문화를 즐기지도 않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짓밟으면서까지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초식남들은 기성세대의 많은 문화를 거부합니다. 기성세대들이 회식을 할 때 맥주로 건배를 하는 것이 당연했던 반면, 초식남들은 맥주 대신 칵테일, 우롱차, 칵테일소주 등 자신이 원하는 술을 고릅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거나 전혀 안 마신다고 응답한 20대가 전체의 40%나 차지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억지로 권하는 술도 거부합니다. 자동차 또한 편리한 것은 인정하지만 유지비나 기름값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유할 필요성을 적게 느끼며,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연비입니다. 초식남들은 물욕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블로그나 파티 등에서 화젯거리가 되는 것들을 먹거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기성세대와 달리 포인트 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할인 상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합니다. 이러한 초식남들의 소비 문화를 보면 합리성과 효율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대 여성들을 인터뷰하면 저마다 이야기한다.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도 아낄 줄 아는 남자면 되요.", "그게 빚도 지지 않고 안심이 되지 않나?" 데이트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말한다. "얻어먹거나 에스코트 받으면서 괜한 빚을 지는 건 싫어요. 처음부터 더치페이가 맘도 편하고 남녀평등인 거 같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초식남들은 사 주지 않는다. 20대 남성의 60%이상이 여자친구와 더치페이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 2006년, 덴쓰 트렌드 박스 조사 

초식남이 연애와 결혼을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기피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의 평가를 보면 초식남이 기성세대의 남성들에 비해 말도 더 잘 들어주고, 붙임성 있게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남성들과 달리 전업주부를 하는것도 마다하지 않고 집안일도 더 잘 도와주는 등, 결혼적인 부분에서의 평가 또한 높게 받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초식남들이 섹스에 집착하지 않는 섹스리스 현상을 많이 보인다는데 있습니다. 여성과 러브호텔에 가서 같이 비디오게임만 즐기다 온다던지, 남녀가 호텔에 갔는데 잠만 자고 오거나, 같이 동거를 해도 아무 일도 없는 독특한 현상을 보이는 등 많은 20대 남성들이 섹스를 단순한 습관, 의무, 귀찮은 것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식남들은 결혼적령기가 되었음에도 연애생활, 섹스 혹은 결혼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성 경험의 조기화를 들 수 있습니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첫 경험을 스무살 이전에 하는 경우가 70%, 18세 전에 경험한 경우가 40%에 달합니다. 성 정보를 얻기 쉬운 환경, 어렸을 때부터 자기 방을 가지고 있는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성 경험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초식남들도 10대엔 육식계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10대에 이미 일찍 성을 경험한 터라 막상 결혼적령기에 들어서면 성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던 불황기의 영향을 받고 자란 초식남들은 연애에 관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때문에 결혼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동거를 하고, 누군가를 좋아해도 고백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식남 현상은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려 줍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술을 즐기지 않으며, 필요 없는 물건은 갖지 않고, 부모와 친분을 유지하고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 기존의 남성스러움이란 가치에 도전하고, 남녀평등을 원합니다. 어떤 의미론 아줌마스러운 초효율주의와 에코 지향, 가족과 고향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 등은 기존의 고도성장기의 잣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입니다. 초식남들의 초합리주의가 직장을 바꾸고 있고, 사회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초식남의 등장과 그 특징은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제 초식남들이 등장해 사회를 바꿀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초식남들은 이미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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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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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20세기의 성녀라 불리우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공식적으로 교황청이 20세기에 기적을 일으켰다고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테레사 수녀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해서, 종교와 관련이 없는 저조차도 어렸을 때 테레사 수녀에 대한 그림책을 봤고, 그녀를 찬미하는 언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문둥병 환자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있는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도 경건해지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를 비판하기는 커녕,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행하고, 테레사 수녀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한 일이 많았지만, 그녀의 권위는 쉽사리 그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대담하게도 테레사 수녀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비판은 충분히 논리적이며 객관적입니다. 히친스가 비판하고자 하는 목표는 테레사 수녀 뿐만 아니라 가톨릭, 더 나아가서는 종교이며, 그에 속는 자들, 즉 우리들입니다.

사람들은 속기를 바라니, 속여먹으라. - 라틴어 속담 

마더 테레사 숭배 전체의 요체는 지옥같은 도시에서 봉사하는 삶에 있습니다.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과 낮은 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인도 콜카타가 그야말로 지옥같은 곳이라는 전제는, 그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의 이미지를 한층 더 부각시켜 줍니다. 하지만, 콜카타가 비좁고 더러운 곳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삶에 의욕을 잃지도 않고 굽실거리며 살지도 않는, 그냥 전형적인 도시의 하나일 뿐입니다. 문화와 민족주의가 크게 융성했던 도시이고, 타고르의 도시이며, 국제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도시입니다. 물론 콜카타가 비교적 살만 한 곳이라는 평가가 마더 테레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도시에나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은 존재하며,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삶이 절대 헛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언론이 만들었고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런 치열한 이미지가 아닐 뿐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운영했던 고아원과 요양원엔 그보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아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적 의학 전문지〈랜싯〉의 편집장인 폭스 박사가 마더 테레사 시설을 보고 평가한 글이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스 박사는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된 의학적 처치를 내리지 않고 있으며, 혈액 도말검사와 같은 검사는 허용되지 않고, 처방전에 진통제가 들어있지 않는 등 의학적으로 제대로 된 시설이라고 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자원봉사자였던 메리 라우던의 증언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 시설이 마치 수용소와 비슷하며, 의자도 없고,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면서 주사바늘 소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비전문성은 마더 테레사를 포함한 종교단체 특유의 종교적 원인 때문입니다. 신비주의적 처방, 극단적인 소박함, 고통을 감내하는 삶은 분명 종교적이지만, 그것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말기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환자는 대답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 - p.69 

봉사의 삶의 상징인 테레사 수녀에게는 전세계에서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기존의 시설 외에 일급 수준의 진료소 여러개를 차리고도 남을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시설은 늘어나지 않았고, 진료수준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기부금은 하느님이 마더 테레사의 모임을 어여삐 여기신다는 증표로 여겨졌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수녀는 가난해야 하고, 테레사 수녀는 그러한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기부금은 은행에 예치되었지만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도우려 애쓰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허용하지 않아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폐기되기도 합니다. 너무나 종교적인 관점을 지녔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봉사하는 삶은, 너무나 종교적이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종교인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봉사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해지게 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점이 명확합니다. 가톨릭에선 섹스와 생식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며, 이러한 관점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으로 인해 임신하게 되자, 침략자이자 강간자의 씨를 낙태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호소했습니다. 해방신학이 대두하고, 현대사회에서 가톨릭이 점차 힘이 약해지면서 가톨릭의 주장은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더 테레사는 바티칸 내의 근본주의자들에게 가톨릭의 선행을 광고하는 인물이자, 기존 신자들에게 도덕을 권고하는 인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마더 테레사는 종교인으로서는 최고의 인물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킬 힘도 없었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힘도 적었습니다.

1984년 인도 보팔 시는 끔찍한 산업 재앙의 장이었다.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이 폭발하여 드넓은 시민 거주 지역에 유독성 화학물질을 쏟아냈다. 2,500명이 거의 즉사했다. 수천 명이 방사 가스로 인해 건강을 영영 해쳤다. 이어진 조사는 거듭된 태만과 과실을 드러냈고 안전에 대한 이전의 경고를 공장 측이 제쳐두거나 무시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오로지 거대 다국적 기업의 충격적인 무감각만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즉각 보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희생자들의 분노한 가족과 친척들이 그녀를 맞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응했다. 그녀는 말했다. "용서하세요." - p.126 

마더 테레사는 평생을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를 위해 일했고, 105개의 나라에서 500개의 수도원을 운영했으며, 전 세계에서 4천명의 수녀와 평신도 4만명을 거느린 사랑의 선교회를 이끈 성공적인 종교인이였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철저한, 아주 완벽한 종교인이였고, 때문에 마더 테레사는 해답이 아니였습니다. 마더 테레사를 후원하고 지지했던 사람들, 부유한 세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무언가 제3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기를 좋아하고, 믿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아무리 대리적일망정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의 동기와 실천을 너무 깊게 파고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신화와 뒤섞였고, 선교가 배달되는 진짜 주소는 후원자와 기부자의 자기만족이지 짓밟힌 자들의 필요가 아니였음이 드러났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과학적이지 못했고, 비효율적이였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러한 종교적 광채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환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술사는 청중의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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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 견검에서 떡검 그리고 섹검까지 대한민국 검찰, 굴욕의 빅뱅
정용재.정희상.구영식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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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윤리강령 1조를 보면,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주장에 빅엿을 날렸던, 수 십년간 검사들이 향응과 성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한 '스폰서 검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폭로는 2010년 4월 20일에〈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편으로 공중파를 탔고,〈시사IN〉과〈오마이뉴스〉에서 처음으로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스폰서 검사 사건 이전의 검찰의 별명은 '떡검'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덕분에 검찰은 새로운 별명인 '섹검'을 얻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대중들의 비아냥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였습니다. 검찰은 기소권의 독점, 기소편의주의 등 법에 보장된 무소불위의 권한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 1980년대까지는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의 위력에 눌려 단순한 법적 실무자 집단으로 권력에 기생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있었던 동백림 사건은 중정이 작성한 발표문을 그대로 공소장으로 만들어 검찰이 관련 인사들을 기소했고, 사카린 밀수사건때에도 검찰은 중정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은 성고문 혐의가 없다고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는데, 이 또한 안기부와 문화공보부에서 내린 결정이였습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검찰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검찰의 행동은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으며,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버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검찰을 견제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파워엘리트 집단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검사 윤리강령 제19조(금품수수금지) - 검사는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우려가 있는 자나 사건관계인 등으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금품, 금전상 이익, 향응이나 기타 경제적 편의를 제공받지 아니한다. 

검사 접대 관행은 계속되어 왔고, 아마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텐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밑에 있는 검사들한테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해야 검사장이나 부장검사 등이 보스로서 인정받고 위신이나 권위도 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검사에게 있어서 돈, 섹스 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고, 스폰서 검사 사건 전에도 금품수수와 관련된 검사들의 행태를 폭로하는 사건은 여럿 있었습니다. 의정부 법조비리사건, 대전 법조비리사건 등이 발생했고, 여기서 이른바 떡값이란 용어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떡값을 받는 검사, 이른바 떡검이란 단어가 대중화된 계기는 2005년에 노회찬 의원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입니다. 2005년에 노회찬 의원이 떡값 검사의 명단을 발표했고, 2007년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의 손으로 떡값을 전달했다며 현직 검사들을 지목했지만 흐지부지되었습니다.

2010년 정 사장이 검사들에게 향응과 성 접대를 제공했다고 고백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이 발생했습니다. 정 사장은 영남권에서 잘나가는 건설사 사장이였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서 경남도의원으로 선출되 문교사회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정 사장은 검사들이 타 집단에 비해 접대 등과 관련된 죄의식이 바닥이었다고 말합니다. 검사들 대부분은 접대를 거부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러한 접대는 당시 사회의 일종의 관행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정치인, 검찰과 인맥을 가지려 했고, 가지지 않으면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었습니다. 정 사장은 등산대회, 체육대회, 검사 전체회식 등 검사들의 활동에서 스폰서 역할을 했고, 현금 스폰서만 해도 지청장에게 월 200만원, 검사들에게 인당 월 60만원씩 제공했습니다. 그 외에 술값, 성접대비, 숙박비 등 모든 돈을 댔고 이러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 검사는 아주 야한 놀이를 웅궁정에서 했다. 당시 아가씨들 팁이 2만원이었고, 2차비(성 접대비)가 10만원이었다. 양주 1병에 2만 5000원 할 때였다. "우리 재미있는 놀이 한번 하자. 여기서 자기 파트너하고 즉석 섹스를 하는 아가씨한테 2차비를 다 몰아주자." 2차비가 10만원이었기 때문에 이 놀이에 참여하는 아가씨는 5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게 되는 셈이다. 내가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김 검사가 자원했다. 그래서 병풍 뒤에서 옷을 벗고 성관계를 맺었다. 당시 벌인 놀이에는 조건이 있었다. 실제로 성행위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짓을 하는 광경을 병풍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 p.101 

2005년과 2007년에 있었던 검사들의 비리에 대한 사건결과가 말해주고 있는 바는 명확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편히 살고 싶으면 검사는 건드리지 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스폰서 검사 사건의 주요인물 중 한명인 박기준 검사장이 사건을 폭로한 정용재 사장에게 전화로 말한 "너 김용철 변호사 봐라, 어찌 되던데? 매장 안 되더나?" 과 같은 경고를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검사들의 비리를 폭로한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수사되지도 않습니다. 스폰서 검사와 관련된 특검팀은 변호사 출신 특검 조사관들과 검찰 파견 검사들로 이루어졌는데, 당연하게도 검찰 파견 검사들은 수사를 방해합니다. 스폰서 검사들이 성 접대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자, 정 사장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하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당사자가 거짓말탐지기 시험을 거부한다는 이유와 법원에서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핑계를 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온 검찰의 행태를 말하며 정 사장은 말합니다. "과연 일반 국민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거짓말탐지기나 대질을 거부했을 때 검찰이 주장하는 논리로 대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대질도 거부하고 거짓말탐지기도 거부하는 것으로 보아 범죄혐의가 간접적으로 충분히 의심된다는 식으로 말아서 조사하고 기소하는 것이 검찰이 아니였나."

술집 사장과 아가씨는 2차를 나갔다고 수차례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특검은 성 접대에 대해서 무혐의 처리를 하게 됩니다. 특검은 성접대 검사들이 2차는 나갔지만 성 관계는 하지 않았다고 두둔했습니다. 이 말은 성관계 하는 것을 직접 보고 와야 성 접대가 확인된다는 뜻이였는데, 일반 성인들이 성매매로 단속됐을 때를 생각해보면 특검의 변명은 구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건 스폰서 검사 사건은 수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부산,경남지역 향응 접대와 관련해 한승철 전 감찰부장 등 4명을 뇌물수수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했지만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였던 박기준 검사장은 무혐의 처분을 합니다. 그리고 기소된 한승철 감찰부장 등 4명마저 무죄 판결받게 됩니다. 법원은 정 씨에게서 제공받은 향응이 사건 청탁 명목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어렵고, 자신과 관련된 고소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게 의식적으로 직무를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합니다.

결국 스폰서 검사 특검 결과 성접대에 관련된 검사들은 모두 내사종결 또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에 반해 검사들의 비리를 폭로한 정용재 사장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수감되었습니다. 2005년과 2007년에 이어, 2010년에 있었던 사건 또한 명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것은 검사의 비리는 건드리지마라, 건드리면 너만 죽을 뿐이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또다시 특검이라는 제도의 한계점 또한 명확히 보여줬습니다. 사건이 터질때만 급조되는 특검은 검찰을 견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검찰은 누가 견제하는가? 에 대한 답변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학자 액튼이 말한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검찰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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