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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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20세기의 성녀라 불리우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공식적으로 교황청이 20세기에 기적을 일으켰다고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테레사 수녀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해서, 종교와 관련이 없는 저조차도 어렸을 때 테레사 수녀에 대한 그림책을 봤고, 그녀를 찬미하는 언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문둥병 환자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있는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도 경건해지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를 비판하기는 커녕,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행하고, 테레사 수녀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한 일이 많았지만, 그녀의 권위는 쉽사리 그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대담하게도 테레사 수녀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비판은 충분히 논리적이며 객관적입니다. 히친스가 비판하고자 하는 목표는 테레사 수녀 뿐만 아니라 가톨릭, 더 나아가서는 종교이며, 그에 속는 자들, 즉 우리들입니다.

사람들은 속기를 바라니, 속여먹으라. - 라틴어 속담 

마더 테레사 숭배 전체의 요체는 지옥같은 도시에서 봉사하는 삶에 있습니다.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과 낮은 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자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인도 콜카타가 그야말로 지옥같은 곳이라는 전제는, 그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의 이미지를 한층 더 부각시켜 줍니다. 하지만, 콜카타가 비좁고 더러운 곳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삶에 의욕을 잃지도 않고 굽실거리며 살지도 않는, 그냥 전형적인 도시의 하나일 뿐입니다. 문화와 민족주의가 크게 융성했던 도시이고, 타고르의 도시이며, 국제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도시입니다. 물론 콜카타가 비교적 살만 한 곳이라는 평가가 마더 테레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도시에나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은 존재하며,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삶이 절대 헛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언론이 만들었고 대중들이 생각하는 그런 치열한 이미지가 아닐 뿐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운영했던 고아원과 요양원엔 그보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아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적 의학 전문지〈랜싯〉의 편집장인 폭스 박사가 마더 테레사 시설을 보고 평가한 글이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스 박사는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된 의학적 처치를 내리지 않고 있으며, 혈액 도말검사와 같은 검사는 허용되지 않고, 처방전에 진통제가 들어있지 않는 등 의학적으로 제대로 된 시설이라고 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자원봉사자였던 메리 라우던의 증언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 시설이 마치 수용소와 비슷하며, 의자도 없고,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면서 주사바늘 소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비전문성은 마더 테레사를 포함한 종교단체 특유의 종교적 원인 때문입니다. 신비주의적 처방, 극단적인 소박함, 고통을 감내하는 삶은 분명 종교적이지만, 그것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말기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환자는 대답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 - p.69 

봉사의 삶의 상징인 테레사 수녀에게는 전세계에서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기존의 시설 외에 일급 수준의 진료소 여러개를 차리고도 남을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시설은 늘어나지 않았고, 진료수준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기부금은 하느님이 마더 테레사의 모임을 어여삐 여기신다는 증표로 여겨졌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수녀는 가난해야 하고, 테레사 수녀는 그러한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기부금은 은행에 예치되었지만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도우려 애쓰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허용하지 않아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폐기되기도 합니다. 너무나 종교적인 관점을 지녔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봉사하는 삶은, 너무나 종교적이였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종교인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봉사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해지게 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점이 명확합니다. 가톨릭에선 섹스와 생식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며, 이러한 관점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으로 인해 임신하게 되자, 침략자이자 강간자의 씨를 낙태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호소했습니다. 해방신학이 대두하고, 현대사회에서 가톨릭이 점차 힘이 약해지면서 가톨릭의 주장은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더 테레사는 바티칸 내의 근본주의자들에게 가톨릭의 선행을 광고하는 인물이자, 기존 신자들에게 도덕을 권고하는 인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마더 테레사는 종교인으로서는 최고의 인물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킬 힘도 없었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힘도 적었습니다.

1984년 인도 보팔 시는 끔찍한 산업 재앙의 장이었다.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이 폭발하여 드넓은 시민 거주 지역에 유독성 화학물질을 쏟아냈다. 2,500명이 거의 즉사했다. 수천 명이 방사 가스로 인해 건강을 영영 해쳤다. 이어진 조사는 거듭된 태만과 과실을 드러냈고 안전에 대한 이전의 경고를 공장 측이 제쳐두거나 무시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오로지 거대 다국적 기업의 충격적인 무감각만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즉각 보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희생자들의 분노한 가족과 친척들이 그녀를 맞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응했다. 그녀는 말했다. "용서하세요." - p.126 

마더 테레사는 평생을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를 위해 일했고, 105개의 나라에서 500개의 수도원을 운영했으며, 전 세계에서 4천명의 수녀와 평신도 4만명을 거느린 사랑의 선교회를 이끈 성공적인 종교인이였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철저한, 아주 완벽한 종교인이였고, 때문에 마더 테레사는 해답이 아니였습니다. 마더 테레사를 후원하고 지지했던 사람들, 부유한 세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무언가 제3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기를 좋아하고, 믿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아무리 대리적일망정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의 동기와 실천을 너무 깊게 파고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신화와 뒤섞였고, 선교가 배달되는 진짜 주소는 후원자와 기부자의 자기만족이지 짓밟힌 자들의 필요가 아니였음이 드러났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과학적이지 못했고, 비효율적이였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러한 종교적 광채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환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술사는 청중의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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