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불평등 - 무엇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7
리처드 윌킨슨 지음, 손한경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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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중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 더 건강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부자 나라 사람들이 건강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강의 차이는 부자 나라와 부자 나라간에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자 나라가 다른 부자 나라보다 더 사람들이 건강할까요? 저자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건강한 사회는 가장 부자인 사회가 아니라 부자와 빈자의 소득격차가 가장 낮은 나라라고 말합니다. 즉, 더 평등한 나라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절대적 부를 달성한 나라에 있어서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상대적 소득의 차이입니다. 이는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힘든 결론인데, 건강은 음식이나 의학서비스 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소득격차가 심한 나라의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쓰고도 더 건강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바로 건강에 미치는 불평등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금연캠페인, 거리청소, 웰빙열풍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점차 사회가 발전하면서 건강이 최대의 미덕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위험성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험성 높은 행동들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다 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이 위험성 집단에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마침내 한 남성의 금연을 이끌어 낼 때마다, 아마 바로 그날 학교교정 어딘가에서 어린 학생 한두 명이 호기심에 이끌려 담배를 피웁니다. 때문에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의 위험수치를 낮추는 데 주력한다 해도, 전체 인구의 질병분포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맨 처음 그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 내 제반 요소들에 대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소득격차가 큰 국가는 소득격차가 작은 국가보다 건강수준이 열악한 편이며, 가장 부유한 선진국보다는 가장 평등한 국가가 최고의 건강을 누린다는 것은 여러 자료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뉴욕 할렘은 대부분 연령층의 사망률이 방글라데시의 농촌보다 높습니다. 영국의 경우 최빈곤층 10%의 사망률은 최부유층 10% 사망률의 4배나 되는데, 이러한 사망률의 차이는 심지어 동일한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납니다. 런던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무보조원 등 하급공무원의 사망률이 고급관료의 사망률보다 3배나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를 내는 것일까요? 미국공중보건저널에 실린 논문은 사회응집력이 소득분배와 사망률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응집력은 삶의 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삶의 질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사회의 응집력이 변화한 사례는 대표적으로 70년대의 동유럽을 들 수 있는데, 당시 동유럽의 건강수준은 서유럽에 필적할 만하였는데, 동독의 기대수명은 서독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이 되면 동유럽국가 중 서유럽국가보다 사망률이 낮은 나라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센의 연구를 보면 경제적 궁핍은 공적 생활에 대한 보이콧 뿐만 아니라 사적 소모임들의 경쟁과 대립으로 이어졌고 공격성과 사회적 병리, 비우호적 사회의 온갖 양상을 분출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소득격차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보다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통계 또한 삶의 질과 건강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운전태도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큰데, 안전은 운전자간의 예의, 횡단보도에서의 자발적인 양보, 끼여들기의 허용, 사소한 실수에 대한 관용, 제한속도와 교통법규 준수, 어린이의 안전고려 등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소득격차가 클수록 운전자들이 공격적이고 경쟁적이고 비협조적이며, 결국 도로는 더 위험해집니다. 운전행위는 사회구성원 각자가 타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매우 민감하게 보여줍니다.

상대적 빈곤이 사회심리적 경로를 통해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실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입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대체로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해고통보를 처음 접했을때부터이며 건강은 직업불안정이나 실업위협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실업은 또한 살인율 및 자살율과도 연관이 있으며 차별은 갈등을 낳습니다. 델리와 윌슨은 살인에 관한 연구에서 폭력의 가장 일반적인 원인으로 체면손상을 꼽는데, 이러한 자존심의 손실과 수치심은 실업상황에서 극대화될 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더욱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불평등은 사회구조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제도가 지닌 합법성을 크게 훼손시킵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은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담배와 술 그리고 기분전환 약재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것들 없이는 현재의 형태로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 - p. 246 

이런 문제를 낳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사회구조 개혁의 결여로 말미암아 비용이 증가합니다. 결국 우리는 변화를 이루기 위한 비용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날로 첨예해지는 모순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이러한 모순은 일정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그 사회의 지배체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회,경제적 구조는 전체 사회, 특히 공공부문에 비용부담을 부과하는 문제를 발생시키며 상대적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인구비율이 높아지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복지 기여자에서 수혜자로 바뀌어나갑니다. 그 결과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고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사회역량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의 퇴락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안전과 복지를 위협합니다. 소득분배가 사망률에 미치는 주된 영향이 빈곤층에서 나온다 해도, 연쇄적으로 부유층 등 사회 전체적으로 파급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유아사망률에 대한 독특한 연구는 소득불평등에 따른 건강이 빈곤층에게만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최빈곤층 20%의 소득을 절대적인 의미에서 상수로 놓고 최부유층의 소득이 증가한다면, 일반적으로는 부유층 자녀들의 건강에 긍정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전체 유아사망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는데, 연구결과는 빈곤층의 소득이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부유층 5%의 소득이 높을수록 유아사망률도 높아짐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삶의 질에서 사회심리적 질이 중요하며, 이러한 사회심리적 질은 물질적으로 평등할수록 높아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의 확대가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평등의 확대와 빠른 경제성장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습니다. 버드셀, 퍼슨, 테벨리니의 논문 등은 소득격차가 심화될수록 성장이 둔화되며, 평등한 국가일수록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며 성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빈곤층과 부유층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은 비단 당사자인 빈곤층이나 소수집단들의 이타주의적 행동만이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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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스티븐 존슨 지음, 윤명지.김영상 옮김 / 비즈앤비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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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바보상자'. 어렸을때를 생각해보면, 이 이상으로 대중문화를 강력하게 정의했던 단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TV를 보면 머리 나빠지니 숙제를 하거나 밖에서 놀라는 말은 정말 흔히 들어본 말입니다. 세월이 흐르자 TV의 자리는 게임이 차지했고, 인터넷이 차지했습니다. 이런 인식엔 대중문화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으며 싸구려 스릴이 주류가 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심지어 게임은 아이들을 공격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믿음도 있습니다. 정말로 대중문화는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 왔을까요? 저자는 대중문화가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중문화 중에서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게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게임의 장점을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시각지능의 향상을 말하는데, 실제로 로체스터 대학에서 사람들을 뽑아 〈테트리스〉와 1인칭 슈팅게임인 〈메달 오브 아너〉를 일주일 동안 하도록 한 결과를 보면 시각지능이 향상됨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발생시키는데, 일상과 달리 게임세상에서는 라이프가 늘어나거나, 새로운 레벨로 올라갈 수 있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것처럼 보상이 확실히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우리 일상보다 더 크고, 더 생생하고, 더 명확하게 정의된 보상으로 가득 찬 가상세계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임을 통한 지적효용은 우리가 결정을 내리게 하고,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게임 플레이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인 것입니다. 겉에서만 보면 게임은 미친 듯이 클릭하고 총을 쏴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게이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1차적인 활동이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순간 판단이 됐던 장기적인 전략이 됐던 의사결정이 가장 1차적인 활동이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우는 건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교육계에 만연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사람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만 배운다는 믿음이다. 공부를 하면서 형성되는 태도나 호불호를 통한 부차적인 학습은 받아쓰기나 지리, 역사 수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배우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는 동안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존 듀이,《경험과 교육》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대중문화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TV프로그램들 또한 갈수록 고도의 인지활동을 요구합니다. 만약 대중문화에서 우리 두뇌가 정말로 생각할 필요 없는 환경을 원하고 그에 맞춰 퇴화해 왔다면, 〈퐁〉이후 비디오 게임은 단순화의 과정이어야 했을 것입니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가장 단순한 게임을 내놓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테고 모든 가상세계는 가장 손쉬운 길로 게이머를 안내할 것입니다. 영화도 더욱 단순해졌을 것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TV프로그램들 또한 직관적인 스타일이 유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대중문화와 현재의 대중문화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갈수록 많아지는 등장인물들과 사건의 복선, 숨겨진 의미, 패러디 등은 과거에 비해 현재의 대중문화들이 훨씬 복잡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흔히 대중문화의 단점만 모아놓은 듯한 최악의 프로그램들마저도 과거에 비하면 훨씬 고도의 인지활동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대중문화가 복잡해진 것은 판매전략 때문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눈을 처음에 사로잡는 것에서, 여러번 볼때까지 계속 시선을 고정하게 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뀐다면, 이런 변화는 영화나 TV프로그램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번 다시 보게 하려면 당연히 내용은 복잡해져야 합니다. 게임 또한 점점 어려워지는 건 난이도 높은 게임이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재방송의 출연, 대중문화의 다양한 확산은 처음 볼 때보다 두세 번 되풀이해서 볼수록 더 재미날 뿐 아니라, 대여섯 번을 봐도 새로운 느낌이 나야 대중문화가 팔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심슨 가족〉은 충분히 재밌지만, 패러디 장치를 알게 되는 순간 보는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치밀한 구성에 무릎을 치게 되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하려면 어려워야 하고, 사람들의 인지능력을 더 자극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종종 TV나 컴퓨터 앞에서 최면에 걸린 듯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고 경악하며 TV나 컴퓨터가 우리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신적 퇴화의 조짐이 아니며, 오히려 집중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개개인이 처한 환경의 복합성은 자극요소와 요구특성에 의해 정의된다. 다양한 자극에 노출될수록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아진다. 모순되고 분명히 정의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지면, 환경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고도의 인지활동이 보상받게 되며, 인간의 지능은 발달하고, 하나의 환경에서 적용된 인지활동은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 카미 스쿨러 

IQ의 역사를 보면 또 다른 대중문화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효과는 IQ점수 중하위 집단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오늘날 평범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똑똑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상위 2~3%의 천재들은 1900년대 천재에 비해 월등히 똑똑하지는 않습니다. 평균적인 지능을 지닌 사람은 〈포탈〉을 하거나 〈24〉에 빠져 있는 동안 패턴인식 능력이 향상될 수 있겠지만, 천재라면 이정도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풀어내는 데 특별한 두뇌단련이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 외에도 대중문화는 일방형의 장문 활자 이야기에 익숙해지도록 우리 두뇌를 훈련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즉 대중문화가 우리를 더 똑똑하게 하지만, 기존의 책과 같은 문화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대중문화는 몰입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 또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갈수록 증가하는 섹스와 폭력 같은 도덕성 문제도 필연적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문화에서 내용은 두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인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TV프로그램에서 섹스와 폭력이 등장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화면 속에 움직이는 것들이 허구라는 걸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결함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지 우리에게 윤리적 기준을 세워주기 위함이 아님 또한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가치를 알려주는데 있어서 여전히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건 부모와 친구이며, 〈GTA〉의 차량 탈취범이 아닙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쇼나 게임, 영화의 결말은 도덕의 승리라는 전통적 구조를 충실히 답습합니다.

결국 대중문화는 갈수록 정교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점점 더 어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분석하게 하고, 자원을 관리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장기적인 패턴을 인식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는 과거의 지적문화와 비교해 싸구려 대중문화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멍청한 오락물에 빠져사는 생각 없는 사람들 또한 아님을 말해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문화가 멍청해진다는 통념은 틀렸으며, 오히려 대중문화는 젊은이들의 두뇌발달을 결정짓는 원동력입니다. 결국 대중문화는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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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당 - 정치의 새로운 혁명
마르틴 호이즐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로도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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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쳐들어왔다! 해적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말라카해협의 해적이나 소말리아의 해적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대항해시대2〉의 하이레딘 레이스나〈캐리비안의 해적〉의 잘생긴 해적 잭 스패로우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쳐들어온 해적들은 그 어떤 해적들과도 다른 독특한 해적들입니다. 그들은 청바지와 허름한 티를 입었고,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키보드와 마우스입니다. 이들은 대담하게도 의회에 쳐들어갔고, 전리품을 챙겨 갔습니다. 독일의 해적당은 2011년 9월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8.9%의 득표율을 올렸고, 의회에서 15석을 쟁취하게 됩니다. 해적당은 해적답게 부자는 아니였는데, 위원회의 수중에 있는 돈은 불과 15,000유로, 한화로 2천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해적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모두 20대나 30대였는데, 해적당수 제바스티안 네어츠는 28살이였고, 주의회의 당대표인 야스민 마우어러는 22살의 여대생이였으며, 해적당의 정치감독인 마리나 바이스 반트는 24살에 불과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해적당에게 표를 던졌을까요?

해적당의 시작은 존 페리 발로로부터 시작됩니다. 록그룹의 작사가이자,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이며, 가축을 키웠고, 반핵 활동가라는 독특한 이력의 발로는 해적당의 정신적 기반이 된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산업 세계의 정부들을 부정하는 이 선언문은 미국의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검열을 허용하는 통신개혁법을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 국가의 위계질서와 달리 인터넷은 더 평등하고, 더 투명하고, 더 정의롭고자 했던 사상은 스웨덴에서 해적당을 창설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인터넷과 사회 내부의 커다란 문화적 간극이 넓은 국민층을 범죄자로 만드는 행태에 대한 반발은 해적당의 인기를 올려줬고, 2009년 6월 17일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웨덴 해적당은 7.1%의 득표율 달성하며 스트라스부르에 입성하게 됩니다. 스웨덴 해적당의 선원도 꾸준히 증가해 5만명을 넘어섰고, 당원 수로 볼때 스웨덴에서 세번째로 큰 당이 되었습니다.

2006년 9월 10일에는 독일 해적당 탄생했습니다. 독일 해적당은 2009년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해 2011년엔 13,500명의 선원이 해적당에 들어갔습니다. 해적당의 성장은 인터넷과 정치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국가가 인터넷 자유 지역을 더 많이, 더 비타협적으로 그리고 더 공격적으로 침해할수록,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에서 사회화된 사람들, 그리고 인터넷을 생활공간과 작업 공간으로 삼은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뉴욕과 마드리드가 테러 공격을 당한 이후 독일에서 통신정보 임의저장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는데, 해당 법안이 2007년 연방의회에서 가결되고 연방 대통령이 서명을 하자 해적당은 반발했고 해적당의 인기가 상승했습니다. 결국 많은 논란과 함께 통신정보 임의저장에 반대하는 거리시위는 2011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독일 해적당에 힘을 실어 준 또 다른 사례는 해커 조항인데, 정보의 탐색 및 해킹 예방이라는 제목의 202c항을 형법에 추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컴퓨터 엘리트들의 단체 CCC는 발표를 통해 유해 소프트웨어 취급의 범죄화가 특정 활동을 더 힘들게 하고 오히려 독일 컴퓨터 네트워크 안전을 해친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네트워크 시민들이 수세에 몰렸는데, 새 조항은 범죄 행위 예방을 빌미로 시스템 관리자, 보안 전문가, 대학 교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합법적 활동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실상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해적당은 시민의 불만에 기초하고 있지만 비폭력적입니다. 해적들은 폭력은 없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일구어 내서,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굼시키길 원합니다. 이는 현실정치의 정당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며 그 변화의 핵심은 인터넷을 통한 변화에 있습니다. 해적당은 인터넷을 정치의 미래지향적인 플랫폼으로 보고 있는데, 당원들 스스로 민주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적당의 강령도 누구든 자유롭게 수정을 제안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위키 형태로 인터넷에 올려져 있습니다. 해적당의 정체성과 핵심 요구사항은 저작권의 개혁, 특허권 개혁, 정부 활동의 투명성을 통한 시민권 강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권리,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익명 소통의 권리 등이 있으며, 기초 민주주의적 담론, 측정 가능한 피드백, 일반 당원의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없을 때는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4년에 한 번씩 마케팅 캠페인을 꾹 참고 견디다가 투표를 하고 나면 그 다음 몇 달, 몇 년간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여섯 자리 숫자의 지지성명을 받아 내거나 초인간적인 규모로 지속적인 시위를 조직하지 않으면- 절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넌더리를 내고 있어요. - 해적당 위원장 게르하르트 앙거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위와 정부의 실각, 위키리크스의 공개, 뉴욕 월가 시위 뿐만 아니라 해적당의 성공은 인터넷의 잠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해적당의 주력 지지층은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이며, 독일 해적당은 지지율 10%정도로 기민련, 사민당, 녹색당의 뒤를 이어 네번째 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창당한 이 젊은 정당은 야심찬 목표가 있습니다. 정치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내용적으로 무언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닌, 정치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해적당이 원하는 것은 정치가 수행되고 인식되고 결정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지금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슈피겔이 평가하길, 공통된 이념이 아닌 공통된 방법론으로 뭉친 최초의 정당인 해적당의 행보는 그래서 신선합니다. 기성 정치에 좌절한 독일의 젊은 세대는 직접 정치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러한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해적당의 행보는 꾸준히 주목해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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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션 2.0 - 어느 소심한 구글 직원이 이끈 혁명이야기
와엘 고님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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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훗날 '아랍의 봄' 중 하나로 불리우게 될 이 혁명은, 기존의 혁명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혁명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면, 이집트 혁명은 집단지성이 이끌었습니다. 기존의 혁명이 비밀장소에서 혁명가들이 계획을 세우고 토론했다면, 이집트 혁명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소셜미디어는 개방, 참여, 공유의 가치로 요약되는 웹 2.0시대를 이끌었고, 이를 기반으로 진행된 혁명은 그래서 《레볼루션 2.0》인 것입니다. 이 거대한 물결은 철옹성같은 30년 독재를 자랑하는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립니다.

정치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이집트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공포정치가 만들어낸 문화의 결과입니다. 누구든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당인 국민민주당에 반기를 든다면,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교육, 보건, 경제, 실업, 뇌물, 부패 등을 놓고 불평을 하는 등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만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해 왔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1990년대 이후로 국영 기업들을 계속 팔고 있었고, 무바라크의 기업가 내각은 점점 더 부의 불평등을 가속화시킵니다. 때문에 1981년부터 지속된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에 맞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엔 파업의 물결이 몰아쳐 26,000명이나 되는 시위대가 모여 사회정의를 외쳤고, 2008년 4월엔 4.6청년단체가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파업시위는 무바라크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였는데, 사람들을 단결시킬 만한, 혹은 무바라크에 대적할만한 상징적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디어 그런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뉴욕 및 제네바 주재 이집트 외교관을 지냈고,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으로 일했으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모하메드 모스타파 엘바라데이 박사였습니다. 이집트정부는 그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 최고 훈장인 나일훈장을 주는 등 포섭하려 했지만, 점점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엘바라데이를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결국 엘바라데이가 이집트 정치를 비판하자 독재 정권은 그를 깎아내리며 대립하게 됩니다. 엘바라데이는 자신을 영웅시하는걸 원치 않았고, 이집트 청년은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엘바라데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엘바라데이의 출현을 계기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무바라크에 대한 저항은 본격화됩니다.

저자 와엘 고님은 전형적인 이집트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자유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자유로운 나라의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고, 미국까지 날아가서 미국인 아내를 얻었습니다. 9.11사건으로 미국에서 살기 힘들어지자 이집트로 돌아와서 IT관련 일을 시작합니다. 여러 직장을 거쳐 구글의 이집트 마케팅 책임자가 됩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얻었고 금전적으로도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와엘 고님 역시 처음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바라데이가 가져온 변화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었고, IT관계자 답게 엘바라데이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그를 도와주게 됩니다. 정치적 입장은 배제한 채 토론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 모더레이터를 통해 엘바라데이 박사의 소통을 돕는 등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할 뿐이였지만, 엘바라데이 박사는 독재정권의 압박 때문에 다른 미디어에 등장할 수 없었고, 엘바라데이 박사가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인터넷이다 보니 페이스북 페이지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집니다.

하지만 2010년 6월 6일, 와엘 고님의 인생을 바꿀, 이집트를 바꿀 사건이 일어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명의 비밀경찰에게 칼레드 모하메드 사이드라는 남자가 살해당했는데, 뒷머리는 움푹 파여 있었고, 아랫입술은 반쯤 찢어졌고, 턱은 완전히 탈골되어 앞니는 모두 빠지고 없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 와엘 고님은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분노했고,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정체를 밝히지 않고 운영하게 됩니다. 독재정권은 사건을 부정했지만, 유명한 반정부 인사들이 이 죽음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원칙은 비폭력주의와 참여민주주의였는데, 이 두개를 지키면서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의미로 침묵하며 서있을 뿐인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를 하기로 합니다. 인터넷에서 시작한 토론에서 보다 어렵고 힘든 과제는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투쟁의 장소를 옮기는 것인데,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는 이집트 각 도시에서 성공적이였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네티즌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를 보내오게 됩니다.

나는 당신더러 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맞서서 싸워야지 분노를 만들려고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 한번도 주먹을 뻗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주먹들은 모두 고스란히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가 저지른 불의를 돌아보게 할 겁니다. 물론 많이 아프겠지요. 모든 싸움이 다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내 육신에 고문을 가하고 뼈를 부러뜨려 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죽은 내 몸뚱어리를 가지겠지요. 하지만 나의 복종만은 가지지 못할 겁니다. - 간디 

3회에 걸쳐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집트 사람들은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닿고 더 큰 항의를 시작합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분신을 했는데, 이를 계기로 튀니지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이 시작됩니다.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이집트 사람들도 질세라 1월 25일, 이집트 경찰의 날에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게 됩니다. 1월 25일 타흐리르 광장엔 수천 명이나 되는 인파의 시위대가 광장을 덮었고 사람들은 무바라크 퇴임을 외쳤으며, 몸싸움과 구타, 최루탄이 난무했습니다. 그날의 시위는 성공적이였지만 이는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3일 뒤인 28일에 금요 예배와 맞춰서 총파업 할것을 선언했고 실행되었습니다. 25일 시위를 계기로 이집트 정부는 모든 통신을 차단했는데, 이 조치가 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시위가 있는 줄 몰랐던 시민들이 정권을 위협하는 어떤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시위에 참가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이 시위는 무바라크 퇴임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28일의 시위는 와엘 고님이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와엘 고님은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를 운영하면서 토르라는 프록시 프로그램을 사용해 인터넷 접속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지만 결국 그는 시위 전날밤 국가보안국의 추적끝에 잡혀서 지하감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와엘 고님은 11일간 눈가리개를 한 채로 수감되었고, 정신적 고문을 당합니다. 와엘 고님이 실종된 것을 눈치챈 동료들은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구글의 협조를 통해 와엘을 추적했고, 공개적으로 그가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운영자임을 공개합니다. 정치적으로도 그가 석방되지 않는다면 시위대는 협상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고 언론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자 결국 독재정권은 와엘 고님을 풀어주게 됩니다. 결국 그 이후 무바라크는 압박에 못 이겨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시작한 투쟁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 역사적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루시퍼 이펙트》에서 언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한 영웅들이였습니다

이집트여,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 와엘 고님이 2월 12일에 올린 트위트. 트위터는 이 트위트를 2011년 최고의 멘션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아직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았습니다. 와엘 고님과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아랍의 여러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태동했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한 꽃을 피우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합니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전 내무부 장관에게 법정 최고형인 25년이 선고됬지만, 진정으로 국민의 권력이 국민에게 돌아가기엔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해적당》에서 해적당은 '인터넷이 한 번 있었던 곳에선 민주주의를 억압할 수 없다'는 신조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집트의 국민들은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믿고 살아가던 평범한 이집트 청년들을 혁명의 동력으로 결집시킨 것은 다름아닌 인터넷의 힘이였습니다. 이집트의 이야기는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한 집단지성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과거의 여러 시민혁명과 차이점이 있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봄직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과도 어느정도 공통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의 봄'이 하루빨리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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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된다 - 십대들,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말하다
프랜 펀리 엮음, 김영선 옮김 / 아일랜드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9명의 청소년들이 직접 겪은 폭력의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책에 나온 애덤, 앨런, 케이틀린, 클레어, 데비, 돈, 재니스, 수, 케빈의 일화는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문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주변에는 문제행동의 원인이 되는 각종 폭력적인 환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청소년 폭력은 가해자, 피해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가정에서의 폭력, 학교에서의 폭력, 거리에서의 폭력, 연인 간의 폭력, 소수자에 대한 학대, 폭력 집단의 협박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청소년들 대부분은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책에서 나오는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경우에 청소년 폭력은 그 원인이 가정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춘기는 유아의 절대적인 의존과 성인의 자립 사이에 위치하는데, 사춘기는 제2의 반항기로 불리듯이 표면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반항을 통해 부모로부터의 분리, 개체화를 이루고자 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사춘기 및 청년기에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나 독립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 청소년들은 부모에 대한 의존이나 어리광이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안심하고 반항하거나 부모에게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유아들이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는 동안에만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고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반항하기 위해선 전제조건으로서 부모의 사랑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사랑의 발견》에서 "어떤 형태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어미 원숭이들은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결핍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한 것처럼, 폭력을 일으키는 청소년의 부모는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할 경우,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는 다른 의존대상을 외부세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 대상은 또래집단이기도 하며, 사춘기의 동성친구 그리고 이성친구나 애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의 분리라는 심리적,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부모와는 다른 의존대상을 선택한 경우인데, 이는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어려운 관계입니다. 신체적 발달에 비해 정신적 발달이 미성숙한 사춘기는 우정이나 연애감정에서도 의존이나 어리광의 심리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사춘기 아이들의 우정이나 사랑은 어른들의 그것과 비교해 약하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이는 타자를 사랑하는 능동적 대상애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수동적 대상애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심리는 상처받기 쉬우며, 어리광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랑과 정반대의 오해, 원한, 증오, 분노, 미움 등의 이기적인 감정이 일어나기 쉽고, 궁극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뇌의 미세 변이, 발달장애나 정신장애와 같은 특수한 요인, 그리고 양육환경과 교육의 영향, 개인의 특이한 성격 등 여러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폭력은 발생합니다. 하나의 폭력이 발생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요인들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요인 중 한두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폭력은 쉽게 발생하지 않습니다. 즉 아무리 많은 요인들이 갖추어져 있었더라도 애정이 바탕이 된 양육과 올바른 교육이 있었다면 많은 폭력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때론 소시오패스 등과 같은 예가 반례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개인의 자질이 어떠했든 어릴 때부터 당해온 폭력이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상처로 남으며 결국 폭력행동의 이미지나 패턴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한《당신 곁의 소시오패스》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적 문화에 따라 소시오패스 비율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개인주의, 성공지향주의적 성향이 높을수록 소시오패스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는 소시오패스의 자질이 폭력의 원인임을 지적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체벌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등에서 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주된 원인중 하나가 교내 체벌 금지라는 주장이 학생들한테서 나왔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이는 신체적 체벌을 사용하는것이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효과적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폭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십대들의 범죄심리를 연구한 일본의 심리학자 후쿠시마 아키라에 따르면, 이러한 체벌에 대해 '감정적으로 구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교육상 때리는 것은 괜찮다거나 애정을 가지고 때린다면 결국 그 애정은 아이에게 전해지며, 아이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폭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주장을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데이터는 현재로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일보에서 게임은 또 다른 마약이며, 학교폭력의 배후는 게임이라고 말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후쿠시마 아키라는 '이 시기에 급증하는 공격성을 발산하고 승화시킬 통로와 수단을 연구하여 아이들이 각각의 발달단계에서 뿜어내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외부로 적절히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게임이 폭력의 배출구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체벌이나 게임 금지와 같은 방법은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비효율적입니다. 그보다는 청소년들의 공격성을 발산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강력한 방법은 운동, 경기, 체력단련 등 육체를 움직이고 혹사하고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규칙 아래 이루어지는 운동경기는 사회성을 습득하는데도 효과적이며 공격성의 일부를 경쟁심이라는 심리적으로 승화된 형태로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는데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는 아이들의 성이나 충동의 해결책으로 흔히 제시되는 답이지만 그만큼 유용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줄 수 있는데,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는《푸른 눈, 갈색 눈》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은 어렸을 때의 교육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은 차별을 해보고 당해보는 경험해봄으로써 차별의 정체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게 됩니다. 선구적인 엘리어트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엘리어트의 학생들이 덜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보임은 연구결과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미주리 캔자스시티에 있는 우드랜드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급식비를 지원받을 만큼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2005년 이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이던 체육 시간을 대폭 확대해서 매일 45분씩 실시했고, 수업 내용도 유산소 운동에 초점을 두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학생들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고, 교내 폭력 사건도 전년도 228건에 비해 95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도시 중심부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있는 학교가 이처럼 급격하게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운동화 신은 뇌》p.53 

청소년들의 폭력 문제는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입니다. 2012년 3월에 적발된 강원도의 중, 고교 폭력 서클은 성인들의 폭력 조직단체를 그대로 흉내냈습니다. 이는 중,고교 폭력서클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성인들의 폭력단체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맨 처음 그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 내 제반 요소들에 대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위험성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험성 높은 행동들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다 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이 위험성 집단에 유입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청소년 폭력문제는 단순히 청소년들 개인간의 싸움이나 집에서 폭력을 당하는 가정사와 같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의 문제이며,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학교폭력은 기성세대가 인지하거나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는 학생들은 폭력의 구조로 인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폭력의 징표를 읽어 내는 기술과 지혜를 기성세대가 가져야 합니다.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에서 인기가 있다는 일진물 열풍도 어쩌면 그런 징표일지도 모릅니다. 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저항할 때 멈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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