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된다 - 십대들,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말하다
프랜 펀리 엮음, 김영선 옮김 / 아일랜드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9명의 청소년들이 직접 겪은 폭력의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책에 나온 애덤, 앨런, 케이틀린, 클레어, 데비, 돈, 재니스, 수, 케빈의 일화는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문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주변에는 문제행동의 원인이 되는 각종 폭력적인 환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청소년 폭력은 가해자, 피해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가정에서의 폭력, 학교에서의 폭력, 거리에서의 폭력, 연인 간의 폭력, 소수자에 대한 학대, 폭력 집단의 협박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청소년들 대부분은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책에서 나오는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경우에 청소년 폭력은 그 원인이 가정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춘기는 유아의 절대적인 의존과 성인의 자립 사이에 위치하는데, 사춘기는 제2의 반항기로 불리듯이 표면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반항을 통해 부모로부터의 분리, 개체화를 이루고자 하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사춘기 및 청년기에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나 독립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 청소년들은 부모에 대한 의존이나 어리광이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안심하고 반항하거나 부모에게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유아들이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는 동안에만 바깥세계와 관계를 맺고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반항하기 위해선 전제조건으로서 부모의 사랑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사랑의 발견》에서 "어떤 형태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어미 원숭이들은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결핍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한 것처럼, 폭력을 일으키는 청소년의 부모는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할 경우,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는 다른 의존대상을 외부세계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 대상은 또래집단이기도 하며, 사춘기의 동성친구 그리고 이성친구나 애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의 분리라는 심리적,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 부모와는 다른 의존대상을 선택한 경우인데, 이는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어려운 관계입니다. 신체적 발달에 비해 정신적 발달이 미성숙한 사춘기는 우정이나 연애감정에서도 의존이나 어리광의 심리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사춘기 아이들의 우정이나 사랑은 어른들의 그것과 비교해 약하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이는 타자를 사랑하는 능동적 대상애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수동적 대상애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심리는 상처받기 쉬우며, 어리광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랑과 정반대의 오해, 원한, 증오, 분노, 미움 등의 이기적인 감정이 일어나기 쉽고, 궁극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뇌의 미세 변이, 발달장애나 정신장애와 같은 특수한 요인, 그리고 양육환경과 교육의 영향, 개인의 특이한 성격 등 여러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폭력은 발생합니다. 하나의 폭력이 발생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요인들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요인 중 한두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폭력은 쉽게 발생하지 않습니다. 즉 아무리 많은 요인들이 갖추어져 있었더라도 애정이 바탕이 된 양육과 올바른 교육이 있었다면 많은 폭력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때론 소시오패스 등과 같은 예가 반례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개인의 자질이 어떠했든 어릴 때부터 당해온 폭력이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상처로 남으며 결국 폭력행동의 이미지나 패턴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한《당신 곁의 소시오패스》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적 문화에 따라 소시오패스 비율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개인주의, 성공지향주의적 성향이 높을수록 소시오패스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는 소시오패스의 자질이 폭력의 원인임을 지적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체벌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등에서 기사를 통해 학교폭력의 주된 원인중 하나가 교내 체벌 금지라는 주장이 학생들한테서 나왔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이는 신체적 체벌을 사용하는것이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효과적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폭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십대들의 범죄심리를 연구한 일본의 심리학자 후쿠시마 아키라에 따르면, 이러한 체벌에 대해 '감정적으로 구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교육상 때리는 것은 괜찮다거나 애정을 가지고 때린다면 결국 그 애정은 아이에게 전해지며, 아이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폭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주장을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데이터는 현재로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일보에서 게임은 또 다른 마약이며, 학교폭력의 배후는 게임이라고 말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후쿠시마 아키라는 '이 시기에 급증하는 공격성을 발산하고 승화시킬 통로와 수단을 연구하여 아이들이 각각의 발달단계에서 뿜어내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외부로 적절히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게임이 폭력의 배출구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체벌이나 게임 금지와 같은 방법은 입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비효율적입니다. 그보다는 청소년들의 공격성을 발산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강력한 방법은 운동, 경기, 체력단련 등 육체를 움직이고 혹사하고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규칙 아래 이루어지는 운동경기는 사회성을 습득하는데도 효과적이며 공격성의 일부를 경쟁심이라는 심리적으로 승화된 형태로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는데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는 아이들의 성이나 충동의 해결책으로 흔히 제시되는 답이지만 그만큼 유용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줄 수 있는데,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는《푸른 눈, 갈색 눈》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은 어렸을 때의 교육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은 차별을 해보고 당해보는 경험해봄으로써 차별의 정체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게 됩니다. 선구적인 엘리어트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엘리어트의 학생들이 덜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보임은 연구결과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미주리 캔자스시티에 있는 우드랜드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급식비를 지원받을 만큼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2005년 이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이던 체육 시간을 대폭 확대해서 매일 45분씩 실시했고, 수업 내용도 유산소 운동에 초점을 두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학생들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고, 교내 폭력 사건도 전년도 228건에 비해 95건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도시 중심부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있는 학교가 이처럼 급격하게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운동화 신은 뇌》p.53 

청소년들의 폭력 문제는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입니다. 2012년 3월에 적발된 강원도의 중, 고교 폭력 서클은 성인들의 폭력 조직단체를 그대로 흉내냈습니다. 이는 중,고교 폭력서클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성인들의 폭력단체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맨 처음 그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 내 제반 요소들에 대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위험성집단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험성 높은 행동들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다 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이 위험성 집단에 유입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청소년 폭력문제는 단순히 청소년들 개인간의 싸움이나 집에서 폭력을 당하는 가정사와 같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의 문제이며,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학교폭력은 기성세대가 인지하거나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는 학생들은 폭력의 구조로 인해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폭력의 징표를 읽어 내는 기술과 지혜를 기성세대가 가져야 합니다.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에서 인기가 있다는 일진물 열풍도 어쩌면 그런 징표일지도 모릅니다. 폭력은 침묵 속에 전염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저항할 때 멈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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