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 2.0 - 어느 소심한 구글 직원이 이끈 혁명이야기
와엘 고님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훗날 '아랍의 봄' 중 하나로 불리우게 될 이 혁명은, 기존의 혁명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혁명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면, 이집트 혁명은 집단지성이 이끌었습니다. 기존의 혁명이 비밀장소에서 혁명가들이 계획을 세우고 토론했다면, 이집트 혁명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소셜미디어는 개방, 참여, 공유의 가치로 요약되는 웹 2.0시대를 이끌었고, 이를 기반으로 진행된 혁명은 그래서 《레볼루션 2.0》인 것입니다. 이 거대한 물결은 철옹성같은 30년 독재를 자랑하는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립니다.

정치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이집트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공포정치가 만들어낸 문화의 결과입니다. 누구든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당인 국민민주당에 반기를 든다면,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교육, 보건, 경제, 실업, 뇌물, 부패 등을 놓고 불평을 하는 등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만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해 왔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1990년대 이후로 국영 기업들을 계속 팔고 있었고, 무바라크의 기업가 내각은 점점 더 부의 불평등을 가속화시킵니다. 때문에 1981년부터 지속된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에 맞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엔 파업의 물결이 몰아쳐 26,000명이나 되는 시위대가 모여 사회정의를 외쳤고, 2008년 4월엔 4.6청년단체가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파업시위는 무바라크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였는데, 사람들을 단결시킬 만한, 혹은 무바라크에 대적할만한 상징적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디어 그런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뉴욕 및 제네바 주재 이집트 외교관을 지냈고,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으로 일했으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모하메드 모스타파 엘바라데이 박사였습니다. 이집트정부는 그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 최고 훈장인 나일훈장을 주는 등 포섭하려 했지만, 점점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엘바라데이를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결국 엘바라데이가 이집트 정치를 비판하자 독재 정권은 그를 깎아내리며 대립하게 됩니다. 엘바라데이는 자신을 영웅시하는걸 원치 않았고, 이집트 청년은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엘바라데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엘바라데이의 출현을 계기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무바라크에 대한 저항은 본격화됩니다.

저자 와엘 고님은 전형적인 이집트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자유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자유로운 나라의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고, 미국까지 날아가서 미국인 아내를 얻었습니다. 9.11사건으로 미국에서 살기 힘들어지자 이집트로 돌아와서 IT관련 일을 시작합니다. 여러 직장을 거쳐 구글의 이집트 마케팅 책임자가 됩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얻었고 금전적으로도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와엘 고님 역시 처음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바라데이가 가져온 변화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었고, IT관계자 답게 엘바라데이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그를 도와주게 됩니다. 정치적 입장은 배제한 채 토론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 모더레이터를 통해 엘바라데이 박사의 소통을 돕는 등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할 뿐이였지만, 엘바라데이 박사는 독재정권의 압박 때문에 다른 미디어에 등장할 수 없었고, 엘바라데이 박사가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인터넷이다 보니 페이스북 페이지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집니다.

하지만 2010년 6월 6일, 와엘 고님의 인생을 바꿀, 이집트를 바꿀 사건이 일어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명의 비밀경찰에게 칼레드 모하메드 사이드라는 남자가 살해당했는데, 뒷머리는 움푹 파여 있었고, 아랫입술은 반쯤 찢어졌고, 턱은 완전히 탈골되어 앞니는 모두 빠지고 없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 와엘 고님은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분노했고,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정체를 밝히지 않고 운영하게 됩니다. 독재정권은 사건을 부정했지만, 유명한 반정부 인사들이 이 죽음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됩니다.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원칙은 비폭력주의와 참여민주주의였는데, 이 두개를 지키면서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의미로 침묵하며 서있을 뿐인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를 하기로 합니다. 인터넷에서 시작한 토론에서 보다 어렵고 힘든 과제는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투쟁의 장소를 옮기는 것인데,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는 이집트 각 도시에서 성공적이였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네티즌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를 보내오게 됩니다.

나는 당신더러 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맞서서 싸워야지 분노를 만들려고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단 한번도 주먹을 뻗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주먹들은 모두 고스란히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가 저지른 불의를 돌아보게 할 겁니다. 물론 많이 아프겠지요. 모든 싸움이 다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내 육신에 고문을 가하고 뼈를 부러뜨려 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죽은 내 몸뚱어리를 가지겠지요. 하지만 나의 복종만은 가지지 못할 겁니다. - 간디 

3회에 걸쳐 사일런트 스탠드 시위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집트 사람들은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닿고 더 큰 항의를 시작합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에 항의하는 의미로 분신을 했는데, 이를 계기로 튀니지에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이 시작됩니다.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이집트 사람들도 질세라 1월 25일, 이집트 경찰의 날에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게 됩니다. 1월 25일 타흐리르 광장엔 수천 명이나 되는 인파의 시위대가 광장을 덮었고 사람들은 무바라크 퇴임을 외쳤으며, 몸싸움과 구타, 최루탄이 난무했습니다. 그날의 시위는 성공적이였지만 이는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3일 뒤인 28일에 금요 예배와 맞춰서 총파업 할것을 선언했고 실행되었습니다. 25일 시위를 계기로 이집트 정부는 모든 통신을 차단했는데, 이 조치가 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시위가 있는 줄 몰랐던 시민들이 정권을 위협하는 어떤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시위에 참가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이 시위는 무바라크 퇴임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합니다.

하지만 28일의 시위는 와엘 고님이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와엘 고님은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를 운영하면서 토르라는 프록시 프로그램을 사용해 인터넷 접속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지만 결국 그는 시위 전날밤 국가보안국의 추적끝에 잡혀서 지하감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와엘 고님은 11일간 눈가리개를 한 채로 수감되었고, 정신적 고문을 당합니다. 와엘 고님이 실종된 것을 눈치챈 동료들은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구글의 협조를 통해 와엘을 추적했고, 공개적으로 그가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의 운영자임을 공개합니다. 정치적으로도 그가 석방되지 않는다면 시위대는 협상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고 언론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자 결국 독재정권은 와엘 고님을 풀어주게 됩니다. 결국 그 이후 무바라크는 압박에 못 이겨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시작한 투쟁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 역사적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루시퍼 이펙트》에서 언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한 영웅들이였습니다

이집트여,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 와엘 고님이 2월 12일에 올린 트위트. 트위터는 이 트위트를 2011년 최고의 멘션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아직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았습니다. 와엘 고님과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아랍의 여러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태동했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한 꽃을 피우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합니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전 내무부 장관에게 법정 최고형인 25년이 선고됬지만, 진정으로 국민의 권력이 국민에게 돌아가기엔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해적당》에서 해적당은 '인터넷이 한 번 있었던 곳에선 민주주의를 억압할 수 없다'는 신조를 밝힌 바 있습니다. 이집트의 국민들은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믿고 살아가던 평범한 이집트 청년들을 혁명의 동력으로 결집시킨 것은 다름아닌 인터넷의 힘이였습니다. 이집트의 이야기는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한 집단지성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과거의 여러 시민혁명과 차이점이 있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봄직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과도 어느정도 공통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의 봄'이 하루빨리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를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