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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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아무 부담 없이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어능력시험을 본다면 고득점을 받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국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외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까운 이웃 나라들, 중국과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물어본다면, 기껏해야 대표 음식들이나 정치인들, 사회적으로 이슈거리가 되는 것들 몇 개를 거론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외국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 역시 단편적인 수준에서 그칠 것입니다. 저자 다니엘 튜더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다룬 책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국인이 한국을 소개한다는, 어렵고도 이색적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사회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책인 만큼, 다니엘 튜더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합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전쟁의 발발과 군사독재 정권의 등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의 이해를 기반으로 현재의 한국을 이야기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의 특정 이슈를 이야기하면서 훌륭하게 중도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문화는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난 지금도 과도한 경쟁이 지속되면서 얻은것 만큼 잃은것도 많았습니다. 높은 교육열은 저임금과 연결되어 사회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교육열로 인한 청소년 자살 문제, 비효율적인 영어 교육 문제, 교육으로 세습되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인 '신 양반' 계급의 탄생 등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합니다.

튜더가 지적하듯이, 군사독재 정권이 남긴 잔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군대문화와 조직체계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하여금 일탈을 금지시킵니다. 대학은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고,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합니다. 취직하기 위해선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봉사활동을 해야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라고 말합니다. 취직하면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은 남들처럼 할건 다 해야 합니다. 여성들은 비키니 몸매에 도전해야 하고, 남성들은 초콜릿 복근에 도전해야 합니다. 재벌과 관계되거나 극히 드문 블루오션이 아니면 기업으로서 성공하기 힘든 상황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요받고, 승진을 위해서 50이 넘은 나이에 사용할 일이 없는 영어를 공부해 토플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기업에 절대충성을 요구하지만 평생고용은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푸코가 지적했듯이 정통성을 부여받은 이성애 커플인 부부의 성애만이 특권화되어 동성애는 배척됩니다.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은 제노포비아를 교육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의 삶을 스트레스로 가득 채운다.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이 바로 이 과잉 경쟁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114 

한국의 교육문화, 기업문화, 결혼문화, 종교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들은 한국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거나, 들어봤거나,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튜더의 이야기는 한국을 잘 모르는 영어권 독자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자 한다면 적절한 선택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가지고 있는 중도적이고 새로운 시각 덕분에, 스스로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기에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튜더는 한국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영어권 독자들이 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축구선수 박지성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광적인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은 2002년의 한국은 저자 다니엘 튜더가 가장 먼저 한국을 접한 첫인상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이기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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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제국 - 어둠의 대국 러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가시라 히로시 지음, 이정환 옮김 / 달과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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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론 넓은 범위의 개념을 좁은 범위의 개념으로 등치 시켜 이해하곤 합니다. 러시아도 그 중 하나인데,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이 계속되면서 러시아를 푸틴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 역시 푸틴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다른 푸틴 관련 서적을 보면《남자의 남자, 푸틴》《결혼을 하려면 푸틴 같은 남자와》처럼 푸틴을 희망이 있는 리더, 말보다 행동으로 믿음을 주고 강한 추진력을 갖추었고 그러면서도 다정다감하며 가정적인 멋진 남자, 소통하는 지도자라고 빨아대는 책들도 있지만, 이 책은 KGB의 중령에 불과하던 인물이 짧은 기간에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을 보여주고, 러시아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제국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은 처음엔 자신의 후계자로 스테파신을 지목하며 그를 수상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러나 중도연합을 결성한 반옐친 진영의 도전은 매우 강력했고, 당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전 수상 프리마코프를 영입한 중도연합 앞에서 스테파신의 정치적 역량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옐친은 스테파신을 수상으로 임명한지 불과 3개월만에 경질시키고, 주류 정치가들이 보기엔 무명에 가까운 푸틴을 수상으로 임명합니다. 푸틴이 수상으로 취임했을 때 지지율은 겨우 2퍼센트였고, 다른 대통령 후보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4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푸틴은 무명의 정치가에서 반년 만에 대통령 자리에 앉는 마술을 부렸는데, 주역으로 떠오른 계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체첸 전쟁이었습니다.

체첸은 소련 붕괴를 기회로 14개 연방 공화국들이 분리될 때,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의 사실상 독립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체첸에서 민간인 70만명이 희생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차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패배했고, 하사뷰르트 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 협정으로 러시아군은 체첸영토에서 퇴각하고 체첸의 아슬란 사령관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이 됩니다. 하지만 1999년 2차 체첸 전쟁이 발발합니다. 2차 체첸전쟁은 모스크바에서의 연속적인 민간고층주택 폭파사건 등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 폭파사건에 대해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레베지나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등에서 폭파사건이 러시아 정부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푸틴은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며 훗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푸틴이 주도한 체첸진공작전 덕분에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전부 불바다가 되었으며,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당했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 앞에서 우리가 이 파시즘의 공모자였고 파시즘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더러운 전쟁》p.22

옐친 대통령은 임기를 반년 남겨둔 상태에서 앞당겨 퇴진했는데, 이로 인해 대통령 선거는 체첸전쟁의 승리가 확실한 시점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전쟁영웅 푸틴은 대통령이 되었고, 러시아를 옐친의 색에서 자신의 색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푸틴은 러시아개혁파의 도전을 잘 이겨냈는데, KGB로부터 이어온 능력과 전통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푸틴의 지지층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룹과 옐친의 지지층인 세미야 그룹의 위기를 구한 최대의 공로자가 되어 집권층의 불안을 잠재웠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이 집권하자 미국은 불안해했지만, 미국과 최대의 신용을 유지하고 있던 러시아 개혁파의 대표 츄바이스가 푸틴을 보증해줌으로써 집권초기 미국과의 관계도 원만했습니다.

푸틴은 정당법 개정을 통해 소규모 정당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거대 단일 집권당의 등장과 외국과의 무난한 외교관계 등 안정적인 정치구도를 바탕으로 푸틴은 러시아의 경제구조를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구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력, 가스, 철도, 석유, 군수복합체, 미디어 등의 독점업체를 개선함과 동시에 자신의 주도하에 두고자 한 것입니다. 푸틴정권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 에너지외교와 거대기업의 변화라면, 푸틴정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푸틴이 아니라 츄바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점업체의 이권투쟁에서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한명의 인간이 국가를 주도하는 제국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푸틴정권의 미디어 지배는 3년 만에 완성을 보았다. 그 후, 러시아의 보도는 90년대의 활기를 잃어갔다. 구소련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무미건조한 보도와 공허한 대통령예찬이 텔레비전을 뒤덮기 시작했다. - p.212

최근에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체첸전쟁으로 시작한 푸틴정권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또 어떤 모습을 세계에 보여줄지 전세계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변화는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한반도 외교는 남한, 북한, 일본, 중국까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는 푸틴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하는 국가, 러시아를 지켜보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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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혁명 -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 역사도서관 1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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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 로버트 단턴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단턴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세상을 바꾸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꾸란》《성서》《국부론》《자본론》《상식》《종의 기원》등의 책들을 지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턴은 좀 독특한 책들을 지목합니다. 시민 혁명들 중에서도 가장 의의가 깊은 것으로 꼽히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된 책들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어떤 책들을 읽어왔고, 책을 통해 어떻게 변하였는가 하는것이 단턴이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들, 그 책들은 반동적이었고, 반신앙적이었고, 음란한 책들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이후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전의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 구체제라 부르는 왕정하의 전제적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교회, 국가, 도덕을 거스르는 책들은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금주법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사회적 금기야말로 큰 돈이 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금서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한 책을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금서들은 '철학책'이라는 이름 하에 유통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철학책'을 원했고, '철학책'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금서 중에서 메르시에의《2440년》, 레날의《철학적 역사》, 볼테르의《백과사전에 관한 질문》같은 상위 베스트셀러는 실제로 앙시앵 레짐 시대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내는 저급한 책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책이면서도 그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욕을 자극하는 문학은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삶을 결합한 자유사상을 고취시켰습니다. 이 사상은 성적 규범만이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도 도전했는데, 성교와 광신, 고해실안에서의 부정행위, 가면을 벗은 기독교의 참모습, 남색을 즐기는 성직자들 등을 묘사했습니다.

책을 읽을 여가가 있고 많은 교양을 쌓은, 사대부가 여성의 취향에도 소설은 입맛에 맞았다. 지루함을 달래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히며,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심사를 풀어내는 데 소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p.19 

《계몽사상가 테레즈》라는 음란소설은, 남녀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을 운동 중인 물질로 환원시킵니다. 음란함 속에서 귀족이건 평민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몸은 궁극적으로 평등해집니다. 로맨틱한 사랑이란 것은 근엄한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여성에게 있어서 임신이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성교를 포기할 만큼 임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계몽사상가 테레즈》는 임신을 제외한 성교, 즉 질외사정이라는 쾌락을 추구하는 성교를 묘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성이 자기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생길 여성인권운동보다도 진일보된 사상이었습니다.

25판이나 발간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2440년》은 2440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먼 미래에 이뤄질 이상향을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했습니다. 상상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입니다. 메르시에는 주로 종교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기독교의 주요 제도들인 십일조나 왕정제 등을 먼 미래의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촌스럽고 비합리적인 제도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앙시앵 레짐이 가지고 있었던 불합리성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2440년》보다 더 직설적으로 나아갑니다. 창녀인 뒤바리를 통해 권력자들의 행동을 폭로하는 중상비방문인 이 책은 기득권 체제의 상징적인 장치에 들어있는 권력을 공격합니다. 보통사람들은 거물급 인사들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생활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뒤바리의 이야기를 통해 왕은 보통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권력자가 여자들을 끼고 놀았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통해 권력자의 정통성과 신성성은 해체됩니다. 사람들은 권력자를 더이상 신이나 아버지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등장한 베스트셀러 금서들의 특징은 우리나라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최초의 금서이자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한글소설인《설공찬전》은 왕권모독죄와 풍기문란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지, 유교에 대항하는 불교적 메시지,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 중국과 천자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는 이 금서는 프랑스의 금서들과도 차이가 없습니다.《설공찬전》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던지,《조선왕조실록》에서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대중들에게 있어서 금서가 가지는 매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금서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며, 궁극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급한 책들, 음란하고 비사회적이고 권력자들을 중상비방하는 책들을 통해 이미 체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단턴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금서의 역사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선사합니다.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책은, 어쩌면 학자들의 딱딱한 책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에로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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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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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역사적 순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9.11 사건이 그러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러했습니다. 2011년에 일본에서 당시 관측사상 네 번째로 강한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고,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세계 역사상 두 번째의 레벨 7의 원자력 사고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원전이 폭발하고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원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 오시카 야스아키는 당시 사고현장과 도쿄전력,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어떤 역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도호쿠 대지진 이전에 도쿄전력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대지진과 쓰나미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도쿄전력은 2003년에 20킬로미터가 넘는 활단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2008년에는 지진계산을 토대로 15.7미터의 대형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심지어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기 4일전에도 도쿄전력은 2개의 쓰나미를 분석해 2012년 10월까지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데,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사용후핵연료 속에 있는 플루토늄을 적출해 재사용하는 플루서멀 계획을 실시한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루서멀은 고속증식로의 완성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연료로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고가 나면 반감기가 최대 24,000년이나 되는 플루토늄을 대량 방출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플루서멀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원전 주변의 위험성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도쿄전력의 이러한 행동은 막상 사고당시 수습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원전의 안전 점검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의 데라사카 원장은 사고 10개월 전 공산당 요시이 히데카쓰 중의원 의원에게서 "원전의 송전 철탑이 넘어져 자가 발전 디젤 전원까지 끊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의를 국회에서 받았을 때,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학적으로 잘 설계했습니다. 거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까지 안전 설계를 했습니다."라고 퇴짜를 놓았다. - p.55 

원전은 수명이 보통 30~40년으로 설계되며, 미국의 경우 대부분 40년이 되기 전에 운전을 중지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일부 부품만 교체하면 6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러한 원전 중에 하나로 40년이 지난 노후화된 원전이었습니다.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27번 철탑이 밑동이 무너졌고, 변압기와 차단기가 파손되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원이 모두 끊기고, 쓰나미가 원전을 덮쳤습니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나자 원자로를 냉각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노심이 손상되고 연료가 용융했으며 격납용기가 파손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쿄전력은 사고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고, 심지어는 사고현장에서 철수하려는 시도마저 합니다. 총리까지 나서서 철수를 막긴 했지만, 이 선택은 일본땅의 절반 이상이 사람이 살수없는 지역으로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방사능이 누출되고, 수소가 폭발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어느정도 해결하는데 성공합니다.

1990년대에 있었던 전세계적인 정부 규제 완화와 민영화의 흐름은 일본도 예외는 아니라서, 국유철도가 분할 민영화된것을 시작으로 담배, 전화가 민영화되었습니다. 일본의 민간 전력회사들은 다른 민간기업과 달리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데, 전기사업법에 의해 흑자를 보증받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 민간기업이라는 특수성은 전력회사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고, 도쿄전력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습니다. 정부나 할 수 있는 공공투자 발주처를 하는 규모의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는 낙하산 인사만 100명에 달할 정도로 경제산업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며 젊은 관료들을 중심으로 개혁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개혁파는 요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보호를 받는 전력회사는 필연적으로 나태해지고 부패했습니다.

시모무라 내각심의관은 노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비판받아도 고개를 떨군 채 꼼짝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뿐. 해결책이나 재발 방지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 기술자, 과학자, 경영자." 도쿄전력과 경제산업성 보안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겨냥한 말이었다. - p.126 

원전사고는 일본에 두가지 논쟁을 낳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배상문제였습니다.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법에는 손해가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대지진이나 전쟁, 내란 같은 경우 면책 규정이 있습니다. 이 법안으로 인해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손해배상 채무를 지는 주체가 없어져버리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당시 은행가들은 이익이 법으로 보장되어있는 최고의 우량기업 도쿄전력과 관계를 가지고 싶었지만, 원전사고 이전의 도쿄전력은 회사채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은행과 관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전사고 덕분에 은행가들은 도쿄전력을 공략할 기회가 생겼고, 원자력손해배상법을 바탕으로 정부가 해결해줄것이라는 생각하에 도쿄전력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세금으로 민간기업을 구제한다는 제안은 많은 논란을 낳았고, 민주당은 이러한 제안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도쿄전력과 도쿄전력에 돈을 빌려준 은행 및 증권회사, 도쿄전력을 유지하고싶은 경제산업성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는 도쿄전력 구제 계획을 추진합니다.

원전사고가 야기한 또다른 쟁점는 일본의 미래 에너지전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는 원전사고를 계기로 재생에너지전략, 탈원전을 주장했고 환경성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등과 손잡고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주장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30년 안에 규모8 정도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87퍼센트가 된다고 보고된 하마오카 원전을 중지시켰습니다. 이런 총리의 행보에 원전옹호파는 크게 반발했고, 결국 일본은 정치적으로 두 패로 갈리게 됩니다.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 신문은 원전을 옹호하며 간 나오토 총리를 적대시했고,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도쿄 신문의 경우엔 탈원전을 주장하며 간 나오토 총리를 지지했습니다. 총리가 프랑스에 간 사이에 아베는 총리가 원전 위기를 고조시킨 해수 주입 중단 명령을 내렸다는 거짓보도를 주도했고, 정치적으로 대립합니다. 경제산업성과 총리관저, 원전과 탈원전, 자민당과 민주당 등의 대립구도는 결국 원전파가 승리했고, 간 나오토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저자는 원전이 멜트다운된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가 멜트다운되었다고 말합니다. 정보를 숨기고 책임을 회피한 무능력한 도쿄전력, 민간기업에 원자력이란 중요한 일을 맡기고 힘을 쓰지 못한 정부, 원전을 계기로 정치투쟁하는 정치인들, 막상 사고가 터지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노린 은행가들 모두가 세계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일본에 가져온 피해를 만들어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사고로 책임을 진 사람은 관할관청인 경제산업성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순탄하게 출세하고, 낙하산 인사로 고용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국이라는 조롱어린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원전 부품 비리나 작동 이상 등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일이라도,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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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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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은 악한 행동인가? 아픈 아내를 위해 약을 도둑질한 남편의 행동은 선한가? 이런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선한 행동이다, 혹은 악한 행동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선의 혹은 악의 그 자체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선악에 대한 표상과 연관된 우리의 판단이 행동방식에 미치는 사회심리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사람을 선하다고 평가되는 행동을 하는지, 혹은 악하다고 평가되는 행동을 하는지를 지켜봄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인간이고, 도덕적 인간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에 잘 편입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생각이 도덕적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도덕적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모방 혹은 노력과 희생을 계속합니다. 도덕은 자연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사회적인 요소인 규범과 가치의 충돌은 도덕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도덕적 행동을 평가할 때 사회적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는지만 볼 때가 많으며 무의식적으로 선과 악을 좋고 나쁨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실험과 사례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심리학, 사회학 실험은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재확인하기도 하며, 평소 지녀온 믿음과 어긋나는 사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면을 쓰는 등의 가벼운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폭력성이 증가합니다. 시험을 볼 때 문제를 푸는 방의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부정행위가 증가합니다.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탐욕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만,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그러한 위선적 태도가 훨씬 두드러집니다. 세상이 남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강간피해자, 아동폭력 피해자, 사기당한 사람 등의 사회적 피해자를 업신여깁니다. 도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종교 또한 별 효과가 없었는데, 독실한 종교인들은 서면상의 조사에서는 자기가 남들보다 선하다는 것을 드러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수준을 지닌 양심적인 사람들이 전기충격을 더 강하게 가한 것이다. - p.261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놀라울정도로 작은 변화를 통해서도 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눈이 그려진 포스터만 붙여놔도 절도행위가 크게 줄어들며, 주변의 거리가 깨끗하면 쓰레기를 잘 버리지 않습니다. 태풍의 이름이 자기 이름과 비슷하기만 해도 태풍 피해자를 돕는 성금을 더 많이 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면 범죄위험도가 낮아지고, 다른 사람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것을 보면 자기 자신도 이타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심지어는 손을 씻은 상태와 씻지 않은 상태의 도덕적 판단이 다르기도 합니다. 손을 씻은 상태에서는 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이죠. -《푸른 눈 갈색 눈》p.211 

저자는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선행과 악행의 동기를 인간의 사회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행동 자체가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 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화뇌동하는 모방기계이며, 다른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도덕적 인간의 진정한 동기입니다. 이타적 행동이 인간에게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도덕의식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지만, 그런 도덕의식 때문에 우리는 무고한 피해자를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가 하면, 집단에 대한 애착 때문에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도덕은 선과 악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저자는 선과 악이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부실한 근거의 선포에 지나지 않으며 이기적인 의도로 악용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도덕심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회의적이고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도덕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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