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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 사람들은 역사적 순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9.11 사건이 그러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러했습니다.
2011년에 일본에서 당시 관측사상 네 번째로 강한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고,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세계 역사상 두 번째의 레벨 7의 원자력
사고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원전이 폭발하고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원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 오시카 야스아키는 당시 사고현장과 도쿄전력,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어떤 역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도호쿠 대지진 이전에 도쿄전력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대지진과 쓰나미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도쿄전력은 2003년에 20킬로미터가 넘는 활단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2008년에는 지진계산을 토대로 15.7미터의 대형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심지어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기 4일전에도
도쿄전력은 2개의 쓰나미를 분석해 2012년 10월까지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데,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사용후핵연료 속에 있는 플루토늄을 적출해 재사용하는
플루서멀 계획을 실시한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루서멀은 고속증식로의 완성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연료로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고가 나면
반감기가 최대 24,000년이나 되는 플루토늄을 대량 방출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플루서멀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원전
주변의 위험성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도쿄전력의 이러한 행동은 막상 사고당시 수습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원전의 안전 점검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의 데라사카 원장은 사고 10개월 전 공산당
요시이 히데카쓰 중의원 의원에게서 "원전의 송전 철탑이 넘어져 자가 발전 디젤 전원까지 끊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의를 국회에서
받았을 때,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공학적으로 잘 설계했습니다. 거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까지 안전 설계를 했습니다."라고
퇴짜를 놓았다. - p.55
원전은 수명이 보통 30~40년으로 설계되며, 미국의 경우 대부분 40년이 되기 전에 운전을 중지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일부 부품만 교체하면 6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러한 원전 중에 하나로 40년이 지난 노후화된
원전이었습니다.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전력을 공급하는 27번 철탑이 밑동이 무너졌고, 변압기와 차단기가
파손되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원이 모두 끊기고, 쓰나미가 원전을 덮쳤습니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나자
원자로를 냉각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노심이 손상되고 연료가 용융했으며 격납용기가 파손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쿄전력은 사고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고, 심지어는 사고현장에서 철수하려는 시도마저 합니다. 총리까지 나서서 철수를 막긴 했지만, 이 선택은 일본땅의 절반 이상이 사람이 살수없는
지역으로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방사능이 누출되고, 수소가 폭발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어느정도 해결하는데
성공합니다.
1990년대에 있었던 전세계적인 정부 규제 완화와 민영화의 흐름은 일본도 예외는 아니라서, 국유철도가 분할 민영화된것을
시작으로 담배, 전화가 민영화되었습니다. 일본의 민간 전력회사들은 다른 민간기업과 달리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데, 전기사업법에 의해 흑자를
보증받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 민간기업이라는 특수성은 전력회사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고, 도쿄전력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습니다.
정부나 할 수 있는 공공투자 발주처를 하는 규모의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는 낙하산 인사만 100명에 달할 정도로
경제산업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며 젊은 관료들을 중심으로 개혁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개혁파는 요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보호를 받는 전력회사는 필연적으로 나태해지고 부패했습니다.
시모무라 내각심의관은 노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비판받아도 고개를 떨군 채 꼼짝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뿐. 해결책이나 재발 방지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 기술자, 과학자, 경영자." 도쿄전력과 경제산업성 보안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겨냥한 말이었다.
- p.126
원전사고는 일본에 두가지 논쟁을 낳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배상문제였습니다. 일본의 원자력손해배상법에는 손해가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대지진이나 전쟁, 내란 같은 경우 면책 규정이 있습니다. 이 법안으로 인해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손해배상 채무를 지는 주체가 없어져버리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당시 은행가들은 이익이 법으로 보장되어있는 최고의 우량기업 도쿄전력과 관계를 가지고 싶었지만, 원전사고 이전의 도쿄전력은
회사채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은행과 관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전사고 덕분에 은행가들은 도쿄전력을 공략할 기회가 생겼고,
원자력손해배상법을 바탕으로 정부가 해결해줄것이라는 생각하에 도쿄전력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세금으로 민간기업을 구제한다는 제안은 많은 논란을
낳았고, 민주당은 이러한 제안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도쿄전력과 도쿄전력에 돈을 빌려준 은행 및 증권회사, 도쿄전력을 유지하고싶은 경제산업성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는 도쿄전력 구제 계획을 추진합니다.
원전사고가 야기한 또다른 쟁점는 일본의 미래 에너지전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는 원전사고를 계기로 재생에너지전략, 탈원전을 주장했고 환경성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등과 손잡고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주장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30년 안에 규모8 정도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87퍼센트가 된다고 보고된 하마오카 원전을
중지시켰습니다. 이런 총리의 행보에 원전옹호파는 크게 반발했고, 결국 일본은 정치적으로 두 패로 갈리게 됩니다.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 신문은 원전을 옹호하며 간 나오토 총리를 적대시했고,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도쿄 신문의 경우엔 탈원전을 주장하며 간 나오토 총리를
지지했습니다. 총리가 프랑스에 간 사이에 아베는 총리가 원전 위기를 고조시킨 해수 주입 중단 명령을 내렸다는 거짓보도를 주도했고, 정치적으로
대립합니다. 경제산업성과 총리관저, 원전과 탈원전, 자민당과 민주당 등의 대립구도는 결국 원전파가 승리했고, 간 나오토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저자는 원전이 멜트다운된 것이 아니라, 일본사회가 멜트다운되었다고 말합니다. 정보를 숨기고 책임을 회피한 무능력한
도쿄전력, 민간기업에 원자력이란 중요한 일을 맡기고 힘을 쓰지 못한 정부, 원전을 계기로 정치투쟁하는 정치인들, 막상 사고가 터지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노린 은행가들 모두가 세계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일본에 가져온 피해를
만들어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사고로 책임을 진 사람은 관할관청인 경제산업성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순탄하게 출세하고, 낙하산 인사로 고용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국이라는 조롱어린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원전 부품 비리나 작동 이상 등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일이라도,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