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충격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박종성.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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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가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연설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미래를 봤습니다.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미래를 보며 생활했습니다. 편지, 신문 등이 가져다주는 소식들은 언제나 이미 지난 과거의 정보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이 살아가던 시대엔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대로 '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현재의 정보를 가공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미래의 충격》를 통해 우리는 모두 미래주의자들이며, 미래가 가져다 줄 충격들을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21세기가 도래함에 따라 시대가 변했다고 말합니다. 대비해야 할 것은 현재입니다.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오늘날 서사가 몰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서사의 영향력은 강력합니다. 문학적, 오락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스토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과거에 비하면 서사의 힘은 줄어들고 있으며, 그런 경향은 더 큰 영역에서 두드러집니다. 국가에 대한 관점,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는 쇠퇴했습니다. 규범의식이나 전통의 공유와 같은, 대중 모두가 공유하던, 설령 공유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공유해야 했던 이야기들은 상대주의, 다문화주의, 다원화에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큰 하나의 이야기는 작고 다양한 이야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재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단연코 기술의 발전 덕분입니다. 운송기술의 발달, 정보기술의 발달 등으로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 가치관,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충격은 어떤면에선 케빈 켈리의 말처럼 기술의 충격입니다. 과거 언론인들이 게이트키핑을 하고 의제를 설정했다면, 오늘날 인터넷과 SNS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국가간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나 즉시 접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누구나 즉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는 일을 현재에 반응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변화했습니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이슈에 즉각 반응해야 하고, 경제는 현재의 주가변동에 즉각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에 반응하고 현재를 즐깁니다. 컴퓨터 게임은 스토리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게임에서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MMORPG와 같은 무한게임으로 변화했습니다. 게임은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되었습니다. 소설은 전통적인 자연주의적 독해 뿐만 아니라 라이트노벨적인 구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TV프로그램도 과거의 스토리와 교훈을 가진 구성에서 리얼리티적인, 대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저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인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회운동도, 월 가를 점거하라 운동만 보더라도 하나의 거대담론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기간도 알수 없고 종결시기도 알 수 없습니다. 시위대는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고, 시위를 이끌 지도부도 없었습니다. 그저 현재에 존재했고 현재를 외치다 사라졌을 뿐입니다.

어떤 것을 행하는 것과 그 결과를 보는 것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축적되어 우리가 행동을 완료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영향을 가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현재의 충격은, 긍정적인 면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모든 비중을 현재에 두게 되면서 저자가 '과도한 태엽 감기'라고 부르는, 현재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시간을 압축시킵니다. 금융투자상품도 현재를 중요시하고, 운동선수도 현재를 중요시해 스테로이드를 맞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소비를 미래에 대한 구매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보상에 더 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컴퓨터게임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특정 용도에 사용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현재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작도 끝도 없고 선형적 서사가 제시하는 기원도 목적도 없이 우리는 현재에 충실해야만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던 스토리의 상실을 슬퍼하는 한편, 자기제어와 자유 그리고 자기결정의 새로운 틀을 세우기 위해 고민해야만 한다. 게임은 그것을 통해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커다란 렌즈와도 같다. - p.101

한 개인이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자각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주의가 가져다주는 충격들을 말하며 현재의 충격에 대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스토리텔링을 전해주던 언론인이나 정치인, 작가들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의 강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요구되며, 어떤 정보를 취사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합니다. 실시간 기술은 우리에게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개념을 영원한 현재라는 개념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디지털적인 사회에 비해 우리의 육체는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바로 현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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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노인 - 그들은 왜 위험하고 잔인한 폭력노인이 되었을까
후지와라 토모미 지음, 이성현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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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노인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 범죄 증가가 단순히 고령화사회라서 노인 인구가 늘어난 것 때문은 아닙니다. 노인 범죄 증가율은 노인 인구 증가율보다 높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의 비율은 2000년 2.7%에서 2012년 7.3%로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만의 사례는 아닙니다. 옆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경우 고령자 수가 두 배 증가했는데, 범죄자는 다섯 배 증가했습니다. 저자 후지와라 토모미는 이런 현상을 '폭주 노인' 이라고 말합니다.

노인과 젊은이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생각은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혈기넘치고 비판적이고 반전운동을 하는 등의 진보적인 이미지라면, 노인들은 분별력 있고 느긋하며 관용을 베푸는 보수적 성향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의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식의 변화가 긍정적인 관점에서 노인의 변화를 보여준다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갈등을 빚거나 폭력을 서슴치 않고 있는 노인들의 증가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노인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왜 노인이 폭력적으로 변화했는가? 후지와라 토모미는 노인이 변화한게 아니라 사회가 변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노인들은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사회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켰습니다. e메일은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SSD를 장착한 컴퓨터는 부팅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습니다. 현대사회는 기다림의 해방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맛집엔 줄을 서며 음식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다림이라는 개념을 즐거움적 관점에서만 선택하다보니, 기다림을 강요받는 상황에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택배가 늦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지하철이 늦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차가 막히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헛되이 보내선 안 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해보는 시간표 만들기가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현대의 권력은 곧 시간을 통제하는 능력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권력자나 부자도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 평등성을 초월하는 것은 시간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의 권력이란 말 그대로 시간을 사유물화하는 것이다. - p.87

일어나면서 잘때까지, 모든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자는 시간까지 줄여야 합니다. 몇시엔 학원에 가야 하고, 몇시엔 독서를 해야 합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권력입니다. 1초에 150달러를 버는 빌 게이츠가 100달러짜리 지폐를 주울것이냐 하는 질문의 핵심은 1초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얼마를 더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시간을 절약하면서 동일한 부를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권력자들이 가진 힘도 시간에 있습니다. 자신은 원하는 시간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침범할 수 있는것, 그것이 권력입니다. 때문에 기다림을 강요받는 것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며, 좌절과 패배감, 그리고 분노를 불러오게 합니다. 점점 더 발전하는 정보화 사회는 구성원들의 시간을 점점 절약시켜 줍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최첨단 정보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때문에 노인들은 사회에서 배제되어 간다는 생각을 느끼게 되고, 때론 분노합니다.

공간적인 관점에서도 현대사회와 노인들의 괴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점점 일터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베드타운이라는 말처럼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마을 가게주인과 손님들이 서로 잘 알고 대화하던 시대, 많은 가족들이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시장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개인방에서 생활하며 노래는 혼자 듣는 시대입니다. 공간의 관점에서 현대인들의 갈등은 개인 영역의 침범입니다. 층간소음 문제, 기차에서의 김치냄새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갈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갈등이 된다는 것을 노인들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과거의 방식대로 생활하면,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킵니다.

'피아노 소음살인사건' 전에 소음사건은 한 건이 기록되었을 뿐인데 5년 후에는 20건, 상해사건을 합하면 3백 건으로 급증했다. 소음 자체가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고 폭력을 휘두루는 감성이 급증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소리의 영역 침범에 대해 사람들이 신경질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 p.162

앨리 러셀 혹실드는《감정노동》에서 노동자들이 판매하는 새로운 상품, 감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웃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짤리기 싫다면. 웃지 말아야 할 직장은 없습니다. 근엄한 검찰청의 검사부터, 핫팬츠를 입고 서빙하는 후터스의 직원들까지 모두 웃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판매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소비자도 웃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아직은 갑의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친절한 서비스에는 착한 소비자로 대응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매너입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선 자연스럽게 한 줄로 서고, 운전중엔 감사의 표시로 비상등을 깜박입니다. 정중화된 질서를 읽어내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점차 배제되어야 할 존재, 사회의 트러블메이커가 됩니다. 노인들은 새로운 질서를 읽어내는 것에 점점 힘이 듭니다.

동사무소에서 아무 이유없이 격노하는 할아버지, 자동판매기 사용이 느리다고 서로 싸우는 할아버지들, 매일 책을 읽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주의를 주자 전기톱으로 위협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책을 읽고 있던 할아버지, 자택 정원에 쓰레기와 배설물을 쌓아놓아 이웃과 싸우는 할아버지.. 후지와라 토모미는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노인들이 증가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간, 공간, 마음의 변화를 읽어냅니다. 저자는 어쩌면 천천히 변화해 나가야 할 인간의 내면을 지탱하는 기반이 너무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폭주노인들을 통해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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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2014-10-26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뽀로로 뽀통령이 전하는 층간소음예방캠페인 사뿐사뿐 콩도 있고 가벼운 발걸음 위층 아래층 모두모두 한마음 기분까지 서로서로 좋아하는 너도좋아 나도좋아 나비처럼 가볍게,뛰지말고 모두함께 걸어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리고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나오는 층간소음예방에 도움주는 두까은 슬리퍼랑 층간 소음 줄여준다는 에어 매트도 전부 다 있으며 앞으로 이사를 갈 땐 반드시 층간소음예방에 도움이 되는 두꺼운 슬리퍼를 구입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정리
세드릭 빌라니 지음, 이세진 외 옮김 / 해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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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학자 하면 영화『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수학자 존 내시처럼 무언가 떠오르면 벽에 수식을 마구 적는 괴짜를 생각하거나, 그리고리 페렐만이나 앤드루 와일스처럼 몇 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수학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라는 이미지의 근간에는 수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평소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어느정도 개선시켜 준 작품이 일본의 영화『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였고, 좀더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 프랑스의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가 쓴《살아 있는 정리》입니다.

세드릭 빌라니는 프랑스 리옹대학의 교수이자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에 있으며, 유럽수학회상, 페르마상, 푸앵카레상을 받은 수학계의 스타입니다. 그는 2010년에 '비선형 란다우 감쇠와 볼츠만 방정식에 대한 균형수렴 증명'을 한 공로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습니다. 세드릭 빌라니의《살아 있는 정리》는 필즈상을 탄 수학 정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학자의 역동적인 삶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별명인 '살아 있는 정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즈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단한 수학 정리도 첫 시작은 두 학자의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학자가 내뱉은 사소한 이야기에서 서로의 의문점을 물어보고, 토론합니다. 마치 평범한 사회인들이 술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대화처럼 수학 정리는 태동하게 됩니다. 무언가 어렴풋이 시작된 프로젝트는, 일상생활에 치여 마음속에만 있을 뿐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교수로서 강의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맛있는 치즈가게를 찾기도 해야 합니다. 프랑스 수학계의 패셔니스타로 불릴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깊다 보니 마음에 드는 옷들을 쇼핑할 시간도 필요하고, 락 콘서트에 가서 헤드뱅잉을 하기도 해야합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기도 하는데, 지하철에서 읽는 만화책은 수학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옆 책상에서 클레르는 노트북으로「데스노트」를 보고 있다. 프린스턴에는 극장이 없지만 저녁 시간은 잘 보내야 하는 법. 나는 클레르에게 이 마성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강력 추천했고 이제 클레르도 푹 빠졌다. - p.82

세드릭 빌라니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가게 되면서 연구는 급진전을 보이게 됩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이는 만큼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수학자들도 쟁쟁한데, 세드릭 빌라니의 수학 영웅인 존 내시부터 앤드루 와일즈 등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구름 위의 존재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즈도 그랬지만, 세드릭 빌라니도 첫 성과물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학술지『악타 마테마티카』에 제출한 논문이 거부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학자들 특유의 번뜩임, 수학 신의 계시를 받은 세드릭 빌라니는 아침에 불현듯이 생각난 아이디어로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파트너 클레망 무오와 함께 '무오-세드릭 정리'를 만들어냅니다.

수학계의 발전에 진전을 이루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세드릭 빌라니는 특유의 재치로 수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수학을 알리고 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학이 죽기보다 싫은 학생들과 시민을 인터뷰한 뒤 수학의 매력을 설득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왜 나는 수학이 싫어졌을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학은 엄격하지만 창의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보편적이고, 불평등하지만 민주적이라고 말합니다. 수학은 철저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정말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학은 모순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섹시(sexy)하다고 말합니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는다. 응?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항을 다른 변으로 넘기고 푸리에 변환을 취해서 L2로 뒤집어야 해.' 말도 안 돼! 나는 종이 쪼가리에 한 줄을 홱 휘갈겨 써놓고 애들에게 빨리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9일의 이 아침에 또 다른 작은 계시가 모든 것을 밝혀주고자 내 두뇌의 문을 두드렸다. 안타깝다. 논문을 읽은 사람들은 이 충만한 행복감을 모를 터이니 - p.166

2014년엔 우리나라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시상하는 전통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필즈상을 수여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언제나 좋은 성적을 거둘 정도로 우리나라는 수학 우등생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필즈상을 수상할 날은 멀어 보입니다. 장 피에르 브르귀뇽 유럽연구재단 총재는 세드릭 빌라니가 참석한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의 기자회견장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최악의 교육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수학 영재들이 수학을 입시과목으로만 배우기 때문에 필즈상 수상까지 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 등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적지 못하게 하자 응시 지원자가 급감했다는 통계는, 우리나라가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세드릭 빌라니가 보여주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경이롭고, 섹시합니다. 수학을 단순히 수능을 보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섹시한 매력을 지닌 수학의 세계를 알고 싶다면, 세드릭 빌라니의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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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2022-03-0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 수학교육 때문에 필즈상이 안나오는게 아니랍니다.
대한민국은 최근에 국가별 수학등급에서 최상급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최단기간에요.
(최상급 국가가 되면 투표권도 5표나 행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국내 수학올림피아드 응시자 수랑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전자는 크게 상관이 없답니다. imo에 출전할 정도면 준천재급들이거든요.
강요해서 가르친다고 도달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란 얘기죠. 실제로 imo수상자들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학자로 커가고 있구요. 아마도 멀지 않아 필즈상 수상자도 나오게 될 겁니다. 허나, 필즈상 수상자가
그나라 수학수준을 곧 대변해주지는 못하죠. 베트남은 벌써 필즈상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으나
누구도 베트남이 한국보다 수학강국이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실정인데 필즈상 수상자 나오지
않았다고 곧바로 한국 수학교육이 문제라는 사고방식... 이런 성급한 문화가 오히려 연구자들을
압박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님 한사람의 영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으나 님과같은 성향을
가진 많은 한국분들이 존재하다보니 수학자도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거죠.
필즈상급 논문을 쓰려면 상당한 시간과 또한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임해야 하는데, 가족들
눈치가 보이지 않을까요? 당장 번듯한 교수자리부터 잡아야 부모님 면이 설테니까요.
이게 우리나라 현실에 좀 더 가까울 겁니다. 허나, 그런 인식도 개인주의문화 발달과 함께 점차
줄어드는 추세인지라... 필즈상 수상자는 아마도 20년안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20년이나?!˝ 라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20년이라 해본들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수학자대회인만큼 기회가 많은게 아니랍니다. 그러나 수학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저같은
사람들은(저는 수학올림피아드근처도 가본적없는 준수포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수학자들이 나왔고, 특히 imo 출신들 중에(20~30대) 필즈상급 수학자로 커가고 있는
인재들이 적잖이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요.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KODEF 안보총서 70
워드 윌슨 지음, 임윤갑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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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하면 무엇이 생각나냐고 묻는다면, 전 영화『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보여주는 핵전쟁의 이미지 또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핵폭발 시뮬레이션 영상이 생각난다고 답하겠습니다. 지상의 모든것을 파괴하는 하얀마왕같은 이 가공할 만한 핵무기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무기가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에 동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소유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자 워드 윌슨은 핵무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상당 부분 신화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핵무기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입니다. 역사적으로 두 발 만이 사용되었을 뿐더러, 2차 세계대전 종결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가 사용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본이 항복한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 역사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워드 윌슨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에드윈 로크의 말처럼, 상관관계방식은 인과관계 가설을 제시하는 데 아주 유용하지만 과학적 증명방식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상관관계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무기가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윌슨은 여러 사실들을 지적하는데, 핵무기의 도시파괴 능력이 그 전에 실시한 미국 공군의 일본 본토 공습에 비해 압도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낮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본 입장에선 핵무기의 위력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당시 일본 주요 장성들의 기록을 인용하는데, 당시 일본군 장교들은 핵무기의 위력보다는 기근으로 인한 내부의 봉기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일본군은 핵무기를 맞은 이후에도 긴급회의를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핵무기 사용 이후 일본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무서워했던 것은 핵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소련군의 참전이었습니다. 소련군이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일본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고, 바로 전쟁에서 항복했습니다.

소련의 침략은 외교 전략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처럼 군사적 결전 전략을 불가능하게 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일본의 모든 전략적 방안은 물거품이 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폭격과 달리 소련의 전쟁 개입은 전략적으로 결정적이었다. - p.85

핵무기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이론 중 하나로 핵 억제론이 있습니다. 핵무기는 전쟁에 사용될 경우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서로 가지고 있으면 상호확증파괴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전쟁을 할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핵 억제론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한의 핵개발을 떠올리게 합니다. 북한이 경제사정과 정치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핵무기를 탐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핵무기가 그만큼 필요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핵억제는 위기 시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저자는 부정적인 답변을 합니다. 핵 억제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쿠바 위기, 베를린 위기, 한국전쟁, 중동전쟁 등에서 핵무기는 위기를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핵이론가들은 핵억제가 일반적인 억제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냉전의 위기 기록은 핵억제가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핵억제에 의존해야 한다면, 핵억제는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억제가 아주 효과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안전이 위험에 처한다면, 핵억제 보장은 항상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 pp.159~160

사람들이 핵무기의 출력 계산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핵무기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핵무기는 천하무적의 무기도 아니고, 문제 해결에 만병통치약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핵무기가 일본제국이 항복한 것처럼 적에게 충격을 주는 독특한 능력이 있고, 전쟁에서 결정적이며, 특별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인식은 핵무기는 결코 제거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핵무기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게 되자 핵무기는 무기 그 자체로서의 가치보다는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었는데, 국제사회에서 힘의 화폐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핵무기가 힘의 징표라면, 사물의 실제적인 유용성과는 별개로 유용한 물건이 됩니다.

선택은 드러났으므로 변화는 가능하다. 변화는 총체적 죽음에 대한 단 한 가지 대안이다. 인간 세계를 파괴하든지 또는 좀 더 협동적인 공동체로 변해가든지 조건들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게 설정됐다. 현재에 해야될 일은 죽음의 기계를 해체해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음을 공들여 만들어 오는 데 낭비했던 부유하고 지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생명을 존중하는 일에 돌려질 필요가 있다. -《원자 폭탄 만들기 2》pp.471~472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덕적 측면에서 핵무기를 반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핵무기의 유용성을 외치는 현실주의자들의 의견을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핵무기를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현실주의자적 측면에서 핵무기에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핵무기가 그 비용을 감수할 만큼 유용한 무기인가? 핵억제 능력이 평화를 유지하는데 그만큼 효과적인가? 저자의 답변은 핵무기는 아주 위험한 반면, 그만큼 아주 유용하지는 않은 무기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핵무기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화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사실과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핵 체제를 재고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핵무기는 위력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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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프로젝트 2 (양장 합본) 아케이드 프로젝트 2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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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의 말이다. 그의 이 말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책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할 장소로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19세기에 파리가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발흥한 것은 유럽역사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대단히 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 작가, 개혁가, 이론가들이 프랑스의 수도로 모여들었다. 파리는 비교적 관대한 군주인 루이 필립의 치하에서 많은 나라의 망명객과 혁명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때문에 파리는 다양한 지적 조류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시로 오랜 동안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경우는 격심한 정치적 반동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그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던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파리에서는 베를린에서처럼 자국문화에 따르도록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고, 적어도 아직 런던에서처럼 냉대와 고립 속에서 소집단을 이루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자유롭고 심지어는 열렬하게 환영받기까지 하고 왕정복고의 시대 동안에도 살아남은 예술적, 사회적 살롱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주위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원 안으로 모여들 듯이 파리로 향했다.

 

파리의 지적 분위기는 흥분과 이상으로 들떠 있었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에서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구체제, 군주들과 폭군들, 교회, 군대, 지성이 결여된 속물적 대중, 노예와 압제자들, 생명과 자유로운 인권의 적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의 분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떠들썩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감정은 뜨겁게 고양되었고, 개인적인 느낌들과 믿음들은 열정적인 문구로 표현되었으며, 혁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구호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열렬하게 되풀이되었다.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기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파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 이 책은 격동의 시기, 마르크스와 수많은 계몽주의자들이 활약하던 그곳, 현대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 19세기 파리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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