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충격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박종성.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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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가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연설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미래를 봤습니다.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미래를 보며 생활했습니다. 편지, 신문 등이 가져다주는 소식들은 언제나 이미 지난 과거의 정보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이 살아가던 시대엔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대로 '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현재의 정보를 가공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미래의 충격》를 통해 우리는 모두 미래주의자들이며, 미래가 가져다 줄 충격들을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21세기가 도래함에 따라 시대가 변했다고 말합니다. 대비해야 할 것은 현재입니다.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오늘날 서사가 몰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서사의 영향력은 강력합니다. 문학적, 오락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스토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과거에 비하면 서사의 힘은 줄어들고 있으며, 그런 경향은 더 큰 영역에서 두드러집니다. 국가에 대한 관점,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는 쇠퇴했습니다. 규범의식이나 전통의 공유와 같은, 대중 모두가 공유하던, 설령 공유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공유해야 했던 이야기들은 상대주의, 다문화주의, 다원화에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큰 하나의 이야기는 작고 다양한 이야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재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단연코 기술의 발전 덕분입니다. 운송기술의 발달, 정보기술의 발달 등으로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 가치관,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충격은 어떤면에선 케빈 켈리의 말처럼 기술의 충격입니다. 과거 언론인들이 게이트키핑을 하고 의제를 설정했다면, 오늘날 인터넷과 SNS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국가간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나 즉시 접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누구나 즉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재 일어나는 일을 현재에 반응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든 것이 변화했습니다. 정치인들은 현재의 이슈에 즉각 반응해야 하고, 경제는 현재의 주가변동에 즉각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에 반응하고 현재를 즐깁니다. 컴퓨터 게임은 스토리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게임에서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MMORPG와 같은 무한게임으로 변화했습니다. 게임은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되었습니다. 소설은 전통적인 자연주의적 독해 뿐만 아니라 라이트노벨적인 구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TV프로그램도 과거의 스토리와 교훈을 가진 구성에서 리얼리티적인, 대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저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인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회운동도, 월 가를 점거하라 운동만 보더라도 하나의 거대담론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정확한 기간도 알수 없고 종결시기도 알 수 없습니다. 시위대는 자발적으로 형성되었고, 시위를 이끌 지도부도 없었습니다. 그저 현재에 존재했고 현재를 외치다 사라졌을 뿐입니다.

어떤 것을 행하는 것과 그 결과를 보는 것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축적되어 우리가 행동을 완료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영향을 가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현재의 충격은, 긍정적인 면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모든 비중을 현재에 두게 되면서 저자가 '과도한 태엽 감기'라고 부르는, 현재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시간을 압축시킵니다. 금융투자상품도 현재를 중요시하고, 운동선수도 현재를 중요시해 스테로이드를 맞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소비를 미래에 대한 구매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보상에 더 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컴퓨터게임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특정 용도에 사용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현재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작도 끝도 없고 선형적 서사가 제시하는 기원도 목적도 없이 우리는 현재에 충실해야만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던 스토리의 상실을 슬퍼하는 한편, 자기제어와 자유 그리고 자기결정의 새로운 틀을 세우기 위해 고민해야만 한다. 게임은 그것을 통해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커다란 렌즈와도 같다. - p.101

한 개인이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자각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주의가 가져다주는 충격들을 말하며 현재의 충격에 대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스토리텔링을 전해주던 언론인이나 정치인, 작가들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의 강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요구되며, 어떤 정보를 취사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합니다. 실시간 기술은 우리에게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개념을 영원한 현재라는 개념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디지털적인 사회에 비해 우리의 육체는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바로 현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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