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패니메이션 하드코어 - 에로틱 아니메 분석 가이드
헬렌 매카시.조너선 클레멘츠 지음, 한창완.이정훈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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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지만,『동급생』,『쿨 디바이스』,『카이트』,『크림레몬』,『라 블루 걸』,『우로츠키 동자』같은 작품들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작품일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내용에 성애 장면이 들어가 있기에 야한 애니메이션, 줄여서 야애니라고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방영되는 광고, 드라마, 영화 등 현대의 거의 모든 미디어컨텐츠는 성적인 암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에로틱한 애니메이션들은 사드 후작의《소돔의 120일》처럼 성적인 암시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섹스, 공포, 미소년, 미소녀, 동성애, 가족문제 등 에로틱 애니메이션이 주로 다루는 주제들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경계를 정면으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계몽은 경계에서 만들어지는데, 그의 지적대로라면 야애니는 계몽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극적인 애니메이션들이 일본에서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의 사회문화가 성적으로 관대하고 자유롭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일본의 에로틱한 작품들의 시작은 법적, 관습적인 긴장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일본의 검열제도는 산업화의 시대에 새롭게 들어선 일본이 동시대 서구 국가들의 구식 규범을 모방하려던 시기에 시작되는데, 서구 사람들에게 야만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던 일본은 마치 1988년 한국에서 서구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는 이유로 달동네를 철거하고 개고기집들을 규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전통적인 성문화를 규제합니다. 1918년의 외설법 등의 법률은 성인들에게 성인의 성애장면을 보지 못하게 했는데, 미국의 금주법같은 다른 사회의 금기법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외설법에 의한 제한이 악용되어 성에 대한 예술적 표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인들이 사회적으로 정상적이라고 인정받는 성인과 성인의 이성애적 성애를 보지 못하게 되자, 일본의 에로티카는 외설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신체 부위나 성기를 노출할 필요가 없는 행동에 집중함으로써 법적인 외설을 피해 갔습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에로한 2D나 에로한 3D는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법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새로운 에로티카는 시민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었습니다. 법적 검열은 다양한 변질을 낳았는데, 여자와 성관계를 갖는 남자의 이미지는 검열을 통과하기 힘들었지만 의사놀이를 하는 두 어린이들은 개념상 순수하기 때문에 성적인 행위로 간주되지 않아 롤리타 콤플렉스의 출현에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향은 오늘날 로리물이라 불리우는 장르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촉수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영상문법은 제작자들에게 아주 유용했다. 길이의 제약 없이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삽입 장면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촉수는 속박의 형태로서, 다중 삽입, 성적인 결박, 용이한 카메라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촉수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남성의 성기처럼 보이지만 진짜 성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작자들은 검열에 걸리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만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 p.127

이런 환경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아동 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낳게 하는데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우로츠키 동자』등의 야애니는 이런 성인들의 수요에 힘입어 탄생했고, 성인들이 만족할 수 있는 표현과 영상기법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사회적 금기와 도덕적 한계에 도전하는 야애니들은 일반적인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영향을 미쳐 시민들로 하여금 더 나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게 했습니다. 나가이 고의《파렴치 학원》은 혁신적이고, 불경스러웠으며, 상당한 스캔들을 불러왔는데, 일본의 학부모교사협의회에서는 이 책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도발적인 옷을 입고, 근엄하고 권위적인 교사들을 멍청하고 잘난 체하는 호색가 아니면 부조리한 인물들로 표현함으로서 사회의 터부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가 다른 문화와 만났을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당시 서구의 경우 만화, 애니메이션은 아동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작품들이었고, 성인은 성인들만의 성애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동용이라고 생각하며 들여온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아키라』와『우로츠키 동자』였습니다.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천장 정도의 판매량을 올릴때 이 두 작품들은 6만장, 7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에, 헌신적인 팬이 아닌 대중들은 이 두 작품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고, 이 두 작품을 기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한국영화는 오직『클레멘타인』만 본 외국인이 저 영화를 기준으로 한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서구에서 현대적인 아니메 사업이 시작되는 데 가장 많이 기여했던 두 작품은 외국 관객들에게 그릇된 기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에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의 세계에는 더 이상 포르노그래피는 없다. 외설도 없다. 모든 것은 취향과 선호, 즐김, 향유일 뿐이다. 포르노 단계를 넘어선 판타지의 세계, 그것이 데카르트적 향유 주체에 대응하는 세계이다. -《포르노 이슈》p.86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각종 매체, 시민단체들이 이런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거론하며 에로틱한 애니메이션의 하위 장르뿐만 아니라 모든 애니메이션을 비난하고 있으며,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성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베르 네츠의 지적처럼, 억압적 검열은 아무 관계도 없는 청소년 보호를 내세워 가해질 때 더욱 눈에 잘 보이는 법입니다. 저자는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각종 매체,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이 자신들의 아이들과 문화를 파괴할 것이라고 외치며 성인의 사적인 오락이나 사상에 검열을 외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적인 검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성인용 애니메이션들이 다시금 검열의 벽을 만나게 된 것은 희극입니다. 저자의 말은 아청법 등으로 성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통용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에로스에 대한 이런 정치가들의 반응은 최악의 쇼비니즘이며, 누가 시민들이 보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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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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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인 음식 하면 여러 음식이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치느님', 후라이드 치킨은 단연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2013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자영업 폐업률은 85%, 음식점의 폐업률은 95%나 되지만, 치킨집의 폐업률은 53.2%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경험한다는 극도의 환경 속에서도 치킨집은 다른 음식점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생존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치킨을 애용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년 닭 소비량은 7억 8천만 마리로, 5천만 국민을 기준으로 할 때 1인당 일년에 15마리를 먹는 셈입니다. 이 소비량이 전부 치킨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아마 치킨일 것입니다. 지금은 백숙의 시대가 아니라 치킨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후라이드 치킨은 음식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치느님'이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음식은 때론 신성시됩니다. 현금 경매장이란 독특한 시도를 했던 게임『디아블로 3』에서 게이머들은 아이템의 가치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위로 치킨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높은 위상을 가지게 된 치킨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60년대에 명동영양센터에서 전기구이통닭을 처음 선보였고, 70년대에 엠보치킨이 1세대 후라이드 치킨을 선보였습니다. 치킨은 격변의 한국현대사를 함께하면서 시민들과 성장했습니다. 좀 더 나이든 기성세대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 짜장면이었다면, 그 다음 세대에게 있어서 추억의 음식은 바로 치킨이었습니다.

요리는 맛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그 나라, 민족, 지방, 개개인을 나타내는 문화이기도 하다. -《차별받은 식탁》p.179

치킨은 철저하게 상업화된 음식입니다. 가정 양계의 시대에서 산업 양계의 시대가 시작된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치킨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농 중심의 규모화, 집단화, 시설화로 인해 농업이 산업화, 공업화되어야만 1년에 7억 8천만 마리의 치킨 상품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킨은 조리법 자체로도 상업화에 적절한데, 집에서 해먹기 어려운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치킨에 사용되는 닭도 일반 판매용이 아닌 염지된 닭이며, 집에서 딥 프라이 방식으로 치킨을 만들려면 시설적인 면이나 기름의 효율적인 면에서 매우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팔기 좋은 음식이라는 장점 덕분에 IMF 이후로 자영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치킨집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조사하고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의문은 '대체 치킨은 무슨 맛으로 먹는가'였다. 그런데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각자 갖고 있는 치킨의 취향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로 갈리지만 그건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 - p.58

IT업계의 비관적인 농담 중 하나는 코딩이 어려울 때 치킨집 사장님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무자들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줄 정도로 IT에 오래 근무했던 사람들이 치킨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치킨이 인기상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초보자도 금방 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치킨집의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국 어딜 가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보장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맛의 개선이나 메뉴의 차별화가 기업 단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음식인 짜장면에 비하면 치킨은 맛의 마지노선을 잘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짜장면 맛있는 집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좋은 춘장이 없으니까. 지금도 집에서 춘장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춘장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캐러멜 넣은 강력한 공장 춘장의 맛을 못 이겨. 불행한 거지. 된장찌개 맛있는 집들 생각해봐. 그런 집들은 다 이유가 있어. 어느 절에서 스님이 만들어놓은 메주를 쓴다거나 고향집 할머니가 직접 만든 된장이라거나. 아직까지 좋은 된장을 찾는 사람이 있고,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좋은 된장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명맥이 유지되는 거잖아. -《짜장면뎐》p.184

2002년 월드컵 이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치맥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불금, 그리고 치느님은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문화컨텐츠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후라이드 치킨이 가지는 문화적인 측면을 넘어 사회적인 측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축산업계의 반독점 기업 하림의 계약농가 문제, 프랜차이즈 관계에서 비롯된 갑과 을의 문제, 배달 앱의 수수료 문제 등은 우리 사회의 치킨문화가 장기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부분들입니다. 어떤 네티즌들은 한국정부가 한류를 지원할때 외국인들에게 제발 김치좀 그만 먹이고 치킨을 먹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김치맨'들이 김치보다 치킨이 먼저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에게 치느님은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치킨에 대해 여러가지로 조명한 저자의 시도는 "이제야 이런 책이 나오다니" 할 정도로 늦은 감이 있고, 그래서 반갑습니다. 이 책은 디아블로3식으로 말하자면 '1치킨'입니다. 치킨만큼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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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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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홈에버, 남양유업 사건 등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해 파견직,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되었고, 최근에 있었던 땅콩회항으로 알려진 대한항공 사건은 재벌가 문제, 갑질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론화는 더 빠르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반면, 그것을 개선시킬 저항의 원동력은 부족합니다.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학자들과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이 저항하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수백억 원을 가지고 있는 재벌가 어린이들,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실업 문제, 1%대 99%로 대변되는 부의 불평등 문제 등 젊은이들이 저항할만한 뚜렷한 목표도 존재합니다. 전태일 세대에서, 더 과거의 역사를 비춰보더라도 저항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저항하지 않는가?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사회가 절망적이기 때문이 가능합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희망을 포기했기에, 젊은이들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도, 갑과 을의 불합리한 관계도, 상위 1%가 사회의 부를 쓸어가더라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더라도 젊은이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값비싼 음식도, 자동차도, 집도, 결혼도 포기한다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만한 사회인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겐 값싼 정크푸드가 있고, 월 2만원에 즐길 수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SNS,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성욕을 해소한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3평짜리 고시텔도 곳곳에 있습니다. 고도성장의 풍요는 젊은이들에게 절망과 동시에 행복을 안겨줬습니다.

이제껏 일본은 경제 성장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려왔는데, 돌연 경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일본은 모두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 경제 성장을 선택한 일본, 어쨌든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벌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307

경제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더글라스 러미스보다는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와 유사합니다. 언젠가 민주주의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선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일본 젊은이의 '이등 시민화'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꿈' 혹은 '보람'이라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젊은이야말로 저렴하고 해고하기 쉬운 노동력이라는 점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며, 이 노동력이 존재하는 한 사회의 바퀴는 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변화의 시기는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결혼의 포기, 최소한의 소비생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점차 감소해 그 특이점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 격차라는 문제가 지목하는 피해자는 사실 젊은이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젊은이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고용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가장 곤란해지는 쪽은 '젊은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업이다. 마땅한 고용 대책과 합리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단지 '젊은이들'이 가엾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 pp.285~286

저자는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반란은 베이비 붐 세대라는 거대한 젊은 층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의 주역은 젊은이들이었고, 젊은이들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주역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무언가 높은 대상을 향해 분발하기보다는, 친구 관계 등 자신과 가까운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치는 부담스럽고, 투표는 거추장스러우며, 혁명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격차사회라든가 블랙기업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젊은이들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 대규모의 변화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땅콩회항은 사회문제라기보단 한 순간의 유흥의 영역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공헌을 희망하는 젊은이의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포기했고,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왠지 불안합니다. 실제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만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은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상의 답답함을 깨뜨려 줄 만한 매력적인 사회공헌 방법을 찾고 싶지만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이런 욕구를 통해 등장한 것 중 하나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 재특회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들이 일반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길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끊없이 외치는 것처럼, 자신들이 찾은 진실, 애국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사회가 침해되거나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가 지적을 당했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도쿄 도는 '청소년 건전육성조례 개정안'에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고 해도 나이가 18세 미만인 경우, 이것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을 넣으려고 했다. 아동 포르노와 달리 실재하는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실재청소년'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민주당 도쿄 도 총지부 연합회 간부의 사무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그 결과, 개정안은 조문을 바꿔 12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결됬다. 하지만 반대 운동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내 주변 세계가 변할지도 모른다'라는 위기감이 사회적인 행동으로 분출한 것이다. - p.219

저자는 젊은이들이 결코 사회문제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 국가나 민족, 사회와 같은 것에서 가족, 친구와 같은 형태로 변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국가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나면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서겠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젊은이는 가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애국심과 내셔널리즘도 아직은 어느정도 유효한 가치관이지만, 그것을 대체할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자는 절망과 행복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며, 과연 이 다음 시기에 사회가 절망으로 가득차 극적인 변화와 파괴가 일어날 것인지, 행복의 시대를 연장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는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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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
제인 맥고니걸 지음, 김고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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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원사운드의『호드50』을 보면, 게임을 왜 하냐는 질문에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거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유를 찾을 필요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는것처럼 게임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의 말처럼, 게임은 그냥 할 수 있는 강렬한 매력이 있습니다. 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의 구조를 연구해 게임이 왜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지, 게임이 왜 미래를 바꿔나갈 힘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게임을 힘들고 하기 싫은 공부나 직장생활같은 일과는 다른 반대의 개념, 즉 쉽고 재미있는 놀이로 여깁니다. 더 심한 사람들은 게임은 아이들이나 즐기는 유희에 불과하며, 어른이 되면 하면 안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서튼스미스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함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우울함을 피하기 위해 놀아야 합니다. 때문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루덴스로 칭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은 놀이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일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다는 점에서 놀이의 영역이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일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의 필수적 구조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목표, 규칙, 피드백, 자발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사운드의 만화에서 이를 비교해 보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게임을 시작했고, 50판을 깨겠다는 목표가 있으며, 게임 내의 무기와 적에 대한 규칙이 존재하고, 50판을 깨면 받는 랭킹이라는 피드백이 있습니다. 이러한 4가지 구조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게임의 영역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사장님이 강제로 게임을 시킨다면,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공정한 규칙이 없다면,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제노동이 됩니다. 맥고니걸은 철학자 버너드 슈츠의 말을 빌어 게임을 이렇게 말합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학생들은 감정노동자라기보다 감정노예라고 할 수 있다. 늘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승무원보다 억지로 끌려간 성노예에 가깝다. 학교에 강제 연행되어 우연히 같은 반에 배속되었을 뿐인 타인들과 친밀한 친구로서 공동생활을 강요당하는 강제노동은, 병사와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성노예의 강제노동과 동일한 형태다. -《이지메의 구조》p.170

게임이 요구하는 4가지의 구조적 요소들은 축구, 바둑과 같은 스포츠부터 공부, 심지어는 직장생활과 같은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스포츠는, 효과적인 공부법은, 다니고 싶은 직장은 모두 목표, 규칙, 피드백, 자발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를 가지지 못한다면 하기 싫은 스포츠, 안좋은 공부법, 괴로운 직장생활이 됩니다. 회사 내에서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축구대회,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공부,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 직장생활은 모두 강제노동의 영역에 속합니다. 현실에서 이 네가지 구조를 모두 갖춘 것을 찾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에 반해 게임은 이 네가지 구조를 모두 갖춘 소위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많이 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게임에 열광합니다.

사람은 저 네가지 구조를 가진 환경을 접하게 되면 어떤 것이든 몰입하게 됩니다.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몰입상태에 대한 심리적 메카니즘은 많이 연구되었는데, 자신이 해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어려운 일을 할때 몰입이 이루어집니다. 만약 조기축구회에 몰입해서 축구를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 리오넬 메시와 축구대결을 해서 이기라고 강제로 시킨다면, 몰입상태는 깨지게 됩니다.《운동화 신은 뇌》에서 소개된 네이퍼빌의 연구는 인상적입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심장박동 측정기를 통한 공정한 평가를 약속하자 운동에 대한 흥미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사실은, 현실세계에서 4가지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측정기에 나타난 여학생의 심장박동 기록을 본 롤러는 깜짝 놀랐다. 평균 심장박동 수치가 187이 나온 것이다. 열두 살짜리임을 감안한다면 최대 심장박동 수치는 대략 209정도다. 그러므로 여학생은 정말 있는 힘껏 뛰었다는 뜻이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심장박동 수치는 207이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아이에게 가서 '야, 좀 더 빨리 뛰지 못해!' 라고 소리를 질렀겠지요. 바로 그 순간이 체육 프로그램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심장박동 측정기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지요. 그러자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운동에 흥미를 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화 신은 뇌》p.32

제인 맥고니걸은 더 나은 현실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현실의 게임화가 필연적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은 인간이 원하는 본질적 구조들을 가장 명확하면서도 빠르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상세계에 가깝습니다. 이 뚜렷한 목표를 현실에서 얼마나 구현하느냐가 사람들의 행복을, 사회의 생산성을 결정짓는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선거활동에 게임적 요소를 도입해 사람들을 집결시켰고, 인공지능 연구부터 수많은 기술적 혁신이 많은 사람들의 게임적 참여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24일, 영국 의회 역사상 최대 스캔들을 파헤치고자 2만명이 넘는 영국인이 온라인에 결집했고, 이들의 활동으로 이후 의원 수십 명이 사퇴하고 광범위한 정치 개혁이 단행됐다.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그 큰 변화를 일으켰을까? 다름 아닌 게임을 통해서였다. - p.306

전세계를 강타했던 게임적 사회참여,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겁게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야스다 고이치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게임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사회에서도 발휘되기 위해선 사회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며, 인간적인 보상을 해줄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제인 맥고니걸은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그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 게임을 참고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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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1966년 미국의 병원에서 한 아이의 운명을 뒤바꾼 의학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생후 7개월된 남자아이 브루스가 포경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가 타버린 것입니다. 석탄처럼 타버린 브루스의 성기는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자로서의 삶이 끝장나버린 브루스의 부모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자아이로 만드는 성전환수술을 한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담론에서 동성애 혐오자들이 성적 정체성은 바꾸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브루스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브렌다라고 이름이 바뀐 브루스는 생의 시작부터 여자로 자랐습니다. 갓난아이때부터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성기를 가졌으며, 주변에서도 모두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도 여자로서 다녔고, 활동도 여자로서 했습니다. 마치 영화『트루먼 쇼』처럼 진실은 숨겨져 있지만 완벽한 환경이 구성된 것입니다. 브렌다의 케이스는 학계에서도 유명했는데, 브렌다는 남동생 브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하나의 유전자풀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한명은 남자아이로, 한명은 여자아이로 인위적인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이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의 성에 대한 관념을 바꿔놓을 정도로 극적이면서도 명확한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남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옷을 입는것을 거부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같은 여자아이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브렌다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브렌다는 온몸에 기름이 묻어있고 연장통을 들고다니는 자동차 정비공을 꿈꾸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영화『트루먼 쇼』에서 결국 주인공이 바깥 세상으로 떠나듯이, 브렌다에게도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BBC에서 당시 성공적 사례로 알려져있는 쌍둥이 케이스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그것이 실패한 사례라는 것을 밝힌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입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되찾게 됩니다.

"겪어보니까 여자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얌전하게 부엌에 있어야지.' '장작을 패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어렸을 때 여성단체에서 남녀 평등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남성보다 한참 아래라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남자들보다 한참 아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싫었어요. 남들 하는 일이라면 저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 '넌 여자잖니. 공놀이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 p.276

브렌다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있던 그의 부모와 심리학자들이 쉽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쌍둥이 케이스를 진행한 존스 홉킨스 병원과 존 머니 박사가 당시 '성 정체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자리매김시킬 정도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그램의 실험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비도덕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권위자의 권위에 쉽사리 저항하지 못합니다. 브렌다의 사례에서도 자기 자식이 매일 고통받는다는것을 보고 있는 부모였지만, 당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박사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정신상담을 한 맥켄티 박사와 BBC의 도움으로 브렌다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진실을 고백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브렌다가 문제있다는 것은 당시 브렌다를 만난 여러 의사들과 교육자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 성 정체성 담론의 패러다임의 기반이 된 사례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브렌다를 성공적인 여성으로 만들어 주류 의견에 동참하고자만 했지 비판하고,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의학계의 교만과 학파 간에 의견, 그리고 비과학적인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여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와 같은 남성성, 여성성의 문제부터, 성적 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담론이 있습니다. 브렌다의 이야기는 인간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인이, 사회가, 권위있는 무언가가 개인의 성 정체성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자아에 대한 위협이자 생명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브렌다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브루스로 돌아가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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