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1966년 미국의 병원에서 한 아이의 운명을 뒤바꾼 의학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생후 7개월된 남자아이 브루스가 포경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가 타버린 것입니다. 석탄처럼 타버린 브루스의 성기는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자로서의 삶이 끝장나버린 브루스의 부모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자아이로 만드는 성전환수술을 한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담론에서 동성애 혐오자들이 성적 정체성은 바꾸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브루스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브렌다라고 이름이 바뀐 브루스는 생의 시작부터 여자로 자랐습니다. 갓난아이때부터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성기를 가졌으며, 주변에서도 모두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학교도 여자로서 다녔고, 활동도 여자로서 했습니다. 마치 영화『트루먼 쇼』처럼 진실은 숨겨져 있지만 완벽한 환경이 구성된 것입니다. 브렌다의 케이스는 학계에서도 유명했는데, 브렌다는 남동생 브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는데, 하나의 유전자풀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한명은 남자아이로, 한명은 여자아이로 인위적인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이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의 성에 대한 관념을 바꿔놓을 정도로 극적이면서도 명확한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남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옷을 입는것을 거부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같은 여자아이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브렌다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브렌다는 온몸에 기름이 묻어있고 연장통을 들고다니는 자동차 정비공을 꿈꾸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영화『트루먼 쇼』에서 결국 주인공이 바깥 세상으로 떠나듯이, 브렌다에게도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BBC에서 당시 성공적 사례로 알려져있는 쌍둥이 케이스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그것이 실패한 사례라는 것을 밝힌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입니다. 브렌다는 자신이 남자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되찾게 됩니다.

"겪어보니까 여자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얌전하게 부엌에 있어야지.' '장작을 패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어렸을 때 여성단체에서 남녀 평등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남성보다 한참 아래라는 걸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남자들보다 한참 아래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싫었어요. 남들 하는 일이라면 저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 '넌 여자잖니. 공놀이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 p.276

브렌다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고 있던 그의 부모와 심리학자들이 쉽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쌍둥이 케이스를 진행한 존스 홉킨스 병원과 존 머니 박사가 당시 '성 정체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자리매김시킬 정도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그램의 실험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비도덕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도 권위자의 권위에 쉽사리 저항하지 못합니다. 브렌다의 사례에서도 자기 자식이 매일 고통받는다는것을 보고 있는 부모였지만, 당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박사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브렌다의 정신상담을 한 맥켄티 박사와 BBC의 도움으로 브렌다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진실을 고백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브렌다가 문제있다는 것은 당시 브렌다를 만난 여러 의사들과 교육자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쌍둥이 케이스는 당시 성 정체성 담론의 패러다임의 기반이 된 사례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브렌다를 성공적인 여성으로 만들어 주류 의견에 동참하고자만 했지 비판하고, 이견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의학계의 교만과 학파 간에 의견, 그리고 비과학적인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여자라면 이렇게 살아야지와 같은 남성성, 여성성의 문제부터, 성적 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담론이 있습니다. 브렌다의 이야기는 인간의 성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인이, 사회가, 권위있는 무언가가 개인의 성 정체성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자아에 대한 위협이자 생명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브렌다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브루스로 돌아가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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