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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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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를 보면, '우리 아이가 내성적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내향적인 성격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낫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향적인 성격은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명백히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외향적인 성격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분명한 편견이며,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라는 것은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수전 케인은 이 책《콰이어트》를 통해 외향적인 성격에 치우쳐있는 사회에 경종을 울립니다.

사회적으로 외향적인 성격이 각광받게 된 시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때 입니다. 19세기는 '인격의 문화'로, 당시 바람직한 시민들의 행동을 담은 지침서들을 보면, 시민으로서의 자질, 의무, 일, 고귀한 행위, 명예, 도덕성, 예절 등을 강조하며 홀로 있을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격의 문화는 '성격의 문화'로 전환됩니다. 데일 카네기로 대표되는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고, 당시 지침서들은 자석처럼 끌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지배적인, 강력한, 에너지가 넘치는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산업사회의 발달이라는 특징과 결부된 것입니다. 외향성이란 가치가 롤모델이 되면서 모든 사회적 분야에서 외향적인 성격을 찾기 시작했고, 외향성 선호 성향이 사회적인 편견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는 외향적인 성격을 요구하지만, 성격은 단순히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내향인과 외향인은 생물학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의 경우 대뇌피질의 각성 수준이 더 높아서 외부 자극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즉 더 적은 인간관계만으로도 만족을 느끼며, 파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독서나 사색을 하는 것으로도 피로를 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물론,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신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습니다. 때문에 많은 내향인들이 겉으로는 외향인인 양 위장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불일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타격을 주게 됩니다. 더군다나 모든 상황에서 외향적인 사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외향적인 사람이나 순전히 내향적인 사람 같은 건 없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동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 칼 구스타프 융 

EBS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를 보면, 기업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고 할 수 있고 자기 의사를 표출하는 성격은 외향적인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은 기업에게 더 좋을 것이다 라는 판단 하에 면접에서 그러한 부분을 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을 이끄는 CEO들의 성공신화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성공한 CEO들은 과감한 판단과 행동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끌었고, 사회적으로 이러한 모습은 외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두가지 관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CEO의 결단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질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 둘째는 이런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 많은 부분 후광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 로젠츠바이크는 자신의 저서인 《헤일로 이펙트》에서 후광효과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성공하거나 덜 성공한 기업의 비교는 사실 더 운이 좋거나 덜 운이 좋은 기업의 비교나 마찬가지이다. 운의 중요성을 안다면 기업 사이의 비교로부터 상당히 일관된 패턴이 등장할 때 특히 의심해야 한다. 임의성이 존재하면 정규 패턴들은 신기루뿐일 수 있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담은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것, 즉 명확한 원인을 밝혀주고 운과 회귀의 불가피성이 갖는 결정적 힘을 무시하는 단순한 성패의 메시지를 제공하며 공감을 산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해의 착각을 유발하고 유지하면서, 교훈들을 믿고 싶어 안달 난 독자들에게 전혀 지속성 없는 가치를 가진 교훈만 선사할 뿐이다. - 《생각에 관한 생각》p.286 

외향성 선호 경향은 우리들로 하여금 외향적인 성격을 지녀야 더 성공할 수 있고 더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향적인 성격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많은 내향인들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이 이룬 업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간디나 뉴턴, 현대에 들어와서는 앤드루 와일스나 페렐만의 업적을 생각해 봅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활발해야 할것 같은 기업문화에서도 내향성이 가져다주는 이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물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나뉘어 있고, 그 비율도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문제해결을 함에 있어서 외향적인 방법론만을 동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절반밖에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향적인 시민이였던 로자 파크스는 흑인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 될 저항을 했고, 외향적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그녀의 용기를 찬양하며 저항을 외칩니다. 내향적인 로자 파크스와 외향적인 마틴 목사의 조합이 훗날 위대한 일이였다고 판단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경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비록 내향성을 업신여기곤 있지만, 내향성은 우리가 가진 귀한 절반의 가치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모든 사람이 외향적이 된다고 상상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광기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외향성을 가진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모두가 중요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외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과감히 돌진하고 도전하고 외치는 상황에서, 내향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조언을 외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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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배신 - 왜 어떤 이는 빨라도 실패하고, 어떤 이는 느려도 성공하는가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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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이다'는 격언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격언보다도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돈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현대인의 시간 또한 점차 빨라지기를 강요받습니다. 속도의 중요성은 특히 기업의 세계에서 더욱 요구됩니다. 많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고객과 시장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더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빠른 속도의 추구는 무수히 많은 폐해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던 월가의 몰락입니다. 결국 '시간은 돈이다'라는 이 격언은 아마도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하는 격언이 되었습니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직업을 고른다면, 테니스 선수나 야구 선수, 펜싱 선수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1000분의 1초인 밀리초의 세계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이런 프로선수들이라고 해서 일반인들보다 시각적 반응이 더 빠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선수가 100마일의 공을 칠 수 있는 이유는 신체적 반응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들은 신체적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생각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야구공을 치기 위해선 스트라이크 여부에 관계없이 보는 즉시 휘둘러야 하지만, 프로 야구 선수들은 200밀리초동안 휘두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입니다. 단순히 빠른 반응속도와 빠른 판단의 조합은 빠른 헛스윙과 빠른 삼진아웃을 부를 뿐입니다.

지능의 핵심은 빠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와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 로버트 스턴버그  

주식거래에 고성능 컴퓨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알고리즘 매매의 일종인 초단기 매매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같은 알고리즘으로 경쟁한다면, 컴퓨터가 더 빨리 반응해야 좋은 조건의 주식을 경쟁자보다 앞서 구입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초단기 매매는 현재 미국 주식 거래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많은 기업들이 빠르고 새로운 플랫폼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UNX의 사례는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UNX는 새로운 CEO의 취임과 함께 최첨단 컴퓨터 매매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더욱 빠르게 설계되었고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기존에 비해 거래속도는 65밀리초에서 30밀리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0밀리초가 되자 매매 비용이 상승했고 실적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결국 UNX는 다시 65밀리초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을 중시하고 매 초마다 수조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시장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면서 속도는 빨라졌는데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무슨 조화냐는 말이죠. 속도를 늦추니 다시 상황이 좋아지고 말이죠. 세상에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속도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느려야 더 좋다니, 말이 됩니까? - p.58 

과거에 우리의 행동은 '사건의 시간'에 영향을 받았다면, 현대인들은 '시계의 시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계의 시간은 우리의 행동을 조직화하며, 사회 경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테일러주의는 업무의 분업화와 스톱워치를 통한 작업 시간 중심의 운영을 주장했습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습니다.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 근로자일수록 더 짧은 기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으며, 이런 사람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시간관을 바꿨습니다. 시간제 보수는 일 자체보다는 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동기를 왜곡시킵니다. 근로자들이 시간과 돈을 해로운 방식으로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 제약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심해집니다. 시간당 수입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고 인식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드보의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을수록 점점 더 일에만 집착하게 되며, 다른 활동을 덜 할 뿐만 아니라 덜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시간을 줄여 주는 각종 행위들은 모순적 결과를 불러옵니다. 패스트푸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지만, 그렇게 해서 아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지게 만듭니다. 더 이상 꽃향기를 맡을 여유가 없게 말이죠. - 샌포드 드보 

현대의 사람들은 하루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인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직장은 점점 더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숨 가쁜 업무 처리는 단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입증되며 빠름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혁신은 빠름의 추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늦춤으로써 최적이 되는 지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빠르게 반응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현대 사회는 우리의 빠른 본능을 최대한 이용하지만, 우리는 종종 본능과 기술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고속 사회일수록 우리의 삶의 결정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기다려라'라는 실존적인 조언을 생각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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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덫
미키 맥기 지음, 김상화 옮김 / 모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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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20세기 중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제는 수많은 도서 장르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도 자기계발서는 이제 소설과 어깨를 나란히합니다. 자아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모습대로 자아를 실현하라, 상상한 그대로 삶을 창조하라는 이상적인 메시지는 자기계발서가 지닌 호소력을 이해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계발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대중적인 자기계발 서적들에서 제시되는 자아실현은 전형적으로 현존 상태의 유지에 기여합니다. 자기계발서의 약속은 자아를 계발시키기는커녕 끊임없이 시달리는 자아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역사학자 카웰티가 지적한대로 자기계발서의 주요한 역할은 행동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물어져가는 전통적 진리의 관점에서 삶의 역동적 변화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계발의 메시지가 사회변화의 분기점마다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소수의 산업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자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도덕적 정당성을 제시해야 했고, 부는 성공, 그리고 신성함과 동일시되었고 가난은 죄악으로 인식했습니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부가 집중되고 기업가로서의 성공기회가 더욱 줄어들자 자기계발의 이상은 기업가적 성공기질보다 원만한 대인관계에 역점을 두게 됩니다. 데일 카네기로 대표되는 자기계발 담론은 회사에서의 순응 및 세일즈맨십을 강조합니다. 70년대의 자기계발 담론은 자신만 생각하며, 승리를 위해선 협박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존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현대의 자기계발 담론은 스스로 일하는 자아라는 이상적 노동자인 예술가라는 개념을 완성했고, 더 나아가 자아를 위해 일하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인 소명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며 왜곡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열심히 일하는 것이 부를 보장하는 신뢰할만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평생동안 한 가지 특정한 소명 또는 천직 내에서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과 개인의 소명에 대한 요구에 대해 자기계발서들의 답변은 대가에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고용안정에 대한 부담도, 재정적인 안전 유지에 대한 책임도 노동자에게 이전됩니다. 자기계발서는 노동자들에게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며 스스로의 CEO이고, 예술가이고, 브랜드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자기계발의 현실적 이상형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입니다. 누구나 꾸준하게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사회적, 개인적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얻습니다. 이런 환상은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오류입니다. 만약 성공이 온전히 한 개인의 노력에만 달려 있다면 어떠한 실패도 오직 개인의 단점이나 약점에서만 비롯된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이 도출됩니다.

운은 일류 기업의 성공이나 그보다는 처지는 기업의 성과에나 모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담은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것, 즉 명확한 원인을 밝혀주고 운과 회귀의 불가피성이 갖는 결정적 힘을 무시하는 단순한 성패의 메시지를 제공하며 공감을 산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해의 착각을 유발하고 유지하면서, 교훈들을 믿고 싶어 안달 난 독자들에게 전혀 지속성 없는 가치를 가진 교훈만 선사할 뿐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p.286 

자기계발서의 주된 메시지는 개인의 마음과 의지가 자신의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얻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처한 현실은 완전히 자기책임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자기계발서들은 자기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을 혐오하며, 사회변화를 위한 어떠한 집단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도 조롱당할 만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자기계발서에 내재된 심리치료법적 유신론은 과거에는 전적으로 종교가 담당했던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통적인 종교에 비해 실천과 요구사항은 적지만 영적 고양뿐만 아니라 세속적 성공도 약속하는《시크릿》이나《꿈꾸는 다락방》같은 대중적 자기계발서들은 기도하면 이루어지리라 같은 영적 전통을 자연법칙 또는 과학적 원칙으로 포장합니다.

자기계발서가 가진 정치적 보수성은 해방된 이기적인 개인을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경로를 통한 해결가능성은 효과적으로 제거됩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자기계발서는 중산층의 빈곤이라는 경제적 현실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잖은 형태의 생존주의가 등장하는데, 다운사이징이란 용어가 유행일 당시 출간된《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치즈 찾기 미로 우화를 통해 이윤의 축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문화와 전통을 붕괴시키는 선진자본주의의 경향에 대한 변론을 펼칩니다. 이런 생존주의의 메시지는 얼굴 없는 합리적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적인 면을 찾다간 실험실의 쥐만도 못한 대접을 받을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기계발 담론은 새로운 자아창조에 효과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기본관념 및 사회정치적 세계에 대한 자아의 관계를 유지시킵니다. 이 담론에서 외모는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요소이기 때문에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성형수술을 장려합니다. 직장이 내면화되면서 창조된 자아가 진짜가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자기계발이 독창적인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개성적인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자기계발서가 요구하는, 더 나아가 자기계발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상품가치 있는 외형을 스스로 가꾸고, 기업에서 쓸만한 스킬을 스스로 단련하며 기업가처럼 창의적으로, 예술가처럼 열정적으로, 심지어는 예술가처럼 무보수에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보상, 자기계발의 성취에 대한 보상에 대해 자기계발서들은 대부분 쇼핑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간단히 말해 만약 모든 사람이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바쁘다면, 누가 집을 청소하고, 저녁을 짓고, 아기에게 귀저기를 채우고,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며, 공장에서의 노동은 말할 것도 없이, 누가 거리를 청소하고, 택시를 몰며, 쓰레기차를 채울 것인가? 모든 돌보는 일은 개인이 자기형성의 더 커다란 일, 즉 항구적으로 다듬어진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의 비전을 추구할 때, 무의미하고 저열한 가치로 평가된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배적인 자아에 대한 소설은, 그러한 이상이 노동에 대한 일의 우위를 내포하고, 타인의 노동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자아의 육체적 나약성까지 부정하는 이중부정을 함축하고 있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269 

자기계발서의 '자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는 메시지는 양날의 칼입니다. 개인의 자기계발이 전체적으로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민주주의 체제라면 모두에게 사회적 책임이자 특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은 개인이 스스로 추구할 때는 권장되는 일이지만, 자기계발서의 주장대로 추구되는 사회적 자기계발은 획일화를 가져오며 병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최근 KBS에서 추진했던 프로그램 『어린이 독서왕』의 사례에서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독서는 분명 유익하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획일성의 탈을 쓰면 어떻게 독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의 자기계발 문화는 병리적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계발이 가진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지배적인 자기계발 담론인 개인중심주의를 버리고 사회적 활동을 통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자기계발 담론이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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