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의 덫
미키 맥기 지음, 김상화 옮김 / 모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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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20세기 중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이제는 수많은 도서 장르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도 자기계발서는 이제 소설과 어깨를 나란히합니다. 자아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모습대로 자아를 실현하라, 상상한 그대로 삶을 창조하라는 이상적인 메시지는 자기계발서가 지닌 호소력을 이해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계발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대중적인 자기계발 서적들에서 제시되는 자아실현은 전형적으로 현존 상태의 유지에 기여합니다. 자기계발서의 약속은 자아를 계발시키기는커녕 끊임없이 시달리는 자아라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역사학자 카웰티가 지적한대로 자기계발서의 주요한 역할은 행동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물어져가는 전통적 진리의 관점에서 삶의 역동적 변화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계발의 메시지가 사회변화의 분기점마다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소수의 산업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자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도덕적 정당성을 제시해야 했고, 부는 성공, 그리고 신성함과 동일시되었고 가난은 죄악으로 인식했습니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부가 집중되고 기업가로서의 성공기회가 더욱 줄어들자 자기계발의 이상은 기업가적 성공기질보다 원만한 대인관계에 역점을 두게 됩니다. 데일 카네기로 대표되는 자기계발 담론은 회사에서의 순응 및 세일즈맨십을 강조합니다. 70년대의 자기계발 담론은 자신만 생각하며, 승리를 위해선 협박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존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현대의 자기계발 담론은 스스로 일하는 자아라는 이상적 노동자인 예술가라는 개념을 완성했고, 더 나아가 자아를 위해 일하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인 소명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며 왜곡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열심히 일하는 것이 부를 보장하는 신뢰할만한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평생동안 한 가지 특정한 소명 또는 천직 내에서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과 개인의 소명에 대한 요구에 대해 자기계발서들의 답변은 대가에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고용안정에 대한 부담도, 재정적인 안전 유지에 대한 책임도 노동자에게 이전됩니다. 자기계발서는 노동자들에게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며 스스로의 CEO이고, 예술가이고, 브랜드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자기계발의 현실적 이상형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입니다. 누구나 꾸준하게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사회적, 개인적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얻습니다. 이런 환상은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오류입니다. 만약 성공이 온전히 한 개인의 노력에만 달려 있다면 어떠한 실패도 오직 개인의 단점이나 약점에서만 비롯된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이 도출됩니다.

운은 일류 기업의 성공이나 그보다는 처지는 기업의 성과에나 모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담은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것, 즉 명확한 원인을 밝혀주고 운과 회귀의 불가피성이 갖는 결정적 힘을 무시하는 단순한 성패의 메시지를 제공하며 공감을 산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해의 착각을 유발하고 유지하면서, 교훈들을 믿고 싶어 안달 난 독자들에게 전혀 지속성 없는 가치를 가진 교훈만 선사할 뿐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p.286 

자기계발서의 주된 메시지는 개인의 마음과 의지가 자신의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얻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처한 현실은 완전히 자기책임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자기계발서들은 자기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을 혐오하며, 사회변화를 위한 어떠한 집단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도 조롱당할 만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자기계발서에 내재된 심리치료법적 유신론은 과거에는 전적으로 종교가 담당했던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통적인 종교에 비해 실천과 요구사항은 적지만 영적 고양뿐만 아니라 세속적 성공도 약속하는《시크릿》이나《꿈꾸는 다락방》같은 대중적 자기계발서들은 기도하면 이루어지리라 같은 영적 전통을 자연법칙 또는 과학적 원칙으로 포장합니다.

자기계발서가 가진 정치적 보수성은 해방된 이기적인 개인을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경로를 통한 해결가능성은 효과적으로 제거됩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자기계발서는 중산층의 빈곤이라는 경제적 현실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잖은 형태의 생존주의가 등장하는데, 다운사이징이란 용어가 유행일 당시 출간된《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치즈 찾기 미로 우화를 통해 이윤의 축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문화와 전통을 붕괴시키는 선진자본주의의 경향에 대한 변론을 펼칩니다. 이런 생존주의의 메시지는 얼굴 없는 합리적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적인 면을 찾다간 실험실의 쥐만도 못한 대접을 받을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기계발 담론은 새로운 자아창조에 효과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기본관념 및 사회정치적 세계에 대한 자아의 관계를 유지시킵니다. 이 담론에서 외모는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요소이기 때문에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성형수술을 장려합니다. 직장이 내면화되면서 창조된 자아가 진짜가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자기계발이 독창적인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개성적인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자기계발서가 요구하는, 더 나아가 자기계발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상품가치 있는 외형을 스스로 가꾸고, 기업에서 쓸만한 스킬을 스스로 단련하며 기업가처럼 창의적으로, 예술가처럼 열정적으로, 심지어는 예술가처럼 무보수에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보상, 자기계발의 성취에 대한 보상에 대해 자기계발서들은 대부분 쇼핑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간단히 말해 만약 모든 사람이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바쁘다면, 누가 집을 청소하고, 저녁을 짓고, 아기에게 귀저기를 채우고,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며, 공장에서의 노동은 말할 것도 없이, 누가 거리를 청소하고, 택시를 몰며, 쓰레기차를 채울 것인가? 모든 돌보는 일은 개인이 자기형성의 더 커다란 일, 즉 항구적으로 다듬어진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의 비전을 추구할 때, 무의미하고 저열한 가치로 평가된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배적인 자아에 대한 소설은, 그러한 이상이 노동에 대한 일의 우위를 내포하고, 타인의 노동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자아의 육체적 나약성까지 부정하는 이중부정을 함축하고 있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269 

자기계발서의 '자신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라'는 메시지는 양날의 칼입니다. 개인의 자기계발이 전체적으로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민주주의 체제라면 모두에게 사회적 책임이자 특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은 개인이 스스로 추구할 때는 권장되는 일이지만, 자기계발서의 주장대로 추구되는 사회적 자기계발은 획일화를 가져오며 병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최근 KBS에서 추진했던 프로그램 『어린이 독서왕』의 사례에서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독서는 분명 유익하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획일성의 탈을 쓰면 어떻게 독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의 자기계발 문화는 병리적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계발이 가진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지배적인 자기계발 담론인 개인중심주의를 버리고 사회적 활동을 통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자기계발 담론이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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