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웃케이스 없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오노 마치코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사립초교 입학사정 가족 회견장. 면접관들이 아이 아빠에게 아이 장점에 대해 묻는다. 아빠는 자식이 엄마를 닮아 착하고 다정한 성격 같다고 한다. 단점은 뭐냐고 묻는다. 장점과 같은 얘기인데 너무 유순하다 보니 무슨 일에든 승부근성이나 끈기가 없어 애비로서 아쉬울 때가 있다고 답한다. 작품 전반의 기조와 메시지를 함축한, 인상적이고도 모범적인 도입부다. 도시 정글에서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 대기업 중견 간부 자리까지 오른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신의 기질과 전혀 딴판인 외동아들 케이타(니노이야 게이타)는 어떤 의미에서 낯선 타자였고 의문부호였다. 그러니 케이타가 자신과 아내 사이의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뱉어진 말은 매정하게도 '역시 그랬었군!' 한마디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6년이란 세월을 같이 한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가정의 파란과 적응 과정을 차분히 소묘하면서 소위 유전과 환경,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하여 되새기는 영화다. 도시 중산층 가정과 시골의 평범한 가정, 매사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부자 아빠와 가난하지만 자상한 아빠를 대비하고 아우르며 가족의 의미, 진짜 행복에 대해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허나 무엇보다 한 사내가 남자에서 아버지가 되는 영화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부여된 진정한 가치는 자본 정글에서 자신을 포함한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는 수컷 이상임을, 생존과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 밑에 깔려 있던 스스로의 유년기를 아이를 통해서 마주하며 복원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적인 성장 과정임을 넌즈시, 그러나 아프게 상기시키는 영화다.
이 한 편의 작품에 대해 피상적으로 단점을 지적하긴 쉽다. 지금껏 여러 영화와 티비 드라마에서 다뤄온 케케묵은 소재에 도시와 시골, 냉철한 위너 아빠와 친밀한 루저 아빠라는 이항분포 도식화. 허나 세상을 그리 명료하게 딱 잘라 저울질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두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안이하지 않다. 가족은 선천적인 유전, 혈연 관계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함께 하며 서로의 가슴의 새겨진 역사로 이뤄진다는 둥 섣불리 고색창연한 모토를 내세우며 정치적으로 세련된 척도 않는다. 의례 그러려니 하는 사건들은 솎아내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닿아 이루는 관계란 단순히 어울려 섞이는 것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라는 믿음을 사려깊게 우려낸다.
6년 간 같이 살던 케이타를 생부생모에게 보내고 친자 류세이를 데려와 살면서 난항을 겪던 중 우연히 케이타가 몰래 찍어둔 자신의 예전 일상 사진들을 보게 되면서 눈물을 쏟던 주인공 료타의 모습에 나마저 울컥했다. 그는 친어머니와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을 떠올리고 스스로 최고 가치라 여겼던 능력있는 남편, 성공한 아버지로서의 외길이 케이타에게 얼마나 깊은 흉터를 남겼으며 지금 류세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을지 헤아린다. 그리고 당장 해결할 순 없지만 서서히 서로에게 배어들기 위한 한걸음 망설여 내딛는다. 사람이 성숙하고 타인과 교감함에 있어 샛길이나 쳡경은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깨치고 묵묵히 견뎌내며 시행착오를 건너야 할 시간, 유장한 세월의 강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