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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13년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1990년대 월가에서 투기적 저가주 판매와 기업 공개 주가 조작으로 떼돈을 벌며 억만장자에 등극, '월가의 늑대'란 별칭을 얻고 여색과 마약에 빠져 환락에 중독된 '5년천하'를 누리다가 불법 자금 세탁 및 은닉죄로 일순간에 몰락한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의 자서전이 원작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들어온 일련의 걸작들은 현대 미국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영락을 거듭하는 개인을 늘 그 중심에 둬왔다. 도시 뒷골목 범죄조직원들의 추례한 욕망을 다룬 [비열한 거리]와 [좋은 친구들], 편집증에 걸린 출세지향 배우 지망생 루퍼트 펍킨의 난장 해프닝 [코미디의 왕], 다혈질 복서 제이크 라 모타의 흥망성쇠를 유려한 흑백영상에 담은 [성난 황소], 괴짜 대부호의 강박과 기행을 그린 [에비에이터]... 모두 소위 아메리칸 드림, '탐욕이 곧 선(善)'이 되는 미국식 성공의 이면을 들추면서 인간의 삶과 그를 에워싼 세상 간 마찰, 그 명암과 허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거나 거꾸로 뒤집어 보는 작품들이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일번지라는 월가 한복판에 비상한 머리와 화려한 언변, 비뚤어진 야심의 양아치 사기꾼 조던 벨포트를 던져 넣고 그의 비행과 추락을 지켜 본다. 다만, 예전 대표작들에서 선뵌 '시네마' 내지 '필름'으로서의 무게감은 덜어내면서 블랙코믹 터치를 강화, 철저히 '만화경' 혹은 '요지경'에 가까운 난장판을 보여 준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난잡 파티 장면들, 나르시즘과 테스토스테론, 헤로인으로 들끓는 변태 행각들... 온통 '호갱님'들 후려낸 빚잔치로 마련한 돈다발과 섹스와 마약으로 점철된 역겨운 카니발 묘사 수위가 거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역작 [살로, 소돔의 120일]에 맞먹는다. 20세기 중엽 유럽 부르주아들 자리에 현대 금융자본가들만 대입해 놓은 격. 그 효과는 금융자본의 욕망 과잉과 도덕적 해이, 그 비정상·비인간적인 메커니즘의 기형성과 야만성에 대한 통렬한 독설, 체제 비판과 인간 풍자를 아우른 조롱으로까지 와닿는다.
70대 노장 감독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으로 영화적 활력과 에너지로 넘치는 작품이다. 20세기 로버트 드니로와 마찬가지로 어느덧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1세기 페르소나로 자리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출중한 연기가 한 몫 단단히 거듦은 물론이다(특히 마약으로 인한 유사 뇌성마비 시퀸스가 압권). 마지막, 3년(겨우?) 형량을 마치고 자기계발 전도사로 거듭난 조던 벨포트가 뉴질랜드 세일즈 세미나에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내게 이 펜을 팔아봐'(추신 참조)를 거듭 되뇌이던 엔딩의 페이소스는 [성난 황소]에서 결국 밤무대 코미디언으로 연명하게 된 제이크 라 모타가 거울을 보고 반복하던 독백 '자, 이제 무대로 나가는 거야 챔피온'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즈가 뇌깔이던 'That's the way of the future, the way of the future...'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한마디로 웃픈 영화다. 권선징악 교훈극도 아니고 한시절 풍미한 주식 야바위꾼을 미화한 회개록은 더더욱 아니다. 금융자본이 금본위제를 이탈한 이래로 촉발된 모순된 욕망과 가치 전도의 거대한 환영을 반영한 풍속도, 화끈하고 신랄한 블랙 희비극이라 하면 그나마 적합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세 시간에 육박하는 기나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수작이었다.
P.S. 영화 중간, 조던 벨포트가 페니 스톡 투자회사 '스트래튼 오크먼트'를 차리기 위해 소집한 죽마고우들에게 '내게 이 펜을 팔아봐'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수급이 재료나 실체에 앞선다'는 주식 세일즈 교훈을 주입시키는 장면이 있다. 화두의 답은 펜의 장점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싸인을 해달라며 억지로라도 수요를 창출하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