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지
프랑수아 오종 감독, 멜빌 푸포 외 출연 / 투앤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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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탐닉하던 루이(멜빌 푸포)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숨진다. 연인 무스(이자벨 카레)의 뱃속에 무책임한 핏덩이 하나 남긴 채. 남자의 부모는 아들 없는 손주를 원치 않으나 '그가 내게로 들어온 것'이라 생각한 무스는 아기를 낳기로 결정하고 한적한 해변가 마을에 홀로 둥지를 튼다. 문득 미심쩍어 사전을 찾아보니 제목 레퓨지(Refuge)엔 피난처, 은신처 그리고 쉼터의 뜻도 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줄거리 상으론 흔하디 흔한 신파극 외양이다. 허나 진짜 영화는 중반부터였다. 여자의 집에 장례식에서 잠깐 마주했던, 죽은 루이의 동생 폴(루이스 로낭 슈아시)이 찾아오고 동성애자인 그와 무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입양돼 같이 자라면서 한때 형과 연인 사이였던 그에게 그녀와 아기의 존재는 각별하다. 오해와 갈등, 화해와 위안을 거쳐 서로 애틋한 감정이 싹튼다.

 

 

 

 

 

연출·각본이 객기와 도발에서 명상과 성찰로 선회 중인 프랑소와 오종이다. 레퓨지는 그의 전작 타임 투 리브의 연장 내지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려한 영상이나 도발의 정서가 많이 희석된 아쉬움 만큼 앙금처럼 남아있던 감상주의와 자기도취도 휘발되면서 깔끔해졌다. 그도 나이 들어가며 조금은 싱겁게 깊어지는 중이다.

 

일견 이질적인 멜로드라마 정도로 보이는 레퓨지의 서사는 이성애와 모성이라는 통념의 해체를 주제로서 완곡하게 품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미지의 흐름 혹은 충돌은 지속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성애의 독점, 출산과 육아에 대한 모성의 전담에 흠집을 내고 이해와 연민의 감정, 연대라는 가치로 은연중 그 결핍을 메운다. 마지막, 무스는 딸아이를 출산하고 당신이 더 잘 보살피리라 믿는다는 편지와 함께 갓난아기를 폴에게 맡긴 채 지하철을 타고 홀연히 떠나간다. 약간의 당혹감에 뒤이은 담담함. 폴은 묵묵히 아기를 보듬는다. 아마도 그건 세상에서 조금씩 떠밀린 두 사람 간 최선의 교감이고 공동의 모반이 아니었나 헤어려 본다. 그들의 앞날을 그려보던 나는 먹먹해지면서 아득한 기분에 잠겨 티비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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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2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내용이네요~~~~. 저도 찾아 봐야겠어요.

풀무 2014-12-29 17:11   좋아요 0 | URL
독특한 면에선 정말이지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곰곰발님 외에 알라딘에서 덧글 주신 분은 처음이세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