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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 미야자키 아오이 외 목소리 / 버즈픽쳐스 / 2013년 3월
평점 :
'... 우리 엄마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늑대인간이었습니다 ...' 사람인 어머니와 늑대인간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유키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한 편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글로 남겨둬야 할지. 소박하고도 창대하다. 만남과 이별, 사랑과 성장에 관한 속깊은 얘기들을 담아내며 인간과 세계를 포괄하는, 판타지 풍이면서 동시에 안티판타지스런 작품이다.
천애고아로 보이는 여대생 하나는 철학 수업 도강 중이던 늑대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딸 유키(눈 오는 날 태어나서 雪)와 아들 아메(비 오는 날 태어나서 雨)를 낳는다. 극중 화자 유키의 나레이션대로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사냥 본능이 발동'했던 걸까. 비 내리던 어느 날 아빠는 사람 아닌 늑대의 모습으로 하천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싱글맘이 된 하나는 실의에 빠질 겨를도 없이 세간의 이목을 피해 조금만 흥분하면 늑대로 변하는 두 오누이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다. 도시를 떠나 외딴 시골로 내려간 그들은 낡은 집을 수리하고 이웃들 도움으로 밭농사를 지으며 터를 잡는다. 생의 환희와 시련을 맞으며 늑대아이들은 점점 자라나고 바깥 세상과 접촉하면서 사람도 늑대도 아닌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돈을 겪는다. 전학 온 동급생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유키는 늑대로서의 자신을 거부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남고자 하고 동생 아메는 숲을 동경하며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머니로서 갈등도 미련도 많던 하나였지만 종국엔 아이들 각자의 선택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먹먹했다고 해야하나 뭉클했다고 해야하나. 엔딩 자막이 다 오르고도 몇 분을 멍하니 있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만화로서의 한계도 있다. 주인공 하나의 성격은 괴로워도 슬퍼도 속으로 삭이고 사랑으로 버티는 전형적인 캔디 유형이며 하나와 늑대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 역시 단조롭고 일방적인 감이 있다. 영혼이 된 부성은 멀찍이서 관망하는 내내 육아가 온전히 모성에만 떠맡겨진, 이야기 뼈대에 스며든 정치성 역시 부당하다. 허나 작품 본유의 미덕이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사람과 자연을 생생하게 담아낸 화풍이 섬세하고 현실과 초현실, 생활과 동심이 혼재하는 얘기를 이질감 없이 아우른 화술은 유려하다. 장면 장면 넘어갈 때마다 그에 어울어지는 서정적인 음악 역시 가슴을 울린다. 뭣보다 세상사 모질고 냉혹한 이면까지 넉넉히 품어 녹여낸 작품의 품성, 그 성숙한 시선이 웬만큼 진지한 실사영화들도 도달하기 힘든 삶에의 깊은 성찰에 닿아있다. 개인적으로 [환타지아], [스노우맨], [이웃집 토토로], [곰이 되고 싶어요]에 이어 평생 마음에 간직하게 될 또 한 편의 명작 애니를 만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