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승리! 승리!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영국에서는 한국의 경기가 낮 2시에 행해졌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더라고. 한 친구의 아버님이 전화를 하셔서, 독일과 그래도 가까운 영국에서 열심히 응원을 하라는 당부가 계셨다고 한다.

하여, 엑시터의 삼총사는 집에서 보기보다는 사람들 있는데 가자고 생각하여 클라이데스데일 하우스라는 학교 내의 카페에 갔다.  (그 아버님의 딸인 그녀는 큰 태극기까지 가져왔다!) 그 카페에서는 큰 축구경기가 있을 때마다 큰 스크린을 설치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우리는 한 낮인데다가 한국과 토고, 즉, 영국인들이 별로 관심이 없을 만한 경기라서 스크린은 고사하고 텔레비젼이라도 잘 틀어줄라는가 하고 좀 우려를 했었다. 왠걸,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카페가 꽉차있었다. 동네 한국인들로! (그리고 약간의 외국인들도.)  어찌어찌 뒤쪽에 의자를 조달하여 자리를 잡았다.

첫골이 토고에서 나오고선, 어떻하냐. ...

휴식시간에 아자씨들은 밖에서 담바고 하나씩 물으신 분들도 계시고, 맥주로 목을 축이는 분들도 계시고, 호주도 일본에게 전반에 한골 주고 후반에 확 이겼잖아요, 그렇게 될꺼예요, 그러면서 기운을 북돋는 이도 있고 그랬다.

우리 삼총사는 점심을 못먹은 둘은 치즈얹은 감자칩을 주문했고, 한 여인은 카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다시 후반전이 시작되었고, 어마나, 실버헤드 이천수(BBC해설자의 묘사^^)가 그만 꼴을 넣어버리고만 것이다. 벌떡! 놀라워라!!! 꺅꺅꺅꺅꺅 난리가 났다.

이 난리통에 한 친구는 감자칩을 다 엎었고, 한 친구의 카모마일 차는 앞에 앉아계시던 어떤 중동 아저씨의 등뒤로 작열하여 셔츠를 흥건히 적시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고. 착한 아저씨는 이해를 해주셨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셨다. 다행히 차가 그리 뜨겁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오요...

안정환과 김남일이 운동장에 나왔을 때, 이후 화면에 등장했을 때, 모인 여인들의 함성이 유난히 드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 넘 잘생긴거야^^ 인상깊었던 것은 BBC해설가들이 한국선수들의 이름을 발음할 때 나름대로 매우 정확했다는 것.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김남일이 나왔을 때는 별명이 베큠클리너라는 것까지 말하더라고. ^^  

그러다가 안정환이 또 작열하는 꼴을! 우리는 모두 방방 뛰며 대한민국 짝짝짜작짝을 했다. 오! 멋져!

그러다가 공을 돌리다가 끝나버렸다. 박지성이 한꼴 넣기를 바랬는데. 무슨 축구공처럼 토고선수들이 차고 차고, 박군이 데굴데굴 바닥에 구르는 것을 보면서 너무 불쌍했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을 것 같다. 안쓰럽게.

오! 어쨌거나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되었지만, 후반전부터 나도 집중을 하고 열심히 응원을 했다. 목이 아프다... 목을 잘 추스린 후 다음 경기에도 열심히 응원을 해야지. 나름대로 축구도 재미난 것 같다.

당시, 그 아저씨와 등 뒤의 얼룩. 그 카모마일 차가 담겨있던 오렌지색 잔이 조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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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일년 전에 공연 연습 녹화해 놓은 것을 다시 보고 있다. 내가 아이들의 신체훈련을 지도했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몇 장면을 공연하였다. 신체훈련의 효과를 살펴보면서.

보면서 내가 저랬었군, 이랬었군 했다. 화면에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쾌적한 느낌이 아니었다. 부끄러워서 혼났다. 이 일반적인 자의식 외에도 내가 처음에 낯선 아이들을 만나 낯선 언어로 가르치게 되면서 가졌던 긴장과 부담감이 화면으로, 소리로 고스란히 드러나 참 괴로웠다.

내가 저거밖에 안되는구나 싶은 것이. 내가 가르친 것이 잘못된 것이면 어쩌나, 저런 접근은 적당치 않은 것이 아닌가 등. 당시는 열심히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제와 보니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역시 선생질은 아닌가뵈하는 마음도 들고. 좌절.

내가 학생들에게 과정을 기록해주었으면 하고 부탁했었는데, 다섯명 중 단 두명이 그 기록을 나중에 제출해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은 것. 나의 과정이 수업도 아니었고 자발적인 모임이었기에 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둘의 반응이 전혀 달랐다.

내가 마구 좌절하고 있을 때 한 아이의 글을 읽었는데, 나는 너무 너무 고마웠다. 그 아이는 나의 지도 목적에 정말 잘 따라와주고 있었고, 열심히 흡수하고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효과를 보고 있었던 것. 내가 화면을 보고 혼자 느낀 좌절감이 그녀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상쇄되려하던 그 지점. 바로 그 지점에... 나는 그만 다른 학생의 글도 읽어버리고 만 것이다. 흑흑..

그녀는 전혀 내가 가르치던 신체훈련과 연기의 상관관계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하니까 믿고 할 뿐이고, 사실은 잘 모르겠단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당연히 욕이지. 당연히 믿지 말고, 알아야했지 않겠나. 슬프다. 그리고 그녀는 솔직하게도 내가 한 학생 때문에 긴장하고 많이 화가 났었던 한 연습 때 무진장 무서웠다고 썼다. 아이고머니나!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는 겁주려고 그런 것이 아닌데. 함께 하는 작업에 혼자 너무 마음대로 해서 화가 났던 것인데. 그런 것을 다 열어놓고 토론하거나 너그럽게 다 받아주지 못한 나의 옹졸함에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혹시 글을 내지 않은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

내가 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아이들의 반응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나는 그 신체훈련이 스스로 너무 좋았고, 나의 연기 경험에도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냥 혼자 훈련하고 연기하고 그랬으면 남들과 나누면서 그래서 효험이 있네 없네 등의 갈등없이 스스로 행복했을텐데.

하긴, 효험을 본 아이도 있으니까. 위안을 해본다. 모두에게 다 맞는 것은 있을 수 없겠지.

앞으로 또 지도할 일이 생기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해야겠다. 애들이 말썽을 부려도 화내지 말고, 잘 논의하고, 너무 잘할려고도 하지말고. 사실 그래서 내가 더 긴장하고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 애들에게도 그것이 전해졌을 것이고. 아이고 참..

그냥 슬슬 편안히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신체훈련이 하루아침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일에 걸쳐 스스로 깨달았을 때 그것이 진정한 자기 것이 되는 것인데, 내가 지도할 시간이 짧다보니 애들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일라고 어거지를 썼던 것 같다. 이런 결과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편안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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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2007-01-2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야옹이형 2007-01-2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u know, you are always right.
 



   해당화~아가 곱게 핀 바닷가에 서~어 ~

  저 동요는 알았으되, 이 꽃을 영국에  와서 처음 봤을 때 나는 무슨 꽃인지 몰랐다.

  가시가 많다는 점, 잎이 달걀형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그 향기가 장미와 닮았다. 그 향기!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향기! 

  장미와 닮은 꽃이 바닷가에서 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내가 상상했던 해당화는 뭔가 일종의 소나무와 비슷하거나 대나무와 비슷하거나 혹은 과꽃과 비슷한 식물에서 피는 어떤 꽃이었는데. 이렇게 생긴, 이런 향기가 나는 것이 해당화였던 것이다.

  기숙사 앞에 새로 핀 이 해당화는 꽃잎이 홋겹이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연약한 느낌이 난다. 그러나 그 향은 여전히 혼을 뺀다. 장미향, 해당화향과 정말 똑같은 향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수 많은 장미향 향수 중에 아직 실제 장미향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향수>에 나오는 향의 천재 그르누이가 실제 인물이고 지금 살아있다면 내가 진짜 장미향이 나는, 해당화향이 나는 향수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영국에서 봄은 공기 밀도가 높아진다. 향기분자들로. 해당화의 향은 국소적인데 반해서 - 코를 가까이 대야 향을 맡을 수가 있다 - 다른 이름도 모를 꽃들이 내는 향기가 그리도 진해서 향기 스프 속을 헤엄치는 기분이다. 아.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꽃가루 알레르기, 영어로 hay fever. 영국 사람들은 많이들 고통받더구만 나는 약 2년간은 멀쩡했는데 갑자기 작년부터 봄만되면 민감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이 집에 이사온 이후부터인데. 집에 문제가 있나?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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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Dr. Self begins her summary. "An existential fear of not counting, of not mattering, of being left utterly alone. When the day ends, when the storm ends. When things end. It's scary when things end, isn't it? Money ends. Health ends. Youthfulness ends. Love ends. ..."

영어와 친숙해지자는 취지에서 영어로 소설을 몇권 읽었다. 그 중 하나가 패트리샤 콘웰의 PREDATOR이다. 베스트셀러였는데 반값에 팔더라고.

시대가 변하니 살인을 다루는 소설도 변한다. 예를 들어, 요새 영어듣기 용으로 즐기고 있는 아가사크리스 작품의 경우, 문제의 해결은 포와로의 little grey cell의 운동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증거 수집은 가끔씩 등장하는 지문이야기 이외에는 거의 눈의 운동에 맡겨져 있고 말이다. 콘웰의 소설에 비할 때 거의 향수가 느껴지는 지경이다. 

법의학자가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는 왠갖 알지 못할 온갖 기계들이 다 나온다. 물론 해석 안하고 그냥 다 넘어갔지. 쭉쭉.

콘웰의 작품은 이번에 읽은 것이 처음인데, 날이 서있다고 느꼈다. 뭐랄까 사람으로 치면 정이 없달까. 차갑달까. 주인공이 차가워서 그런가. 호흡이 빠르고 쭉쭉 밀고 나가는 힘이 좋고, 흥미진진한데. 거 왜, 뭐랄까 내가 포와로에게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은 애정을 갖을 수가 없었다. 잘난척하기로 유명한 포와로이지만 그것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주인공 스카페타는 포와로처럼 무진장 똑똑한 잘난 여인인데, 그런데 정이 가질 않더라고. 

특히 그녀가 남자친구 벤튼에게 조카 루시의 일로 화를 내는 장면은 잘 와닿지 않았다. 차갑고 이성적으로 묘사되던 스카페타의 성격과 일관되지 않다고 느껴졌다. 조카에 대해서만은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하고 그녀의 성격에 입체감을 주고싶었나? 그런데 별로 매끄럽지 않았다. 그에 대한 벤튼의 반응도 어색하고. 둘 사이에 서먹하고 어색한 감정이 오가더니 쩜쁘.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는 스카페타가 점심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걸 쿨하다고 해야되는 건지. 내가 이전 책들에서 설명된 이 주인공들의 역사에 대해 몰라서 그런가? 영어로 읽어서 이해를 잘 못했나? 

위에 발췌한 구절은 닥터셀프라는 상담의가 주인공과 같이 일하는 마리오라는 전직형사를 상담하면서 진단한 말이다. 움찔. 내 이야기네 했다. 나만 저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저 두려움이 깊어지니 허무해진다. 그리곤 무기력해진다.

그냥 잊고 생각을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른 대안도 없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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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2007-01-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로의 작은 회색 뇌세포는 정말 귀엽지요. 그런데 뇌세포는 진짜 회색일까요? 저 역시 옛날 탐정들이 좋아요. 포와로, 홈즈, 엘러리 퀸, 브라운 목사, 미스 마플

야옹이형 2007-01-2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맞아. 근데, 견문 좁은 나는 엘러리 퀸과 브라운 목사가 누군지 모르겠군. 나중에 접근해봐야겠어. 포와로나 마플, 홈즈의 텔레비젼시리즈도 참 좋았어. 연기도 재미났지만, 그 배경이 되는 영국의 아기자기한 풍광들과 시대소품들이 매력적이었거든.
 
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His name was Jean-Baptiste Grenouille, and if his name - in contrast to the names of other gifted abominations, de Sade's, for instance, or Saint-Just's, Fouche's, Bonaparte's, etc. - has been forgotten today, it is certainly not because Grenouille fell short of those more famous blackguards when it came to arrogance, misanthropy, immorality, or, more succinctly, wickedness, but because his gifts and his sole ambition were restricted to a domain that leaves no traces in history: to the fleeting realm of scent.

아~ 진짜 긴 한문장.
succinct - 간단명료한 blackguard - 깡패, 건달, 불량배, 악당-1쪽

Baldini held the candlestick up in that direction, his gaze following the boy's index finger towards a cupboard and falling upon a bottle filled with a greyish yellow balm.
'Storax?' he asked.
Grenouille nodded. 'Yes. That's in it too. Storax.' And then he squirmed as if doubling up with a cramp and muttered the word at least a dozen times to himself: 'Storaxstoraxstoraxstorax...'
Baldini held his candle up to this lump of humankind wheezing 'storax' and thought: either he is possessed, or a thieving imposter, or truly gifted.

귀엽고 웃음이 나는 장면. 스토렉스스토렉스스토렉스스토렉스스토렉스스토렉스
storax - 때죽나무과의 총칭, 소합향 imposter - 사기꾼, 협잡꾼 squirm - 꿈틀거리다, 몸부림치다, 주저주저하다, 어색해하다 cramp - 경련, 쥐, 심한 복통 wheeze - 쌕쌕거리다, (소리를) 쌕쌕 내다. -84쪽

Never in his life had he felt so secure, certainly not in his mother's belly. The world could go up in flames out there, but here he would not even notice it. He began to cry softly. He did not know whom to thank for such good fortune. -141쪽

Yes, it seemed to him as he looked back over it that he was a man to whom fortune had been especially kind, and that fate had led him down some tortuous paths, but that ultimately they had proved to be the right ones - how else would it have been possible for him to have found his way here, into this dark chamber, at the goal of his desires? He was, now that he really considered it, a truly blessed individual!
Feelings of humility and gratitude welled up within him. 'I thank you,' he said softly, 'I thank you, Jean-Baptiste Grenouille, for being what you are!' So touched was he by himself.

성취를 거짓없이 들이쉬다. 목표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성취도 알았다. 나도 알고 싶다.
tortuous-구불구불한, 비틀린, 비꼬인, 솔직하지 못한, 완곡한, 사악한.-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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