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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하여 “성균관 스캔들” 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도 성균관 스캔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보았었기 때문에 (물론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장면도 있기는 했지만서도…) 원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봤었는데 그 경우는 영화보다 오히려 원작인 책이 더 재미있었던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읽게 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생각보다 드라마에서 나오던 대사들이 책의 분장들과 거의 동일해서 드라마가 책의 많은 부분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쓴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윤희의 공부에 대한 바램과 시대적인 갈등, 정조의 인간적인 고뇌 등을 조금 더 깊이 다뤄서 그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다는 것 정도만 틀릴 뿐이었다. 반면 책은 그 정도의 드라마성은 없었지만 맛깔 나는 사극 말투의 문장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조금 낯을 붉힐 정도의 대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뭐…
“너, 지금 어디에 자리를 잡은 거냐? 이리 내 옆으로 와라.”
윤희는 깜짝 놀라 오히려 더 방문에 찰싹 붙으며 말하였다.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리니, 제일 바깥쪽에서 자는 게 맞지요.” 재신이 자신과 선준의 가운데 자리를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으로 치면서 소리쳤다.
“여기 안 누워? 나더러 노론과 살 맞대고 자란 말이야?”
‘아니, 그럼 난 사내와 양옆으로 살 맞대고 자도 된단 말입니까?’
한탄 섞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정말 통곡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와 달라며 선준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남자, 여인네들의 아랫도리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자태를 지니고선, 참 다정도 하신 말씀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소. 귀공은 몸도 성치 않은데, 방문 옆은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니 좋지 않소. 가운데 자리면 따뜻할 터이고, 또한 양옆에서 건강한 기를 나눠 받을 수 있을 거요.”
그에게 뭘 바라는 게 바보다. 아무래도 조만간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 화병 내지는 상사병 같은 것으로.
-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권 中
책 속의 주인공 윤희는 성격이 굉장히 당차다. 조선시대에서 중시 여기던 여인의 덕목이라고 하는 것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성격이었는데 그것은 필시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듯… 아버지는 여의고, 하나 있는 남동생은 병약하여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지 여러 해. 어머니 혼자 삯바느질이나 허드렛일을 해서는 약값은 커녕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안 사정이 있다 보니 자신이 뭐라도 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독특한 설정은 윤희가 뛰어난 글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재주가 남달라 뭇 사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이겠다. 그렇기 때문에 윤희는 자신의 재주를 살려서 책방에서 책을 필사하는 일이나, 불법이기도 하지만 발각되면 극형을 당할 수도 있을 사수(대리로 과거 보기) 일들을 맡아서 집안을 꾸려나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성격이 대담할 수밖에 없겠지. 여자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장안 제일이라는 기생 초선도 말 한마디 나눠보고 한눈에 반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어쨌든 남의 과거 시험을 봐줘서 합격까지 시키는데 자신의 동생 윤식의 과거를 대신 봐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에 미쳐 소과에 응시하게 되는 것이 이 모든 사건들의 발단이 된다. 평생의 반려가 되는 이선준을 만나고, 정조의 눈에 들어 그와 함께 성균관에 들어가고, 아마도 평생의 지기가 될 걸오와 용하를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여인의 몸으로 금녀의 공간인 성균관에 입성하여 공부하기까지 했는데 그저 그 자리를 윤식에게 넘기기 위한 그런 종류로만 보고 있는 윤희가 안타깝다. 물론 그 시대에는 여인이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거니와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것조차 죄악시하던 때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결국 윤식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나중이 되어서는 배움에 대한 갈구를 말하며 눈물 흘리던 드라마에의 윤희 같은 절절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로맨스 소설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확실한 악역의 부재였다. 확실하게 악역을 하고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사건들이 나오면 좀더 이야기의 재미를 더 했으련만 확실한 악역이 없어서 조금은 무미건조하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하인수와 그의 아버지인 병판은 책 속의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윤희를 눈엣가시로 보는 몇몇 이들이 있기는 하나 악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서 긴장감이 좀 부족했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들이 책 속에서는 그 성격이 틀려져 매력이 반감된 경우도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팔자에도 없을 남자들만이 우글우글한 성균관에서 두 남정내와 함께 방을 쓰게 된 첫날 밤 윤희는 정말 울고 싶을 정도의 후회를 하는 윤희의 모습도 재미가 있었고, 드라마와 같이 거칠고 막대하는 면이 없지않은 걸오라는 인물이 책 속에서는 여인과도 같이 부드럽고 온유한 글을 쓴다는 사실도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됐고 드라마와 같은 줄기의 이야기를 원했지만 결국 드라마와는 틀린 책 속의 내용들의 다른 매력을 느꼈던 책이다. 다만 윤희와 선준의 정사에 관한 내용은 좀 뺄수도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라면 그 정사에 관한 장면 때문에라도 이 책을 19금이라고 써넣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