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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이야기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영정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3월
평점 :
원래 역사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물고기나 빵, 커피에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읽었는데 한번도 실패해 본 일 없이 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식물에 얽힌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잡초'라고 불리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또한 굉장히 관심이 가게 되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잡초'가 부적절한 장소에서 자라나는 식물로 정의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식물 세계의 중요한 영역 - 그들의 아름다움, 무성함, 혹은 이 행성이 입은 상처를 싸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 을 무시하고 편의에 따라 낙인을 찍는 우리의 행위와 그 뒤에 있는 일부 더 심오한 근거들을 탐구해 보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을 다루지는 못하고 일부만 다뤘다고 하지만 나처럼 그런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아주 많았다.
기독교 문화를 가진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잡초를 신의 뜻을 거역한 아담에게 내리는 저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기인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신앙심 깊은 중세 종교인들에 의해 잡초들 중 악마의 식물로 규정당한 것이 20여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중세에 약초를 통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쳤던 사람들을 악마의 하수인이나 마녀로 규정해 잡아들였던 마녀 사냥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권이 다르다보니 아주 생소한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특히 이 책을 읽을 때 제일 궁금해 했던 이야기 중 하나인 '음모론의 악역이 된 식물' 파트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파트다. 세계 대전 중 실제로 일어났던 음모론 - 외래 잡초 전염병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생물학적 무기로서 씨앗이 폭탄과 함께 투하되었다는... - 도 있었고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식물들이 자라는 걸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실험 삼아 씨앗들을 뿌렸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식물을 모티브 여러 황당한 SF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게 된 책이다. 단, 삽화의 꽃 그림들은 예뻣지만 해상도가 떨어져보이는 것이 조금 거슬렸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책에서 나오는 주요 식물들을 깔끔한 펜으로 그려진 보테니컬 아트를 함께 넣었으며 좋았을 것 같다.
여튼 서양 문화(저자 분은 영국인임)에서 보는 식물의 세계사에 대해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