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항복 미술관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 지음, 조서현 옮김 / 아트북프레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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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항복미술관 / #두브라브카우그레시치 / #아트북프레스

책을 읽다보면 서문 혹은 본문의 한 두 페이지만 읽고도 ‘인생책’이라는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은 읽는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지만 한 장을 다 넘기기도 전에 내 기억을 파묘시키고 해제하는 통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 책이 바로 그랬다.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를 알기 전 ‘기억’이란 단어를 보고 떠올릴 수 있던 작가는 제발트였다. 역사적 사건보다 개인의 사유물에 침작하여 기억을 좇는 과정은 제발트와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기억과 함께 ‘지속적인 상실’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의 글들이 내게 더 잘 닿았던 것같다. <무조건 항복 미술관>은 저자 서문에 적힌 것처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지 따져가며 읽을 필요가 없다. 책, 편지들, 예술가 그리고 유년의 ‘향수’ 심지어 망명까지 ‘전기 속에 입력(173쪽)’ 된 항목 중 하나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르는 ‘소설’ 이며 그 소설안에서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들, 그녀가 만났던 그렇지 못했던 상관없이 사진을 통해 전해들은 누군가의 ‘미술관’을 관람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나는 종종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나 어디있게? 라고 묻곤 했다. 그러고는 손을 다시 열며 “여기 있지!”라고 외쳤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늘 기쁜 듯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다. “거기 있구나!” 그 가장 단순한 유아적 놀이는 몇 가지 개념을 의식 속에 단단히 새겨주었다. 45쪽

지금도 이따금 아이와 배우자에게 의식없이 던졌던 장난들을 더는 별 의식없이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주 하게 된 장난에 대해, 말들에 대해 가만가만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의 엄마가 새 집으로 옮길 때 마다 ‘새로이’ 맞이했던 모든 가전, 가구, 행위들 조차 이제 가벼운 공감을 넘어서버렸다.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집안을 작은 서재화 시켰던 그녀의 어머니가, 또 그녀의 노년을 나의 미래로 가져와 비쳐보니 마치 트레이싱지를 대고 그린듯 비슷하게 느껴져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내가 아는 단 한 문장의 독어를 거듭 떠올리며 읽었던 3장과 5장에 등장하는 베를린, 베를리너의 특색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나 책을 좋아하는 내게는 그녀와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책과, 반복해서 읽어도 좋았다는 책 혹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대구처럼 배치해 들려주던 기억과 삶에 대한 정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아이들에 대해서도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져요. “ 어머니가 말한다. (…)
내가 그들을 이렇게나 모르고 있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올 수 있었을까.” 조르지 콘라드가 말했다. 83쪽

책을 읽다보면 이미 지나간 문단이 마치 그새 내용을 잊었냐고 묻기라도 하듯 약간의 조사만 달라져 다시금 등장할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인쇄의 오류인가 싶었는데 앞에 적힌 숫자가 달라지고, 그 지점에서 등장하는 앞뒤 문단의 연결이 매끄러워 조금씩 그런 내용들에는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음의 문단은 이 책의 표지 바로 뒤에 등장하는 사진이기도 해서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내 책상 위에는 누렇게 바랜 한 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 속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세 명의 여자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257쪽

처음 저 문장을 보았을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무조건 항복 미술관>.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 조차 앨범을 정리할 때 보통 연대순으로 한다. 분류학을 공부할 때 왜 이렇게 어려운가 싶었던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분류’에 대해, 그리고 큐레이팅과 아카이빙을 새삼 감탄할 만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배웠던, 혹은 근무했던 관련 이력에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내 옷장에도 그리고 서랍장에도 정리되지 않은 사진들이 돌아다니거나 책장에서 무심코 꺼낸 책을 펼쳤을 때 ‘이게 언제더라’싶은 사진이 떨어지기도 한다. 나처럼 평범한 삶도 이렇게 나약할 수 밖에 없는데 아예 사라져버린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르게 불리는 언어를 배우고 자란 사람들의 삶이란 그야말로 ‘무조건 항복 미술관’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주제에 따라 반복적으로 가서 보고 또 보듯 이 책은 도저히 한 번으로는 안될 것 같다.

@artbook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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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도 마음이 자라는 우리에게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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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의 부제는 ‘아직도 마음이 자라는 우리에게’다. 10년 만에 완결판이 나왔으니,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내 나이도 결코어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없지만,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한 번 더 맞이하게 되는 ‘오춘기’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본다면, 나는 ‘때에 맞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배우자가 어릴 때 이미 알았던 위로의 법칙이 적중한 것이랄까.
“인간이 언제 위로받는 줄 알아? 쟤도 나처럼 힘들구나! 바로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때야.” (195쪽)

10년 전 처음 이 책을 읽고 한두 해쯤 지났을 때, 저자를 한강연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저자의 강연이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용히 강연을 듣고 있는 모습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아쉬움보다는 좋아하는작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그 경험 자체가 좋았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셨을까 생각하며 끊임없이 상상하기를 즐기는 앤처럼 말이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바라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전 이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기기로 작정했어요. 즐기겠다고 결심만 하면 대개 언제든지 그렇게즐길 수가 있어요!” (69쪽)

누구도 불행을 계획하거나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게 찾아온 불행이나 시련이라면 ‘이번에는 또 어떤 선물을 주시려고 시련으로 포장하셨을까?’ 하고 앤처럼 생각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잘 안 되는 거다. 중요한 건 실수를 자기 몸으로 감당해 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 하는 특이한 실수가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기도 하니까.” (191쪽)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실수는 배우 서현철 님의 배우자분처럼 발음이 비슷한 전혀 다른 단어를 가끔 사용하는 것이다. 에어컨에게 ‘냉방 모드로 켜줘’라고 말해야 하는데 ‘냉동 모드로 켜줘’라고 하는 식이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배우자분의 사연도 참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이라고 적어 문자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귀엽고 좋았다. 생일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취재를 위해 만든 초콜릿을 선물했을 때도, 모양이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몇 개는 더 먹어야 한다며 연인의 솜씨와 마음을 고마워하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사는 기분은 어떨까 싶다. 칭찬은 고래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 만든 초콜릿 케이크의 점수를 묻는 앤의 눈동자가 반짝거릴 때, 매슈 아저씨는 “백 점”이라고 말하는 대신 앤에게 케이크를 조금 더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희귀한지,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지앤은 몰랐겠지만 나는 이제 너무 잘 안다. (130~131쪽)

앤을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남을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주저앉을 만한상황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름을 붙여 주고, 빨래가 마를 수 있도록 불어오는 바람에도 이름을 붙이며, 난처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세상에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완결판을 정리하면서 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내게 ‘해야 할 말’이 아니라 아직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는 걸 알게 됐다. (프롤로그)

사는 동안 지치고 힘들 때마다 꼭 맞는 위로를 건네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삶일까. 시끄러운 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대신 활자라서 다 읽었다던 저자의 옛 친구처럼 내게는 그런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그때 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이 서평을 통해서라도 꼭 전하고 싶다.

#김영사 #빨강머리앤이하는말 #백영옥 #스테디셀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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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머문 자리에서 - 두 개의 지도, 하나의 인생
이상호 지음 / 인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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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머문 자리에서 / 이상호 지음

경험의 지도 위에서 저는 언제나 드러나지 않는 작은 균열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독서의 지도는 저를 깊은 사유의 숲으로 이끌었습니다. 동서양 고전의 철학자와 사상가, 시인과 현인들의 목소리가 저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자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누군가는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독서가 가장 빠른 배움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으로는 삶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경험만으로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고, 독서만으로는 현실 감각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저자의 <생각이 머문 자리에서>는 이러한 두 영역을조화롭게 연결하며 삶을 더욱는 청년부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중장년층,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노년층까지 누구라도 꼭 필요한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월급의 10%로 산 책 한 권 그리고 그 책을 제대로 소화하려 하루 2시간씩 시간을 들이면, 내 안에 전혀 새로운 지식과 관점이 들어옵니다. 이렇게 쌓인 배움은 더 나은 성과로 이어지고, 성장한 나 자신은 더 좋은 기회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41쪽

이 책을 읽기 전 <CEO의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지식’을 먼저 쌓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식을 축적하고 역량을 기르는 순서를 건너뛰거나 뒤바꾸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메시지가 오래 남았다. 마침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독서의 기술>에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머문 자리에서』>역시 같은 가치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의 내용이 이 한 권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경험을 해석하는 힘을 길러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성장에 필요한 덕목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조언도 특히 유익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단순히 타인과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와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삶의 태도까지 포함한다. 저자는 비단잉어를 예로 들며,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사람 역시 자신이 속한 환경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향에 따라 성장의 속도와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강연과 다양한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어렵지 않은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더해 독자가 쉽게 공감하도록 풀어낸다.

법륜 스님은 “베풀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누구와 해도 괜찮지만, 덕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결혼하면 백 명 중 골라도 잘못 고른다”고 말했습니다. 96쪽

이 책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철학자와 사상가, 종교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명언과 좋은 글귀를 적재적소에 소개한다는 점이다. 위의 발췌문 역시 결혼을 조건이나 이해관계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특히 관계를 ‘난로’에 비유한 부분과 결혼은 탐정이 되어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표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자기계발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면 저자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 독자를 이끈다. 후회와 미련 속에 머물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의 중요성을 여러 일화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또한 침묵해야 할 순간과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을 구분하는 기준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데, 최근 사회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침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진정한 지혜란, 침묵과 말하기라는 두 줄의 현을 어떻게 조화롭게 켜느냐에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의 침묵은 성찰을 위한 지혜인가, 아니면 외면을 위한 비겁인가.“ 195쪽

읽는 내내 화려한 문장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삶에서 길어 올린 경험과 꾸준한 독서에서 비롯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만든다. 경험과 사유를 하나의 지도로 연결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생각이머문자리에서 #독서 #사유 #이상호 #서평 @inbook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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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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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이서희 지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음을 계속해 뒤로 미루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첫 줄 부터 어쩜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미루고 미뤄둔 마음을 동화를 통해 꺼내볼 수 있었던 경험을 전달해준다. 그래서 소소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그렇게 작고 여린 것에도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만든다. 총 다섯 개의 ‘마음의 장’으로 구성된 내용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첫 번째 장에서는 키플링의 ‘정글북’이다. 아주 어렸을 때 그림책과 만화로 보았을 때는 모글리를 지키는 늑대들의 선한 모습에 매료되었다가 어른이 된 이후에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제국주의라는 타이틀이 먼저 떠오르면서 어릴 때 느꼈던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동서양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모습으로 보여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007 다른 늑대들은 널 똑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널 미워해. 넌 영리하거든.
네가 늑대 발에서 가시를 뽑아 줄 수 있기 때문에, 네가 인간이기 때문에 미워하는 거야.

008 용감한 마음과 공손한 혀, 그게 있으면 정글을 헤치고 어디라도 갈 수 있지.

최근 드라마를 보며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주된 이유도 결국 상대가 나보다 강한 상대를 수용할 수 없는 악한 이들이 모여 상대가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아예 꺾어버리려고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저자의 안내대로 정글북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마주하게 될 거친 시련을 어떻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애니메이션 <추억의 마니>로 접했던 조앤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로 부모가 사고로 모두 돌아가시고 양부모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안나,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마니가 등장한다.

007 안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돈을 받고 맡겨진 존재처럼 느꼈던 일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취급받는다고 느꼈던 일도,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던 사람들도, 심지어 가장 친한 첫 친구였던 마니에 대해서도, 그런데 이제 마니는 가버렸다!

어른이 되어 모든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마음의 자욱을 남긴 사건이나 추억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존재한다. 안나의 상황과는 다를지라도 내게도 분명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내 마음과 같은 동화 속 인물을 통해 지금 AI에게 털어놓는 방식과는 다른 차원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006 아, 내가 그 아이를 용서해서 정말 다행이야. 설령 그 아이가 진짜가 아니었다 해도, 정말 다행이야.

세 번째 장에서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 이 동화는 마흔 넘어 한 밤에 정말 읽고서 위로받았던 작품이라 저자가 발췌한 문장 모두가 나 또한 밑줄을 그었던 기억이 난다.

008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한 가지는 달라지지 않아.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도 공주가 되려면 마음으로부터 공주가 되면 돼. 황금 옷을 차려입고 공주가 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공주처럼 행동하는 게 훨씬 더 대단해.

마침 위의 이야기와 대구처럼 등장하는 그림책이 있는데 로버트 먼치의 <종이 봉지 공주>다. 그림책강의를 나갈 때 꼭 한번 씩 떠올리게 되는 작품으로 페미니즘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위의 소공녀에서 마주한 맥락으로 접근하는 것이 내게는 더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그런데 동굴에 있던 로널드 왕자는 공주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왕자를 구하기 위해 종이 봉지만 뒤집어쓰고 달려온 공주가 ‘공주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200쪽

드레스를 입지 않은 공주의 외적인 것만 보던 왕자의 모습을 보며 SNS에서 올라온 글 중 정장을 입지 않은 졸업생의 부모를 문전박대 한 교장에게 악수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온 졸업생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의 헌신을 보지 못한 교장의 모습이 왕자가 꼭 닮아보인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면, 그 문장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놓치고 있던 기준을 다시 보여주는 표식일지도 모릅니다. 226쪽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 또한 외적인 것에 그리고, 편을 가르고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혹은 그런 경험으로 상처받았다면 잘 극복해왔는지 등을 생각하며 #어쩌면동화는어른을위한것2 서평을 마친다. #동화 #위로 #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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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만큼만 아파하기로 했다 - 상처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근력 수업
이현재 지음 / 부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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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만큼만 아파하기로 했다 / 이현재 / 부키 / 2026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현재의 <넘어진 만큼만 아파하기로 했다>는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위로만 건네는 책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책이다.
우선 자기자비와 자기연민을 구분해야 하는데 상처 입은 나를 따뜻하게 돌보는 자기자비는 회복을 위한 힘이 되지만,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 감정 속에 머무는 자기연민은 결국 삶을 멈추게 만든다는 설명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해자가 되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경험이 평생의 정체성이 되어 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된다. 책에서 말하듯 ’내가 피해자였던 시간‘과 ’계속 피해자로 머물려는 마음‘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현타는 실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지금 이 지점을 점검해보라는 ‘알람’에 가깝다. 86쪽

✅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요“라는 말은 때때로 ”상처받기 싫어서 아무것도 안 할래요“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다. 생각은 나를 멈추게 하는 핑계가 아니라 다시 움직이기 위한 짧은 점검이어야 한다. 140쪽

또 하나 공감했던 부분은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이번 생은 망했다‘가 아니라 ’이번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처럼 사실만 적어 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실패를 인생 전체의 실패로 확대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현재의 상황만 바라보면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다음 선택을 준비할 수 있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도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한 번의 실수나 실패를 아이 자체에 대한 평가로 연결하지 않는 것처럼, 부모인 나 역시 나의 실패를 인생 전체로 일반화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특히 운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읽다 보니 독서가 필요한 이유와 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는 생각의 방향을 바로잡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 준다면, 운동은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견딜 수 있는 신체적 기반을 만들어 준다. 둘 다 인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더 깊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는 힘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결국 건강한 사고도, 건강한 감정도 몸이라는 토대 위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가 강조한 기본의 힘이다. 제시간에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일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소홀히 여기기 쉽다. 하지만 삶이 흔들릴수록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도 이러한 기본이다. 회복은 거창한 결심이나 특별한 방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챙기고 잠을 자고 몸을 움직이는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이 특히 와닿았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흔들릴 수 있고, 지칠 수 있으며, 넘어질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대신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회복탄력성은 강철 같은 멘탈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조정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능력이라는 저자의 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나 역시 회복탄력성을 매일 연습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잘 살아가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만큼만 아파하고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라는 이 책의 메시지는 앞으로도 오래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넘어진만큼만아파하기로했다 #이현재 #심리학 #마음치유 #북스타그램 @bookie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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