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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도 마음이 자라는 우리에게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6년 6월
평점 :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의 부제는 ‘아직도 마음이 자라는 우리에게’다. 10년 만에 완결판이 나왔으니,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내 나이도 결코어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없지만,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한 번 더 맞이하게 되는 ‘오춘기’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본다면, 나는 ‘때에 맞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배우자가 어릴 때 이미 알았던 위로의 법칙이 적중한 것이랄까.
“인간이 언제 위로받는 줄 알아? 쟤도 나처럼 힘들구나! 바로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때야.” (195쪽)
10년 전 처음 이 책을 읽고 한두 해쯤 지났을 때, 저자를 한강연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저자의 강연이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용히 강연을 듣고 있는 모습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아쉬움보다는 좋아하는작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그 경험 자체가 좋았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셨을까 생각하며 끊임없이 상상하기를 즐기는 앤처럼 말이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바라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전 이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기기로 작정했어요. 즐기겠다고 결심만 하면 대개 언제든지 그렇게즐길 수가 있어요!” (69쪽)
누구도 불행을 계획하거나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내게 찾아온 불행이나 시련이라면 ‘이번에는 또 어떤 선물을 주시려고 시련으로 포장하셨을까?’ 하고 앤처럼 생각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잘 안 되는 거다. 중요한 건 실수를 자기 몸으로 감당해 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 하는 특이한 실수가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기도 하니까.” (191쪽)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실수는 배우 서현철 님의 배우자분처럼 발음이 비슷한 전혀 다른 단어를 가끔 사용하는 것이다. 에어컨에게 ‘냉방 모드로 켜줘’라고 말해야 하는데 ‘냉동 모드로 켜줘’라고 하는 식이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배우자분의 사연도 참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이라고 적어 문자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귀엽고 좋았다. 생일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취재를 위해 만든 초콜릿을 선물했을 때도, 모양이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몇 개는 더 먹어야 한다며 연인의 솜씨와 마음을 고마워하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사는 기분은 어떨까 싶다. 칭찬은 고래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 만든 초콜릿 케이크의 점수를 묻는 앤의 눈동자가 반짝거릴 때, 매슈 아저씨는 “백 점”이라고 말하는 대신 앤에게 케이크를 조금 더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희귀한지,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지앤은 몰랐겠지만 나는 이제 너무 잘 안다. (130~131쪽)
앤을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남을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주저앉을 만한상황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름을 붙여 주고, 빨래가 마를 수 있도록 불어오는 바람에도 이름을 붙이며, 난처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세상에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완결판을 정리하면서 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내게 ‘해야 할 말’이 아니라 아직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는 걸 알게 됐다. (프롤로그)
사는 동안 지치고 힘들 때마다 꼭 맞는 위로를 건네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삶일까. 시끄러운 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대신 활자라서 다 읽었다던 저자의 옛 친구처럼 내게는 그런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그때 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이 서평을 통해서라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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