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을 자유 - 결혼과 비혼에 관한 새로운 태도
이선배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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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싱글은 가족부터 국가까지 관여하는 거대한 오지랖을 뚫고,

어떤 삶을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사실 결혼이 더이상 의무나 당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적어도 '미혼'상태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비혼'주의자임을 선포하고 싶어도 낳아주신 부모눈치에, 주변 사람들 눈치에 아니 도대체 결혼안한 것이 마치 '죄'인것처럼 들이대는 '잘나신 당신들'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무엇인지 아닌가. 결혼을 안하기로 '선포'한 비혼주의자들이 주변눈치보느라 선포하지 '못하는'이들에게 무능 혹은 겁이 많다며 또다시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 [선택하지 않을 자유]의 이선배저자는 그야말로 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글속에 단 한번도 결혼 못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나 무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위로해주고 진심으로 '네 탓'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아, 고마운 사람!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집착 때문에 스스로 눈을 감아 버린건지,

정말로 주위 사람들이 억지스러운 참견을 하는 건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83쪽




세상의 시선이 버거워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일수록 주변의 의견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상대방을 감싸고 돈다.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던 그 수많은 까닭과 사연이 도대체 왜 필요했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이 흔하게 내세우는 변명이 '그 사람을 언제 봤다고!'였다. 맞다. 우리는 그 사람을 단 한번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결혼하려는 당사자를 꽤 오랜세월 봐왔다. 시간이 전부가 아니고, 정작 나 자신을 잘 모를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못보는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누가 결혼이 선택인 걸 모르나. 현실이 문제고,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문제인거지.'




아마 이 책의 타이틀, 저자 약력, 그리고 홍보글만 보고 이렇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알면서 결정내리지 못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잘못이다.  [느닷없이 서른 다섯 늦기 전에 버려야 할 것들]의 저자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서른이 넘어간 이후에는 더이상 칭찬과 당근만을 바라는 어린애와 같은 사고를 버리라고 말한다. 선택인걸 알았다면 주변의 의견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눈이 아니라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리고 싶으면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면 그만이다. 억지스레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애쓰면서 착한 척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봤자 결과는 같다. 그대가 결혼을 할 때까지, 심지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고 살아도 힘들다 어쩌다 고민을 털어놓는 다면 그 고민이 살아질 때 까지 주변사람들은 당신이 주는 먹이를 놓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당신의 삶에 관여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가족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세상에는 남이 결혼했는지, 애인이 있는지, 결혼 유무에 따라 성격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려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 많다.

배고픈 하이에나 같은 그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야 한다. 125쪽



서평 제목은 '제발 좀 읽어주세요 당신들!'이라고 적어놓고 슬쩍 그안에서 나를 빼놓으려는 것처럼 보일테지만 저기서 말하는  당신, You 결혼이 선택이라고 말만 하는 사람들, 심지어 말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다. 결혼 할 준비도 안되어있으면서 사회제도를 탓하는 사람들, 자신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이기적으로 생각하면서 언제나 결혼을 하고 싶다고 죽는 소리하는 사람들, 비혼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 정의인것 처럼 상대를 사회부적응자로 모는 사람들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한 부류 더, 결혼했다는 이유로 보통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최소한 인간의 도리를 한 것이며, 자신의 능력과 삶의 수준이 보통은 된다며 자만에 빠진 당신들이여, 결코 당신들의 결혼은 당신들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나중에라도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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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석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최경석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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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석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는 입문서.


역사 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찾아내어 마치 역사 소설을 읽거나 사극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썼습니다. -중략

덧붙여, 사건 현장이나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느 박물관 등을 답사하면서 독자들이 역사적 의미와 내용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썼습니다. 6쪽



지하철 노선표를 보면 유적지가 그대로 역명이 된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릉'이 붙어 있는 곳만 찾더라도 선릉, 태릉 등이 보이고 몽촌토성 등도 찾을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엄청 두꺼운 책을 살피고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도 정작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유적지에 소홀했었는데 위의 발췌문 내용을 보면 저자도 이런 부분까지 신경쓰며 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시대극 보는 것을 다소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사실유무를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오해한 상태로 믿어버릴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런 염려없이 역사를 이야기처럼 술술 풀어놓았으니 그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선사시대와 관련된 유물과 에피소드 한 두가지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학기의 첫 날 만큼 수업의 열의를 가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먹도끼 사진과 이야기를 보았을 때 친숙하기도 하고 다시 청소년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슴베찌르개는 당시에도 배웠겠지만 사실 낯설게 느껴졌던 유물 중 하나였다. 신구석기를 가르는 가장 큰 발명품은 토기가 등장이다. 누구나 석기시대 하면 떠올리는 빗살무늬토기가 그렇다. 20세기 일본 학계에서는 토기 대신 질그릇을 쓰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도 책을 통해 배웠다. 이야기처럼 술술, 그리고 재미있는 부분은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은 신석기인들'과 같은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을 때였다. 신석기시대에 참나무가 많이 자랐기 때문에 도토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동해안 주변, 한강 유역, 하남 등에서 도토리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아이스에이지를 보면 도토리에 목술걸었던 장면들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주몽설화까지가 1부였다면 2부는 조선시대와 함께 자주 픽션화되는 삼국시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개토대왕릉비와 관련된 내용은 내가 다닐 때만하더라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시험문제, 그것도 주관식으로 등장 선생님들이 점수를 주기 위해 내는 문제이기도 했다. 저자는 광개토대왕을 '발상의 전환'이란 키워드로 연결하여 이야기하는데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당시 고구려의 위상이 그다지 높지 않았는데 18살의 어린 나이로 왕이된 광개토대왕은 그런 현실에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변방국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여 공격적으로 정복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무모하고 지나쳐보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땅을 소유하거나 정복하려던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 및 러시아와 일본까지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를 공략했다는 점을 볼 때 충분히 판을 예상했던 지능적인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 여름 읽었던 [직설 무령왕릉]이란 책을 통해 급 관심을 갖게된 무령왕릉과 관련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왕릉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라고 볼 수 있고 여전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야기로 그런 깊은 이야기보다는 우연의 산물이었다고 흥미위주로 흐른것이 좀 아쉽기는 했다. 물론 실제 어떤 일이 펼쳐졌고, 도굴여부를 두고 확증이 된 것은 아니기때문에 왜곡없는 역사를 공부하고자 할 때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종교와 상관없이 '원효대사'의 해골물도 꽤 이슈화된 역사이야기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당시 원효대사의 깨달음은 어느면에서 보자면 과거사건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아들러의 이론과 유사하게 느껴져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91쪽


제3부 고려편은 드라마로 익히 잘아는 태조의 건국신화를 시작으로 '관심법'이란 말을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설(?)파한 '궁예'가 등장한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이 드라마를 보면 궁예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인물, 왕건은 포용력이 있고 자비로운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런 대비가 결코 틀린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왕건이 모반을 꾀하려 했다는 궁예의 짐작과 관련된 예화를 통해 설명해주었다. 제 4부에는 조선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대망의 제5부에서는 가슴시린 역사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이전에도 외세침략은 끊이질 않았지만 여러가지면에서 체감의 정도가 커서 더 그런것 같다. 무엇보다 대한제국이 건국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배우는 시기가 학기말이라 안타깝게도 제대로 배우질 못했다는 것도 변명아닌 변명이 될 수 있다. 일제감정기 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최근 많이 영화화되었지만 역시나 서두에 밝힌 것처럼 픽션만을 다룰수는 없어 해당 부분을 별도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로 술술 읽어가는 [최경석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는 복습은 물론 예습을 위한 책으로도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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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선물이에요 - 영화로 기억하는 여행의 순간
김서영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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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선물이에요.'


표지도, 타이틀도 정말 예쁘다. 하지만 결코 친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책이라고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책을 다 읽은 뒤 에필로그를 읽고서야 이 책이 왜 그렇게 '불친절'한 상태로 출간되었는지 이해할 순 있었지만 에필로그 대신 프롤로그로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주문 끝에 경고문이 나오는 것처럼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나 싶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필름 카메라에 담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은 영화의 힘을 빌렸다.


책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들의 호중함을 잊지 않길 바란다. - 에필로그 중에서-



이 책은 저자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것이고, 독자는 그녀가 해주고 싶었던 말을 다시금 빌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라던가 최소한 그 사진을 어느 도시에서 찍었는지를 궁금해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영화속 대사를 누가 했는지도, 영화 원문에서는 어떻게 쓰여있었는지조차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일상적인 말 대신, 좀 그럴듯하게 혹은 같이 보았던, 상대가 좋게 평가했던 영화라면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지원자가 되어줄 그런 책이었던 것을 책 표지에 '영화로 기억하는 여행의 순간'이라길래 여행의 순간이라면 그 장소에 대한 간략한 정보, 대략 사진 아래 도시이름이라도 적어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불평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었다. 이미 책은 다 읽은 뒤였고, 읽는 내내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고!'를 연발했던 나는 정말 배려심 없는 독자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친절하지 않아도 예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책 속에 어딘지 몰라서 차마 따라갈 수 없는 그곳의 풍경이 멋졌고, 다소 영화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어쨌든 작가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큐레이션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장면을, 이 대사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넓혀준 것도 사실이다. 사진을 찍은 후 영화의 힘을 빌렸다던 저자의 말처럼 약간의 어긋남이 매력이라면 매력인 것이다. 물론 오베라는 남자라는 영화 속 대사 '당신이 없으니까 모든 것이 엉망이야'와 함께 실린 공항에서 대기중인 한 남자가 담긴 사진을 보면, 당사자는 결코 '엉망'인 상태는 아니었을텐데 혼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페이지에 실렸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 서운해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 '한여름의 판타지아'속 대사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와 함께 실린 사진은 백발의 부인과 반쯤 버리가 벗겨진 남자분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뒷모습을 담았다. 설마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사는 것 보다 행복하게 사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이렇게 어긋남이 매력인 페이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는,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거란다.'란 대사와 함께 실린 사진은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구석에 앉아있는 청년 혹은 소년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쳐앉아있는 듯 어두운 표정의 그에게, 혹은 그런 상황에 놓인 지인에게 전해주기 알맞은 대사와 사진이다. 영화 <국화꽃 향기>의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요.'라는 대사와 함께 실린 사진은 일렬로 빽빽하게 자리잡은 나무들로 가득한 정원을 거니는 연인의 사진이 실려있다. 나무의 마음도, 연인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도 동시에 전해지는 사진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에 대한 애정으로 무조건 좋게 볼 때도 있고, 아쉬운 부분 혹은 오탈자만 신경쓰다가 내용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보시다시피 이 책은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한다. 공감하는 대사, 찍어서 SNS에 공유하고 싶은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애초에 '여행'과 '영화'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와서 이토록 답답한 마음을 들게 했다는 점이 내내 머릿속에서 버려지지 않았다. 저자의 말을 읽고 이해는 했지만 역시나 후련하지 못했던 맘, 미련맞게 페이지를 순서대로 읽느라 미처 에필로그를 먼저 읽을 생각을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저자의 다음 작품은 좀 더 친절하길,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음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칭찬해주고픈 마음을 가득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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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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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 있는 생물로 여겨졌다. 191쪽



읽는 데 1시간 30분도 안걸렸다. 경기도에 있는 영화관에 가기위해 급하게 나오면서 가벼워보이는 책을 들고 나온다는 게 [편의점 인간]이었다. 걷는시간,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내내 책을 읽었는데 합쳐봐야 80분 남짓이다. 확인해보니 본문만 보면 190페이지도 안된다. 400여페이지가 4시간 남짓 걸린다고 계산하면 적당한 시간이긴 하다. 그런데 체감하기에는 제대로 '몰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가 길다. 한 줄 결론 이 책은 재미있다. 퇴근시간 그 정신없는 지하철속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늘여썼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치고는 성적묘사나 잔인한 장면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제까지의 수상작과는 다르다고 평가받는지도 모른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였다. 이제 슬슬 계산대의 정산이 끝나고, 은행에서 돈 바꾸는 일도 끝나고, 빵과 도시락이 트럭으로 배달되어 진열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50쪽



학생이었거나 회사원 신분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어쩌다 학교를 안가게 되는 날, 연차를 사용한 날, 시계를 보며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것, 아주 가볍게 머릿속에 착착착 진행이 이뤄지는 것. 편의점 안에 속해있을 때는 그런 상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털어버려야 할 까닭도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 함께 좀 더 제대로 지금 상황을 즐겨보자고 다짐도 하는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삶'속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불쾌하고 털어버려야만 하는 지난 추억이다. 물론 편의점 인간인 후루쿠라에게는 이런 감정이 없다. 그렇다고 감정이 전혀 없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혹은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이타적인 감정이 없는 그녀도 가족들이 자신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이 싫어 어떻게든 사회성 있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편의점 인간이 된 까닭도 매뉴얼만 지키면 어엿한 '사회인'처럼 보여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교칙을 따르듯 그렇게 정해진 매뉴얼이 있으면 후루쿠라는 견딜만 했다. 하지만 서른 여섯이 된 이후 편의점 매뉴얼만으로는 사회인 인척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30대 후반이라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했다. 동생의 도움으로 조금씩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던 후루쿠라지만 조금씩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무렵 편의점에 외적으로는 후루쿠라와 거의 흡사한 시라하가 들어온다.


현대사회라는 건 환상이고, 우리는 조몬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요. 85쪽


시라하라는 인물은 위의 저 문장으로 충분하다. 그와의 대화속에는 아니, 그가 늘어놓는 사회와 여자에 대한 불만속에는 빠짐없이 '조몬시대'가 등장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시라하의 말이 틀린것 같진 않다. 돈 혹은 능력이 있는 남자가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고, 남자는 능력인것처럼 여자는 예쁜 외모만이 그들의 삶을 평화롭게 해주고 그것을 무기로 사회속에서 진정한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다. 흙수저니 어쩌니 해도 결국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있는 '문제아',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구할 수 없고, 국가나 사회에게서 대책이나 복지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점은 조몬시대와 지금사회가 꼭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하자 후루쿠라의 친구들도, 그녀의 동생도 안심한다. 설사 그 상대가 백수일지라도 '연애'를 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혼이 기사회되고 특집이 될 수 있는 것 역시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만 해야 하는 사회보다 그다지 적응하고 싶지 않은 '편의점 인간'들이 마치 적응하고 싶어 안달나있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더 큰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오늘 날짜를 본다. 오늘은 화요일, 신상품이 들어오는 날이다. 184쪽


또다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지금 후루쿠라는 편의점에 '속'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손님으로 편의점에 와있다. 하지만 편의점에 속해있던 아니던 그녀에게는 끊임없이 '편의점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이 환청이나 여명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소리'로 여겨진다. 그런 그녀가 선택하게 될 미래는 무엇일까.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눈에 '평범한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편의점 인간'이 될 것인가. 시라하와 후루쿠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라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길 원한다. 조몬시대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고 남의탓만 하면서도 사회속으로 자신을 누구라도 끌어들여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아니다. 그녀에게 사회적 인간, 평범한 보통인간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인간'으로 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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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허밍버드 클래식 7
진 웹스터 지음, 한유주 옮김 / 허밍버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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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이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게 할 거랍니다."

 

 

 

허빙버드 클래식07 키다리 아저씨 진 웹스터 & 번역 한유주


우리에게는 '주디'로 더 친숙한 키다리 아저씨의 귀여운 여주 제루샤 애벗. 유년시절은 고아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성장하지만 키다리 아저씨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그야말로 그녀의 삶이 180도 바뀌게 된다. 시작과 결말만 보면 그녀가 신데렐라처럼 어느 한 순간 한남자로 인해 인생일 달라진 것처럼, 그야말로 로또대박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녀가 성장해온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녀가 쟁취한 '행복'이 결코 운이 전부였던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열심히 공부했고 남을 미워하고 탓하기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어진 것에 대해 충분히 감사할 줄 아는 '마음'마저 예쁜 여성이었다. 어린시절 보았던 만화속 목소리가 초록지붕의 앤과 몇몇 부분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고아였다는 점, 가족 혹은 자신의 미래를 지지해줄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 무엇보다 진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즐기고 공상하는 것을 즐기며 어떤면에서는 상당히 조울증 환자였다는 점이랄까.

 

 



3월 26일 키다리 스미스 이사님께 中
전 선생님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합니다. 심지어는 성함조차 알지 못합니다.
실체가 없는 상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의혹을 품지 않았지만 선생님께서는 분명 제 편지를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지시겠지요.
이제부터는 오직 학업에 대해서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71쪽

 

 

 

 

 


 

 

 

 

 


​저런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주에 바로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아파서 그랬다는 핑계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까지 들먹거리며 사과를 한다. 누군가에게 잘못했을 때 빠르게, 늦지않게 사과하는 것도 인간관계에 필요한 요소이긴 하다. 물론 시도때도 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말로만 사과하는것과 같은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잘못했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 자신의 잘못, 어쩌면 상대쪽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상대의 마음을 언짢게 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해당 편지와 함께 실린 주디의 일러스트는 그녀의 마음과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어 웃음이 났다.

​전 한남자와 걷고, 대화하고, 차를 마셨답니다. 그것도 아주 멋진 분하고 말이죠.
바로 줄리아네 집안의 저비스 펜들턴 씨였어요. 87쪽


드디어 보는 이들은 다 알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떻게 그리 모를 수 있을까 싶은 저비스 펜들턴씨와 주디의 만남이 등장한다. 주디는 자신이 그토록 설레여하며 만났던 남자가 키다리 아저씨 인 줄 모르고 설레였던 당시 상황을 편지로 보낸다. 자신과의 만남을 그토록 행복하게 기억하는 여자라면 없던 호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아마 이때부터 서로의 마음속에 조금씩 서로의 자리가 커졌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이런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조울증 가득한 주디의 편지는 계속 된다. 방학 때 고아원에 가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아, 정말 숨김이 없는 아이구나 싶다. 착한 아이인척 하지 않는 주디, 어쩌면 이런 성격 때문에 독자가 여자이긴 해도 한없이 그녀를 응원해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진짜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꼭 나같은 모습.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성격이 부럽기도 했다. 그녀의 성격 혹은 성향 중 가장 부러운 것은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이다. 학교 월간지에서 해마다 주최하는 단편소설 공모에 4학년도 아닌 2학년 제루샤, 주디가 당선되었을 때 쓴 편지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전 천국에 못 갈지도 몰라요.
이미 여기서 좋은 것들을 이렇게나 많이 누리는 제가 천국에서도 좋은 것들만 누리고 산다면 공정하지 않을 테니까요. 131쪽

글쓰는 일이 직업이 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들떠 기뻐하는 그녀, 분명 누구나 사는 동안 벅차게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기쁨을 누릴 때 우린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까. 심지어 천국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릴 때는 저렇게 기뻐하고 들떠있는 주디의 모습이 그저 감정표현이 풍부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느끼는 것은 더 주고 싶고, 없는 것 마저 만들어서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했다.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게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으로 바뀌었을 때 처음으로 '연애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당신이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게 할 거랍니다. 262쪽 '라고 적는다.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던가, 서로 잘해보자라던가, 영원히 사랑하자는 말보다 상대에게 단 한 순간도 후회를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자신감 있고 자존감 있는 주디의 사랑이 얼마나 멋진가. 결국 그녀는 남자 하나 잘만나서 행복해진 나약한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갈 줄 아는 당당한 여성이었다. 주디에게 닮고 싶은 점 두가지.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자존감 있는 모습이다.
 

 

 


p.s 책과 함께 들어있던 키다리아저씨 허빙버드클래식모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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