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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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 있는 생물로 여겨졌다. 191쪽



읽는 데 1시간 30분도 안걸렸다. 경기도에 있는 영화관에 가기위해 급하게 나오면서 가벼워보이는 책을 들고 나온다는 게 [편의점 인간]이었다. 걷는시간,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내내 책을 읽었는데 합쳐봐야 80분 남짓이다. 확인해보니 본문만 보면 190페이지도 안된다. 400여페이지가 4시간 남짓 걸린다고 계산하면 적당한 시간이긴 하다. 그런데 체감하기에는 제대로 '몰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가 길다. 한 줄 결론 이 책은 재미있다. 퇴근시간 그 정신없는 지하철속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늘여썼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치고는 성적묘사나 잔인한 장면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제까지의 수상작과는 다르다고 평가받는지도 모른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였다. 이제 슬슬 계산대의 정산이 끝나고, 은행에서 돈 바꾸는 일도 끝나고, 빵과 도시락이 트럭으로 배달되어 진열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50쪽



학생이었거나 회사원 신분이었던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어쩌다 학교를 안가게 되는 날, 연차를 사용한 날, 시계를 보며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것, 아주 가볍게 머릿속에 착착착 진행이 이뤄지는 것. 편의점 안에 속해있을 때는 그런 상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털어버려야 할 까닭도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 함께 좀 더 제대로 지금 상황을 즐겨보자고 다짐도 하는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삶'속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불쾌하고 털어버려야만 하는 지난 추억이다. 물론 편의점 인간인 후루쿠라에게는 이런 감정이 없다. 그렇다고 감정이 전혀 없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혹은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이타적인 감정이 없는 그녀도 가족들이 자신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이 싫어 어떻게든 사회성 있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편의점 인간이 된 까닭도 매뉴얼만 지키면 어엿한 '사회인'처럼 보여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교칙을 따르듯 그렇게 정해진 매뉴얼이 있으면 후루쿠라는 견딜만 했다. 하지만 서른 여섯이 된 이후 편의점 매뉴얼만으로는 사회인 인척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30대 후반이라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했다. 동생의 도움으로 조금씩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던 후루쿠라지만 조금씩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무렵 편의점에 외적으로는 후루쿠라와 거의 흡사한 시라하가 들어온다.


현대사회라는 건 환상이고, 우리는 조몬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요. 85쪽


시라하라는 인물은 위의 저 문장으로 충분하다. 그와의 대화속에는 아니, 그가 늘어놓는 사회와 여자에 대한 불만속에는 빠짐없이 '조몬시대'가 등장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시라하의 말이 틀린것 같진 않다. 돈 혹은 능력이 있는 남자가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고, 남자는 능력인것처럼 여자는 예쁜 외모만이 그들의 삶을 평화롭게 해주고 그것을 무기로 사회속에서 진정한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다. 흙수저니 어쩌니 해도 결국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있는 '문제아',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구할 수 없고, 국가나 사회에게서 대책이나 복지를 기대할 수도 없다는 점은 조몬시대와 지금사회가 꼭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하자 후루쿠라의 친구들도, 그녀의 동생도 안심한다. 설사 그 상대가 백수일지라도 '연애'를 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혼이 기사회되고 특집이 될 수 있는 것 역시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만 해야 하는 사회보다 그다지 적응하고 싶지 않은 '편의점 인간'들이 마치 적응하고 싶어 안달나있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더 큰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오늘 날짜를 본다. 오늘은 화요일, 신상품이 들어오는 날이다. 184쪽


또다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지금 후루쿠라는 편의점에 '속'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손님으로 편의점에 와있다. 하지만 편의점에 속해있던 아니던 그녀에게는 끊임없이 '편의점 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이 환청이나 여명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소리'로 여겨진다. 그런 그녀가 선택하게 될 미래는 무엇일까.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눈에 '평범한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편의점 인간'이 될 것인가. 시라하와 후루쿠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라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길 원한다. 조몬시대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고 남의탓만 하면서도 사회속으로 자신을 누구라도 끌어들여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아니다. 그녀에게 사회적 인간, 평범한 보통인간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인간'으로 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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