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유럽1,2를 만나기 이전에도 시험이나 별도의 문서를 제출하는 암기를 요하지 않을 때라면 역사책은 재밌다고 생각했다. 곧 잊어버리긴 했어도 추후에 유사한 내용을 접하면 하나하나 겹겹이 쌓이는 패스츄리처럼 더 많은 것을 알게된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큰 그림이라던가, 애초에 얘들은 도대체 왜이렇게 전쟁을 좋아하지? 1,2차 세계대전은 강대국의 힘자랑이라 느꼈고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스웨덴이 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굵직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처럼 느껴지는 인물들과의 관계도와 헤프닝에 더 관심이 갔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읽는 시간만 열몇시간이었던 유럽1,2를 통해 이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이유와 시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 유럽의 중심이자 지금의 독일지역은 근세가 시작되는 1453년, 백년전쟁 이후 유럽주변국가들이 각각의 이유로 눈길을 뗄 수 없는 곳이었다. 신기한건 유럽하면 지금도 미국과 급부상한 중국을 제외한 강대국이며 스스로가 중심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는데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긴 시점부터 오히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변방이라고 믿고 스스로를 좀더 부강해져야 한다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왜 유럽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한번에 이해시켜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가톨릭 성지를 중심으로 유럽은 주변국이다. 때문에 신대륙 발견조차 실은 오스만 제국의 눈을 피해 전쟁을 치르려는 유럽인들의 계략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중심에 앞서 말한 독일, 신성로마제국이 있어 프랑스,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가 연합과 동맹, 적국의 대상이 수시로 바껴가며 전쟁을 치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패권투쟁, 이 책의 중심이기도 한 내용보다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언론의 역할이었다. 잉글랜드와 독일에서 언론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국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가능했던 것이다. 언제든 이웃나라에서 독일을 흡수하거나 자기가 속한 나라에 침략할 수 있었기 상황이라 자국에서의 국내정세 및 국외정치에 대해서도 긴밀하게 정보를 나누고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서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 이웃나라들과 원만한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끊임없는 유럽에 대한 욕심은 전쟁이 불가피했고 평화적인 조약이나 대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의 연맹만 생겨났다 소멸되면 좋겠지만 폴란드와 러시아, 위로부터는 핀란드와 스웨덴 그리고 30년 전쟁이후 세력이 약해지긴 해도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위협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이들의 연맹역사는 그야말로 다채롭기까지 하다. 오스만 세력을 저지시키기 위한 신대륙의 발견이 스페인에게 막강한 부를 축적시켜주는 것을 보게된 프랑스와 잉글랜드조차 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패권투쟁의 양상은 더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1권에서는 대략 위의 내용이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각국의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들과 그 배경이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이다. 잉글랜드나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대외정책의 성공여부에 따라 군주의 힘이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복지국가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스웨덴의 경우는 이미 17세기부터 귀족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공정하게 분배하려는 정책이 시행했으며 스스로가 유럽국가라고 자부했던 러시아인들은 지식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신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19세기에는 오로지 미국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독일역시 통일이전까지는 민족의 자유를 위함과 주변국에 시선아래 놓여있다가 프랑스 나폴레옹의 패배로 이뤄진 통일로 인해 교육, 군사 및 경제등에서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이 이렇게까지 부강해 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스마르크가 존재하며 그의 전력을 바탕으로 히틀러와 같은 인물이 탄생하였으며, 실제 1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을 적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학자들의 예견처럼 독일이 유럽을 단일국가로 통합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1차 세계대전때 승리했던 일본역시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손잡음으로써 이전에 잉글랜드와 프랑스과 동맹했던 상황을 다시금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때는 미국과 연합국의 동맹으로 유럽 뿐 아니라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것이다. 두꺼운 책이지만 단순하게 보자면 내용은 그야말로 패권투쟁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전이 통합의 시대였다면 그 이후는 분리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부강해졌던 독일이 나뉘어지고 한국 등의 나라가 유럽과 미국에 의해 나뉘어지게 되면서 미국과 러시아 2개국의 대립형상이 마련된다. 예전에 오스만 제국 그리고 러시아의 등장처럼 현재는 중국의 등장으로 또 한번 세계는 지형적 변화를 맞이할지 모르는 위험 혹은 기회의 상태가 되어 있기에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정도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서문에 저자가 밝힌 것처럼 독일의 통일과 분리의 역사를 통해 한국또한 참고해야 될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에 역사책을 보면 마치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나 욕심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느껴졌는데 유럽1,2를 읽으면서는 각국의 입장이 정당했다기보다는 수긍이 간다고 할 수 있다. 한쪽의 힘이 너무 커지면 자연스레 위협을 느끼게 되고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내국의 정세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시민들의 불만을 안고 있는 국가는 내분에 의해서 자멸할 수도 있고 외세침략에 방어력도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정답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허를 찌르는 조언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었다.


'역사는 검증된 요리법을 적어놓은 요리책이 아니다. 역사는 격언이 아닌 비유를 통해 교훈을 준다. 역사는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만 어떤 상황이 비슷한 지를 파악하는 것은 각 세대의 몫이다. - 헨리 키신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의 공간 - 미치도록 글이 쓰고 싶어지는
에릭 메이젤 지음, 노지양 옮김 / 심플라이프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공간. by 에릭 메이젤

 

 

 

 

 

 

 

 

 

 

 

 

 

 


일상에 지칠 때 멋진 글귀가 가득한 에세이나 머리가 아플만큼 찡한 소설을 만나게 되면 나도 작가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혹은 아주 늦은 밤이거나 지나치게 이른 새벽, 무심코 적은 문장이 너무나 흡족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판 싶을 때 역시 글 한 번 써볼까? 하며 가장 교만한 존재가 되곤한다. 하지만 정작 글을 쓰자 맘을 먹으니 당장 해뜨고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와 살림까지 도무지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심지어 옆에 드르렁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있다거나 혼자 살지만 눈뜨면 부엌부터 화장실 입구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원룸은 상상해오던 '작가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쉽게 포기한다. 작가를 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하고 여유도 없다고. 에릭 메이젤의 작가의 공간은 위에 언급한 1차원적인 고민에서부터 진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주제선정이나 주변인들과의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면의 싸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총8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크게 3가지로 다시 분류해보면 물리, 정신 그리고 작품의 주제선정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물리적 공간의 경우 흔히 떠올리는 소설가의 방은 영화에서 보았던 창이 상당히 크고, 사면이 모두 책으로 둘러쌓였으며 책상은 최소 수십권의 책을 동시에 올려두어도 될 넉넉한 사이즈로 보인다. 습도와 온도가 적당하고 커피향과 종이 특유의 냄새 거기다 기호에 따라 추가되거나 가감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런 방에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사례를 들어주는 데 지나치게 환하고 이상적인 풍경이 내다보이는 방에서 글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선을 창밖으로 던져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력이 느껴진다니 이해가 된다. 너른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서 차를 마실 때면 이런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하지만 정작 노트북 혹은 노트와 펜을 꺼내도 무의미한 낙서일 뿐이다.


'의자, 테이블, 닫힌 문, 컴퓨터 혹은 노트, 약간의 경외심, 창문을 가릴 커튼, 가볍게 흥분한 두뇌'
바로 이것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리적 공간이자 우리의 교회이며 예배이다.
-p.21

 

아주 심플한 공간이다. 다시말해 굳이 먼 곳으로 떠날 필요없이 당장 집에서도 적당히 글쓸 공간만 보장되면 물리적 공간은 해결된 셈이다. 하지만 가족이 있다면? 실시간으로 메세지가 울리는 스마트폰이 보인다면 문제가 된다. 책에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가 존중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시간을 정해 글쓰기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세심하게 카페나 외부에서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카페에서 글을 썼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데 이때 또 주의사항이 있다. 카페에 있다보면 역시나 날씨가 좋으면 외부 유혹에 흔들리기 쉽기에 작가는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 세상에 글을 쓰기 위해서 꼭 가야만 하는 공간이란 없다.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존재하는 바로 이곳이 바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살아 있는 곳이다.
당신이 그것을 꺼낼 마음만 있다면. -p.55


다소 허무한 결론이라고 느껴질테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쓰고자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결국 주변탓이 아닌 내감정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 감정의 문제는 또 어떻게 하면 해결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일상의 나를 버리라고 말한다. 처리해야 할 문제라던가 날씨 등등 떠오르는 잡념과는 작별하고 창조적 마음챙김을 연습해야 한다고. 창조적 마음챙김(Creative mindfulness)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상태(p.119)로 단어는 조금 다르지만 예전에 읽었던 줄리아카메론의 아티스트웨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 책의 경우 반드시 아티스트 뿐 아니라도 내면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창조적인 자아가 눈을 뜰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도 유사한 개념이었다. 좀전에 작가적인 자아로 리셋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방법의 좋은 이유는 글쓰기 위해서도 있지만 과거나 주변시선에 얽매여 있던 수동적인 자세해서 좀 더 적극적이고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 자신을 알라라는 개념에서 나는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책도 찾아보고 여행도 다니는 등 기존의 어떤 모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허무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르다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어떤 가치가 없다는 부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나라는 의미를 만드는 것, 작가는 컵의 인쇄된 문구였다고 말하지만 되새겨볼 수록 맘에 와닿는다. 나라는 의미를 만드는 것.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신만의 우주를 창조하라. 아무것도, 그 누구도 당신이 어떠한 가치를 선택하는지 막을 수 없고, 당신의 고결함과 영웅주의가 발현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 p.255


잡념도 버리고, 과거의 나를 얽매고 있던 부정적인 시선도 정리되었으며 이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도록 세팅이 끝난다면 남은 것은 무엇을 쓸 것이며 어디까지 나를 보이거나 위험을 감수 할 수 있느냐의 구체적인 부분만 남게된다. 작가는 실존지능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는데 우리가 다소 철학적으로 묻게되는 모든 질문에 대해 개념화 할 수 있는 지능이라고 한다. 말이 어렵지만 단순하게 이해한대로 적어보자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된다면 무엇을 쓸 수 있을지도 쓰지 않을지도 깨닫게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되면 더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변명은 사라지고 이제 진짜 뭐든 쓰고자 하는 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작가의 공간,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고 책을 펼쳐보는 사람, 여전히 그래도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투정부리는 이들만 아니라면 모든 문제의 답과 해결방법이 들어있으니 글을 써야겠다는 확신만 선다면 일독은 기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부제가 저러하니 엄청나게 두껍고 빡빡한 줄간격을 기대했으나 생각만큼 두껍지 않아서 첫 느낌이 좋았다. 적당히 손에 잡히는 두께와 내가 좋아하는 하드커버! 문체역시 자신만의 생각을 쏟아내고 비평가들이 풀어줘야 하는 픽션작가라기 보다 쉽게 쓰는 시리즈를 쓴 작가인 만큼 술술 잘 읽힌다. 심지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도 잘 읽힌다. 그래서 진짜 이해했나 정리해보면 그건 또 아니라서 이 쉬운문체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목에 적은 것 처럼 이 책은 1-2 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3장부터 재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종이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한마디로 진짜 재밌다.


1장은 이전에 서지학 공부할 때를 쉼없이 상기시켰다. 제지법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 아시아에서 서양으로 넘어가는 과정(책에서는 기계가 탄생하는 배경을 좀 더 자세하게 서술했다)을 토대로 서지학은 종이 그자체와 판본과 활자를 중심으로 공부했다면 이 책은 일단 '종이'가 주제이기 때문에 집요하게 종이가 대중화가 된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처음으로 종이기계를 발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접하게 되고 그 사람이 어찌 살았다가 망해가는지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공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장의 제목은 숲이 종이를 구했다인데 이게 무슨말인가 하면 종이는 쉽게 찢어지고 망가져 종국에는 소멸할 것 같은 재료다. 양피지에 익숙했던 이들은 그때문에 종이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이의 재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가격과 희소성의 문제로 종이의 역할이 쇠락할 즘 나무로 종이를 만들게 되었을 때의 경제성과 효용성이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종이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 덕분에 19세기 중반에는 눈앞에 닥친 듯했던 서구의 종이 위기를 가뿐히 넘어설 수 있었다. 원료 가격이 떨어졌고 생산량은 증가했고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했다. 종이의 시대가 진짜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숲이 종이를 구했다.


종이가 본격적으로 생활밀착형 존재가 되는 과정이 3장부터 펼쳐진다. 여기서 잠깐, 매 챕터마다 책에서 유명인사들이 언급했던 종이와 관련된 구절 혹은 명언이 한페이지씩 등장하는데 처음 몇 번은 열거된 책과 인물을 메모하느라 바빴다. 물론 뒤에 별도의 주석과 해설이 있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찾아보기 위함이었는데 별도의 추천리스트가 없다면 시도해봄직 하다. 


3장의 지도이야기로 돌아가 살펴보면 종이탄생 이전에도 물론 지도를 여기저기에 그리기는 했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나무는 물론 순은판에 새기기도 했다는데 무게도 무게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그치만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별도의 장식품이랄 것도 없이 거실이나 방에 세계지도 현판을 걸어두는 기분, 정말 상상만 해도 좋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위해서라면 역시 지도는 종이에 그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에서는 단순히 종이에 지도를 그리게 된 과정뿐 아니라 종이지도가 측량과 토지관리 등 실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지금의 리서치 혹은 연구조사에서 쓰이는 방법들이 실제 19세기 런던 빈민 구제운동시에 적용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해준다. 3장을 지나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종이와 '책'이다. 가장 흥미로운 이 부분은 과감하게 리뷰에서는 생략, 해당 파트 맨 첫페이지에 실린 아포리즘으로 대신한다.


우리는 이제 탐서벽에 빠진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겠습니다.

-토머스 프로그널 딥딘 목사, 비블리오마니아 혹은 탐서벽


종이와 책 편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로웠던 파트 5장은 종이와 돈이다. 돈은 물론 동전과 지폐로 나뉘지만 일단 돈이라고 했을 때 동전보다는 후자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두툼한 돈뭉치라던가, 내 마음대로 '0'을 늘려서 쓸 수 있는 백지수표 등 종이와 돈은 그야말로 책 이상으로 한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하게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뒤 본격적인 '지폐'의 역사가 등장한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중국이 처음으로 종이를 통화로 사용했다는 내용과 과연 이게 종이의 이야긴가 싶은 다양한 금융의 역사가 이어진다. 마지막 12장 종이와 영화,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이르기 까지 서문에 언급한 저자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종이로 만들어졌다면 그야말로 뭐든 다 등장하고 역사적 배경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이 박물관'임에 틀림없다. 책을 편 순간 독자는 지하에서부터 지상까지 총 12층 건물로 이뤄진 종이박물관에 들어선 셈이며 그 어느 층도 소홀하거나 지루할 틈 없이 저자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또 이어간다. 물론 사실에 의거하여.


종이는 폭군이자 압제자이지만, 또한 구세주이자 증인이기도 하다. 이게 종이의 가장 큰 역설일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은 한번에 다 읽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쉬운문체라고는 해도 다루는 내용이 방대한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가적으로 메모하거나 살펴보고싶은 2차 자료가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 책은 기존의 그런 통념을 깨트린 책이되었다. 그냥 다 읽게 된다. 메모하던것을 멈출지언정 책읽기를 멈추진 않게 한다. 이런저런 지식을 쌓게된 것(벌써 기억안나는 것이 대부분일지언정)은 기쁘지만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싶은 한탄스러움과 종이책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하는 어리숙한 질문은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생겨 기쁜 마음도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스마트폰이 새로운 습관을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종이는 늘 우리주변에 머물러 있음도 깨닫게 된 셈이다.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다른 무언가가 생겨나더라도 종이란 존재가 아에 사라지는 날이 오진 않을 것 같다.


따라서 40명이 1만 5000자루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복원하는 데에는....대략 375년이 걸린다. 끝이 없는 작업이다.

우리 개인은 물론, 시민이건 이민자이건 난민이건 이주 노동자건 여행자건 관광객이건 그만한 시간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이로 조그만 기억의 전당을 세우는 데에 골몰하는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은 누구나의 사랑 - 미치도록 깊이 진심으로
아이리 지음, 이지수 옮김 / 프롬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학생이었던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있던 연애수기 모음집이 있었다. 수기별로 작품 하나의 타이틀이 전체 타이틀을 대신했던 시리즈물로 꽤 여러권 출간되었는데 다 읽지는 못했지만 참 별별 연애가 다 있구나, 그것도 성인이 안된 어린나이에 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이야 유치원생들도 소위 '이성친구'라는 관계를 형성하지만 30여년전만 해도 청소년기에 이성친구를 공개적으로 사귄다는 것은 문제학생 이거나 상대방이 그렇게 불리는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은 컸고, 소설이 아닌 한건너 건너 친구들의 연애사를 간접적으로 알수 있는 그 책의 인기는 꽤 오랜시간 이어졌었다. 몇년 지나지 않아 자극적인 이야기들로만 채워지고 수기가 아닌 '소설'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관심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분명 호기심과 함께 사랑을 할 때 이런 점을 조심해야 하고 혹 헤어지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조금의 방법은 알게해준 책인건 분명하다.

 

책 이것은 누구나의 사랑은 픽션이다. 다양한 연애사를 통해 이별극복법, 나쁜남자 혹은 나쁜여자에게 빠지지 않는 방법 등 이전에 만났던 그 수기책처럼 편안하게 사랑을 할 때, 연애를 할 때 갖게되는 문제와 해결방법을 조심스레 일뤄준다. 마치 사연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감 있는 이야기인 덕분에 분명 언젠가 해봤던 연애사인터라 술술 잘도 읽힌다.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 아닌 상황에서 벗어난 제3자의 입장에서 읽다보니 조언해주는 내용이 너무 뻔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진부하다고나 할까. 한걸음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면 상대방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안하는지가 명확히 보이는 법이다. 물론 책에 실린 수많은 연애경험을 다 해보는건 어렵기 때문에 한번 쯤 읽어볼만 한 책이란 사실과 그야말로 '이것은 누구나의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밖에 없다.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여러 번 연애해 보고, 여러 번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애 잘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또 나쁜 남자를 많이 만나 본 여자는 자신이 상처 받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답정너 스타일들의 여성들이라면 한번이 아니라 아에 모셔두고 그때 그때 처방받아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기까지 하다. 상대방의 변명들을 스스로가 만들어내며 점점 스스로를 불행한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답정녀 만큼 연애가 힘든 타입이 또 있다.  '철벽녀', '철벽남'들이 꼭 읽어봐야 할 그리고 '썸'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경우라면 나역시도 진짜 날씨를 궁금해 하는건지 아님 할말이 없어서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는건가 갸우뚱 거릴 뿐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릴 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 '날씨는 어때?'등의 의미 없는 말을 대신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잘 지내니?', '행복하니?', '너도 나를 좋아하니?', '내가 고백하면 너도 내 마음을 받아 주겠니?' 등 그 사람이 당신에게 묻고 싶은 진짜 질문들이 숨어 있답니다."

 

사랑은 늘 서투르고 많이 해본다고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마음이 반드시 이 책에 등장하는 혹은 나와 내가 겪었던 그 누군가들과 일치하지 않기에 100%성공 하는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치만 이런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가 아니라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쓰렸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편 한편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건 한가지, 나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서로 좋아하기만 해서도 안된다는 사실, 사랑은 그야말로 솔직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다.

 

그래,

겁쟁이는 자신의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지.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전 사랑이 어렵지도 않고 오해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을 자신도 있지만 정작 연애할 사람도 기회도 없다 하는 분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애사를 바탕으로 간접연애라고 꿈꿔보시길, 분명 어디서 본듯한 들었던 것 같은 그 연애, 누군가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로 만든 그릇 - 편한 쓰임새와 아름다운 형태의 그릇 300점 그리고 31명의 목공예가 이야기
니시카와 타카아키 지음, 송혜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나무로 만든 그릇.

 

타이틀 참 심플한데 더 좋은 타이틀도 없다. 가장 좋은 디자인이란 더이상 더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란 게 맞는말이다. 재료만 나무일 뿐 방법도 참 다양하다. 흔히 생각하는 물레로 둘레를 돌려가며 속을 파내는 방법 부터 물레가 아닌 조각칼로 만들 때 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방법 그리고 한가지 색이 아닌 다른색의 나무를 잘라서 합판을 만들고 그 합판을 다시 깎아서 만든 그릇 등 책을 보기 전엔 그저 색을 덧칠하는 차이겠거니 했다가 미안할 만큼 화려하고 정교한 그릇이라 놀랐다.

 

 

 

 

 

"무엇가를 마음껏 깎아보고 싶었어요."

-음식을 담으면 표정이 확 달라지는 타원형 대접시 작가 사카이 아츠시.


"마디가 있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가구에는 쓰지 않는 묵재를 가져다 소품을 만들어요."

-나무의 질감과 색채를 즐길 수 있는 다리 그릇 작가 이와사키 히사코.

 

 나무그릇을 만드는 사람들의 대다수의 이력은 디자인 혹은 예술전공인 분들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릇을 만들게 된 사람들도 있다. 버려진 나무를 활용할 방법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고 아내가 탁자나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토막을 모아 만든 사람들도 있다. 아에 사용하지 못하는 재료나 갈라지고 벌레 먹은 나무를 가지고 화병을 만드는 작가까지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듯 만드는 이의 이야기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릇을 만들 때의 마음가짐은 모두 같았다. 내가 쓰고 싶고 그릇의 용도에 맞게 사용이 쉬워야 한다는 것, 그야말로 심플 그자체다.

 

 

 

 

 

 

신기한게 분명 나무그릇인데 흙으로 빚은 듯 투박하면서도 진한 흙내음이 풍기는 그릇이 있다. 손을 가져다 대면 금속의 차가운 성질이 느껴질 것처럼 쨍한 그릇도 있고 흔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자기처럼 곱고 윤이 나는 그릇도 있다. 하지만 세가지 모두 재료는 나무다. 나무로 만든 그릇이다. 작가마다 음식을 담고 거의 대부분 식사하는 모습까지 책에 실려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늘 먹는 모습 그대로 소박하게 자신의 그릇에 밥을 담아 먹었다. 물에 약해서 뒤틀리면 어쩌지, 세월이 지나 나무결이 파여 상처를 내면 어쩌나 싶었던 걱정도 작가 한사람 한사람의 식탁을 보고 있자니 조심하면 되겠지 싶다가 이내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실용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거듭 강조해주니 어느 순간 일본가서 이 그릇을 사와야겠다, 국내에도 있을텐데 책을 다 읽고나면 찾아봐야겠다 하는 소비계획만 늘어났다.

 

'오케토의 초등학교에서는 급식에 쓰는 식기들도 모두 오케크라프트의 목제품들이다. 사토 씨의 자녀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계쏙 집에서도 나무그릇을 써왔다.'

 

작가별로 챕터가 나뉘고 한부가 끝날 때마다 본문에서 소개되었던 방식이나 추가적으로 만들기 쉬운 제작방식을 토대로 DIY페이지도 수록되어있는데 글로만 봐서는 솔직히 갑자기 변한 것도 같고 책만봐서는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간단하게는 조각칼 하나 들고서 나무토막 하나 주워가지고 와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주의사항, 나무를 파낼 때 중간중간 어느 한 면만 깊게 파내지 않도록 수평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이곳을 더 팠다고 다시 디자인을 바꾸거나 하면 뭐랄까, 조각품은 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담는 '그릇'은 포기해야되지 않을까싶다.

 

'V자형 개미지옥이 되지 않도록 주의!'

"나뭇조각을 도려내어 만들 때는 너무 파버리면 끝장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작가들의 작품이라 쉽게 구매하기도 수업을 청강할 기회도 희박하지만 나무로 만든 그릇이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참 늦은 나이에도 그저 나무그릇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 가장 놀라운건 대부분 4~5년정도 근무한 뒤 자신만의 공방을 차린다는 점이다. 직업 특성도 있겠지만 도전도 어렵고 공방으로 먹고사는게 녹록치 않은 환경에 사는 우리에게는 부럽고도 개선되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여러가지 탐나는 그릇이 많았지만 그래도 꼭 하나 갖고 싶은 그릇을 고른다면 쓰유키 키요타카씨의 , 흰밥만 담아도 입안이 황홀해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