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CEREAL Vol.8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8
시리얼 매거진 엮음, 김미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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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8

Travel & Lifestyle

 

 

바쁜 아침 건강을 챙긴다며 신속하게 볼을 꺼내 우유를 따른다. 그안에는 견과류와 생과일 조각이 담긴 시리얼이 이미 담겨져 있다. 한입만 먹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씹히는 식감또한 좋다. 영국 런던에서 온 매거진 시리얼의 느낌이 꼭 같다. 실제 시리얼을 만드는 제작인 또한 매일아침 먹는 시리얼의 느낌을 살려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시리얼은 계간지 형태로 출간되는데 이번 8호부터 국내에서 번역본과 함께 출간되었다. 이전까지는 국내 서점 수입양서 코너에서 소량으로 들어와있는 시리얼을 구매하거나 직구를 통해 구했던 것을 생각하면 소소함 그 이상으로 기뻤다. 시리얼을 처음 만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봄 SNS 페이스북을 타임라인을 훑어보다가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을 발견, 시리얼 공식계정에서 올린 사진들이었다. 탁트인 시야의 풍경사진이 주를 이뤘고 이따금 책상이나 주방컷 등이 올라오긴 했어도 거의 대부분 풍경사진이었다. 킨포크나 어라운드와 비슷한 사진취향이지만 풍경이 많이 담겨 있어 나중에 오려서 액자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다.

이번 8호는 겨울이다. 흰 설산이 표지사진으로 선정되었고 이 사진의 배경은 캐나다 클루앤 국립공원이다. 총 4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캐나다 유콘, 홍콩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여름별장 처럼 머물었던 영국 남부의 세인트 아이브스 등이다.  여행지 세곳 중간에 라이프스타일에 해당하는 막간코너(interlude)가 실려있는데 요즘 대세인 향초이야기랑 슈탈하우스 그리고 니트가 빠질 수 없으니 에스크 캐시미어 스콜랜드산 니트이야기랑 12월의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포토에세이 토스카나의 태양이라는 타이틀의 사진들이다. 우선 1장 캐나다 유콘으로 들어가면 그안에 기사가 나뉘어지는데 먼저 유콘은 클루앤 국립공원의 빙하와 설곡등을 만날 수 있었다. 멋진 설경만 담은 것이 아니라 빙하의 사전적 의미와 관련 전문용어 등도 실려있어 가볍게 넘겨보는 잡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은 무려 82%가 산 또는 빙하로 이뤄져있다고 하는데 사진만 보고 있자니 꼭 가보고 싶다. 뭘 적어도 겨울왕국이나 눈의 여왕과 같은 작품처럼 느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풍경을 뒤로하고 원주민의 목각공예를 만나게 되는데 주변에 온통 눈과 흰색 풍경때문인지 사용하는 색감이 파스텔톤이라 기존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전통 목각품의 화려한 오방색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서 신비로웠다. 지난 25년간 사람들에게 조각기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자신도 스승에게 배울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란다.

"스승님은 '내가 널 가르치면 너도 역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선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요즘 배워서 남주자는 모토의 강연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단순히 1회성이 아닌 전통기술을 이어가는 장인들을 볼 때면 늘 배우기만 하고 공유할 의도가 없는 현재 삶을 반성하게 된다.​ 조각 장인의 이야기 다음에는 유콘의 야생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진대신에 초상화로 이 페이지들은 하나하나 스크랩해두고 싶은 맘이 최고조였다.

인터루드에 실린 내용 중 향초, 슈탈하우스, 니트 그리고 포토에세이 토스카나의 태양 중 향초는 우리가 익히 잘알고 있는 유명 향수브랜드의 제품들이 소품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친근한 조말론 제품과 유명블로거와 셀럽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르 라보 제품이 눈에 띈다. 옥외수영장이 딸린 슈탈하우스는 그냥 그집에 사는것보다 이따금 휴식이 필요할 때 찾아가고픈 느낌이었다. 무한 힐링이 될 것 같은 기분 반, 지나치게 딱 떨어져 차가운 느낌이 공존했다. 마치 이런 맘을 아는 듯 이후에 등장하는 토스카나의 태양 사진을 보면 추운 외부에서 실내에 들어와 몸이 스르르 녹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홍콩편에서는 하이비스트 CEO 케빈 마 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모든 천재들은 그 열정과 능력을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케빈 마 역시 그럴듯하게 사업지원을 받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화 수집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사업과 연결 된 케이스였다. 나도 책과 잡지를 엄청 모으로 컨텐츠를 확보했지만 도저히 사업적 마인드로 변모시키진 못하던데 인터뷰에 담긴 그의 책장이나 내용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괴롭고 부러웠다.

"우린 그저 우리가 관심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 생각을 공유했죠.

-중략-

돈을 낼 필요가 없어요. 이게 우리 사업 철학이에요.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죠."

​마지막 3장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필자가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여행지 세인트 아이브스다. 핑크 아이스크림이 등장하는 순간 마음이 달달해진다. 또 딴짓을 하게 된다. 책장에 버지니아 울프의 저술이 뭐가 있더라 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 이곳을 배경으로 한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집에도 읽어본 적이 없어 기사에 실린 필자의 기대만큼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사가 부족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 또 읽고싶은 책이 한권 늘었군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왠지 지금 읽기에 딱 일것만 같은 그런 느낌. 더군다나 자전적 소설은 언제나 독자의 입장에서 묘하게 이끌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시리얼을 대충 훑어보면 그냥 풍경이 담긴 여행잡지구나 싶을지도 모른다. 또 시간을 좀 내어 찬찬히 넘겨보면 요즘 유행하는 감성사진과 그것과는 어울리지만 현실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소품들이라 섭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하듯 시간을 흘러버리지 않는 정지되거나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 이책을 펼칠 때면 이 잡지가 왜 시리얼이 되었는지 알지도 모르겠다. 별거 없는 시리얼 한 숟가락의 참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p.s 창간호인 1호부터 차례차례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미처 구입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희소식일듯. 잡지 전월호, 그것도 해외잡지를 구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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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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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우리의 문화적 가치에서 뒤로 미루거나 커피로 잠재우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예방의학에서는 잠을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자는 것을 최선의 방법 중 하나로 꼽는다.

 

평소에 잠을 적게 혹은 많이 잔다기 보다는 잠을 자는 행위라고 할 것 까진 아니지만 '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특히 자발적으로 덜 자고 몰아서 자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착각했던 어느 시기에는 그야말로 잠이라는 것은 먹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 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게임상의 '약물'과 같았다. 그러던것이 사회활동을 하고 혼자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어쩌다 누군가와 동침(?)을 해야할 때면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숙면을 취하기 힘들었다. 뿐만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꿈을 꾸는 덕분에(실제 꿈은 누구나 꾸지만 기억하느냐에 따라 나뉠 뿐이다.)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일부러 자려고 애쓸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중학교 입할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늘 가위에 눌려 제대로된 잠을 자본적이 없었다. 그때는 수면제를 먹는다거나 그런것이 의미가 없었던게 잠을 못자는게 아니라 중간에 가위에 눌려 깨는 것이 문제였던터라 작가와 마찬가지로 잠이 든 상태에서 일어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내 엄마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어릴 때처럼 엄마가 늘 내가 잠들때까지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토닥여주는 것이었는데 이게 꽤 효과가 있었다. 이방법이 효과 있었던 이유를 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어 반갑기 까지 했다.

 

책의 내용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자나 편집자가 나눈것이 아니라 읽고나서 내가 임의대로 나눈것은데 일단 첫번째 단락은 의사도, 상담가도 아닌 그저 기자였던 저자가 왜 잠의 대해, 수면에 대해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알고자 했는지에 대한 서막즘 된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가 수면전문가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과 우리가 몰랐던 잠의 과학과 비밀들을 조금씩 알려주는 부분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정리해볼 수 있는 편안한 잠을 자기위한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가 잠에 대한 연구하게 된 것은 '통증'때문이었다. 어릴 때 부터 잠버릇이 심해 아내에게 하이킥을 했을정도 였는데 왜 이전부터 병원에 찾아가지 않고 잠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을지경이지만 어찌되었든 본인이 수면중에 집안을 걸어다니다가 벽에 세게 부딪힌 후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수면상태를 체크하고 검사를 통해 얻게된 결말은 특별한 이상없음, 그리고 잠에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밝혀내진 못한 부분이 그보다 더 많다는 애매모호한 의사의 답변 뿐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이 험난하면서도 흥미로운 '잠으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책을 대충만 훑어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는 잠, 꿈 그리고 밤과 관련된 명화들이 다양하게 실려있는데 그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잠이란 것이 연구라기 보다는 마치 인간의 삶과 다른 영역이라 생각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위눌림마저 악마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잠의 대해 무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나역시 책을 읽고서야 깨달은 점이 많다. 앞서 언급했던 나의 어린시절 헤프닝을 보면 잠자기 전 규치적인 습관들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가능했던 결과다. 낮과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한 아기부터 유소년들은 수면시간 이후에 대해 불안정한 사고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수면이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잠들고 난 이후에 그 미지의 영역은 위험하고 두려운 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잠을 적게 자는 것도 나이가 들어 다른 청장년 시기때보다 자신을 지켜야 할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내용은 좀 뒤에 나오긴 하지만 초반에 등장하는 반수면 상태에 동물이야기가 비교했을 때 노인들이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그들대신 보초를 서주는 반수면상태의 동료-간호사, 요양사 혹은 배우자나 자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잠을 잘자기 위해 자기전 규칙적인 활동이 도움이 된다는 것 역시 자기개발서에서 흔히 보았던 규칙적인 생활의 강조라던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다소 강박증을 가진 바른생활 사나이들이 정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났던 것을 떠올려봐도 이해가 쉽다.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인 꿈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빠지지 않는 프로이트의 해석과 이와 정반대되는 교수들의 이론을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외우고 공부했던 것처럼 프로이트는 대부분의 해석을 유년시절의 받았던 억압과 고통 그리고 성적인 해석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후 케빈 홀 교수는 꿈을 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서 꿈이란 것이 특별한 상징이나 억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예측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이후에도 정체된 듯하다가 어느 학자의 설에 의해 다시 꿈에 대한 해석이 발표되었지만 굳이 정리하면 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주를 이뤘다. 이와는 다르게 꿈을 '치료'법의 하나로 받아들인 어니스트 하트만의 경우가 기억에 남을 뿐더러 현실문제를 되돌아보고 긍정적으로 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저자와 마찬가지로 맘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어찌보면 방대하고 달리보면 이런저런 이론만 나열하고 제대로된 분석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면 저자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잠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며 연구해야 될 부분이 많은 분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의학적으로 이분야에 전문가도 아닌셈이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의문을 풀기위해 전문가들을 찾아나섰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우리가 잠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좋은 환경, 침구나 조명등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껴안고 있거나 인공조명을 환하게 밝혀둔다면 잠은 우리와 친해질 수 없다. 또한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수면은 우리에게 좋은 '꿈'을 꾸게 할수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애매한 결론이라고는 했어도 그 어떤 책보다 적어도 우리가 수십권의 책을 읽고 수십명의 전문가를 만나야 알 수 있었던 잠에 대한 의문을 적어도 이 책은 많이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이 잠을 안자면 정말 죽나요? 숙면을 취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등의 해답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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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집 - 집을 헐어버리려는 건설감독관과 집을 지키려는 노부인의 아름다운 우정
필립 레먼.배리 마틴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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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마틴& 필립레먼 '나의 삶 나의 집'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정된 100세할아버지의 모험담을 담은 소설은 불가능할 것 만 같은 역사속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한 남자에 의해, 또 그남자가 100세 노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이 책, 나의 삶 나의 집의 등장하는 여든넘은 이디스 역시 그 할아버지의 삶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틱한 부분만 놓고 보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인데다 심지어 실화이기에 훨씬 더 흥미롭지만 정작 이 책의 메인 홍보는 노인의 모험담이라던가 누군가의 드라마틱한 삶에 기대기 보다는 애니메이션 'UP'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흥미위주 혹은 자기개발서식의 내용은 물론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자 집의 중요성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지키고 싶은 누군가와 그 무엇을 지켜가는 것 등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까지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배리 마틴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배리와 이디스와의 만남은 쉽게 생각해봐도 도무지 가까워지기는 어려운 관계이다. 쇼핑몰을 지으려는 건설사의 현장담당자와 끝까지 버티고 자신의 집만 남은 상황에서 백만달러를 주고 심지어 그 이상의 보상도 해준다는데 이디스는 이야기를 듣는 척 하다가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누가봐도 꼬장꼬장한 늙은이의 모습이다. 배리에게도 처음부터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명인지지 아니면 배리의 인성이 보통의 사람보다 더 낙천적이고 어느 한편으로는 시크해서 인지 소리를 지리는 이디스를 미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않도록 한발짝 물러서며 나이든 사람과 친분을 쌓는 법을 배워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디스와 막 교제가 시작될 무렵 배리의 부친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면서 배리는 이디스를 통해,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양쪽 모두를 그리고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괴팍하게만 보이는 이디스 할머니에게는 앞서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100세 노인과 마찬가지로 믿기 힘든 놀라운 이력을 가지고 있어 그것이 흥미로웠을 수도 있다. 심지어 초반에 배리는 이디스의 그런 이력을 반신반의 하며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깨닫게 되는 것은 이디스의 이력이 사실여부를 떠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 온몸에서 그리고 행동과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보통의 사람에서는 느낄 수 없다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그녀와 있을 때 이것저것 지식과 교양을 배워가고 나이들어가면서 늘어나는 아집과 불만이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시련과 상처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등 배리가 깨닫게 되는 부분이 늘어감에 따라 독자도 덩달아 자신의 부모와 나이든 사람들 그리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다들 내가 이사 가기를 바라고 그게 나한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는 내가 잘 알아. 난 여기서 죽어야 해. 여기가 내 집이야. 난 여기서 살고, 여기서 죽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책을 읽는 동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계속 떠올랐다. 아직 일흔도 안되셨지만 분명 아이들의 눈에 우리의 부모도 '노인'이 되셨고 마치 내가 건설업자가 된 것 처럼 시골집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고 엄마가 살림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근처 아파트로 옮기시라는 말을 여러번 했었던터라 더더욱 그랬다. 이디스의 말처럼 그저 자기가 살던 그집에서 그렇게 별일 없이 살다가 죽고 싶다는 것이 어디가 잘못된 걸까. 배리처럼 난 왜 이 당연한 주장, 주장이랄 것도 없는 것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강요했을까 자기반성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디스의 이력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 배리와 이디스의 관계가 점차 호전되는 것을 볼 때면 마치 그 곁에 내가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하지만 배리가 이디스의 삶에 들어오면 올 수록 그만큼 이디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지고 있음을 알기에 씁쓸했다. 더불어 이 모든 일들의 배경이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집'의 소중함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연말 그리고 전세난으로 힘겨운 요즘,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님을, 집이 없는 것에 대한 설움 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과의 교제로 힘겨운 이들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실화'라는 믿을만한 조언집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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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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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망양'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합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일에 열중한 나머지 중요한 일을 잊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사카 코타로. 사신치바나 중력삐에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간절하게 저자의 산문집을 기다리고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제법 진지하면서도 위트있는 그의 문체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떠나서 장면 장면만 봐도 참 재미있는 마치 4컷 만화의 장점과 장편만화의 스토리를 잘 버무린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스노우캣의 일러스트까지 더해졌으니 탐날만한 책이었다. 읽고 난 지금은 내용자체가 정말 맘에들어 일러스트가 살짝 묻힌 것 같아 아쉬울 정도.


4개의 구성으로 나뉘어지는 데 1부는 읽는 내내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 가 떠올랐다. 소소하게 웃음짓게 만드는 작가와 아버님 덕분이기도 했고 타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그에게는 엄청난 일이 되는 듯한 엉뚱한 매력이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소장하고 희귀본은 계속 단종상태로 유지되길 바란다거나 극장에서 아주 사소한 소음과 앞좌석의 누가 앉으냐에 따른 행불행에 대한 소심한 의견은 나와 너무 같은 맘이라 나도 역시 소심한 인간이란 결론에 웃프기도 했다. 만약 1부만 읽게 된다면 이 작가의 글이 다소 가볍거나 조금은 에세이에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2부 부터는 작가가 보거나 읽은 영화, 음악 그리고 만화 등 리뷰가 주를 이루는데 내용은 소설가의 활동이라던가 소설 자체에 대한 견해도 담겨져 있어서 1부에서의 잡담이 다소 아쉬웠던 사람이라면 2부부터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하나의 작품이 쓰여지기 이전 상황과 쓰여지는 동안에 과정등도 담고 있어 작품을 통해서만 보여지는 작가의 단면을 좀 더 확장시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왕이란 작품의 경우 무언가 사회참여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이 엿보였는데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 등이 그랬다. 2부에서 처음으로 스노우캣 일러스트의 장점이 보여지는 데 우스꽝스럽게도 개의 코에 침발라주는 컷이다. 이건 사람이 직접 나서는거보다 의인화된 스노캣만이 할 수 있는 점이 아닐런지. 더불어 작가의 아버님은 중간 중간 작가의 위트가 부족하다 싶을 때 꺼내쓰는 비장의 무기란 생각이 들었다. 3부에서는 앞서 1,2부에 등장했던 이야기에 살을 더 붙인 느낌이 드는데 그도 그럴것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이미 발표된 글들이라 시간 순서상 나중에 오게된 글이 3부에 몰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외치는 소리'미주에는 아에 작가가 나중에 한권의 에세이집으로 묶일줄 몰랐다고 자백(?)까지 한다. 덕분에 그 책이 정말 무슨 내용이길래 싶은 맘에 결국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올릴 수 밖에. 그런가하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만화책의 경우는 읽고 싶지만 읽을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다행히 그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도라에몽은 쉽게 구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3부까지 읽으면서 이렇게 위시리스트를 적다가 괜시리 허망해지는게 4부에서 떡하니 작가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와 작품리스트를 공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가볍지만 제법 작가가 되려면, 저자처럼 되기 위해 무엇을해야할지 메뉴얼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파트이기도 하다.


작가가 된지 10년이 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쓰여진 에세이집으로 작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고 그런가하면 늘 새로운 작품, 이전에 접해보지 않았던 내용으로 출간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바람도 보이는데다 누군가 작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렇게 해보는건 어떠냐며 조언을 받았던 입장에서 해주는 입장으로 성장하는 '전문가'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작품을 의뢰받고 탄생하기 까지 어떤 의도와 배경이 있었는지 숨기지 않고 공유해주는 '열린'모습과 '겸손'한 작가의 면모가 참 부럽고 멋져보였다. 무작정 작품만 던져놓고 긴 시간 함구하거나 모든 것이 독자의 상상에 달려있다고 외면하는 까칠함이 시크한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 보다는 난 확실히 이런 모습이 훨씬 '더 괜찮은 것'같다. 한마디로 독서망양을 부르는 책을 고르라면 이 책도 포함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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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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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에서 스무살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던 그 겨울, 처음 전혜린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을 알고부터는 내가 어디에 존재하던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즘 누구나 그이름을 알고 조심스레 결심하듯 나또한 서른에는 나의 자유의지로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런마음이 어느 순간 사라졌을까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책, 오후 세시, 그곳으로부터에 실린 전혜린편을 읽고서야 내가 왜 기억을 잃었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 부터는 저자 최예선이 서울 이곳저곳에 남겨진 혹은 이제 완벽하게 물리적으로는 사라졌고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는 '예술산보'의 결과물이었다.

 

예술가란, 예술이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하며

그 시대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란게 별거 없다싶지만 그 전에 예술가들은 시대의 불안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시대의 불안속에 몸과 맘이 뒤틀리기보다는 그저 숨고 모른척 외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그래서 서른에 죽지못했었고 예술가일 수가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예술가들의 입장이 되어 그시절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기도 하고 혹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되어 가상의 글을 적어놓기도 한다. 대게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여자로 태어난 까닭에 아무래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성예술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때문에 최초의 서양미술을 배우고 미국과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나혜석편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활동을 할 때 공연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걸맞게 그녀가 이혼을 한 이후 마치 그녀의 예술적 능력이 제로가 된 듯 그녀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그림은 단 한점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유학을 다녀오고 열렸던 귀국전시회에서는 5천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던 그녀의 전시회가 그토록 초라해진 이유는 오직 그녀가 '이혼녀'가 되었을 뿐 오히려 예술적인 영감은 마음의 상처와 원숙함을 더한 이후였을텐데도 말이다. 나혜석이 여자를 위한 미술학사를 열었던 그장소는 이제 사라지고 미술관이 새로 들어서있다고 한다. 책에는 현재 남아잇는 곳들에 대한 추억보다 이미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장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덜한편이다. 서울의 아픔과 어두움을 강하게 어필한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장소가 된 피카디리 극장과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한 내용은 더욱더  참혹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그 다음해에 열린 88서울올림픽. 미처 제대로 잡히기도 전에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비둘기가 날아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2장이 애도가 주제인 까닭에 슬펐어도 그만큼 마음이 가장 오랜시간 머물며 지난 날을 반추하기에 좋았다. 만약 슬픔보다 구보씨처럼 혹은 박완서처럼 그저 추억의 장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사라진 장소가 아닌 실존하는 장소를 거닐고픈 이들에게는 1장이나 3장을 권하고 싶다.

 

오후 세 시, 저자는 서울에 남겨진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아 예술산보를 했다. 30여년전 기형도는 그 무렵 오후 4시에는 중앙일보 기자실에서 노트를 꺼내어 문학인이 되어 시를 적었다.  혹은 약속도 없이 무작정 학림다방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전혜린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한동안 오후 세시의 나라는 책을 읽고 그날 그날의 소소한 풍경을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더랬다. 이제 곧 찾아올 오후 세시 혹은 네시즘의 나는 무엇을 하게될런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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