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기분
박연희 지음, 쇼비 그림 / 다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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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타이틀이 '명왕성 기분'이라길래 벅차고 설레는 그런 기분을 뜻하는 줄 알았다. 아주 조금 너무 먼 애잔한 그리운 마음이 들 때를 표현하는 건가싶기도 했고 또 아주 조금은 우리말 방송작가를 했던 저자의 이력 때문에 순우리말 단어인가 싶기도 했고. 책을 읽고 알게된 '명왕성 기분'이란 것은 기분이 좋을 때 뜨는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끝도 없는 어둠만이 가득할 것'같은 기분이며 가족이 곁에 있어도 나 홀로 있는 듯한 선득한 기분이었다. 선득한 기분이란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드는 모양 혹은 갑자기 놀라서 마음에 서늘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란 뜻의 부사'다. 지금은 덜하지만 내게도 '명왕성 기분'이 찾아올 때가 있는 데 분명 창밖에 세상이 환한 낮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어둑해졌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을 흘려버린듯한 그런 기분. 그럴때면 꼭 '명왕성 기분'이 찾아들곤 했는데 그 선득함이 싫어서 낮잠을 안자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40

어릴 때부터 자주 느끼는 어떤 기분이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 기분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주었다.


'명왕성 기분'


 

 첫 페이지를 넘겨보고 너무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말 단어를 글속에 녹여내려고 어울리지 않는 문장을 이어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약간 들기도 했다. 저자의 어린시절 부끄러웠던 이야기, 영국 지하철 안내방송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감자전, 버터에 비빈 밥에 얽힌 사연을 넘어가면서 이 책이 정말 편하고 좋아졌다. 처음에는 대충대충 넘겨가며 생경한 단어가 보여도 그런가보다 했던 것이 이야기에 빠지다보니 다 신기하고 메모지에 옮겨적게 되었다. '많은 방'과 '마늘 빵'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을 즘에는 얼굴에 미소도 잦아졌고 남편을 만나게 된 사연은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저자약력에 적혀있던 '영국경찰이 안아주어'란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거니챌 수 있었다.



 

108

그 사람 말대로 술로 죽고 싶어 했던 때는 지났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서 술 먹고 죽고 싶어도,

술 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늙어 죽으면 되는 거다.


 

책 속에 별도로 저자가 표기해주고 의미를 달아준 단어는 총 43개라고 맨 뒤에 부록처럼 별도의 페이지로 알려주지만 의미가 달리지 않은 순우리말도 책을 읽다보면 자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리뷰에 순우리말을 가급적 10개가 넘게 넣어봐야지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문장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듯 적고 싶은데 억지로 끼어넣다보니 내 국어실력이 데데해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에서 배운 좋은 표현과 저자가 경험한 혹은 저자가 들려주고 싶었던 좋은 이야기들을 시나브로 잊고 살겠지만 '명왕성 기분'이 찾아오더라도 이젠 덜 선득할 것 같다. 이 책이, 그리고 이 책을 쓴 저자가 나를 벗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232

너도 괜찮기를.

문득 문득 명왕성 기분이 들 때

내가 널 위한 무기가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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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꽃에서 멈추다
박윤희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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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나를 위한 독서라기 보다는 '엄마'에게 권해드릴 만한 책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골랐다. 어릴 적 엄마가 내가 손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늘 책을 놓아두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강요가 아닌 자연스럽게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책을 놓아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여러 권의 책을 무언으로 권해드렸는데 엄마가 60세라는 인생 2막에 접어드신 후로는 그다니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 내가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엄마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고 엄마가 읽었을 때 좋을 책을 찾는 다는 것은 지금 내 기준에서의 '추천도서'가 아닌 엄마에게 '언니'가 되어주고 '인생 선배'가 되어줄 수 있는 분의 책이었다. 박윤희님의 [활짝 핀 꽃에서 멈추다]는 그렇게 내곁에 왔다.



이 글의 주인공은 소위 '잘 나가는, 성공한 5%'의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할머니이며, 어머니이며, 이모이며, 언니입니다.


내가 십대였을 때 엄마가 들려주는 추억과 스무살 이후 들려주는 엄마의 추억이 다른 것처럼 어쩌면 이 책도 아직 내가 읽기에는, 엄마에게 권해드릴만한 책인지 판단할 자격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인생 선배님들은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하는 정말 아이같은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다. 잘나가는 누군가의 자기개발서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하게 자기 삶을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자기개발서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삶 그 자체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노년기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만났던 우리 선배님들의 내용을 재구성 한 것이다. 그덕분에 한 사람의 이야기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만날 수 있는 분들의 연애사, 고난, 극복 등 다양한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전혀 낯설거나 촌스럽지 않았다. 그분들이 하던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다툼과 좌절이 약간의 변형만 있을 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대로였다. 만약 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오래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접했다면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손주를 봐주고 있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어머니가 아닌 며느리의 입장에서 설명되었을 수 있고, 가난하고 능력없는 배우자와의 결혼 이야기도 그와 이별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식의 다른 결론이 나왔을 것만 같다.


"혼을 불태우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이 한 선택에 집중해야 해요. 그리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성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죽지 않을 정도로 무리도 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한 노력의 결과로 행복해져야 하죠." 137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고령사회'라는 담론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우리가 부양을 책임져야 할 세대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그리고 이 리뷰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라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위한 자기개발서를 원한다면 '오래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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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색볼펜 읽기 공부법 - 책읽기에서 시험준비까지 인생을 바꾸는
사이토 다카시 지음, 류두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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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색볼펜 읽기 공부법 : 사이토 다카시 지음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이전까지 총 3권 읽었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혼자 있는 시간의 힘]등이다. 세권의 내용이 조금씩 중복되거나 서사처럼 이어지는 부분이 물론 많았지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크게 공감했고, 혼자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유익했다. 뿐만아니라 이 책을 읽기 전 '파란펜'을 내세운 공부법에 관한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꽤 컸던 모양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감상평을 먼저 밝히자면 크게 공감하거나 바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아 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마저 결국 '저자'의 개발과정이었을 뿐 나와는 맞지 않는것 같다라는 우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3색 줄긋기는 크게 객관과 주관으로 나뉘는데 파란색 줄과 빨간색 줄은 객관, 초록색 줄은 주관이다. 파란색과 빨간색 줄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 가치관에 따라 긋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대체로 혹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곳에 그어야 한다. 47쪽


아무래도 저자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제출용 혹은 연구용 문서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을 주제로 색을 나눈 것 같다. 비단 이 책의 저자 뿐아니라 책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자기것이 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반드시 까지는 아니지만 밑줄을 긋지 않고 포스트잇이나 별도의 노트를 만들어 기록하는 것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꼈기에 나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중요할 경우 정도의 따라 파란색과 빨간색을 사용하고 객관적이진 않지만 맘에드는 표현이나 관심이 가는 경우 초록색을 이용하라는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제대로 학습되지 못하거나 이해가 어려운 독자를 위해 예문을 들어주고 사례를 들어주는 곳은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내용이 지나치게 반복되다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딘데다 만약 저자의 조언대로 하자면 이 책은 그다지 3색 볼펜이 필요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관적으로 와닿는 문장이 없을 뿐더러 객관적으로 중요한 내용도 3색 볼펜의 구체적인 사용방법 외에는 이전의 저서의 내용에서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하나 밑줄을 긋는 것이 익숙해지면 마치 공이 날라올 것을 대비해서 기다리는 타자처럼 마침애 밑줄을 그을만한 문장을 만났을 때 기뻐할 뿐 아니라 그런 기쁨을 찾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는 것이 흥미로워진다고 했지만 이부분에 있어서는 저자와 나의 생각이 같지 않아서 더더욱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는 자녀가 각자 어디에 초록색 줄을 그었는지 살펴보면 신기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녀의 다른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재미있어하는 아이였구나'라고 새삼 깨달을 때도 많다. 110쪽



물론 이제 막 독서에 흥미를 갖는 아이들이나 본격적인 입시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청소년들의 경우 학습서를 비롯 자발적인 공부나 독서가 아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라면 빠른 시간내에 요점을 파악하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자기만의 독서방식, 습관이 있는 사람 중 지금까지의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다거나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아 교정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굳혀진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효율적인 독서방법과 공부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부모나 그런 의지가 있는 성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3색볼펜 방식이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3색볼펜 방식이야말로 스모의 준비 운동과 같은 기본 동작이라고 생각한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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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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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절실했던 것이 가장 아프게 나를 배반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가장 멀리까지 도망가버린다.


낮에는 평범한 사진가들처럼 예술관련 아카데미에서 교양수업을 듣거나 자연을 촬영하러 다니다가 밤이 되면 라디오를 들으며 부업인 포르노그라피 작업을 하는 남자 성주. 그의 아내 마리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한 대의 컴퓨터에 맥os와 윈도우를 동시에 설치해놓고 그때 그때 바꿔가며 쓰는 완벽하게 이중적인 삶을 사는 남자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엄연히 비밀이고 본인도 굳이 공개하지 못하는 일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 늘 신비로워 보인다. 그것이 어둠의 비밀이라도 '비밀'이라는 특수함을 가진 이상 갖지못한 이들에게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 사람이 탐날 것이다.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사랑이 끝이 나기도 전에 결혼이란 법적인 테두리에서 밀려난 정인과 유년시절 착하게 행동한 만큼만 부모가 날 사랑해줄거라는 조건부 사랑을 받고자란 마리 그리고 십여년을 함께 살았지만 남편과 자신이 하나일 수 없고 남편의 외도가 그저 그사람의 사랑일 뿐 나와는 무관하다라고 완벽하게 이해해버린 수영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성주는 탐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갖지못하면 파괴하고 싶을만큼 탐나고 또 그 반대로 금새 싫증나고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 내 선택 때문에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내 결정이 어느 우연한 날, 내 부모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찌르리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선택이란 때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일임을 나는 매 순간 생각했다.


 

짝사랑을 하고 있거나 남편이 외도하거나 혹은 본인이 바람피고 있지 않다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마리'의 입장으로만 성주를 이해할 수 있고 애인의 애인들을 위해 뜨게질을 하는 조금 바보스러운 정인이나, 겉으로는 성공했으나 실은 늘 실패하며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수영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가만가만 그 두여성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려고 애썼다. 작가는 마리의 이야기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많은 페이지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자는 것도 모자라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용서할 수 없고 괴롭고 죽고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경우 상처입은 배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크게보면 둘로 나뉜다. 그를 죽이고 홀로 남거나, 같이 죽거나 혼자 죽거나. 이와 반대로 쿨하게 보내주거나. 마리가 무엇을 택했는지는 여기에 적지 않겠다. 하지만 힌트를 주자면 둘 모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을 해주고 싶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정인의 입장, 애인의 애인들에게 뜨게질을 해주는 여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말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마리나 정인이나 둘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런가하면 정인과 수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와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자기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는 자유로움 아니었을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가 사랑하는 수영을 위해, 성주를 사랑하다 그녀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 마리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감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등 잦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 것은 마리였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아직까지는 행복한 운좋은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보인다는 것, 노력도 결국은 수많은 재능 중 하나일 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마리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콕 박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성주, 마리, 수영 그리고 정인. 네 사람 중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네 사람 모두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더이상 아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서 이 소설이 비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성주가 세 사람중 누구와 다시 연이 되는 일은 없겠지만 혹은 그러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연애하길 바란다. 서로가 아닌 다른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주더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 살지 않기를.  책을 읽고 각자 어떤 상상을 할런지 알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연애'를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쓴 작품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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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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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역)





1917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라는 글을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비에트 연방시대를 살았던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증언을 토대로 [세컨드핸드 타임]을 집필했다. 집필기간도 상당했을 뿐 아니라 '소련'의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알지못했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당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역자후기를 포함 600여페이지 그 이상의 내용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소련'으로 더 익숙한 소비에트 연방 시대. 그리고 그 이후 고르바초프와 옐친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유'가 '돈'의 다른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정작 1991년도에는 모두 혁명을 하기 위해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뭘 얻었나요? 옐친의 혁명, 약탈적 혁명을 얻었어요.



소비에트 연방시대가 끝나고 고르바초프가 양쪽 진영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가 다가오길 기대했다기 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 스탈린과 레닌과는 다른 방식의 '사상'과 '통제'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공산주의의 좋은 점과 민주주의의 좋은 점만을 모은 그런 사회말이다. 하지만 막상 옐친이 집권한 이후 '돈'이 사회에 중심이 되고 과거의 사기꾼들이 이제는 '신흥부자'가 되어 자신들의 지배하는 모습을 볼 때 '당원'이었던 사람과 가족들에게 민주주의가 과연 좋게 느껴졌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피켓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리더를 뽑았을 때 믿고 있던 그 희망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혹은 국가를 위해 왜 싸워야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에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그나마도 더이상 영웅은 커녕 제대로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이 '소보크'라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린 약자들의 세계는 사상과 상관없이 늘 똑같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서로 상반되는 증언을 써내려가도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에트 시절 작전에 침투했다가 적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는 죽지 않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포로교환 이후 집이 아닌 수용소로 끌려가야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문인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며 '시의 힘'을 알게된 사람은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끊임없이 꿈을 이야기하고 위트를 간직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했다던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중간에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희망없는 시대, 세컨드핸드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안에서 자포자기 하고 노예인 삶에 만족할 게 아니라 우리는 꿈꾸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모스크바 부엌에서 도청을 의심하고 우려하면서도 저녁이면 식탁에 모여앉아 누군가를 헐뜯고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껄껄 웃었던 것 처럼.



전 한번도 영웅이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전 영웅들이 싫어요!

영웅은 사람들을 많이 죽이거나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니까요.



초반에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해서,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고 검색하느라 책을 읽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러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에는 종교도 필요없고 이웃집의 누가 차를 샀는지 집을 샀는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 어쩌면 과거의 그들에게는 훨씬 더 만족스러울런지 모른다. 너도 나도 다를게 없는데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람을 노예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반대로 한 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해야 평화로울 수 있는 사회도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세상'이 그냥 오지는 않을것이다. 타인에 의해, 누가 정해놓은 신이 나서주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세컨드핸드 타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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