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컨드핸드 타임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역)





1917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라는 글을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비에트 연방시대를 살았던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증언을 토대로 [세컨드핸드 타임]을 집필했다. 집필기간도 상당했을 뿐 아니라 '소련'의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알지못했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당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역자후기를 포함 600여페이지 그 이상의 내용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소련'으로 더 익숙한 소비에트 연방 시대. 그리고 그 이후 고르바초프와 옐친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유'가 '돈'의 다른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정작 1991년도에는 모두 혁명을 하기 위해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뭘 얻었나요? 옐친의 혁명, 약탈적 혁명을 얻었어요.



소비에트 연방시대가 끝나고 고르바초프가 양쪽 진영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가 다가오길 기대했다기 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 스탈린과 레닌과는 다른 방식의 '사상'과 '통제'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공산주의의 좋은 점과 민주주의의 좋은 점만을 모은 그런 사회말이다. 하지만 막상 옐친이 집권한 이후 '돈'이 사회에 중심이 되고 과거의 사기꾼들이 이제는 '신흥부자'가 되어 자신들의 지배하는 모습을 볼 때 '당원'이었던 사람과 가족들에게 민주주의가 과연 좋게 느껴졌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피켓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리더를 뽑았을 때 믿고 있던 그 희망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혹은 국가를 위해 왜 싸워야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에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그나마도 더이상 영웅은 커녕 제대로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이 '소보크'라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린 약자들의 세계는 사상과 상관없이 늘 똑같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서로 상반되는 증언을 써내려가도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에트 시절 작전에 침투했다가 적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는 죽지 않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포로교환 이후 집이 아닌 수용소로 끌려가야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문인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며 '시의 힘'을 알게된 사람은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끊임없이 꿈을 이야기하고 위트를 간직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했다던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중간에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희망없는 시대, 세컨드핸드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안에서 자포자기 하고 노예인 삶에 만족할 게 아니라 우리는 꿈꾸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모스크바 부엌에서 도청을 의심하고 우려하면서도 저녁이면 식탁에 모여앉아 누군가를 헐뜯고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껄껄 웃었던 것 처럼.



전 한번도 영웅이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전 영웅들이 싫어요!

영웅은 사람들을 많이 죽이거나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니까요.



초반에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해서,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고 검색하느라 책을 읽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러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에는 종교도 필요없고 이웃집의 누가 차를 샀는지 집을 샀는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 어쩌면 과거의 그들에게는 훨씬 더 만족스러울런지 모른다. 너도 나도 다를게 없는데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람을 노예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반대로 한 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해야 평화로울 수 있는 사회도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세상'이 그냥 오지는 않을것이다. 타인에 의해, 누가 정해놓은 신이 나서주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세컨드핸드 타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