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 문예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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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송해나지음 문예출판사


임신하면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건강과 올바른 정서성장이 모두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송해나 저자의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의 부제는 '열 받아서'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왜 그녀는 축복과 같은 임신을 하고선 열받아서 임신일기를 적어야 했을까. 정말 친한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과 친자매가 임신했을 때 조차 우리는 그녀들의 '임신스테레스'를 보기만 할 뿐 공감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진 못한다. 마치 우울증이 무서운 줄은 알지만 그로인한 사고를 보면서 당사자들의 탓이거나 나약해서, 한가해서라는 2차 폭력을 가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저자가 느낀 임신스트레스는 무엇이엇을까.



'임신부배려석에 앉기'는 또 실패했다. 좌석 뒤에 붙은 핑크색 스티커를 쳐다보는 척, 임산부배려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흘겨보려는데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라는 문구에 또 열이 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니다. 34쪽


​어느 커뮤니티에 베스트댓글로 올라온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임산부에 비해 자리가 너무 많이 지정되어 있어요. 한 번도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은걸 본적이 없거든요.'

그럴 수 밖에 없다. 임산부배려석에 앉는 사람들은 임산부가 아니다. 오히려 임산부들은 역으로 욕을 먹을까 겁나서 제대로 그 앞에 서있지도 못한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앉아계실 때는 그나마 괜찮다. 10대~20대 청년들이 앉아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임산부가 앞에 오면 자리를 비켜드릴 거니까 비워두면 낭비라고. 과연 그럴까. 그들의 공통된 자세가 있다. 우선 이어폰을 꽂고 앉아있으며 시선은 손에 든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누가 앞에서 쓰러지기전까진 알아차리기 어려운 자세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정면으로 임산부를 바라보면서, 임산부뱃지를 보면서도 웃으며 통화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들 엄마뱃속이 아닌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 같다.


지하철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것만이 스트레스가 아니다.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된 교육도 없다. 그저 배가 나오고, 체중이 늘어난다 정도가 전부다. 아내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남편들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임신은 축복이라고들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죄로 바뀐다. 임산부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아는 척 안하는 것이다. 왜 아이에게 좋지 않은 커피를 마시는지, 힘들다면서 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느냐 등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임신 후 무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언제나 내 몸은 내 것이었는데, 더 이상 내 통제하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먹고 마시는 작은 일부터 내 평범한 일상, 그리고 출산 방법을 선택하는 일까지도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 같다. 95쪽


하지 않아도 될 말 중에는 '자연분만'을 강조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국여자들이 세계에서 제왕절개를 가장 많이 한다.'라는 비난조의 글을 본적이 있다.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설사 산모가 제왕절개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이 왜 비난받아야만 하는가. 20시간을 넘게 산고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택했을 때 조차 '조금 더 참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 혹은 소중한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치료받지 말고 자연치료가 될 때까지 버티다가 받게 하는것과 무엇이 다를까. 제왕절개라고 덜 아픈 것도 아니다. 흔히 자연분만이 일시불이면 제왕절개는 할부라고들 말한다. 결코 그 고통의 크기가 적거나 짧지 않다는 의미다. 왜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타인의 몸을 맘대로 좌지우지 하려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에게 그 무엇보다 배 속 아기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임신해서 제 삶을 잃어버려 불쌍하다며 동정한다. 아주 놀랍게도, 임신한 여성은 배 속 아기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도 돌볼 줄 알고 행복을 누릴 줄도 안다. 우리는 임신의 도구가 아니라 인생의 주체다. 175쪽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먹고 싶은 것은 아이를 가진 모든 임산부의 바람이기도하다. 그런 그녀들로 하여금 '열 받아서 임신일기를 쓰게 만드는 것'은 그녀들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순탄하게 임신과 출산기간을 지낸 사람들도 분명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와 그 반응이 저마다 다 다른 것처럼 임신증상을 '유난'하다고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유난스럽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임산부'들만 이 책을 읽게될까 겁난다. 누군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잘 수도 없고, 내딛는 걸음걸음이 가시밭길처럼 느껴지는 고통속에서 태어났다. 당신은 세상에 그냥 태어나지 않았다. 엄마뱃속을 통하지 않고 어느 날 뚝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임산부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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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정승원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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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제주항공을 비롯 이스타, 티웨이 등 저가 항공사에서도 운항중일만큼 인기있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린다는 이르쿠츠크, 저자의 말로는 "한국인이 덜 하면서도 가까운 휴식형 해외 여행지"에 적격인 '하바롭스크' 여행정보가 담긴 이번 셀프트래블 블라디보스토크 편은 2019~2020 최신판으로 러시아 여행을 꿈꾸면서도 유럽보다 멀게만 느꼈던 여행자들에게 좋은 정보가 담겨있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라도 우선 안전이 제일인 만큼 '러시아는 안전한가요?'라는 Q&A 페이지가 눈에 확들어온다.

우선 구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미지와 스킨헤드라 불리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사건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킨헤드의 경우 러시아 서쪽지역에서 주로 신고되고 무엇보다 이전보다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 무엇보다 늦은 밤이나 취한상태로 거릴 걷는것 등의 위험한 행동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러시아가 낯설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나오는 질문, 비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답변도 있다.

러시아의 경우 1회입국 시 60일간 무비자로 여행가능 하고 추가적으로 입출국을 반복할 경우에는 제한사항이 있다. 게다가 영어가 숙소에서조차 잘 안통한다고 하니 셀프트래블 블라디보스토크 편 뒷페이지에 나와있는 주요러시아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본격적인 시베리아 극동 러시아 여행일정을 살펴보면,


저자의 추천일정은 다음과 같다.


3박4일 일정으로 혹 주말을 이용하려는 직장인들은 별도의 페이지에 또 추천일정이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길.


 


시베리아 하면 '횡단열차'부터 떠오르는 분들도 이 책을 추천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관련된 일정, 정보등이 별도의 페이지로 안내되어 있다. 스무 살, 대입을 앞두고 혹은 졸업이나 제대 후 떠나는 20대 청년들의 로망이기도 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까지 이동하는 열차로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키로프 등에서 정차한다. 여유가 있으면 1등실에서 연인과 친구와 단둘이 편안하게 떠날 수도 있지만 시설적 장점외에는 요금이 비싸서 3등실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벗하며 떠나는 것도 좋은 점이다. 물론 여서으이 경우 1,2등실의 경우 여성전용실도 있다고하니 기억해두자.



시베리아, 무엇이 있는 곳일까. 그냥 춥기만 한 지역이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러시아 전통음식부터 한국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해산물, 디저트까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한다. 만두처럼 생긴 힌깔리, 러시아식 파이 피로그 그리고 만들어진 배경이 재미있는 '나폴레옹 케이크'를 먹어보고 싶다. 물론 체력만 허락해준다면 알콜도수 40도 이상의 보드카도 마셔보고 싶다. 혹 알콜을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표 맥주 발찌까에서 무알콜 맥주도 판매중이니 누구라도 적당히 취한 기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음식때문에 해외여행이 불편했던 사람들이라면 시베리아, 도전해볼 만하다. 러시아하면 떠오르는 서커스와 발레공연도 궁금해지는데 이부분은 이따가 공연장 소개와 함께 한번 더 만나보자.



 


앞서 언급했던 인생발레를 만날 수 있는 마린스키 극장. 저렴한 4층 세컨드 티어 발코니 좌석마저 가격대비 나쁘지 않다고하니 주머니사정이 아쉬운 배낭여행자들도 꼭 들려볼만 하다. 마린스키 극장의 프리모르스키 스테이지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손열음이 이곳에서 협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매년 7,8월에 극동 국제음악제가 여기서 열리기 때문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



 



위의 발레나 클래식 공연외에도 프리모르스키 국립 갤러리에서 작품감상이 가능하고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서커스 공연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어디서나 국립 서커스단이 있어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다.

*저자의 팁을 공개하자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매표소가 많기 때문에 관람을 원하는 공연정보 캡처해서 매표소에 보여주면 편하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인 만큼 6월~9월에도 겉옷이 필요한 기후다. 이상기후로 7,8월에 30도이상의 고온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겉옷은 필수도 챙기는 것이 좋다. 아무르강이 흐르는 하바롭스크는 강변을 산책, 향토박물관 관람, 예쁜 성당앞에서 인생 사진 남기기등은 꼭 해야한다고 추천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어서 그런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상'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싶다. 게다가 개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도 있다고 하니 코를 쓰다듬는 포즈도 잊지 말아야겠다. 아름다운 서구 유럽의 문화와 구소련의 역사적 유산이 혼합된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거나 블라디보스토크 관광후 직항편을 이용해서 관광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5월~9월 사이로 12월~2월에는 시베리아의 강추위를 조심해야한다.



아무르 강이 흐르는 하바롭스크와 함께 이 책에서 소개된 이르쿠츠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맑고 가장 깊은 호수, 바이칼 호수가 있는 곳으로 환 바이칼 열차타기, 바이칼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먹어보는 것을 추천해주었다. 하바롭스크의 성모승천대성당이 대표적이라면 이르쿠츠크는 구세주 성당이 대표적인 곳으로 극동지역 최초의 석조건물로 기록된 곳이라고 한다. 성당 내 소기도실이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기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더욱 커졌다.

 


반복해서 저자가 강조하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러시아어'.

익숙한 발음이 아니라서 암기해서 가기는 어려우니 뒤에 첨부된 '이지 트래블 페이퍼와 함께 반드시 챙겨가야 할 부분이다.


사실 러시아, 그것도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외에는 거의 정보가 없었던 곳이다. 나처럼 막연하게 떠나고싶던 사람들도, 잘 몰라서 그렇기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책을 보다보면 유럽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과 한국인 입맛에 잘 맞기에 음식걱정도 하지 않아도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고 싶어질 것 같다. 이미 떠나자고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숙소, 비행정보, 기타 공연관람 및 이지 트래블 페이퍼와 같은 부록덕분에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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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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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할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0쪽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숲속 깊은 어딘가, 야생동물이 야생동물 답게 살고 있는 곳이라고 테이트는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 저마다 자신들의 모습을 온전히 보호받거나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의 제목으로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모에게서 버려진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소녀가 커가면서 사랑을 하고 실연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늘 그자리에서 자신을 받아준 습지(자연)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깨닫고 배워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단조롭거나 교훈적으로 흐르진 않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습지는 가난한 사람, 이민자, 범죄자들이 마을에서 도망쳐나와 사는 빈민가로 경찰은 물론 일반사람들은 이들을 '습지 쓰레기'라 부른다. 카야의 다른 별명이 '마시 걸', 이자 '습지 쓰레기'라 불리는 이유다. 카야는엄마,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버지에 이어 연인들에게 버려지면서 세상모두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끼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녀를 받아준건 습지 뿐이 아니다. 그랬다면 이 책은 그저 자연을 찬양하는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유색인이었던 점핑과 그의 아내 메이블, 그리고 오빠 조디의 친구이자 그녀의 연인이기도 했던 테이트가 그녀조차 느끼지 못했던 거의 모든 순간 그녀를 걱정하고 보듬어 준다.

 


 

옮긴이(역자 김선형)의 말을 읽다보면 이 소설에 왜그리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자 배경이된 습지와 생물들과의 관계를 그린 생태소설이다. 그리고 여기에 살인 미스터리와 법정스릴러까지 포함되어 있다. 얼핏보면 독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모든 요소를 한 데 넣은 가벼운 소설로 여길테지만 이 요소들의 연관성과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400여페이지의 결코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한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든다. 특히 습지에서 스스로 '버려진 존재'라고 느끼는 카야의 외로움을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했다. 역자의 말처럼 작가는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248쪽)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이전에 마더테레사 수녀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여러번 설파했다. 현대의 유럽은 가난으로 인한 기아가 아니라 내면의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 내면의 기아를 책임져야 한다고. 카야도 마찬가지다. 점핑을 만나면서 생계유지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테이트가 떠난 뒤 극심한 외로움으로 맘속 허기를 견디지 못해 체이스와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295쪽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매력은 초, 중, 결말에 따라 달랐다. 초반에는 어린 카야가 가정폭력과 학대를 견뎌내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연민과 걱정이었다면 중반부터는 점핑과 테이트의 등장으로 부디 완만하게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간다. 그와중에도 소설에 첨부된 지도에 그려진 '카야의 판자집'에서 '책읽기 통나무집'을 오가는 과정이 어느면에서는 낭만적으로 느껴져 마치 직장인들이 여행을 떠나 휴식을 즐기듯, 혹은 셰익스피어 베케이션과 같은 카야의 통나무집 방문에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 살인사건과 법정 장면이 두드러질 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결국 스릴러물이 가지는 공통된 의문, '누가, 왜 죽였는가'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책 전반적으로 '시'가 흐르고 그 시는 카야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남자들의 사랑과 삶 그자체와 자연을 대변하기도 했다. 간만에 어느 면으로 보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소설을 만나 책의 마지막을 덮고서도 그 만족감이 오래도록 남았다. 영화화 확정이란 소식이 그래서인지 정말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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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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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두 남녀가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우고, 많은 시련들을 지나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해피엔딩의 스토리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사랑속에 누군가의 감정이 무참히 짓밟혔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히 역사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였던 미클로스와 릴리를 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 '클라라'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이 모두 부정적으로 비춰질만한 사건이 이들의 연애사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더렵혀진 안경알 너머로 미클로스는 클라라의 눈빛 깊숙한 곳에 무궁한 절망감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두려움이 서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뜻밖의 발견이 그를 진정시켰다. 101쪽


미클로스는 분명 공포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사람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느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를 찾아온 클라라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미클로스와 릴리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사랑을 키웠다고 이야기했다. 사랑이란게 서로 마음이 맞으면 천국이지만 한쪽의 마음만 불타오르면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이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지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무시하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행해서는 안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릴리와 이미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 미클로스는 클라라의 일방적인 사랑을 '거짓말'로 피해버렸다. 다름아닌 자신의 친구 해리를 자신이라고 속인것이다. 그런데 거짓말로 끝나지 않는다. 당시 해리는 성기능이 회복되어 가는 중이었고 그녀가 누구라도 그것을 '테스트'할 수 있다면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클라라는 해리를 미클로스, 자신과 사상이 똑같고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라고 여겨 먼 길을 달려온 연인이라 착각하고 그와 관계를 하게 된다. 이 내용을 책에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마치 미클로스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여성을 꽤나 명석하게 처리한 것처럼 나오고, 동시에 해리는 자신의 성기능이 어느정도 회복했음을 확인한 것으로 나온다. 이게 무엇인가. 아무리 미클로스와 릴리의 사랑이 전쟁과 시한부 삶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이겨낸 숭고한 사랑일지라도 누군가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했다면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미클로스는 릴리와의 만남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도 한다. 신이 없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상황을 견뎌낸 릴리에게 자신의 종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거짓으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가능한 이야기다. 또한 어떻게든 릴리와 결혼을 하고자 제한적인 개종을 하려고 했던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못하는 신부의 감탄과 경의를 비웃는 듯한, 마치 모든 종교가 별거 아니라는 식의 오만한 미클로스의 태도는 점점 더 그의 사랑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뿐 아니라 시종일관 세상 잘난 인간이 저 혼자인 것처럼 타인을 무시하는 미클로스의 태도는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며, 기적이라 부를만한 질병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아름답게 볼 수 없다. 미클로스의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알게된 편지와 부모님의 연애사를 소설<새벽의 열기>는 내 감정과 내 사랑만 소중하다고 믿는 이기의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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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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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책의 제목은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지만 리뷰에서만큼은 '나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면 우리라는 공동체적 테두리안에서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회피 혹은 아예 상관없다고 외면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속하기 때문에 '나'로 한정지어 이야기해보련다. 이 리뷰를 통해 저자의 바람처럼 빈곤의 문제가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주면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기쁠 것 같다.


이 책은 빈곤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빈곤이라는 주제가,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고 가난의 피폐함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대안적 연대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고투해온 활동가들이 점점 한국 사회 공론의장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닌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8쪽


이 책은 조문영 교수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로 있으면서 2018년 2학기에 개설된 '빈곤의 인류학'에 함께했던 40명의 학생들과 반빈곤 운동단체 활동가들가의 인터뷰를 엮은 내용이다. 활동가들이 연대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각각 홈리스, 철거민, 장애인, 노점상, 쪽방촌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을 조별로 나누어 인터뷰한 것으로 중점이 되는 사건, 활동의 배경과 현재 등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활동가를 통해 빈곤을 마주하게 된 까닭은 수업이라는 제한적인 측면도 있지만 활동가들의 역할과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함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가. 2009년 1월에 있었던 사건으로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10년전이지만 워낙 배경이 화제가 되었던터라 기억하는이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당시 중학생이었으니 이번 활동을 통해 알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각각 나누어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바로 위에 저 문구,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장은 어쩌면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사람이 있다.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철거지역의 망루속에 사람이 있고, 쪽방촌에 사람이 있고, 집을 잃고 방황하는 서울역에도 떼잡이가 아닌 사람이 존재했다. 용산참사와 관련한 정부와 경찰청장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망루에서 함께 연대했던 이들이 '공동주범'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었을 뿐이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우리는 강의실에서 접하는 빈곤은 막연하고, 빈곤 당사자는 모호한 집단처럼 느껴졌다.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이해로는 사회복지와 빈곤의 관계를 넘어서는 상상에 다다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지금, 여기의 빈곤'을 제대로 보고 만나야 한다. 78쪽

참혹한 사건인줄은 알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철거민협회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보상외에 '추가적'인 이익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던, 폭력적인 시위였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던가. 철거와 관련해서는 철거민내에서도 연대가 쉽지 않다. 상가주민과 주거민의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상가주민은 빠른 보상으로 경제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주거민의 경우는 말그대로 집이 보장되어야 하는것이다. 이때 쉽게 생각하는 것이 보상을 받으면 그 돈으로 집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근데 만약 세입자라면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당장 집을 구하는 것이 쉬운가. 용산참사의 경우가 이전보다 더 문제가 컸던것은 지나치게 빠른 결정과 철거로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는데에 있다. 그런상황에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철거민들을 '떼잡이'라고 폄하하고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리를 내는 순간 그것이 폭력행위가 되고 떼잡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민운동은 보이지 않는 빈곤을 의제화하거나 빈곤 당사자들을 발굴해 공론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갖는다. 지역, 마을에는 다양한 주민들이 살고 있고 그 안에 분명 비가시화된 빈곤이 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147쪽


1970년 전후로 서울에서는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폭력적인 철거가 자행되어 왔다. 시세차익을 통해 부를 이룬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부자가 되고 그때 터전을 잃고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 밀려났던 사람들은 타의적 빈곤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운운하며 자립하지 못하는 부정적의미의 의존자들로 치부하며 외면했던 것이다. '태어날 때 가난은 자신의 탓이 아니지만 죽을 때 가난은 자신의 탓'이라는 말이 떠돈다. 과연 그럴까. 똑같이 출발했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같은 출발선이 아닌데, 사회구조는 계속해서 가난한 이에게 선을 긋고 있는데 저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또다른 의미의 가해가 되고 폭력이 된다. 그런가하면 노점상을 바라보는'나'의 시선도 얼마나 편협했던가. 노점하는 사람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아파트를 사들일정도의 부를 축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언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것이 전부인가. 무언가를 판단하려 할 때 왜 편현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을 '잘 알지 못해서'다. 가난해본 적이 없으니 그들이 무능한 탓이었고, 집이 없는 것은 방탕하게 생활했던 것이며 장애인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외면'하면 지금의 내 삶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몰랐지만,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 목소리를 듣게 된 우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범주는 달라지고 관계는 새롭게 맺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323쪽

그렇다면 이 책은 온통 '나'에게 외면의 잘못을 따지고 들며 현실을 올바로 못보고있음을 탓하고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알려줄 뿐이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당사자'가 될 수 있다. 활동가들은 바로 그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한때 낙골이라 불렸던 난곡을 포함한 관악마을단체와 쪽방촌의 동자동 공동체등을 보면 '나'의 외면에서 '우리'로 연대할 때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고 빈곤에서 반빈곤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주민'이 되어 함께 해결하고자 할 때 비로소 '나'는 가난을 더이상 외면하지도 빈곤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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