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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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두 남녀가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우고, 많은 시련들을 지나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해피엔딩의 스토리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사랑속에 누군가의 감정이 무참히 짓밟혔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히 역사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였던 미클로스와 릴리를 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 '클라라'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이 모두 부정적으로 비춰질만한 사건이 이들의 연애사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더렵혀진 안경알 너머로 미클로스는 클라라의 눈빛 깊숙한 곳에 무궁한 절망감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두려움이 서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뜻밖의 발견이 그를 진정시켰다. 101쪽


미클로스는 분명 공포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사람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느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를 찾아온 클라라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미클로스와 릴리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사랑을 키웠다고 이야기했다. 사랑이란게 서로 마음이 맞으면 천국이지만 한쪽의 마음만 불타오르면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이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지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무시하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행해서는 안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릴리와 이미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 미클로스는 클라라의 일방적인 사랑을 '거짓말'로 피해버렸다. 다름아닌 자신의 친구 해리를 자신이라고 속인것이다. 그런데 거짓말로 끝나지 않는다. 당시 해리는 성기능이 회복되어 가는 중이었고 그녀가 누구라도 그것을 '테스트'할 수 있다면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클라라는 해리를 미클로스, 자신과 사상이 똑같고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라고 여겨 먼 길을 달려온 연인이라 착각하고 그와 관계를 하게 된다. 이 내용을 책에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마치 미클로스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여성을 꽤나 명석하게 처리한 것처럼 나오고, 동시에 해리는 자신의 성기능이 어느정도 회복했음을 확인한 것으로 나온다. 이게 무엇인가. 아무리 미클로스와 릴리의 사랑이 전쟁과 시한부 삶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을 이겨낸 숭고한 사랑일지라도 누군가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했다면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미클로스는 릴리와의 만남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도 한다. 신이 없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상황을 견뎌낸 릴리에게 자신의 종교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거짓으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가능한 이야기다. 또한 어떻게든 릴리와 결혼을 하고자 제한적인 개종을 하려고 했던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못하는 신부의 감탄과 경의를 비웃는 듯한, 마치 모든 종교가 별거 아니라는 식의 오만한 미클로스의 태도는 점점 더 그의 사랑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뿐 아니라 시종일관 세상 잘난 인간이 저 혼자인 것처럼 타인을 무시하는 미클로스의 태도는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며, 기적이라 부를만한 질병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아름답게 볼 수 없다. 미클로스의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알게된 편지와 부모님의 연애사를 소설<새벽의 열기>는 내 감정과 내 사랑만 소중하다고 믿는 이기의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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