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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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할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0쪽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숲속 깊은 어딘가, 야생동물이 야생동물 답게 살고 있는 곳이라고 테이트는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 저마다 자신들의 모습을 온전히 보호받거나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의 제목으로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모에게서 버려진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소녀가 커가면서 사랑을 하고 실연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늘 그자리에서 자신을 받아준 습지(자연)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깨닫고 배워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단조롭거나 교훈적으로 흐르진 않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습지는 가난한 사람, 이민자, 범죄자들이 마을에서 도망쳐나와 사는 빈민가로 경찰은 물론 일반사람들은 이들을 '습지 쓰레기'라 부른다. 카야의 다른 별명이 '마시 걸', 이자 '습지 쓰레기'라 불리는 이유다. 카야는엄마,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버지에 이어 연인들에게 버려지면서 세상모두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끼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녀를 받아준건 습지 뿐이 아니다. 그랬다면 이 책은 그저 자연을 찬양하는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유색인이었던 점핑과 그의 아내 메이블, 그리고 오빠 조디의 친구이자 그녀의 연인이기도 했던 테이트가 그녀조차 느끼지 못했던 거의 모든 순간 그녀를 걱정하고 보듬어 준다.

 


 

옮긴이(역자 김선형)의 말을 읽다보면 이 소설에 왜그리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자 배경이된 습지와 생물들과의 관계를 그린 생태소설이다. 그리고 여기에 살인 미스터리와 법정스릴러까지 포함되어 있다. 얼핏보면 독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모든 요소를 한 데 넣은 가벼운 소설로 여길테지만 이 요소들의 연관성과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400여페이지의 결코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한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든다. 특히 습지에서 스스로 '버려진 존재'라고 느끼는 카야의 외로움을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했다. 역자의 말처럼 작가는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248쪽)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이전에 마더테레사 수녀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여러번 설파했다. 현대의 유럽은 가난으로 인한 기아가 아니라 내면의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 내면의 기아를 책임져야 한다고. 카야도 마찬가지다. 점핑을 만나면서 생계유지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테이트가 떠난 뒤 극심한 외로움으로 맘속 허기를 견디지 못해 체이스와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295쪽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매력은 초, 중, 결말에 따라 달랐다. 초반에는 어린 카야가 가정폭력과 학대를 견뎌내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연민과 걱정이었다면 중반부터는 점핑과 테이트의 등장으로 부디 완만하게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간다. 그와중에도 소설에 첨부된 지도에 그려진 '카야의 판자집'에서 '책읽기 통나무집'을 오가는 과정이 어느면에서는 낭만적으로 느껴져 마치 직장인들이 여행을 떠나 휴식을 즐기듯, 혹은 셰익스피어 베케이션과 같은 카야의 통나무집 방문에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 살인사건과 법정 장면이 두드러질 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고 결국 스릴러물이 가지는 공통된 의문, '누가, 왜 죽였는가'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책 전반적으로 '시'가 흐르고 그 시는 카야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남자들의 사랑과 삶 그자체와 자연을 대변하기도 했다. 간만에 어느 면으로 보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소설을 만나 책의 마지막을 덮고서도 그 만족감이 오래도록 남았다. 영화화 확정이란 소식이 그래서인지 정말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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