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츠 러브레터와 시
존 키츠 지음, 김용성 옮김 / 바른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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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사계절


사계절이 채워져야 한 해가 되듯

사람 가슴엔 사계절이란 게 있지

봄은 활기차 해맑은 공상이 술술

별별 아름다움 다 흡수하는 계절

여름은 달콤한 봄의 생각 샘솟아

생기 넘치게 빛깔 나게 즐기면서

되새겨 천국 가까이 맛보는 계절

가을은 고요한 작은 만을 품어서

영혼에 날개 고이 접어 유유하게

흐뭇이 안개도 보고 젖어 가다가

빠져드니 다 무심히 아름다운 것

그리 개울처럼 흐르게 두는 계쩔

겨울은 하얗게 말라 가는 껍데기

천성대로 담대히 놓고 가는 계절


낭만주의 시인 중 한명인 존 키츠. 문단과 독자에게는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노래>등이 많이 알려져있지만 내게는 서두에 발췌한 작품 <사람의 사계절>이 가장 와닿았다. 통속적으로 사랑을 노래하지 않았고 자연에서 영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작가라는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고 사람에게 사계절이 있다고 노래했음에도 정작 본인은 26세에 요절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폐결핵으로 엄마아 동생 그리고 자신도 결국 폐결핵으로 인해 사망했던 그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접했기에 처음에는 문학이 아닌 의학과 약학을 공부했고 실제로 의사 및 약사 자격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그러다 시를 통해 영혼을 치유하는 쪽으로 자신의 삶을 정한 후 제대로된 문학, 시작법을 배운적도 없으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쓴 존 키츠. 책의 서문에는 번역시가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까닭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번역되어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번역시의 경우 역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처럼 작가가 쓴 러브레터와 시,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사실 이 책을 읽기전에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다름아닌 러브레터였던 내게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20대의 청년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리타분하게 적진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문체가 시인의 러브레터처럼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시는 또 달랐다. 내가 기대했던 자연과 삶의 대한 진지함과 자기만의 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역자와 문단이 칭찬했던 바로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같은 역자의 번역이고 생각해보니 시인으로 시를 적을 때와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쓸 때의 청년일 때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어느정도 헤아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러브레터 부분은 시작품을 읽은 뒤 다시 돌아와 다시금 읽게 되었다. 불치병을 앓고 있고, 사랑하는 여인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저 생각한다는 것자체로 나를 호흡하게 할 만큼 사랑스러운 그 여인에게 편지를 쓰는 청년의 문체는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자신이 위로받았던 시를 첨부하기도 하고, 때론 연인에게 보낼 시를 찾다보니 본인도 다시금 위안이 받기도 한다. 환경적으로 또 병세로 인해 자주 쓸 수 없지만 연인에게는 하루 빨리 자신에게 답장을 써달라고 재촉도 하고 질투도 하면서 사랑해 마지 않는 연인에게 아, 이보다 더 어떻게 진지하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볍다고 느꼈던 것은 그저 '시인'이란 테두리에 가둔 내 선입견때문이었나 싶어졌다.


1820년 2월


내 사랑 패니에게


-중략-


네가 나를 여전히 '내 사랑'이라고 불러주면 참 좋겠어. 행복하고 기분 좋아하는 널 바라보기만 해도 내겐 커다란 위안이 되거든. 내가 회복되어 네가 행복해져도 그 행복은 실은 절반도 안 되는 행복이라고 내가 그리 믿게 해주면 안될까?


두 번째 읽을 때는 처음과는 달랐다. 아, 얼마나 간절하게 연인의 답장을 기다리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혹 감추진 않을까 싶어 조바심내는 그저 한 남자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역자서문에 적혔던 다음의 말이 무슨뜻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키츠 작품을 잘 이해하려면 '존 키츠'라는 명성에 빠져들기보다, '이름 없는 이십 대 중반 한 청년'이 되어 그의 러브레터와 시를 진솔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서문을 다 읽고서도 난 역자가 우려했던 바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만것이다. 지금이야 유명한 시인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빈민 출신이라 외면당했고, 또 질병으로 인해 미래마저 불투명했을 청년 키츠. 러브레터에게 기대했던 나와 같은 독자들이여. 부디 나처럼 우를 범하지 말고 역자의 조언을 꼭 들어주길 바란다.





존 키츠 러브레터와 시/ 존 키츠 지음/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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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아이의 놀이터가 되다 - 유튜브로 세상을 보는 아이, 유튜브로 아이를 이해하는 엄마
니블마마 고은주.간니 닌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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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닌니 다이어리'의 니블마마 고은주의 양육법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찾아보던 중 간니닌니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기있는 어린 유튜버들의 경우 적극적인 부모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에 내가 뒤쳐지만 내 아이도 뒤쳐지겠다는 생각에 불안함마저 느꼈었다. 물론 이전까지 내게 있어 유튜브는 특정인들의 오락거리정도였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니블마마의 말처럼 유년시절 부모님들이 TV보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아이들이 식사때 유튜브 시청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플랫폼을 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디지털 플랫폼을 경험한 세대로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부모만 현재에 머물러 변해 가는 상황을 외면하는 건 시대에 뒤처진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부모 역시 유튜브를 비롯한 디지털 플랫폼을 알아야 한다. 16-17쪽


굳이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직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기에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플랫폼을 외면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선배양육자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게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1인 미디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왜 유튜브를 보는가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아이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누가봐도 설득력이 있었다. 무조건 무한대로 보게하는 것도 아니었다. 관련 규칙을 정해주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또한 유튜브와 연결된 좋지 않은 영상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아이들과 약속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것처럼 식사중 유튜브 시청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는데 니블마마의 경우 이부분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미리 약속을 했다.


1. 하루에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시간 정하기

2. 일어나자마자, 잠자기 전, 밥 먹을 때는 유튜브 시청 금지

3. 유해 콘텐츠 차단 기능 설정


이렇게 규제를 하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유튜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조건적으로 '안돼'는 부모가 편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이 되었다. 아이가 유튜브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것이 아이들의 얼굴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조차 아이들 사진을 SNS에 올릴 경우 악플이 달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부분에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상을 만드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간니닌니의 다이어리의 탄생은 아빠의 암투병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출발인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컨텐츠는 점차 아이들의 호기심과 즐거움은 물론 부모가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나레이션을 해주면서 예전에 잠시 경험했던 리포터의 경험을 되살리면서 자신이 원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예인 가족들이 주목을 받게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온가족이 모두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영상을 보게 되면 가족이 화목해보이는 모습만 보더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무엇보다 니블마마의 경우처럼 뜻하지 않았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했던 일을 아이들과 함게 나누고, 그것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 엄마와 아이가 함께 꿈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132쪽


유튜브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공부하는 엄마, 책 읽는 엄마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왔다.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발맞춰 유튜브를 잘 활용하는 엄마를 추가하고 싶다. 특히 유튜브가 아이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주기 까지 한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나중에 아이와 함께 유튜브 컨텐츠를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책을 읽기전까지 저자가 언급했던 모든 우려와 부정적인 생각을 읽으면서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더불어 유튜브 뿐 아니라 내가 가지는 편견이나 사고방식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나쁘고 틀린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부모가 먼저 가져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깨달았다. 이 책의 소개문구에는 '유튜브 때문에 전쟁 중인 가족을 위한 책'이란 문구와 함께 '디지털 시대, 아이와의 소통이 어려운 부모를 위한 안내서'라는 내용이 앞뒤 표지에 인쇄되어 있다. 정말이지 딱 그에 맞는 양육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대에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양육서라고 말하고 싶다.



유튜브! 아이의 놀이터가 되다 / 니블마마 고은주 그리고 간니 닌니 지음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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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인문 산책 - 역사와 예술, 대자연을 품은
홍민정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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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인문 산책>의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 관심은 북유럽 작가가 쓴 동화책과 소설책을 찾아읽어가며 커졌으며 책의 구성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5개국을 묶게 된 까닭도 북유럽 여행 가이드 책마저도 5개국을 묶어 함께 출간되었기에 그 까닭이 궁금해져서라고 했다. 실제로 이번 달에 읽었던 북유럽 여행가이드 북에서도 5개국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에 관심이, 특히 아이슬란드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 까닭이 여러차례 말한 것처럼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관람한 이후인데 저자 역시 아이슬란드 편에서 해당 영화의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책을 읽다보니 스칸디나비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 핀란드와 아이슬란드까지 합쳐 노르딕 국가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경우는 언어와 인종이 비슷하며 심지어 약간의 어색함이 있을 뿐 각자의 모국어를 이용해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다. 사실 북유럽이라고 했을 때 저마다 떠오르는 대표국가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핀란드가 그렇다. 저자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꽤나 고생스런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한다. 스웨덴에 지배를 받기도 했고 1800년 초부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수도인 헬싱키는 1812년에 수도로 지정된 다른 유럽이나 국가에 비해 제법 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런 안타까운 핀란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소개되어 있는 <언노운 솔저>와 <나의 어머니>가 바로 전쟁에 휘둘렸던 핀란드인들의 삶을 그렸다고 하는데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랄 뿐이다. 다소 암울한 핀란드의 이야기를 넘어 핀란드하면 떠오르는 캐릭터 '무민'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에 간다면 '무민월드'방문이 거의 필수코스 인것처럼 항구 마을 난탈리의 작은 섬 전체가 무민 테마파크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무민 월드의 중심인 파란색 무민의 집을 찾아가 꾸밈없이 언제든 불청객을 맞아주는 무민가족의 넉넉함을 잠시라도 느껴볼 수 있음 좋겠다. 정겨운 무민이야기와는 달리 겨울하면 떠오르는 동화인 <눈의여왕>이 사는 라플란드, 스웨덴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최근들어 스톡홀름하면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자 영화속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라플란드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북부와 러시아의 콜라반도를 아우르는 북유럽에서도 최북단 북극권 지역(50쪽)을 말한다. 며칠 동안 백야가 이어지는 그곳 라플란드가 동화의 배경이다. 동화하면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도 빠질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유년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지 않기란 정말 어렵다. 기억에 남는 동화는 역시나 <미운 오리 새끼>. 덴마크 편에서 만날 수 있는 또다른 놀라운 사실은 디즈니보다도 100년이나 앞서 놀이공원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100년도 더 된 롤러코스터가 운영중인 티볼리 공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심지어 1955년 개장한 디즈니랜드가 실제로 티볼리 공원을 벤치마킹했다고 하니 롤러코스터 매니아라면 디즈니랜드와 함께 티볼리 공원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수필같기도 하면서 인문서적이며, 수필인듯한 가볍고 정겨운 문체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책과는 달리 리뷰를 적는것도 읽고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 하나하나를 연결하다보니 책의 순서와는 좀 다르게 엉켜져버렸다. 마치 저자가 북유럽에 관심이 생긴 후 동화책을 찾았다고 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과 작가를 따라 북유럽 인문여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행 가이드북이나 누군가의 여행기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던 장소와 해당 국가의 역사적 배경을 정말이지 편안하게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 달에 북유럽 관련 책을 벌써 3권째 읽다보니 이젠 정말 북유럽에 발을 올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충동이 자꾸 커진다.


서유럽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북유럽에는 소박하면서 깊은 맛이 있다. 춥지만 차갑지 않고, 차분하지만 어둡지 않다. 그래서 북유럽을 알면 알수록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을 손에 든 여러분도 나와 같을 것이라 믿는다. - 저자서문 중에서-




북유럽 인문 산책 / 홍민정 지음 /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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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하드커버 에디션)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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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원이란 일시적인 거야. 난 그애들에게 일 분쯤 시간을 벌어줬어. 그 일 분으로 한 시간을 더 벌 수도 있고, 그 한 시간으로 일 년을 벌수도 있지. 아무도 그들에게 영원한 시간을 줄 순 없어, 헤이즐 그레이스. 하지만 내 인생이 그 애들에게 일 분을 벌어 줬어. 그건 무가치한 게 아니야." 67쪽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소설로 초경이 시작되고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에 암환자라는 진단을 받게 된 아직 어린 열여섯의 소녀 헤이즐과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거스, 어거스터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헤이즐과 거스는 첫 눈에 반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둘의 만남은 서로가 아끼는 책을 교환하면서 부터 좀 더 진지해진다. 헤이즐의 [장엄한 고뇌]와 거스의 [새벽의 대가]는 전혀 다른 장르의 소설이다. 흔히 누군가와 친분을 쌓고자 할 때 우선은 같은 취미가 있는지, 만약 영화관람이나 독서라면 취향이 비슷한지를 두고 그 사람과의 친분을 발전시킬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거스의 외모가 완벽하게 맘에 들어서일수도 있겠지만 추가로 시리즈를 구매해서 읽을만큼 거스가 권해준 책에 빠져들게 된다. 거스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인연을 만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초반부터 이 둘의 만남이 꽤나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읽다보면 스스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의 무게와 부담, 그리고 고통이 느껴진다. 서두에 발췌한 내용을 봐도 마찬가지다. 위의 대화는 아이작과 거스가 진행하는 게임상황을 두고 나누는 대화인데 꽤나 진지하다. 특히 말기암환자인 헤이즐에게 있어 저 내용은 꽤나 심오한 편인데 헤이즐이 오랜시간 살아갈 수 없으리란 것을 아는 독자인 내게도 마찬가지다. 아픈 사람, 떠날 시간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병이 없거나 건강한 사람은 마치 평생을 살 것 처럼, 언제든 누군가에게 오랜 배려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삶의 데드라인이 언제인지는 알 지 못하고 나중에란 말로 누군가를 위해 '일 분'을 벌어주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여자친구와 '언제까지나'라는 말을 수 천번이고 주고 받는다. 안암으로 한 쪽눈을 잃고 이제 다른 눈마저 내놓아야 할 아이작에게 그 말은 일시적인 애정표현이 아닌 '약속'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일단 지금 이순간'이란 단어를 생략한 거라고 말할정도로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신체적 아픔을 가진 이들의 사랑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지금껏 내가 해왔던 사랑, 연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거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크게 아프거나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되면 그저 별일없이 자고 일어나 일을 하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가하면 다양한 변명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던 다짐이나 결심을 쉽게 포기하거나 방치하고 있었음도 알게 된다.


웨이터가 사라졌다. 우리는 하늘에서 콘페티가 떨어져 산들바람에 땅위를 스치고 날아가 운하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저걸 짜증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어."

어거스터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금방 익숙해지니까." 173쪽


분명 새롭고 좋았던 것, 함께 있어 행복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익숙해져 때로는 짜증을 유발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부모자식간에도, 연인사이에서도 또 직장동료나 친구들사이에서도 '짜증난다'라고 느꼈던 적이 많았을 것이다. 여름에는 더위가, 겨울에는 추위가 우리의 짜증을 유발한다.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언제든 늘, 또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정말 예쁜 사랑이야기라고 느껴지는 이 책의 내용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오만함에서만 벗어나도 헤이즐과 거스의 사랑을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지음 /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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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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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막막하고 공허했던 삶이 어쩌면 아무렇게나 먹은 밥과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밥 먹기를 그리 허술히 하면서 삶이 풍성하길 바랐다니. (9쪽)


24살. 집에서 나와 혼자살기 시작하면서 시련도 있었고 행복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되돌아보니 신기하게도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을 때는 거의 힘들었던 때였다. 끼니만 잘챙겨먹어도, 밥만 제대로 먹어줘도 견뎌내기가 수월했었던게 아닐까 싶다. 책<밥하는 시간>의 프롤로그에는 저자가 한 끼 밥상을 차리는 장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밭에서 따온 쌈채소며 오이 그리고 고추 몇 개까지 그 풍경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져 입맛을 돋울만큼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책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을 찾기까지 저자의 삶이 그리 순탄할리 없다. 시골로 내려가 집을 수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2장 집을 짓다편에서는 백 년이 된 집을 고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부분은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를 연상케했다.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을 도시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워 남매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 집을 고치고 청소하는 장면이 실사가 되어 펼쳐진다.


"이런 헌 집을 고치는 일은 손바느질 가은 거예요. 한 땀, 한 땀 하는 거지. 새 집 짓는 거야 재봉틀로 들들 박는 것처럼 쉽지, 쉬워." (48쪽)


몇 년 전부터 젊은사람이 드문 농가에서는 살 집을 줄테니 내려오라는 귀농정책이 한창 유행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번번이 좌절하고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 집 같은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엄쳥난 노력을 요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라면 새 집을 짓겠지만 위의 발췌문처럼 새집을 짓는것도 만만치 않지만 고쳐쓰는 것은 그보다 몇 배의 수고가 들어간다. 귀농을 쉽게, 밥 한번 제대로 먹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떠나고픈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까지는 마치 귀농의 안락함과 고단함이 전부인듯 싶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곳이 어디든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공감과 깨달음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저자의 시골이 아닌 삶 그자체의 정착기였다.


나는 더 이상 삶에서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냥 살면 되었다. 그러니 죽는다 해도 눈을 감지 못할 한스러움이나 안타까움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들도 다 컸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 두려웠다. 처참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한다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93쪽


3장 몸을 읽는시간은 나도 어느새 청년기를 지나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사는동안 죽음이 크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두려웠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검사를 받으러 가는 여정이 아주 오래전 병원에 입원했던 때나 올 해 초부터 수차례 병원을 드나들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 더 몰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저자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펼쳐지면서 다시 밥으로, 또 자연 그리고 집으로 이야기는 옮겨간다.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아쉬웠던 적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또한 나와 삶이 비슷하거나, 내 삶을 좀 이해해주었음 싶은 이들에게 억지스레 껴안기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아무리 맛나고 푸짐한 먹방을 보더라도 내 입에 들어가 밥알 한 알 한 알을 음미하는 것만 못하듯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리뷰를 아무리 보아도 드문드문 발췌문을 본다하더라도 이 책 전체를 직접 한 자 한 자 읽는것만 못하다.


인간이 어떠하든 자연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이 나와 무관하게 변함없다는 사실은 든든하다. 그런 자연 앞에서 슬픔은 자폐가 되지 않는다. 실컷 슬퍼하고 나면 푸르른 하늘이 거기에 있다. 반짝거리는 햇살과 볼을 스쳐가는 바람과 나무와 풀들이 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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