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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평점 :
그토록 막막하고 공허했던 삶이 어쩌면 아무렇게나 먹은 밥과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밥 먹기를 그리 허술히 하면서 삶이 풍성하길 바랐다니. (9쪽)
24살. 집에서 나와 혼자살기 시작하면서 시련도 있었고 행복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되돌아보니 신기하게도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을 때는 거의 힘들었던 때였다. 끼니만 잘챙겨먹어도, 밥만 제대로 먹어줘도 견뎌내기가 수월했었던게 아닐까 싶다. 책<밥하는 시간>의 프롤로그에는 저자가 한 끼 밥상을 차리는 장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밭에서 따온 쌈채소며 오이 그리고 고추 몇 개까지 그 풍경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져 입맛을 돋울만큼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책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을 찾기까지 저자의 삶이 그리 순탄할리 없다. 시골로 내려가 집을 수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2장 집을 짓다편에서는 백 년이 된 집을 고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부분은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를 연상케했다.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을 도시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워 남매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시골로 내려가 집을 고치고 청소하는 장면이 실사가 되어 펼쳐진다.
"이런 헌 집을 고치는 일은 손바느질 가은 거예요. 한 땀, 한 땀 하는 거지. 새 집 짓는 거야 재봉틀로 들들 박는 것처럼 쉽지, 쉬워." (48쪽)
몇 년 전부터 젊은사람이 드문 농가에서는 살 집을 줄테니 내려오라는 귀농정책이 한창 유행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번번이 좌절하고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 집 같은 느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엄쳥난 노력을 요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라면 새 집을 짓겠지만 위의 발췌문처럼 새집을 짓는것도 만만치 않지만 고쳐쓰는 것은 그보다 몇 배의 수고가 들어간다. 귀농을 쉽게, 밥 한번 제대로 먹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떠나고픈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까지는 마치 귀농의 안락함과 고단함이 전부인듯 싶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곳이 어디든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공감과 깨달음이 찾아왔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저자의 시골이 아닌 삶 그자체의 정착기였다.
나는 더 이상 삶에서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냥 살면 되었다. 그러니 죽는다 해도 눈을 감지 못할 한스러움이나 안타까움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들도 다 컸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 두려웠다. 처참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한다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93쪽
3장 몸을 읽는시간은 나도 어느새 청년기를 지나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사는동안 죽음이 크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두려웠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검사를 받으러 가는 여정이 아주 오래전 병원에 입원했던 때나 올 해 초부터 수차례 병원을 드나들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 더 몰입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저자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펼쳐지면서 다시 밥으로, 또 자연 그리고 집으로 이야기는 옮겨간다.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아쉬웠던 적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또한 나와 삶이 비슷하거나, 내 삶을 좀 이해해주었음 싶은 이들에게 억지스레 껴안기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아무리 맛나고 푸짐한 먹방을 보더라도 내 입에 들어가 밥알 한 알 한 알을 음미하는 것만 못하듯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리뷰를 아무리 보아도 드문드문 발췌문을 본다하더라도 이 책 전체를 직접 한 자 한 자 읽는것만 못하다.
인간이 어떠하든 자연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이 나와 무관하게 변함없다는 사실은 든든하다. 그런 자연 앞에서 슬픔은 자폐가 되지 않는다. 실컷 슬퍼하고 나면 푸르른 하늘이 거기에 있다. 반짝거리는 햇살과 볼을 스쳐가는 바람과 나무와 풀들이 있다. (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