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석의 100억짜리 기획노트
하우석 지음 / 새로운제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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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잘하고 싶은가? 아니면 기획서 작성을 큰 부담없이 완벽하게 하고 싶은가? 굳이 한가지를 꼽으라면 직장인 입장에서야 기획자체보다는 기획서라도 깔끔하게 뽑을 수 있길 바랄 것이다. 상품기획, 이벤트기획, 신규브랜드 기획을 저마다 '기획'부서가 없는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혹 부서는 없더라도 모든 업무의 기본이 바로 기획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아이템만으로는 멋진 기획서를 쓸 수 없기에 우리가 늘 택하는건 '실무 혹은 실전에서 바로 써먹는 프레젠테이션 100'이라는 타이틀에서 크게 멀지않은 도서나 동영상 강의를 참고하게 된다. 이전에 출간된 천재가 된 홍대리의 저자, 하우석이 그래서 이전 책을 좀 더 보강시켜서 우리를 찾아왔다.

 

저자는 말한다. 기획, 그거 어려운건 아니지만 잘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활에 모든 것이 기획이라는 사고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가족끼리 바캉스를 떠난다거나 회사에서 워크샵을 가기위해 필요한 것들 모두를 우리는 계획도 하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기획'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획을 잘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모든 분야의 트렌드를 섭렵하라를 포함, 외모에 신경을 쓸 것을 구체적인 키와 몸무게까지 제시하며 조언해준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보아왔던 기획관련 도서와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치만 다음에 제시하는 항목에서는 의아할 것이다. 영어가 아닌 국어에 목숨걸라고 말한다. 외국업체에 우리의 기획을 설득시킬 때 유창한 영어실력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획력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스피치와 이해력 둘다 아직 부족한 독자라면 국어능력 파워 업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문학작품을 주로 읽게 되는 소프트 리딩과 철학서적 이나 레포트 기획서등을 포함한 하드리딩을 번갈아 트레이닝 하는 방법으로 3개월 정도면 국어실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획은 혼자하지만 그 기획의 밑거름을 만드는 것은 친분과 충분한 사고력이라고 말한다. 108번 번뇌할 정도로 고민하고 완벽에 이르는 길은 부단한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기획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과연 이 모든 비법을 이렇게 드러내놓고 알려줘도 되는건가 싶다. 마치 이런 의문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저자는 말한다. 똑같이 비법을 알려줘도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게으름 없이 꾸준히 행하는 사람이라고. 또 책을 읽고 기획을 하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독자가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책 속에는 말 그대로 100억짜리 기획을 터뜨릴 수 있는 비법이 가득하다. 중요한건 그것을 꾸준히 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린것이다. 열심히 따라만 한다면 이외에 다른 기획서적은 필요 없을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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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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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들은 평화적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저 학원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에게, 삶이 무료해서 우울증에 빠지는 어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는 한다. '남녀가 모두 군대에 가야 하고, 당장 내 팔다리가 오늘 내일 상대의 폭탄테러에 떨어져 나갈 위험이 없는 데 뭐가문제야.'하고 말이다. 지나치게 비약적이어도 그곳은 그토록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스라엘 소녀 탈이 가자지역에서 군복무중인 오빠 에탄에게 '편지가 담긴 병'을 바다에 띄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탈이 편지를 띄울 계기가 된 사건역시 바로 주변, 아침이나 저녁에 흔하게 친구들과 혹은 아빠와 함께 들렸던 카페에서 자살테러가 일어난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처럼 내 나라, 내 민족에 이어 '내 가족', '나 자신'에게 문제가 일어날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든 도구를 통해 방어태세를 갖춘다. 탈의 아버지 역시 딸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오빠 에탄 덕(?)분에 편지가 담긴 병은 자신과 동갑인 '나임'에게 전해진다. 둘의 편지는 이메일을 통해 왕래하게 되는데 처음 나임은 팔레스타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탈에게 조롱과 비난섞인 그러면서도 탈에 대한 호감도 함께 띄운다. 양쪽에서 테러와 보복테러가 일어나면서 서로에게 '생존'이란 것이 중요해짐을,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아닌 '탈' 과 '나임'으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민족'으로의 삶만 강조하던 나임에게는 대단히 큰 변화이다. 작가 발레리 제나티는 그처럼 존재에 대한 중요성이 '종교', '인종'등의 가치판단보다 우선시 될 경우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을거라는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저자가 처음부터 우리에게 원한 것은 분쟁의 해결을 위한 투쟁이나 사회참여라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의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그로인한 인간적인 삶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탈이 나임에게 띄운 편지처럼 불특정 독자인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탈과 나임은 서로에게 가진 호감을 인정하고 뼈와살을 가진 상태로의 만남을 기약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나임은 기한을 정해둔 체로 그녀에게 마지막을 고한다. 독자는 나임의 정한 그 기한내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사라지길 함께 염원하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이 발표된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뉴스에서는 평화적 해결이나 체결이라는 기사는 만날 수 없다. 또 어디선가 자살테러가 발생되고 그로인해 또 소중한 '존재'가 죽어가고 있다. 작가 발레리가 바라는 세상, 탈과 나임이 원하는 그저 '나'와 '너'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세상이 오기에는 역사적인 우월성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일부 지도권층에 힘이 더 강한 까닭인것이다. 탈의 친구말처럼 역사는 차라리 배우지 않는 편이 그 두민족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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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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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우리에게 있어 전하는 의미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세속적이다. 형제 많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 '방'은 다른 형제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며 경제적인 문제서 비롯된 가정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내가 아닌 부모로부터 극복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여러개의 방을 소유한 누군가에게 방은 '분류'다. 옷방, 서재, 침실등 자신의 삶을 깔끔하게 분류시켜 놓은 장소가 방이된다. 이런것이 세속적 의미라면 포괄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방의 개념을 살펴보면 그것은 '사유의 장소', '휴식'등의 추가적인 의미를 덧붙인 '나만의 공간'즉, 마음이 된다. 내 마음속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현실에서 존재하는 방역시 그와 같은 '분리적 상태'가 유지될 때 우리는 내 방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윤소희, 정소희. 둘 모두 그녀의 이름이다. 갓난아기 시절, 사고로 죽은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빠의 자리도 엄마의 자리도 없이 그저 '할머니'의 존재만 부각시켜 놓았다. 때문에 할머니가 죽은 뒤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렇잖아도 작은 방이 아에 사라지고 만다. 친척동생들과 함께 사용해야 하며 때때로 작은엄마의 심부름으로 미용실과 집안살림을 도와야 하는 그녀에게 이미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인 '방'이란건 재생의 희망이 없어지고 만다. 때문에 그녀는 오래도록 알고지내온 달밭마을 친구들과 연락을 끊는다. 방의 존재가 주변인물들과의 단절에까지 이르게 된것이다. 흔히말하는 '부자'인 친엄마가 소희를 데려가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는 방이 마련된다. 서류상 언니인 리나가 썼던 방이긴 해도 나름 그녀에게는 방이 마련되고 그녀의 사고와 친구관계의 회복도 함께 이뤄진다. 하지만 휴대폰사용이 정지된 것처럼 서로의 교류와 유대감이 정지된 상태로의 모녀상봉은 이복동생의 심술로 인해 계속 어긋나기만 한다.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희 얼굴에 씌여인 '모범생'가면은 슬슬 벗겨지게 된다. 부모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일탈이고 문제아가 되는 과정일테지만 정작 소희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일시적인 과정에 불구하다. 그 과정속에서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해주고 대화를 나눠주는 '디졸브'의 역할은 상당하다. 책에서는 그저 좋은 친구관계로 끝이 났지만 소희가 성인이 되면 그녀의 가면을 벗겨준 디졸브와의 인연은 더 깊어질 거라 생각된다.

책 속에는 소희엄마가 겪는 가정폭력, 그로인한 남편의 딸 '리나'와의 불편한 관계등이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소희엄마가 소희를 그동안 데려올 수 없었던 이유정도로만 해석이 된다.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소희엄마나 소희의 이복형제들은 아직 목격을 하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피해자인 소희엄마만 계속 참고 묵인한다면 가정폭력이란 것이 큰 피해를 낳지 않을 것처럼 보여지는 듯해 아쉽다. 물론 리나가 떠난 이유와 그로인해 정신치료를 받아야만 했던 것으로 나타나지만 돌아와서 당당하게 폭력의 부당성을 아버지에게 다짐받는 것은 가정폭력의 그나마 덜 심각한 상태로 보여진다. 더군다나 평소에는 소희를 포함 가정에게 엄청나게 충실한 그가 아니던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중대하게 가정폭력을 다루지 않은 것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누군가 한사람만 희생하면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처럼 보여지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그치만 소희의 방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방의 의미와 그 역할에 중요성을 청소년을 비롯 독자에게 전달하는 비교적 감정이 동화되는 문체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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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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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기대보다 전작 '완득이'로 인한 저자의 문체에 대한 기대로 책을 읽게되는 드문 경우중에 하나가 바로 이책, 우아한 거짓말이었다. 우아한 거짓말이란게 무엇인지, 누가 누구에게 한 거짓말인지를 떠나 저자 김려령에 대한 반가움으로 책을 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득이에서 보여줬던 그 위트있고 살아숨쉬는 문체는 여전했다. 책을 읽기전 읽게 되는 뒷표지에 소감이라던가 간략한 줄거리는 전부 생략하고 초반 몇페이지를 접했을 때 급속도로 마음이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마치 내안에 있던 천지의 우울함과 스스로 극복하려 했던 최후의 수단이 내게서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것이다. 책 우아한 거짓말은 집단이 개인에게, 개인이 개인에게 행할 수 없는 그렇지만 빈번하게 행해지는 현실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천지'는 죽었다.
주인공의 죽음과 독백이 함께 등장하는 소설중 생각나는 작품이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다. 한쪽은 사고로 다른 한쪽은 자살이다. 그리고 죽음의 이유가 다른 것처럼 죽기전에 그들이 가진 생각과 우울과 고통도 다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청소년, 우리들의 아이의 죽음'인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의 죽음과 처음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독백은 독자로 하여금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두작품다 그 또래에 아이들을 '학생'이 아닌 '인간'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그들도 학교외에 갈 곳이 가고싶은 곳이 많고 만나고싶은 사람도 동성의 또래친구뿐 아니라 이성친구이기도 하다. 성인의 우리가 그토록 제 짝을 찾아 헤메이는 것 처럼.

천지, 그리고 그녀의 언니 만지는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전학을 여러번 다녔다. 하지만 성격에 따라 반복되는 전학이 독이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너무 순수해서 보여지는 것과 가진 생각이 타인에게 부담이 될 까봐 숨죽이며 살아온 천지는 세상이 장난스러운 동급생 화연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녀의 끝을 모르는 괴롭힘은 천지가 극한의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죽음이 화연을 달라지게 하지는 못한다. 우아한 거짓말은 화연과 천지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또 한 사람 '미라'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따돌림 당하지 않게 다른아이를 따돌리고, 그 무언폭력에 희생양, 혹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화연과 미라는 끝가지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다. 우습게도 그들은 자신들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우아한 거짓말을 보여준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죽지않은게 다행이다. 천지의 죽음으로 화연도, 미라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가족역시 때리고 혼을 내도 결국 팔은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자식을 잃은 천지엄마와 동생을 잃은 만지만이 되돌릴 수 없는 '천지'의 죽음앞에서 한없이 무능력해지고 복수도 아닌 복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먹기만 하면 게어내는 자장면을 먹는 천지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엄마와 열심히뿐아니라 즐겁게 살아가야 할 만지만 남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죽음은 나의 고통을 내 가족에게 전이시키는 것 밖에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살다보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 흔히들 선의의 거짓말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운운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천지가 장발의 아저씨에게 보여준 것도 결코 선의도 그 어떤 의미도 없는 거짓말이다. 우울증에 대한 행동양식을 공부하고 그대로 보여주고, 또 그반대의 경우를 보여줌으로써 사람이 타인에게 가지는 시선을 비꼬기도 하고 정작 화연에게 복수같지 않은 복수로 끊임없이 당해주는 것, 그 모습을 되새김질 해주는 미라에게 또 악의를 품는 것또한 전부 그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거짓말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아한 거짓말은 화연, 미라뿐 아니라 천지 자신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복해왔다고 보여진다. 감정을 전부 표출할 순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아니라 '절제'인 것이다. 너무나 여렸던 그리고 어렸던 천지에게 그런 마음을 전해줄 수 없었던 바쁜엄마와 자신의 감정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또 하나의 청소년 만지, 그리고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좀 더 서로에게 '관심'을 포현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결론만이 남았다. 거짓말 보다는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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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걸 선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3
수잔 보트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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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걸선언. 간만에 청소년 도서를 읽었다. 뭐 조만간 청소년 도서 리뷰가 폭탄처럼 올라올테지만 어찌되었든 요 근래에는 간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책에 대한 나의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읽고 싶었던 책이다. 뚱뚱한 '팻걸' 제이미가 어떻게 청소년기를 통과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냥 청소년으로 살기도 힘든데 뚱뚱하기 까지하다. 뚱뚱해본 경험이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며 대부분의 여성관객이 눈물흘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던 만큼 '뚱뚱'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이소설, 팻걸 선언의 의의는 그만큼 크다고 본다.
주인공 제이미. 10대 여성의 패션트랜드를 주름잡는 '핫칙스'에는 그녀에게 맞는 옷이 없다. 심지어 뚱뚱한 고객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점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제이미, 노노, 프레디가 들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팻걸선언에 라이터 제이미가 핫칙스가 벌이는 뚱녀들에 대한 옳지 못한 행동을 삐고는 컬럼을 쓰기 위해서였다. 작정하고 들어갔어도 핫칙스가 제이미에게 주는 상처는 그녀를 울릴만큼 대단하다. 옷이 맞지 않는것도 속쓰린데 점원들의 태도는 대놓고 그녀를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다. 채식주의자 노노의 '천연소재 가죽'에 대한 힐난과 부정적인 태도도 말라깽이인 그녀의 체구앞에서는 그저 '유별난 고객'정도로만 느껴질 뿐이다. 역시나 지나치게 왈가닥스러운 프레디의 행동도 어찌되었든 '맞는 사이즈의 옷'이 존재하는 한 그녀역시 손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뚱뚱한 제이미를 향한 비난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언뜻 보면 이런 불평등한 사회에 제이미의 존재는 쓰리고 아프고 늘 울기만 한 소외계층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연인 '버크'와 함께 할 때의 제이미는 세상 그 누구의 연인다운 면모를 보인다. 여리면서도 사랑에 달콤함에 흠뻑 취해있는 그녀를 그누구도 '뚱뚱'하다고 바라보진 않을거다. 아니 그렇다해도 애정을 나누는 버크와 제이미에게 그런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버크가 더이상 팻보이로 살기를 거부하며 과감하게 체중조절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제이미에게는 그조차 비밀로 하고 말이다. 생명에 위협적인 수술이며 동시에 함께 '팻'이었던 버크의 선언에 제이미는 극구 반대하지만 결국 버크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게 된다. 

버크는 알지못했던거다. 그녀와 함께 해야할 수 많은 일들 중 대다수를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지금 그대로의 버크를 사랑한 것은 반대로 지금 그대로의 제이미 자신을 사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주는 편집장 히스의 관심에 제이미도 서서히 마음을 돌린다. 그닥 맘에 드는 결론은 아닌 것 같다.

팻걸선언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소설, 영화, 연극속에서 여 주인공은 말랐다. 뚱뚱한 여성은 마녀, 대지의 어머니 등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을 수 없다. 심지어 뚱뚱한 여자로 등장했다가 결국은 실의에 빠진 거나 미친듯한 다이어트로 통쾌한 복수를 하며 마무리 된다. 하지만 왜그래야 하느냐고 팻걸, 제이미는 묻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뚱뚱하지 않으며 집안도 꽤 괜찮고 얼굴까지 핸섬한 뚱뚱하지 않은 남자가 그녀의 모습에 반해버리는 것 또한 통속적인 결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는 아니다. 통속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 가깝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거리에 나가봐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야유를 사더라도 분명 누가봐도 투엑스라지 사이즈의 여성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모델'급 남성이 팔짱을 끼고 걸어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결말 부분은 제이미가 마지막 까지 고민하게 되는 '팻걸'과 '제이미' 사이에 순수성과 관계에 대해 너무 모호하게 끝맺었음이다. 팻걸이 제이미일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여리고 여린,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숨죽이며 선택이란 단어에 뿔을 올리는 그녀가 팻걸 일수 있을까. 그녀가 적어온 팻걸선언이 과연 제이미의 내면에서 들려온 말들이었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이역시 작가의 한마디면 끝난다.

그 해답을 찾아가는 게 삶이라고. 뿐만아니라 성인으로 성장해 가면서 자연스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더는 의의를 달 수 없다. 그저 팻걸 선언의 당당한 제이미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수 많은 팻걸들에게 전파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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