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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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 수리철학 교수. 저서에 [아포리즘 철학]. [열정적 고전 읽기],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현대 예술 ;형이상학적 해명]이 있다.

 

대학 2학년, 학부 교양으로 잠시 만나보았던 서양미술사.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했던 이야기를 흥미롭다기 보다는 지루하게 여기며 배웠던 것 같다. 그랬던 서양미술사가 서른넘어 자발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다니. 그것도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석이 아닌 그 작품이 그려진 시대적 사상과 철학에 대한 길고 긴 서술로 가득한 책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한다는 것이 지적 허영심인줄 알면서도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 비트겐슈타인 글까지 인용하는 것이 변명처럼 느껴졌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이 작가의 변명이 아니라 나와 같은 기본지식이 부족한 독자를 위한 변명이었음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학문자체와 예술 자체는 '말해질 수 없는 것.

 

가만보면 그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자주 듣게 되는 고갱, 고흐등 유명화가의 작품과 관련 이야기는 아는게 많지만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대한 예술사학은 이책을 통해 처음 듣는 듯 싶었다. 우주에 대한 기대와 관심으로 가득찼던 구석기와 그에 대한 절망과 상실감으로 인해 감상적이고 화려한 기조가 사라진 신석기의 예술작품은 책 자체에 그림과 사진이 다소 부족하게 실리기도 했지만 비교하며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웠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라는 타이틀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이 된다. 때문에 어쩌면 세계예술사와 작품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후에 그리스 예술사로 이어졌을 때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예술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읽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딕예술에 관한 부분은 칭찬할 만하다. 르네상스 이전의 시기로 흔히 암흑기로 불렸던 시대의 예술성이 비활성화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성에 의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반가웠다. 왜냐면 그동안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예술품과 예술사만 듣고 읽었던 귀와 눈이 확대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까. 샤르트르 대성당의 고딕양식은 이전의 비례와 안정성이 사라지고 인간의 의지가 하늘에 닿기라도 할 듯 수직적으로 높아지는 외형과는 달리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춰지는 묘한 기운을내어 실내에 들어섰을 때 그 신비한 매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책의 표지이미지가 바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내부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은 인상주의다. 난해하고 작가주의에 입각한 작품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겠지만 보고서 바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순한 이유에서도 그러하고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실상 인상주의는 그 외연적 양식이 아무리 새롭고 충격적인 것이라 해도 반항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투쟁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라는 말에 더 호감이 간다. 단순하다기 보다는 외려 순수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와는 다른 화풍 인상주의.

 

책의 내용은 고딕양식과 인상주의 대한 해설과 철학사를 유명론 전후로 나누어보려는 시도 등 여타의 예술사에서 소외당했던 르네상스 이전 시대의 양식에 대한 설명이 장점으로 느껴졌다. 단점이라면 철학으로 읽기라는 주제에 맞게 정말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도 함께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철학으로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고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중간에 책을 덮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림도 많지 않고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으나 이해할 수 없는 '철학'용어들이 미술사와의 간격을 더 늘려버린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초심자'와 '학문하는 법을 알아가는 초심자를 위한 책'이라는 점에는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동의할 수 밖에 없어 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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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패션의 모든 것 - 오래된 패션의 가치
푼미 오듈레이트 지음, 김주연 옮김 / 미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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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

그렇지만 오늘 나온 신상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사랑받는 것을 우리는 빈티지라고 부른다.

혹은 편안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의 아이템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빈티지하다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전문가들 조차 정확하게 '빈티지'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애매하게 답할 수 밖에 없다. 빈티지 패션의 모든 것을 통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빈티지 패션의 모든 것 책을 펼쳐보면 유명한 명품 디자이너 별 시대별로 유행했던 트렌드가 방대하게 등장한다. 빈티지란 것을 말그대로 이제 막 시작된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기본적인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와 해당 디자이너들이 사랑했던 룩을 알고가는 것이 중요하다. 패션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흐름을 살펴보고 나면 슬슬 빈티지 쇼핑에 대한 기대감을 만족시켜주는 챕터가 등장한다. 옷 그 자체 뿐 아니라 패션을 아우르는 구두, 백까지 빈티지 쇼핑은 어떻게 어디서 해야하는지 부터 주의할 점도 함께 서술되고 있다.

 

'빈티지를 입는 일은 역사를 입는 것과 같아요. 빈티지 패셔은 때론 패션의 고고학이라고 불리는데 하나하나 저마다의 이야깃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잇 백이란 단어를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책에서는 시대별로 '잇 백'이 어떤 제품이었는지 백의 대한 탄생부터 알려준다. 1900년대를 기점으로 실용성을 중점으로 들었던 백이 점차 연회나 사교모임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소품으로 애용되었고 당시에 백은 화려한 비즈장식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지금처럼 심플한 '소재'위주의 백은 어쩌면 그떄는 별로 크게 호응을 못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빈티지 쇼핑의 경우 영국을 중심으로 상점과 브랜드 소개가 주를 이루는데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해가 쉬울 것이다. 기차를 타고, 혹은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바로 지방을 건너가듯 국경을 넘을 수 있기에 '쇼핑'을 위한 여행이 편하겠지만 우리처럼 큰맘먹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이부분이 저자가 국내 실정을 고려해주지 않은 점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사실적이고 정교한 일러스트가 맘에들긴 하지만 정작 해당 시즌이나 트렌드에 대표적인 상품을 사진을 통한 실사로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분명 이책은 빈티 패션뿐 아니라 기본적인 패션과 트렌드의 흐름을 잡는 룩과 용어를 알아가기에는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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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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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속으로 걷다, 가볍지만 흥미로운 우주이야기 

 

우선 책을 읽기 전에 역자와 함께 동일하게 전해주고 싶은 한가지.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탄생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우주의 자연섭리를 마치 기계화된 시스템으로 착각, 훼손하고 방치 하는 현실에 대해 좀 더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은 '적당한 책'은 아니다. 뿐만아니라 딱딱하고 어려운 수학적 기호와 화학적 기호, 물리적 계산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책'이 아니다. 우주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맞는 책이다.

 

'그러나 만일 신약성서를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마하바라다를 힌두 이야기로 간주한다면, 이 새로운 이야기를 간략하게 우주 이야기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p.18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까닭에 동양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상이 포함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의 책에서는 유럽, 서구의 학자들이 생각하고 추리한 '우주'를 중심으로 하거나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동서양이 각각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우주를 바라보았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가령 유럽에서는 달에 인간의 존재를 '생각'했고, 중국 일본에서는 달에 '토끼'가 있다고 상상했다고 서술한 부분이 시작이 된다.

 

우주는 계의 팽창과 수축, 그리고 분열에 의해 시작되었고 세포의 존재들은 '별의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인 좀더 진지한 접근은 책의 내용에 어느정도 설명되어 있는데 서문에 밝힌것처럼 상세한 기술내용을 기대하진 않길 바란다. 흥미로운 점은 우주와 행성, 그리고 인간의 탄생의 대한 스토리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구에 있었던 생명체의 대이동 과정중에서 가젤과 인간의 차이점을 서술한 부분이다. 산불이 났을 때 가젤은 그것이 '위험'인 줄 깨닫고 도망치는 반면 인간은 '불'의 매력에 빠져들어 도망을 치는 것보다 오히려 그 불에 다가가는 본능의 자유를 느꼈을 거라는 추측부분이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자유 덕분에 불, 일출, 파도, 성적 긴장, 친구의 사망, 출산 같은 것에 심오하게 매혹되었다.' .p122

 

우리는 위의 상황을 '광기'의 한 모습으로 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인간의 본능적인 자유와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의 사용으로 멸종된 존재들과는 엇갈리게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그것을 시작으로 점차 자연발생적인 우주의 원리는 학자들의 몫이 되었고 파괴하고 기계쩍으로 인류를 증가 시키는 과정이 이어져왔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에게 물질은 주관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인간만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다른 동물이나 자연의 나머지 것들은 기계처럼 작동했다. 훗날 산업화 사회가 지구의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데 이처럼 물리적 화학적으로 단순화된 시각이 근본 이론으로 작용했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p.146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가직 기호와 창조성은 분명 인류를 생존케 하는 기반이 되고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다만 그것을 '자연의 섭리'와 어긋나게 혹은 무시한 상태로 발전시켜서는 안된다고,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이다. 자연의 자연발생력과 인간의 창조성이 고르게 발전하고 협력할 때 인류의 존속은 유지되고 번영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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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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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처음에는 책소개글에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는 다르다, 같지 않다라는 호기심에 의해 읽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옳고 그름으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의 '이슬람교'와 그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펴고 서문만 읽어도 그것이 오해였으며, 바로 나처럼 오해하는 독자와 세계인들을 위해 저자가 이 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주의. 종교인가?

 

그렇다면 이슬람주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슬람주의가 뿌리내리는 곳이 아닌 한발작 물러난 독일에서 공부를 하였기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연구가 가능했다는 바삼 티비. 심지어 제대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공부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황도 미국과 유럽에서만 가능한 연구였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슬람주의는 어찌보면 다소 부정적이다. 왜냐면 분명 과격한 이슬람주의 어느 한 세력(이슬람주의는 수미파와 시아파 크게 둘로 나뉜다.)이 문제가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의 그런 노력과 의도덕분에 책의 분량은 상당히 두꺼워진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파고들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된다.

 

미국. 그들이 배척하는 것이 이슬람주의 인가? 아님 이슬람교인가.

 

저자의 말에 의하면 미국이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주의'라고 보는게 맞다. 저자가 직접 당하기도 했던 지하디스트들도 문제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다소 평화적으로 온건파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로 잘못해석 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종교와 정치적인 성향이 같아질 경우 역사적으로 '평화'로운 국가로 보이기 어렵다. 나라가 혹은 그 나라를 교류하는 또 다른 나라가 '하나의 종교'만을 강요하고 그것이 잘못된 사상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그것은 민주적인 결과인가?

 

이슬람을 얘기할 때 '아랍의 봄'을 피해갈 수도 없다. 어쩌면 그 사건을 통해 이슬람주의가 어떻게 오인되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주의는 '민주주의'와 반드시 일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마치 이슬람주의는 평화적인 것이 되었고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혼동하는 이들에게는 점점 더 오해의 골이 깊어지게 된것이다. 저자는 이슬람주의의 주요특징을 크게 6가지로 보고 있지만 이사건은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뉴스를 통해 쉽게 접할 수도 있는 부분은 폭력적인 대립구도의 결과다.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몇개의 사건과 연구결과들을 제시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종교와 정치적 신념이 명백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적인 신념이 정치적인 세력과 부딪히면서 있지도 않은 전통이 만들어지고 그로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은 결국 무슬림 자신이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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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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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좋은'이라는 단어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좋은 책은 '공감'과 '다시금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책이란 생각이든다. 책을 정말 사랑하는 저자는 과연 공부는 언제했을까 의문이 들정도.

 

카프카의 작품이라고는 고작 두편의 단편을 읽은 것이 전부였지만 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맘에 들어 읽게 되었다. 근래 단순히 책이 교육적, 인성적 효과를 뛰어넘어 삶 자체를 지탱해 주는 크나큰 역할을 해왔다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른 작품은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라면 역시나 '좋은 책'이라고 느껴질 것 같다.

 

똑같이 책을 사랑하다보니 묘하게 경쟁심도 생겨나고 이견도 생겨난다. 헌책방을 추억하고 종이책의 사라짐과 전자책의 대중화를 반기지 않는 저자와는 달리 언젠가 부터 헌책방 로망이 헌책방 '거부'상태라 새책이 좋고 심지어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다 보니 전자책의 편리함도 결코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인이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어폰을 나눠끼고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제법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도 '책 그리고 도끼'가 등장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도끼'다. 카프카의 서재인데 이 문장이 언급되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깨뜨리는 것' '나를 다시 재확인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민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역시나 또 주저하게 된다. 나를 재확인 하는 과정을 통해 고민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괜한 말꼬리 잡기식 감흥이 책 읽는 동안 계속되는게 이게 가장 큰 매력인듯.^^

 

뭐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밀당이라고나 할까.

 

책을 어렵게만 읽다가 한 자리에서 읽어서 그런지 리뷰도 참 리듬감 있게 적히는 것 같다.

아포리즘 투성이라 굳이 그 안에서 또 맘에 와닿는 구절을 찾아내는게 오히려 더 어려웠지만 몇 개의 문장을 발췌해보면,

 

'그러니 행복을 거창하게 과장하지도, 또 너무 집착하지도 말자. 그보다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단 한번밖에 없는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위험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열과 성을 다 바칠 결단력과 용기, 배짱이 있는지를 숙고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p.101

 

언젠가 부터 이젠 성공도 아니고 자기만족, 스스로가 행복하다고만 느끼면 그게 성공이라는 말들을 한다. 이제는 '행복'자체가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남들과 비교해서 난 행복한데 이게 행복한건지 나태한건지 어느정도의 포기는 아닌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실패하면 어쩌나,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을 걱정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대개의 '불안한 청춘'에게 저자의 제안은 설득력을 가진다.

 

출구가 없는 삶을 카프카의 '성'이란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부분은 답답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저자가 했던 고민을 내가 하고, 또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민하게 된다. 도대체 이 미로와 같은 삶의 출구란게 과연 있는지, 아니 있다고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에 대해.

 

기억과 경험에 대한 저자의 물음에 역시나 답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좋은 기억을 상실하면 그것은 경험이 아닌게 되고, 경험이 아닌 것이 내게 과연 기억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될 수 있는지 고민 고민이다.

 

이 책을 서평 모음, 추천서적 리스트 참고용으로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딱히 그가 제시한 문구들이 멋지긴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들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되는 점이 좋았다. 때문에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내 자신을 재확인 시켜주는 과정, 그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자문자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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