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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주 ㅣ 오늘은 시리즈
이종숙.박성호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평점 :
<오늘은 경주> 경주에 꼭 가고 싶게 만드는 책

절터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탑의 찰주를 올려다보는 순간, 알 수 없는 전류가 온몸,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느낌이다. 가늘고 예리한 무엇이 순식간에 핏줄을 타고 달려가는 느낌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말라르메가 말한 '아편처럼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란 이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24쪽
어떤 풍경을 보며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듯한 충격적인 감동을 느껴본 적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석탑을 보면서 저런 감동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감은사지삼층석탑은 직접 본적은 없더라도 워낙 친근한 유적이라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품고 있는 유적, 경주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인지 저 문장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저토록 엄청난 애정을 품고 소개해주는 경주 이야기를 담은 [오늘은 경주]는 그 덕분에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올해가 지나기 전에 경주는 한 번 가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석탑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국보 제112호로 경주에 있는 3층 석탑중에서는 가장 거대하다고 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해도 분명 수학여행 때, 지난 해 배낭여행 때 탑을 보며 반가워하긴 했었다. 신문왕때 완공되었는데 이 탑은 신문왕이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이 실린 것으로 탑하면 종교적인 의식에 의한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뿐만아니라 석탑을 세울 때는 돌을 옮기고, 다듬고 그리고 돌에 조각을 세기는 등 여러가지 기술과 미적감각이 총 출동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드라마 덕분에 더 유명해진 '선덕여왕의 릉'에 관한 이야기다. 가본적은 없었고 다큐를 통해 본 적이 있는데 저자는 단순하게 왕의 능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왕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도 함께 들려주었다. 책에는 당나라 태종과 관련된 설화도 함께 언급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책에서 기존에 알려진 내용과 조금 다른 부분을 언급한 적이 있었던터라 과연 정설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다른 왕의 능으로는 앞서 언급한 선덕여왕(덕만)의 아버지이자 책에 실린 사진이 정말 맘에 들어 소개하고 싶은 '진평왕릉'이다. 사진 제목이 <석양 아래 진평왕릉>인데 두 페이지로 나뉘는 부분이 없었다면 과감하게 책에서 사진을 오려내었을 정도다. 리뷰를 읽는 분들은 궁금하겠지만 올리지 않겠다. 궁금하면 꼭 사서보거나 도서관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능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아들이 없었던 진평왕은 딸들에 관한 기록 정확한 것이 없다고 한다. 여성인 덕만을 왕좌에 앉히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의 능이었기에 석양아래 비친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고 평안해 보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유적을 구간 별로 나누어서 소개해주었는데 이번에 소개 할 제 3구간은 우리가 흔히 '경주'하면 떠오르는 유적지가 몰려있는 장소다.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 그리고 석굴암까지 이번에는 좀 익숙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은근 기대했는데 역시 세월의 탓인지, 무지의 탓인지 새로운 내용도 많아 역시 이 책을 가지고 경주에 다시 가야겠다는 다짐을 재차 들게 했던 부분이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으나 전혀 알지 못했고, 반대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부분 알고 있는 일들이 종종 있다. 불국사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자주 그런 상황을 접했다. 85쪽
좀 전에 잘 아는 것 같았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을 했는데 의외로 저자도 나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조금 반가웠다. 물론 저자가 알고 있는 방대한 내용에는 전혀 비할바가 아니겠지만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우러러보다가 동행이 된 듯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건설코자 했던 불교국가의 축소판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불국사 또한 앞서 언급했던 감은사지삼층석탑처럼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그야말로 효심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짓기도 하고, 살아계신 부모를 위해서 절을 짓기도 한다. 불국사 회랑의 단청은 한국의 색, 예술성 등을 언급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운 자태를 늘 유지하고 있다. 이 회랑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한다. 단청의 화려한 빛깔은 은 보기에도 예쁘지만 비바람에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해 주는 역학도 있다하니 책속의 사진이지만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지난 번 불국사 방문 때 회랑의 단청을 보며 눈과 마음이 멈칫 했던 기억이 났다. 하필 비오던 날이라 사진은 예쁘게 담기지 않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의 단청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불국사를 지나 이번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경주를 다니면서 기념품을 사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다보탑과 석가탑 미니어처를 사왔다고 하는데 별거 아닌 말에 뜨끔했다. 파리에가서 에펠탑을 그렇게 열심히 사왔으면서 정작 다보탑과 석가탑을 안샀던 것이 아쉽기도하고 미안한 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을 볼 때마다 이렇게 크고 정교하기 까지 한 석탑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저자는 김대성에 의해 지어졌을지라도 분명 그를 도와 이를 가능케한 불심을 가진자가 있을거라 말했다. 이와 관련된 영화나 소설이 나온다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상의원]의 조돌석이 아닌 이공진이란 인물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부터 이미 다녀온 장소까지 정말 많은 유적지와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었다. 새삼 책의 부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자발적 학습 여행자의 경주 이야기'. 경주에 다시 가보고 싶다, 수학여행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어른이 되어 공부해서 가고 싶다는 생각들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경주와 관련하여 상세하게 지도와 교통수단을 담은 책도 많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경주유적과 관련해서는 이 책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이제 겨우 한 번 읽었을 뿐이지만 경주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간절하게, 끊임없이 갖게 한 책은 처음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