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몰락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리사 두건 지음, 한우리.홍보람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부제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신자유주의라는 키워드를 접할 때면 슬라보예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그 책을 읽기전까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만을 알았을 뿐 실제 역사속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가면을 쓰고 존재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평등의 몰락>의 저자 리사 두건은 신자유주의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세계 대중을 위한 평화와 번영의 선구자인 체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 입안자들은 사실상 특정한 곳에서만 평화를 창조했을 뿐이고, 다른 곳에서는 전쟁을 창조했다. 57

 

이 책의 주된 사건 내용을 세대별 중심사건을 통해 알게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 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몇 해 전부터 갑자기 쏟아지듯 출간된 페미니스트 서적들 속에서 중심을 잃고 이 책 저책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을 정리해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게일루빈의 <일탈>처럼 두께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책을 성실하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출발과 선발대 여성들의 일화와 성과는 외울 수 있어도 20세기 전후에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는 스킵당한 체 근래 활동중인 페미니스트들의 에세이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여성의 평등만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면을 쓰고 억압했던 것은 자본과 맞물린 불평등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발전적 분석들은 어떻게 그 많은 지역 연합, 문화 프로젝트, 민족주의 의제, 경제정책이 불균등하고 종종 예측 불가능하게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세계 자원의 위를 향한 재분배를 위해 함께 작동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157

 

이렇게 발전된 분석들이 필요한 까닭은 책의 서두에서 말해준 것처럼 이런 분석없이는 저자가 세속적 신앙이라고 까지 말한 신자유주의가 지금껏 해온 악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 불평등 만이 공적이고 계급을 나뉘는 것이 아니라 인종, 젠더, 성적 불평등 역시 더 미룰 수 없는 계급불평등이며 공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배경이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의 내용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결부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예비독자들은 역자후기에 다음의 말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는 마치 두건치 뉴팔츠 콘퍼런스에 대한 공격을 공공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분석했듯이, 한국에서의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한국 시민의 관용 부족, 성숙한 시민의식읠 부족, 4은 미개함으로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자원 재분배에서의 불평등 및 이와 교차하는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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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2일 오후2시.

중림동 약현성당옆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박승찬 교수님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강연회가 열렸다. 다행히 근무가 없는 주말이라 이벤트를 보자마자 신청해두긴 했는데 워낙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고, 장소가 성당바로 옆이라 신자분들이 많이 참석하실 것 같아 살짝 조마조마하긴 했다.

 

 

역시나, 강연회장에 갔더니 수녀님도 많이 와계셨고, 특히 가톨릭출판사 가족회원분들도 많이 계셨다. 출판사에서 시원한 생수와 간식을 제공해준 덕분에 강연 내내 과자까먹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도 아니었고, 오히려 간식덕분에 오후2시라는 애매한 시간 오히려 강연에 몰입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출판사에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

 

강연내용은 기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았다.

우선 박교수님께서 방송중에 하셨던 말씀은 가급적 제외하시고 오로지 해당 강연을 위한 준비를 해오신듯했다. 참고사진이나 도표는 물론 출간 기념강연회인 만큼 책에 포함된 자료였지만 방송을 통해 보고 오신 분들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게 준비를 꼼꼼하게 해오신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지난 가을 읽었었다.

리뷰참조 : http://happysohh.blog.me/220832451562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연 브레이크 타임에 찾다가 알게됨^^:;)

 

교수님께 사인을 받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렇지는 못했다. 리뷰를 다시 읽어봐도 잘몰랐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다는 정도일 뿐 아! 하는 뉘앙스는 없는걸보니 내 기억이 맞는듯. 암튼 그랬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이야기가 교수님을 통해 전달될 때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강연내용을 정리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모두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모니카 성녀 역시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우리의 기도보다 몇 배로 돌려주신다고 믿고 있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크게 낙담하여 어떤 이는 분노하며 주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모니카 성녀님은 어땠을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도 삶이지만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삶을 우리의 신앙생활과 비교해보자면 얼마나 부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롯이 내 자신을 위해, 마치 요술램프 지니를 대하듯 주님을 대할 때가 많고, 기도의 횟수와 시간이 응답과 비례한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크게 보았을 때 주님께서는 모니카 성녀가 원했던 가장 중심이자 핵심이었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님안에 살길 바라던 기도를 들어주셨다. 물론 바로 응답해주신 것은 아니고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 중 어느것 하나 성인이 되는 단계에서 불필요했던 시간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그 긴 시간중 어느 한 부분도 주님의 계획에 어긋나있거나 모니카 성녀의 기도를 모른척 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한가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시는 '수단'으로 사랑할 때가 있다. 돈이나 물질은 '수단'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다. 이웃을 더 돕기 위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돈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으로서 사랑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바뀌지 않도록,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만 사랑하지 않도록 내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시간에는 사전에 신청자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내용들이라 마치 강연의 연장선처럼 다가왔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는 작업을 해본다던가,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습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정말 학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많은 분들이 사인을 받으셨고, 중간 중간 포토타임도 함께 진행되었지만 사인을 기다리는 독자분들도, 사인을 하시는 교수님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아 분위기 자체가 정말 좋았다. 좋은 강연과 좋은 독자분들이 함께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 강연회, 날씨와 상관없이 주일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알라딘과 가톨릭출판사 그리고 박승찬 교수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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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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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 마음도 우산처럼 쉽게 접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59쪽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고, 빗물이 창에 부딪히는 소리를 한참동안 듣고 있었다. 체감으로는 30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일어나 이제는 무겁고 오래된 모델이라 아이폰에 밀려 거의 손도 대지않는 dslr을 꺼내와 비가 내리는 창을 여러장 촬영했다. 대충 찍었으니 제 아무리 dslr이라도 결과물이 좋을리 없다. 금새 지쳐 어제 받은 책, <아주, 조금 울었다>를 펼쳤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났다.

 

 


맨 위에 적은 문구, '사람 마음도 우산처럼 쉽게 접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처럼 정말 마음이 우산처럼 접힌다면 이 세상에 에세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감성'이란 말도, '외로움'이란 감정도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무엇보다 '그.리.움'이란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출간되지도, 이토록 공감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날, 몸도 마음도 지나치게 습한 이런 날은 다소 우울하긴 해도 마음이 우산처럼 쉽게 접히지 않아 다행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에 있는 '카보다 로카'는 유럽의 끝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포르투갈 시인 '카몽이스'가 쓴 다음의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단다.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50쪽

 

 


저자가 말하는 '친구'는 그 말에 무언가 뭉클해졌다고 했다.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장소에 철문으로 '접근금지'라는 푯말에 괜시리 서러울 때가 있고, 특히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던가 '여기서부터는 진입금지'등의 안내판을 볼 때면 무언가로부터, 혹은 누군가로부터 접금금지 당한 현실이 오버랩되어 그자리에서 '울고'싶었으니까. 타인이 내게 새긴 상처도 아프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스스로 내게 준 상처때문에 아파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였다. 접히지 않은 마음 때문에, 포기하지 못했으면서도 포기했다고 믿고싶은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가 남긴 상처는 이런 책을 만날 때 마다 더 큰 상처를 내곤 했다. 시간이 약이다라고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결코 약이 될 수도, 기다린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걸 알아서 더 아픈지도 모른다.

 

 

 

 

화장실에서 울어 본 적이 있다는 것은,

생애 가장 서러운 일을 겪어 보았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화장실에서 울면서 어른이 된다.

164쪽

 

 


위의 문구대로라면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조금도 기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울었던 일이 지금까지 끔찍하게 고통스럽거나 하지 않은 걸 보니 조금 더 울어도 될 것 같다. 아니 펑펑 소리내어 울어도 좋을 것 같다. 울음이 많은 나는 이 책을 핑계삼아, 저자의 한 줄 문구를 위로 삼아 결국 일요일 오전 울고 말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크게 웃을 준비를 시작했다. 울음의 끝은 웃음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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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기행 - 비밀의 정원 보길도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들
김나흔 지음, 구자호 사진 / 현실문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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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나흔 작가의 <보길도 기행>을 읽기 전까지 보길도라는 섬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즐겨보던 '그 섬에 가고 싶다'프로에도 나왔던 곳이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만큼 매력적인 섬, 보길도. 어릴 적에는 성인이 되면 섬에 자주 여행을 떠나야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섬 한 바퀴를 돌고, 섬에서만 자라는 해초류와 해산물로 가득한 밥상을 매 끼니마다 먹어야지 했었던 감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섬'은 고립되어 어떤 사건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섬의 이미지 역시 낭만보다는 '두려움'의 상징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던 나는 그 '섬'만큼은 혼자서는 못가겠다는 마음으로 변한 것이다.


보길도 12경은 아마도 10경으로 끝내려다 "아차, 큰일 날 뻔 했네"하며 적어낸 부록 같은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필수코스다.

50-51쪽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정말 천천히 읽고 싶었다. 여건상 보길도에 실제로 가지 못하더라도 저자가 차분하게 들려주는 보길도 12경을 마음속에라도 꾹꾹 눌러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꾸 보길도 12경 중 맘에드는 곳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별의 항구라는 제목을 달린 '청별(淸別)항'. 저자의 말처럼 이별이 어찌 맑을 수 있지? 맑은 이별이란게 과연 존재할까? 라는 의문으로 책을 읽다가 한참 생각에 빠졌었다. 어떻게 사랑하면, 어떻게 보내주면 혹은 어떻게 떠나오면 맑은 이별이 될까 싶어 생각의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청별항'이 생겨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럴수없으니 이곳에 와서라도 쉬었다가고 말이다. 그래서 청별항은 보길도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 다음 가고 싶은 곳은 보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라 할 수 있는 '고산원림'. 조선의 학자 고산 윤선도의 정원인데 유럽의 왕과 왕비들의 정원을 거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또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고단할 때는 책을 읽는 바위, 돌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산원림이 끌린다. 남은 페이지 보다 이미 넘긴 페이지의 양이 늘어날수록 보길도에 정말 가게 된다면 삼색 동백꽃이 피는 계절에 가고 싶다는 다소 구체적인 바람도 생겨났다. 선홍빛 동백이 아니라 흑동백, 백동백 등 사진을 보는데도 가슴이 쿵쿵거린다. 흰색의 동백꽃을 처음에는 알지못해서 꽃의 이름을 알기 위해 읽는 속도를 더욱 늦추었던 꽃, 백동백. 이보다 더 보기 힘들다는 흑동백을 보려면 보길도 김전 여사의 고택 정원을 방문하면 된다.

여행에 있어 빠질수도 빠져서도 안되는 음식관련 내용은 보길도의 유일한 민박집에서 먹을 수 있는 어촌정식이다. 조선일보 오태진 논설위원도, 배우 최불암씨도 이곳의 음식을 좋아했다는데 최소인원 4인이상만이 맛볼 수 있다니 만약 가게되더라도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할 것 같다. 내가 정말 보길도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떠나 누군가의 인심마저 얻었을 상태라고 생각하니 벌써 뿌듯해진다.


해변을 두드리는 파도는 베토벤 보다 더 위대한 작곡가이고 해변의 돌들은 200년 된 피아노보다 더 늙었어도 화음을 잘 맞춘다. 바다가 오케스트라를 시작한다. 이런 풍경은 정말 문화유산감이다. 142쪽


보길도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만약 정말 가게 된다면 저자처럼 이렇게 느릿한 호흡의 여행기를 반드시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다면 고깃배를 얻어타고 생전복을 그자리에서 게걸스럽게 먹고 싶다. 귀하다는 낭장망 멸치도 맛보고 싶다. 백동백을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기고 싶고 무엇보다 보길도의 깊은 밤 길성이 비치는 해변에서 동행과 함께 각자 정적이었던 고산 윤선도와 우암 송시열이 되어 그들이 할 수 없었던 '담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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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 - 1남 1녀 1고양이의 바르셀로나 생활기
정다운 글, 박두산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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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곳이 결국 불편함과 편리함이 공존해야만 돌아가는 곳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완벽한 편리함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너무 불편한 것보다는 함께 조금씩 불편하고 모두가 대체로 편한 것이 좋다. 31쪽



여행기를 읽다보면, 그것도 서른 넘어 부부가 함께 파견이나 유학이 아닌 순수 여행으로 타지에서 '살아보기'식의 여행기는 부러움으로 시작했다가 시기와 질투, 끝끝내 용기없는 내 자신과 그렇게 함께 손잡고 떠나주질 동반자를 만나지 못한 운명까지 탓하면서 아주 불쾌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곤했다. 그랬던 내게 정다운, 박두산 부부의 <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는 질투와 시샘은 커녕 '아, 책을 통해 얻어지는 이 충만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다. 바로 저 윗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음을 확신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스페인 바르셀로나다. 스페인은 건축에 관심이 없어도 '가우디'는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이자 유럽배낭족들이 프랑스를 지나 경비와 시간을 쪼개어 갈지 말지를 고민케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귀찮고 게으른 성격 때문에 내게 있어 스페인은 그냥 '남의 나라'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읽고 스페인을 가고 싶어할까? 바르셀로나를? 그저 좋은 사람들의 잠깐(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긴)의 일탈을 함께 즐기면 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마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한 잔에 한국돈으로 2000원도 안하는 커피를 마셔보고 싶고, 골목골목마다 친근하게 다가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개와 고양이를 만나고 싶고 무엇보다 느린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한 매력과 사람에 대한 매력 그리고 동물과의 유대감에 빠져있을 때 정다운 저자가 은근슬쩍 꺼내놓는 '필름 카메라'의 로망과 생활화는 미처 인화되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서랍속 필름을 떠올리게 했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필름 카메라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65쪽


이 책이 내 가방에 들어있는 동안 극장에서 무려 4편의 영화를 보았고, 서점에서 3권의 책을 샀던 내게 이 한 문장은 이 책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는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게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책'을 만나게 된다. 단 한 권일 수도 있고, 여러 권일 수도 있고 심지어 어떤 경우 일정 기간 만났던 모든 책이 '인생 책'이 되어주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 않은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게 했고,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배우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으며 무엇보다 한 살 한 살 먹는 나이를 핑계로 움츠러들었던 나를 일깨워 준 인생 책, <바르셀로나, 지금이 좋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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