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기행 - 비밀의 정원 보길도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들
김나흔 지음, 구자호 사진 / 현실문화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김나흔 작가의 <보길도 기행>을 읽기 전까지 보길도라는 섬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즐겨보던 '그 섬에 가고 싶다'프로에도 나왔던 곳이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만큼 매력적인 섬, 보길도. 어릴 적에는 성인이 되면 섬에 자주 여행을 떠나야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섬 한 바퀴를 돌고, 섬에서만 자라는 해초류와 해산물로 가득한 밥상을 매 끼니마다 먹어야지 했었던 감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뉴스를 통해 보여지는 '섬'은 고립되어 어떤 사건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섬의 이미지 역시 낭만보다는 '두려움'의 상징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던 나는 그 '섬'만큼은 혼자서는 못가겠다는 마음으로 변한 것이다.


보길도 12경은 아마도 10경으로 끝내려다 "아차, 큰일 날 뻔 했네"하며 적어낸 부록 같은 것이 아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필수코스다.

50-51쪽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정말 천천히 읽고 싶었다. 여건상 보길도에 실제로 가지 못하더라도 저자가 차분하게 들려주는 보길도 12경을 마음속에라도 꾹꾹 눌러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꾸 보길도 12경 중 맘에드는 곳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별의 항구라는 제목을 달린 '청별(淸別)항'. 저자의 말처럼 이별이 어찌 맑을 수 있지? 맑은 이별이란게 과연 존재할까? 라는 의문으로 책을 읽다가 한참 생각에 빠졌었다. 어떻게 사랑하면, 어떻게 보내주면 혹은 어떻게 떠나오면 맑은 이별이 될까 싶어 생각의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청별항'이 생겨난게 아닌가 싶었다. 그럴수없으니 이곳에 와서라도 쉬었다가고 말이다. 그래서 청별항은 보길도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 다음 가고 싶은 곳은 보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라 할 수 있는 '고산원림'. 조선의 학자 고산 윤선도의 정원인데 유럽의 왕과 왕비들의 정원을 거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또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고단할 때는 책을 읽는 바위, 돌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산원림이 끌린다. 남은 페이지 보다 이미 넘긴 페이지의 양이 늘어날수록 보길도에 정말 가게 된다면 삼색 동백꽃이 피는 계절에 가고 싶다는 다소 구체적인 바람도 생겨났다. 선홍빛 동백이 아니라 흑동백, 백동백 등 사진을 보는데도 가슴이 쿵쿵거린다. 흰색의 동백꽃을 처음에는 알지못해서 꽃의 이름을 알기 위해 읽는 속도를 더욱 늦추었던 꽃, 백동백. 이보다 더 보기 힘들다는 흑동백을 보려면 보길도 김전 여사의 고택 정원을 방문하면 된다.

여행에 있어 빠질수도 빠져서도 안되는 음식관련 내용은 보길도의 유일한 민박집에서 먹을 수 있는 어촌정식이다. 조선일보 오태진 논설위원도, 배우 최불암씨도 이곳의 음식을 좋아했다는데 최소인원 4인이상만이 맛볼 수 있다니 만약 가게되더라도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할 것 같다. 내가 정말 보길도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떠나 누군가의 인심마저 얻었을 상태라고 생각하니 벌써 뿌듯해진다.


해변을 두드리는 파도는 베토벤 보다 더 위대한 작곡가이고 해변의 돌들은 200년 된 피아노보다 더 늙었어도 화음을 잘 맞춘다. 바다가 오케스트라를 시작한다. 이런 풍경은 정말 문화유산감이다. 142쪽


보길도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만약 정말 가게 된다면 저자처럼 이렇게 느릿한 호흡의 여행기를 반드시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다면 고깃배를 얻어타고 생전복을 그자리에서 게걸스럽게 먹고 싶다. 귀하다는 낭장망 멸치도 맛보고 싶다. 백동백을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기고 싶고 무엇보다 보길도의 깊은 밤 길성이 비치는 해변에서 동행과 함께 각자 정적이었던 고산 윤선도와 우암 송시열이 되어 그들이 할 수 없었던 '담화'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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