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
로릴리 크레이커, 강영선 / 경원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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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은 세상의 모든 "고아들"에게 생물학적인 혈연관계가 있든 아니든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집"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15쪽


책 <빨강머리 앤 나의 딸 그리고 나>의 출발점은 우리 모두가 한 때, 혹은 진행형 '고아'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저자 로릴리도 그랬고, 그녀의 딸 피비도 입양아다. 빨강머리 앤을 보면서 피비가 엄마인 로릴리에게'고아'의 의미를 물어본 것이 시작이 된다. 자신도 입양아였기 때문에 고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고 했다. 피비에게 고아를 제대로 설명해주기 위해 찾아보게 된 사전적 의미를 통해서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강제적으로 버림받거나, 어느 형태로든 '남겨진'존재가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 모두를 '고아'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하긴, 성경속에 예수님마저 새집과 여우굴을 언급하시면서 사람이 당신도 머리둘 곳이 없다고 한탄하셨으니 저자의 비유가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로릴리가 빨강머리 앤을 통해 힘을 얻었던 때는 중학교 2학년때 동급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였다. 어떤 고난속에서도 꿋꿋하게, 아니 놀라울 만큼 밝았던 앤도 사실 제대로 다시 원작을 읽다보면 엄청 많이 상처받고 울면서 시간을 보낸 때가 있었다. 앤이 마냥 성격이 좋아 활발하기만 했던 소녀라면 그렇게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저자말처럼 앤도 부족한 것이 참 많은 아이었다. 원작과 살짝 차이가 있긴 해도 애니메이션만 보더라도 앤이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어른이 된 내가 봤을 때 정말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소녀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끊임없이 상상하기를 즐겼던 앤은 그렇게 로릴리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로릴리가 어른이되어 입양한 피비에게도 친절한 손길을 내민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빨강머리 앤 3권에서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계시의 책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쓰라린 바에 그런 책을 읽었다. 111쪽


책을 읽다보면 세 명의 앤을 만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닌 빨강머리 앤, 그리고 저자 로릴리, 그리고 그녀의 딸 피비. 백영옥 작가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비교하자면 우선 로릴리는 루시 모드 몽고매리 원작을 복습함과 동시에 로릴리의 삶에서, 세상의 고아들에게 어떻게 앤의 상황들이 적용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고, 백작가의 책은 원작보다는 우리가 어릴 때 만났던 TV시리즈 빨강머리 앤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우리가 '앤'이었던 상황도 있지만 때로는 매튜의 입장, 마릴라의 입장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 것이다. 사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곧 마흔을 앞둔 내게 어린시절 수다스럽고, 이따금 거짓말도 하는데다가 끊임없이 공상에 빠지는 철없는 앤은 피곤한 존재다.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느꼈던 마릴라의 심정이 지금의 나는 오히려 더 납득이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튜는 앤에게 있어서는 다정다감한 지킴이었을테지만 여동생인 마릴라에게는 그저 우유부단한 오라버니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매튜의 입장에서 보면 고집 센 마릴라와 마찬가지로 엉뚱한 앤 사이에서 오죽 불편했을까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여기에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들이 더해져 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입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앤이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현실보다 더 가혹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의 삶도 결코 평안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원작자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도 마찬가지다. 앤처럼 고아원에 버려진 적도, 로릴리나 피비처럼 입양된 것도 아니었지만 작가역시 마찬가지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고아였고, 특히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더욱 필요로 했던 아버지로 부터 외면당했다. 우유부단했을지언정 늘 앤에게 관심을 두고 지지해준 매튜의 모습은 작가의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루시 모두 몽고메리가 7살이 되었을 때, 그녀가 사랑하던 아버지는 성공과 돈을 좇아 서스캐처원의 황량한 서부였던 활기찬 도시 프린스 알버트로 이사를 가면서 그녀를 완전히 내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로웠던 어린 소녀를 홀로 남겨두었다.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책장의 타원형 유리 문 안쪽에 살고 있는 상상 속의 친구 둘을 만들어냈다. 루시 그레이와 케이티 모르스였다. 264쪽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집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한때는 집이 었다가 어느정도 세월이 흐른뒤에 돌아보니 그저 잠시 거쳐가는 정류장이었을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집은 무엇인가, 찾았다면 제대로 찾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또 꼬리를 물었다. 원하는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서로 다른 언어로, 문화에 살면서도 '빨강머리 앤'을 통해 위로를 얻고, 대를 지나오면서까지 위안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루시 모드 몽고메리. 그녀의 유년도,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녹록치 않았음에 어쩌면 더더욱 우리는 앤에게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고 위로를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르게 다가올테지만 지독한 그 외로움마저 잘 견뎌내고 이야기로 완설될 때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그 희망, 그 희망을 꿈꾸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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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컬러 - 개정판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김정해 지음 / 길벗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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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 컬러.

감각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보자면 색을 조합하는 능력이 없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출판사 편집디자인 업무 인턴생활을 할 때는 정해진 레이아웃에 이미 셀렉팅된 사진만 넣는 기계적인 업무만 하다보니 미대출신인 사수의 전공이 크게 부럽지 않았다. 인턴을 마치고 분야를 바꿔 웹디자인으로 옮겨간 후에야 미대 '출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그때 선배들도 말했었다. 전공이라서 잘하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감각이라서 잘하는게 아니라 비전공자보다 많이 보고 많이 실습했기 때문이라고. 그때는 그저 나를 격려해주려고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그들의 말이 전부 옳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컬러>에서도 이와 거의 흡사한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미술 전공자는 컬러 감각이 남다를가?

컬러 감각이 없다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오해를 많이 합니다. 은근히 순수 미술 전공자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어있죠.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하겠습니다. 39쪽




다만 시간이 경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젊은 날 내게 조언해주었던 그들이 알려주지 않은 비밀이라면 비밀일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컬러 감각을 기르기 위해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훈련 방법은, 음악을 통해 듣기, 감성 키우기, 책(이론)으로만 배우지 않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훈련하면 되는구나 깨닫고 평소처럼 다시 배색어플을 이용하거나 배색표를 가지고만 작업을 하려고 한다면 늘 비슷한 패턴, 즉 매너리즘에 빠질 뿐 결코 컬러감각이 늘지는 않게된다.


사는 동안 접했던 컬러는 컬러를 편애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성장기에 다양한 컬러를 접하지 못했다면 낯익은 색깔들만 좋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부모님과 살았다면 어릴 적에 보고 경험한 것들이 디자인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할 일입이다. 69쪽


아동미술 수업을 듣는 요즘, 어릴 때 미술교육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하고 있었다. 정규 미술수업도 중요하지만 위의 말처럼 아이의 컬러 감각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장소,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나가서 풀잎을 떠올렸을 때 획일화된 색만 책으로 보여주거나 할 것이 아니라 빛반사에 따라, 비오는 날 비를 머금은 풀잎색이 또 다른 색을 가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의 중요성들 말이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컬러 편견'이라고 말하는 데 아마도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디자인 하는 전문가들도 많을거란 생각이 든다. 셀프테스트 도표를 통해 직접 확인 해보면 좋을 거 같다.




배색연습을 통해 감각을 키우는 방법, 디자인별 컬러 배색 사례 등도 좋은 참고가 되었다. 뒤이어 각 컬러별 특징과 사례가 정말 좋았는 데 어떤 색을 싫어한다면 그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그 색이 가진 부정적인 부분을 싫어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이 좋았다. 결국 앞서 셀프테스트 도표를 작성하면서 느꼈던 호불호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을 점검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살아온 배경과 환경까지도 추리해볼 수 있는데 파랑의 경우가 그렇다.


전세계 사람들 중 80%가 좋아하는 색인 파랑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처럼 바다와 인접한 국가에서 선호하는 색입이다. 157쪽


색이 가지고 있는 특징덕분에 브랜드 마다 포인트 컬러를 정해서 자신들의 제품을 좀 더 분명하고 간단하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뱅앤올룹슨의 경우는 제품에 대한 기술 자체를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포인트 컬러 자체를 홈페이지에 정해놓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만약 쇼핑몰 기능을 가진 홈페이지라면 이런 점이 특히 중요한데 다양한 제품을 봐야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다양한 포인트 컬러가 시각적 피로감을 주어 쇼핑을 방해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컬러를 어떻게 포인트 컬러로 사용해야 할 지에 대한 사례와 이론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포인트 컬러가 결정되면 서브 컬러도 정해야 하는데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경우 같은 디자인의 의상과 헤어를 바로 서브 컬러를 통해 마치 계속 갈아입는 듯한 효과를 주고 캐릭터의 성격을 줄 수 있도록 배색해야 한다.


디자인이 아닌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내게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다소 이른 공부가 아닐까 싶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컬러 감각에 대한 오해와 비밀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예시로 든 작품들이 상업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순수회화 작품에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 또한 색이라서 좋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예시로 등장한 작품의 경우 사이트 url과 참고도서 등을 전부 표기해주어 좀 더 알아보고 싶거나 해당 브랜드의 컬러의 변화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어서 편집 자체에도 세심함이 느껴져 컬러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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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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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사'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타인과의 '비교'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부와 높은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한들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억울한 사람도 있을테고 또 반대로 그런 이유로 그나마 힘든 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나이를 들면 들수록 신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아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소설 <헌등사>는 그것이 정말 괜찮은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증조할아버지들의 몸은 우리들의 몸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증조할아버지들은 딱딱한 것을 먹을 뿐 만아니라, 먹는 양이 그야말로 많다. 너무 많이 먹어서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다. 우리들에게는 여분의 힘 따위는 한 방울도 없다. 136쪽



일본에 대지진이 있은 후에도 그들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노인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해지고, 새로 태어난 후대들은 뼈가 녹고 음식물조차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을만큼 연약한 장기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시아 여러나라 중 가장 두드러지게 무역활동을 하고, 가장 빨리 고령화가 되어 노인부양을 걱정했던 때는 오히려 추억이다. 다와 요코가 그린 <헌등사> 시대에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은 자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모토아래 다시금 에도시대의 '쇄국정책'을 펼치고 외래어까지 금지한다. 도쿄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은 맞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노인들은 약해진 손주들을 부양해야 하고, 60~70세는 젊은 노인으로 경제활동의 중심을 맡고 있다. 70세도 안되어 정년퇴임을 맞이했던 지금의 일을 아주 오래된, 허구속의 일들로 치부해버릴 만큼 소설 속 세상은 희극과비극이 그대로 공존해버린다. 일본어와 독일어, 이중언어로 작품을 쓰는 다와다 요코는 일본에 대한, 고국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각성하지 않은 일본인들을 비판하며 <헌등사>를 쓰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미움도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난다. 일본의 구전동화, 관습, 축제등을 차용한 표현이 많아 역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도 있고,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도 많이 생겨났다. <헌등사>를 읽다보면 자연앞에 교만스러운 일본인을 보는 동시에 그들이 축적해온 문화에 대한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 것이다. 독일어와 일본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다와다 요코가 독일어로 쓴 작품이 궁금해진 까닭도 이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 괜찮아요?"

라고 묻는다. 무메이는 '괴롭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기침이 나오면 기침을 하고 먹을 것이 식도를 역류하면 토할 뿐이었다. 물론 아픔은 있지만 그것은 요시로가 알고 있는 '어째서 나만이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가'라는 억울함을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아픔이었다. 그것이 무메이 세대가 전수받은 보물인지도 모른다. 49쪽



몸이 약해진 반면 사고는 유연해진 아이들은 음식에 연연해하는 지금의 우리를 자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존의 SF영화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에너지를 위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거나 조리과정 자체를 생략한 형태였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먹는 그들이 어떤면에서는 행복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맛을 없는 음식을 맛없게 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음식의 맛 자체를 고려하기 전에 내 몸이 거부하는지부터 신경써야 하는 무메이와 같은 아이들은 삶 자체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맛을 느낄 여유가 없듯 행복이란 것도 하나의 사치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버리듯 삶 자체가 행복해야된다는 사고를 버린 무메이에게는 미움도 악도 없다.

무메이는 '증조'를 '할아버지'로부터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옛날 아이들의 '엄마'가 무메이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며, 그 이외의 가족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증조할아버지'가 가져다준다. 85쪽

저자는 인간의 오만이 빚어낸 미래를 비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헌등사>속의 미래가 전부 다 나쁘게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 약해진 몸으로 누군가의 '부양'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안타깝고 괴로운 것이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서 행복이란 감정에, 맛이라는 찰나의 감각의 의연해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나는 과연 애초에 '제대로'번역하기 어려운 이 작품을 '제대로'이해는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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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도큐멘트 - 베이징으로 간 10인의 크리에이티브를 기록하다
김선미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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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도큐멘트>를 읽고 싶었던 가장 주된 이유는 고백컨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지 않는 내 편견을 고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어릴때만해도 헐리웃 영화나 팝송보다는 홍콩영화를 더 많이 보았고, 좋아했다. 물론 중국반환이전 시대이긴 했어도 어쨌든 중국어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면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중국에 가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어느샌가 여행은 커녕 'made in China'란 표기만 봐도 저렴한 것,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제품이라 생각했고 당연히 중국은 그렇게 내게서 불호가 되어버렸다. 이유를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과연 그것이 중국이란 나라의 모습 전체일까? 아니다. 아닌 줄 아니까 이렇게 책도 찾아읽으려고 했을 것이다.


<베이징 도큐멘트>의 저자도, 그가 인터뷰 한 10인의 크리에이티브들도 한결 같이 말한다. 10년을 넘게 지냈어도 아직 중국을, 베이징을 잘 모르겠다고.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볼 수록 좋아진다고도 말한다. 셰프로서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안현민 셰프는 한식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식전문가다. 하지만 그의 출발점을 한식이 아니라 양식이었다. 한식을 잘 알기 위해서 양식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력을 봐도 정말 화려하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위해 중국문화를 모르고 한식만 고집하면 안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우친 그의 성공사례는 앞으로 베이징을 포함, 해외에서 한식을 주제로 사업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팔고자 하는 상품이 한식이라고 한식만 연구하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문화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베이징 무브먼트로 저자는 <지일>이라는 잡지를 소개해준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중국도 알다시피 마찬가지다. 뭘 알고 싫어하자, 라는 취지로 시작된 지일이라는 잡지는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으려는 시도와 같을지도 모른다. 20`30대들의 그런 성향을 잘 간파한 편집장 덕분에 잡지역시 큰 호응을 얻었고, 특히 한 가지 키워드로 판매되는데 '고양이'를 주제로 했던 호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책은 <지일>이라는 잡지처럼 우리에게 중국을, 베이징을 잘 알고자 노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우표를 모으다 보면 도안도 분석해야 하고 발행 국가의 언어도 찾아보게 되는데, 이렇게 여러 분야로 가지를 쳐가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구의 영역이 넓어져요. 스스로 즐기면서 알아가는 진정한 공부의 과정으로서는 정말 최고의 취미죠. 72쪽


 

가장 인상적이었던 크리에이티브는 스토리텔러 김기훈 예술가였다. 청소년 대표로 우취대회에 나가 상을 수상했던 그의 미식과 관련된 우표수집공모작은 실제로 보고 싶을만큼 취지도, 구성력도 정말 멋지게 보였다. 우표를 수집한다는 것이 아주 흔한 취미라고 생각했고, 어릴 때 누구나 한번쯤 해보게 되는 것이지만 그에게 있어 우표수집은 남달랐다. 문화를 접근 하는 방식이었고, 그 방식은 강요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삶을 향유하는 라이프스타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화를 해석하는 방식이 우표수집이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의 하나로 그가 택한것은 '요리'였다. 앞서 소개한 안현민 셰프가 한식을 중국에 판매하고자 하는 취지라면 셰프로서의 김기훈은 한식을 도구로하여 중국의 문화에 한국의 문화를, 혹은 이와 반대의 순으로 각국의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이징 도큐멘트>가 예술가들이 보는 베이징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문화를 논하는 상위계층에 한정된 것이라고 보일 수 있는 데 고희영 다큐멘터리 감독 편을 읽다보면 그렇게 한쪽으로 편중되지도 '좋아보이는 것'만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이징의 농민공들과 관련된 인터뷰 한 두 페이지만 읽어봐도 한국인이라서 볼 수 있는, 외부인이기에 가능했던 베이징의 다각화된 시선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본다는 것, 제대로 상대를 알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려고 하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너무 다 낯설어서 대학원 과정이 끝나면 그냥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당연히 외국인이었다. 오래된 유학 생활 동안 중국인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자만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중국을 잘 아는 외국인'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256쪽

 

나쁜 것만 보고 나쁘다고 하지 않고, 좋은 것만 보고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것과 나쁜 것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우리가 가진 부족함을 깨우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 베이징을 제대로 보고자 한 <베이징 도큐멘트>에서 나는 그런 삶의 자세를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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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셀프 트래블 - 2018-2019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0
정꽃나래.정꽃보라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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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셀프트래블 2018-2019



딱 한번 다녀왔지만 작년 8월에 다녀온 곳이라 어쩌면 가장 그리운 곳인지도 모른다. 렌트를 하지 않은 까닭에 못가본곳이 너무나 많고, 한참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을 때라 기념품이 북부여행 때 받은 것밖에 없어 아쉬움이 너무나 커서 그럴 것이다. 그때도 가이드북을 보긴했지만 도쿄를 여러 번 다녀왔으니 크게 걱정없겠다고 안일한 생각으로 떠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마 나 말고도 그런 사람 많을 것이다. <오키나와 셀프트래블>을 읽었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크다.


일본이면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제주도랑 서울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 가이드 북, 반드시 챙겨야한다.



24쪽부터는 진짜 정독해주길 바란다. 특히 나처럼 렌터카 없이 다녀야 하는 분들은 미리 읽어보고, 대중교통 관련해서는 여러 번 읽어두는 게 좋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반드시 해야겠다고, 가보겠다고 한 것이 딱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츄라우미 수족관, 에메랄드 빛 바다, 국제거리에서 스테이크와 블루실 아이스크림 먹기. 마지막으로 슈리성이었다. 나하공항을 이용했기 때문에 국제거리 방문은 유이레일을 이용해서 편했는데 츄라우미 수족관이나 바다를 보실 분들은 책에 나온 추천일정 확인 후 교통편도 확인 하고 추천숙박에 나온 곳을 유념해주면 좋겠다. 첫 날 하얏트 리젠시 호텔을 이용했는데 나처럼 직장인이거나 오기 직전까지 스케줄이 바쁜 사람들은 강추하고 싶다. 특히 수영을 할 수 있는 해변으로 가려면 반드시 렌트를 하거나 주변에 숙소를 잡아야 하는데 다른 일정을 고려하면 호텔에 수영장이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가격은 다소 비싼편이지만 한 달 전에만 예약해도 큰 차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오키나와 비치에 관련한 Q&A가 책에 나와있는데 참조하면 좋다.



유이레일을 이용하다보면 35커피 전문점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판매수익의 일부를 오키나와 산호보호에 쓰인다고 한다. 그냥 저가 브랜드 커피인줄 알고 지나쳤었는데 알고 갔음 한 잔 사마셨을 걸 하고 아쉬웠다. 가게되면 해야할 일 하나 더 추가. 슈리성 근처로 가다보면 다른 곳보다 '시사'기념품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해서 공항에 가기전에 미리 사두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미니멀리즘 어쩌구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막판에 아쉬워서 공항에서 사려고 했더니 거의 5배 가까이 차이나서 사질 못했다. 완전 똑같은 제품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비싸서 결국 못사왔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7~10월 경 방문하는 분들은 선글라스 반드시 준비해야한다. 가벼운 가디건도 필수다. 더불어 7~9월에는 태풍이 몰려오는 시즌인데 내가 갔을 때는 다행히 북부여행 후 돌아오는 데 엄청난 비를 만났다. 버스가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는데 그정도면 그래도 사나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니 여름 휴가 때 가시려는 분들은 일기예보 반드시 확인하길 바란다.



일본어가 유창한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책에 나오는 브랜드와 판매품목등을 미리 알아두고 가면 좋다. 멀리서 전광판에 로고 이미지만 떡하니 보이고 상세설명이 거의 생략된 경우가 많아 브랜드와 품목을 연관시키지 못하면 바로 앞에 대형마트를 두고 작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시장마다 돈키호테가 다 있긴 한데 가격 또한 다 다르다. 우리나라 다이소 제품가격이 매장마다 다르진 않지만 일본은 다르다. 어차피 여행왔으니 구경도 할 겸 이곳저곳 다 둘러보고 마지막에 가장 저렴한 곳에 가서 구매하는게 좋다. 또 한가지 추가로 알려주고 싶은 건 슈리성에 갔을 때 뚜벅이일 경우 반드시 다른 여행자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야 한다. 얼핏 보면 한 곳에서 만나질 것 같고, 큰길 따라가면 될 것 같지만 부산의 영도를 떠올리면 된다. 내리막길인줄 알고 갔는데 어쩌다보니 동네 한바퀴를 다 돌아서 겨우 유이레일 역에 도착했었다.


오키나와는 아무런 준비없이 가면 정말 심심한 동네라고 생각하기 쉽다.



미리 찾아둔 곳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건물도 거의 없고 황량하기 그지 없다. 국제거리도 초입부터 번화하지 않고 사거리를 중심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계속 자동차도로만 나오기도 한다. 혼자가거나 언어가 익숙하지 않을 경우 가이드북을 꼭 지참하고 다니길 권한다. 치안부분도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 이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 가이드북을 여행시 챙겨가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날씨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일정을 변경해야 할 때 활용하기 좋다. 오키나와 주변섬을 여행하거나 해당 지역의 맛집정보가 요긴하게 쓰일 때가 분명 있으니 말이다. 올 여름 휴가로 오키나와를 선택했다면 <셀프트래블 오키나와>로 준비를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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