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 - 한사오궁 장편소설
한사오궁 지음, 문현선 옮김 / 책과이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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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나 표정, 겉모습, 옷 의식 등의 사물은 어떻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가. 나는 독자들과 더불어 이 구체적인 이미지 기호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함께 관찰하고 싶었다. -중략-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 언어와 구체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서로를 생성하고 성장시키는지, 또 어떻게 서로를 제어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한사오궁의 소설 <암시>는 소설이자 기호 혹은 이미지가 우리의 삶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문서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역자의 말처럼 그 인물들이 모두 저자 한 사람일수도 있고 혹은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의 저자의 말처럼 기호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소설이란 형식을 차용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총4부로 구성된 소설은 은밀한 정보를 시작으로, 일상, 사회의 구체적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언어와 이미지의 공존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우선 언어가 문자를, 비언어가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문자로 서술된 것 이상의 정보를 이미지, 시각화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내게 '사랑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실'이라고 말하는 텍스트안에서도 '진실'은 별개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 혹은 눈빛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내 눈을 보고 말해봐'라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보여지는 이미지는 항상 언어보다 정확할까 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보여지는 이미지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볼 수도 없는데 가령 저자가 언급한 '관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쁜사람과 착한사람을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 확실히 알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사람의 과거와 실제 성격을 알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그사람이 평소에 쌓아온 덕이나 업적 또한 얼굴로만 판단할 수도 없다. 즉 보여지는 이미지 역시 언어가 가지는 한계처럼 다른 의미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한 여성후보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고자 여성이 택하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화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체력적인 면에서 결코 약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목적을 위한 여성성이 아니라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위해 자신을 꾸미자고 했던 것과는 달리 마치 여성성을 버리고, 그런 스타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보니 앞에서는 여성들의 지지를 받지만 그 반대로는 오히려 그녀는 또 다른 이성을 혼자서만 독차지 하려는 여우가 되고 만다. 일상속에서의 이미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도가 거의 폐지화되고 있지만 작가는 과연 그런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서 수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우리가 제도화된 사형제는 폐지시키고 있을지 몰라도 암묵적인(즉 비언어적인)형태로 또 다른 의미의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가하면 공간이라는 주제를 두고 풀어낸 부분도 공감이 되었다.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 남편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다른 마음을 품는다는 것, 어차피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공간적으로 멀리 있다고 해서 마음이 느슨해질 수 있는가.


3부에서는 중국의 현대사와 맞물려 앞서 1,2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어떤 '이미지'로 사회에 적응하게 되거나 혹은 밀려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당국에서 시행된 제도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서화 혹은 언어화된 개념이 정, 혹은 호감 등의 결실로 빚어진 것들이 상당함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기대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형식은 작가 스스로가 실험적이자 모험적으로 시도했다고 할 만큼 기존의 소설방식은 아니다. 역자는 중간 중간 기존의 집필 방식이 등장한다고는 했어도 분명 놀랍고도 반가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만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를 두고, 또 사건을 두고, 또 사회문제를 통해 이런 방식의 소설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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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서야 - 일본 천재 편집자가 들려주는 새로운 시대, 일하기 혁명
미노와 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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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큰 충격을 던지는 창업가나 아티스트, 운동선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쳐야만 인생'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세 살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본능을 발휘하고 마음껏 호기심을 드러내며 산다. 67쪽


책<미치지 않고서야>의 저자 미노와 고스케는 현직 출판사 편집자이자 온라인 살롱 '미노와 편집실'의 운영자다. 딱봐도 신입 에디터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것 같지만 그의 처음 일한 부서는 편집부가 아닌 광고영업부였다. 언뜻봐서는 이례적인듯 보이지만 그가 하고 싶던 '편집'일을 위해 그가 한 일은 편집을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부서이동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반드시 가능한것도 아니고 타부서의 업무를 쉽게 내것으로 만드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위의 발췌문도 그런 의미에서 세 살 어린아이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살 어린아이들은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울다가도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이나 음식을 먹여주면 금새 환하게 웃는다. 지나치게 실패와 테두리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 동료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회사에서 짤리는 것은 아닐까 망설이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자세가 있었기에 영업부에 재직하면서도 <네오힐즈 재팬>을 창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잡지를 창간하는 과정도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의식이 상당한 사람이고 고난이 닥치면 자포자기 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지그의 헤프닝을 나중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될까하는 놀랍도록 발전적인 방향으로 시련을 이겨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간 직전 저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나중에 편집인터뷰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고 의연하게 대처하는가 하면 언뜻봐서는 기회주의자, 운이 좋았던것처럼 보여도 새벽3시에 출근하거나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기위해 사람들이 관심가질 만한 것들을 직접 찾아내며 '빙의'라고 표현할 만큼 인터뷰를 하게 될 때에는 그 사람의 저술, 인터뷰, 방송녹화내용등을 포함해 철저하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손으로, 머리로, 발로, 이름으로 돈을 벌어라. 자신의 가격표를 의식하지 않으면 평생 누군가가 먹여주는 돼지로 남을 뿐이다. 돼지가 아닌 굶주린 늑대가 돼라. 88쪽


편집부로 옮기는 과정이 드라마틱했고 실제 승진도 빨랐지만 그래도 사회초년생을 갓 넘긴 그에게 도쿄 내에 거주하는 일은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한 가정의 가장인만큼 최소 방2개짜리의 집을 구하려면 당시의 월급으로는 부족해서 추가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그는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칼럼을 쓴다거나 강연을 나간다거나 하는식이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추가 수입을 필요로할 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나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장 돈이 급하다고 규동집 알바를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다. 업무와 관련된 것,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온라인 살롱 '미노와 편집실'이었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와도 윈윈하기 위해서 이직한 곳이 현재 재직중인 겐토샤였다. 얼핏봐서는 이전회사에 비해 겐토샤에서는 사원의 부업을 인정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니 가능한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회사덕분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회사가 진정으로 발전가능성 있는 회사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인플루언서가 되면 그야말로 최고 아닌가?'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 그야말로 물건을 고르는 일 자체에 지치고 만다. 자기가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 지금시대에는 필연적인 방식이 되어간다. 그러니 인플루언서의 힘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46-147쪽



사실 공무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회사에서 자신의 사원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노예가 아닌이상 사원이 발전할 수 있을 때, 근무시간 외의 시간만큼은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회사가 현명하다고 말한다. 만약 이를 방해거나 수용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퇴사를 권하기까지 한다. 인스타그램만 보더라도 전현직 승무원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내세워 뷰티나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직접 운영하지 않더라도 인플루언서가 되어 특정 기업에 매출을 올려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현직 편집자가 개인계정과 사내계정을 병행하면서 자신이 편집한 책의 매출을 도모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앞으로는 AI가 인간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리라는 예측이 일반적인데다 이를 우려하는 시선들도 분명 존재한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미칠 줄 아는'인간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친다는 것은 노력을 뛰어넘어 열정을 다해 자신이 하고 있는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이 찾아와도 그 또한 하나의 자극이 될 뿐 결코 방해요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저자처럼 발가벗고 증명사진을 찍는다던가, 무조건 다 '하겠다'라는 정신까지 따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거나 누군가 이끌어주겠지,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에게는 미친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그 일을 지금 바로 행하는 것, 그것이 편집이든 무슨일이든 성공할 수 있는 기본자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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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인간의 탄생 -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발견한 에로틱의 미학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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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욕망하는 인간의 탄생>은 기본적으로는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연구자들을 위해, 나아가서는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모르더라도 관심있는 일반독자들까지 아우르기 위해 집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읽다보면 알겠지만 분명 이 책은 '관심있는'일반독자들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쉽게 쓰인 책인 것 맞다. 다만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공생이 아니라면 책에 소개된 작품들 중 국내에 번역된 6개의 작품은 저자의 말처럼 미리 읽어두는 것이 좋다. 평소에 독일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또 영문학에 비해서야 적은양이지만 그래도 제법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니 낯선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해설이 함께 실려있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19세기에서 20세기 자연주의와 세기전환기의 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우선 이 책의 표지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다나에, 1907~1908>다. 독일문학을 이야기하는데 굳이 표지에 실린 클림트의 작품을 언급하는 이유가 궁금해질텐데 실제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 해당되는 내용은 바로 <다나에>에 대한 설명이다. 왜냐면 클림트의 개인적인 삶과 그의 관능적인 그림들이 바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독일어권 문학에 녹여져 있는 '성'에 관한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특히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연적 속성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성(性)이다.  -중략- 이제 자연의 일부로 이해되기 시작한 인간의 성과 성 욕망 역시 인간의 자연적 본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6쪽

우선 자연주의문학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보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를 사용했다는 데 있다. 왜냐면 작품속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처럼 보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인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의 모습도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빌헬름 폰 폴렌츠의 <시험>이란 작품속에서는 성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적 본질이라는 경향을 보여준다. 사실 19세기 이전시대의 세계관과 인간관의 절대적인 기준은 종교였다. 종교는 금욕, 절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대치되는 듯한 자연과학이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겪게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주의문학과  세기전화기의 문학은 또 어떻게 다른지는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었다.


자연주의의 지배는 끝났다. 자연주의의 역할은 다했고, 그 마법은 깨졌다. 발전의 뒤를 힘겹게 따라가며 모든 문제를 이미 그것이 해결된 후에야 겨우 알아차리를 무지한 대중들 사이에서는 자연주의가 여전히 얘기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양의 전초병들, 지식인들, 새롱누 가치의 정복자들은 이미 등을 돌렸다. 227쪽


위의 발췌문은 헤르만 바르의 <자연주의 극복,1981>에 발표된 에세이에 실린 글이다. 얼핏보면 자연주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면서 대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베르만 바르의 글은 자연주의문학과 세기전환기 문학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 자연주의 문학이 세부적인 것까지 그대로 묘사하고자 했다고 말했는데 세기전환기 문학은 이와 축소화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경 예술'이라는 의미로 더욱 더 발전된 형태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바르가 각기 사조가 연결되었다고 하는 이유를 책에서는 추가적으로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에 소개된 작품 및 작가중에서 그나마 알고 있었던 작가는 토마스 만인데 그의 작품 중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트리스탄>을 관련지어 해설해주었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 중 <마의 산>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을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도 요양원이 등장하는데 <트리스탄>에서도 소설의 무대가 '아인프리트 요양원'이며 그곳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슈피넬이라는 무명작가가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예술성과 시민성'이 주제인데 슈피넬의 역할은 '예술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요양원에 머물러 있고 건강한 현실에서는 단절되어 있는 상태로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실제적인 아름다움 사이에서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예쑬과 자연적 생명력을 대립관계로 바라보는 세기전환기의 세계관과 예술관을 바탕으로 쓰여있음(369쪽)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런식으로 전혀 읽지 않은 책일지라도 저자는 일반독자들도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게 집필된 책임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역시나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을 미리 읽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 심리학과 문학과의 연결성에 대한 부족한 배경지식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혹 이 책을 읽기전이라면, 혹은 1부를 마치고 난 뒤 2부에서는 관련된 문학을 함께 읽어가며 읽는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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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무레 요코 지음, 장인주 옮김 / 경향BP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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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과거에 비해 고양이를 기르는 혹은 모시는 집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 <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는 고양이C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기하면서도 뭉클해지는 건 C가 나이들어가면서 변화되는 삶의 패턴이 나이든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C는 골목대장이었다. 의기양양하고 도도했던 그녀가 나이들면서 제 몸관리도 잘 안하게 되고 고집만 세진다. 그리고 겁은 또 왜그리 많아지는지 사람의 모습과 정말 유사했다. 집사는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발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게되면서 상처로 인해 동물병원에 가야하는 처지가 되자 더더욱 집사의 마음은 괴롭다. 18년을 함께 살았으니 자신을 믿어주면 좋으련만 C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만 닿으려고 해도 발톱을 감춰버린다. 그런 C에게 집사는 애원하듯 설득하고 마치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기라도 한 듯 예전처럼 스스로 발톱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잠자기 전이나 용변을 볼 때면 잠시의 망설임도 허락치 않고 집사에게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조른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가 체력을 기르기 위해 국민체조 혹은 아이돌의 안무를 따라할 때의 C의 반응이었다. 국민체조 음악을 싫어하는가 싶어 아이돌 음악을 틀었더니 그것도 못마땅해할 뿐 아니라 새끼냥이일 때 거부하지 않았던 노래도 참아주지 않을 뿐 더라 제자리 걷기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C의 모습을 보면 나는 절대 고양이 집사는 할 수 없겠다 싶었다. 물론 책속에는 C외에도 길고양이 친구들과 지인들의 고양이의 차분하고 인간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듯한 냥이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냥이도 다 다르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왜냐면 C의 행동중에서 독자인 나조차 안타깝고 보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천둥번개가 칠 때 옷장으로 숨어들어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C를 떠올리면 나라도 '괜찮아'하면서 쓰다듬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지인의 어머니는 인생 마지막에 키우는 고양이를 '끝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분명 C는 내게 '끝냥이'다. 나는 C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해 주고, "그러니까 오래 살아 줘."하고 조금 숙연하게 말했다. 108쪽
사실 이 책을 읽고자 했던 까닭은 '고양이 한 마리'에 끌렸다기 보다는 '기침을 해도 나 혼자'라는 부분이었다. 혼자사는 여성은 아니지만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정말 이대로 혼자서 살다 가겠구나 싶었던터라 그부분이 더 궁금해졌던것이다. 막상 책을 펼쳐보니 여왕이라 칭할정도로 까탈스럽고 도도한 고양이C의 이야기다. '나 혼자'임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고양이C와의 관계가 깊다는 의미였을 것 같다. '끝냥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혼자늙어가는 삶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고양이를 길러보면 어떨까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저자가 느꼈던 행복 그리고 괴로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집사생활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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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전선영 지음 / 꿈의지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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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을 읽다보면 저자에게는 막막했고 힘겨웠을 유학생활 7년이 누가봐도 '열심히'살았던 순간순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게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의과대학에서 '통계 분석가'라는 멋진 직함을 가지기 전까지 어찌보면 책의 제목처럼 그저 '가방끈만 긴'것처럼 보였던 시간을 통과하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언니의 지난 삶과 저자의 삶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유학생활을 시작한 뒤 밤새 공부를 해도 그렇지 않은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점수가 나오지 않았던 날들속에서도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그러했다.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드라마속 대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속에서 여러번 스스로에게, 혹은 가족이나 지인, 학교 선생님이라 직장 상사로부터 '최선'을 다했냐는 물음을 받게된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어릴 때 '최선'을 다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한다.


누군가 "최선이라 건 대체 어느 정도일가요?"라고 내게 묻는다면 여전히 단순한 수치로 대답하긴 힘들 것 같다. 하루에 잠을 네 시간만 자거나, 토요일에 1등으로 도서관에 나오는 게 늘 최선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이제는 '최선'이란 말을 들어도 예전처럼 막연하지 않다. 유학 생활 첫 2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지리멸렬한 반복의 시간을 버텨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85쪽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란 그럼 무엇이었을까. 나의 기준은 친언니였다. 언니는 졸업한 뒤 목표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 새벽반을 다녔고, 재학중에도 장학금을 받아서 다녔던 만큼 졸업한 이후에는 더더욱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결했다. 새벽5시에 일어나 6시가 되기전에 집을 나가서 12시 막차를 타고서야 돌아오던 언니의 모습이 내게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와 언니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지금껏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반성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거듭반복되는 실패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또 실패가 완전한 거부가 아닌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깨달아가는 모습들속에서도 언니가 보였다.



다른 꽃들이 모두 흐드러지게 핀 계절. 왜 나만 웅크리고 있냐고 이제는 묻지 않겠다. 꽃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가장 추운 계절에 피는 꼿도 그토록 진하고 붉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므로. 186쪽


박사졸업논문을 통과한 뒤 저자는 여러 번의 시도끝에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다. 1년짜리 계약직이긴 했어도 6개월 뒤 평가에 따라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자리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사원증을 받고서 감격하면서도 학력이나 직함에 기대지 않으려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이후 비자문제로 다시금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무사히 그녀의 실력을 알아봐주는 곳,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속에서 언니가 처음 일본에서 정규사원으로 채용되었을 당시 비자문제로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능력이 뛰어나면, 정말 원하는 인재라면 비자문제는 당연히 알아서 처리된다고 생각하며 해외취업을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옆에서 전혀 도움도 안되는 말들을 하곤 했다. 다행히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몇 달이 소요되긴 했지만 예정대로 언니는 그 해 해외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때 내가 저자의 어머니처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지금도 남아있다.



미국 속담에 '삶이 레몬(신 것)을 주면 레모네이드(청량한 음료)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삶이 50킬로그램짜리 덤벨을 던져주면 기꺼이 애플힘을 만드는 수밖에. 164쪽


곁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는 말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행운을 내가 느끼진 못했지만 분명 가지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저자 덕분에 이제는 그 행운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지치고 힘들 때, 도무지 나아가는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레몬네이드와 애플힙을 떠올리며 힘내보자. 나는 저자덕분에 행운을 두 개나 받은 셈이니 나이를 핑계삼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부딪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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