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 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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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가 그토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불확실하고 심지어는 임의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제아무리 기술적으로 도약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 없다. 53쪽

이따금 지난 날을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거나 영화처럼 누군가를 잃게 되는 아픔이 찾아오면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등장하는 원자폭탄의 경우만 봐도 결정권자의 교토 여행이 추억이 아닌 악몽과 같은 여행이었다면 폭탄은 교토에 떨어졌을 것이고 구름의 흐름이 더디었더라면 나가사키는 화를 면했을 수도 있다. 저자의 힘들게 고백한 가정사만 보더라도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야말로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라고 밖에는 설명할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냥은 무의미하다거나 무기력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현대 인간 사회는 월등히 통합적이고 엄격히 관리되며 구조적으로 조작된 구역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불규칙하고 임의적인 충격을 받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메뚜기 떼의 양상은 무시무시하게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갑작스레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불안정하게 선 무리에서 살아간다.133쪽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개방한 <트위스터스>와 같은 재난과 재해를 다룬 영화들을 많이 떠올렸는데 실제 여름마다 예측을 빗나가는 태풍, 장마 등만 보더라도 인간의 예측이 전문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메뚜기떼의 공격 역시 재난재해 뿐 아니라 히어로가 등장하는 SF영화에서조차 정확한 예측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에서 제시한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각자는 조금씩 다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45쪽) 나를 아는 것의 집착하기 보다는 나의 작은 행동과 판단이 타인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388쪽)‘ 책을 읽고 혼자서만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짧더라도 서평을 남겨야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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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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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나는 가난한 아이었고, 가난한 어른이 되었다. 분명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내 처지는 가난한 것이 맞지만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가난은 아니다. 과거에는 보편적 가난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상대적인 부분이 커졌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가 더심각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어른들이나 학생들이나 자신의 생존과 안전의욕구를 위해서 공동체의 질서나 문화는 쉽게 무시되었고 공동체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정의‘나 ’교육‘의 논리보다는 ’힘‘의 논리가 횡행했다. (…) 가난은 삶의 곤란함을 넘어서 때로는 무기가 되고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들어가며 중 일부-

이 책은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에 책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 그대로다. 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개입 혹은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일시적인 안타까움만 품을 뿐 쉽게 잊고 마는 나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아서 ’가난한 아이들‘이 여전한지도 모른다.

수정이 안정된 직장을 얻고도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건 디딤돌 없는 삶의 조건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고 나자 어머니와의 관계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 관계 때문에 수정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38쪽

서두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수정이가 직면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된 상태‘일 것이다. 성실하게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고, 조금 덜 쓰고, 덜 먹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에서 가난은 ’죄‘까진 아니어도 ’부정적인 시선‘을 수긍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정이의 경우는 다르다. 부모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근로가 불가능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에 사회 시스템이 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이웃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또 가족원 중 한 명이라도 완치가 불가능한질병 혹은 약물을 비롯 중독으로 인해 온종일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이럴 때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한다.

저는 그나마 감사한 것 같아요. 제가 되게 막혀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되게 많이 열리게 된 것 같아요.(…)제가겪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나랑 달라도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겪은 일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서, 지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153쪽

수정이와 달리 아직 홀로서기 중인 혜주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혜주는 외모에 집착한다기 보다는 과한 메이크업과 염색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호해주는 가면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면서도 ‘무기’없이는 외출이 어려운 혜주의 경우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려해도 중도에 포기한 학업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족에게 조차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수정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혜주에게도 여전한 희망은 존재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가 반드시 ‘가난한 어른’인 것이 아니라는것은 분명하다.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빈곤이 되물림 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 자체이다. 게다가 빈곤은 더 이상 저소득만을의미하지 않는다. 시간 빈곤, 문화 빈곤, 주거 빈곤 등 불평등의 다양한 양상들은 저마다 현실속에 다른 모습으로드러난다. 257쪽

내가 느끼는 가난은 시간과 주거 빈곤에 속할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자신의 부모가 ‘가난한 어른‘이라는 것을타인의 시선속에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아이가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기 보다는 ‘희망의 부재’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을 읽고이 서평을 쓰며 어제보다는 더 나은 어른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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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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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반영한다. 8쪽

쓰레기는 한 도시의 지형, 위생 그리고 하층민의 소비 역사를 보여주었다. 책 표지에는 물에 빠져있는 비닐, 플라스틱 등 자연분해가 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쓰레기와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영화 <센강 아래> 속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바다 한 가운데 쓰레기 더미에서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소피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며, 단순히 쓰레기 양을 줄이거나 재활용을 촉구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수와 배설물, 고형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게 된 것은 기술과 인프라- 특히 하수도 시스템-가 발전한 19세기 이후였다. (44쪽). 19세기라고 하면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겠지만 기원전 2세기 경에도 이미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산업화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밀도가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냄새나는 쓰레기 처리장과 가축의 배설물 및 도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해결을 위해 외곽으로 이동시키면서 인구이동이 불가피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특정 지역이나 문화로 인한 것도 있지만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지형 요소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부분과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쓰레기를 처리할 뿐 아니라 성격이 온순해서 집에서 길렀던 돼지, 자동차가 개발되기 이전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말 사육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게을러서, 미개해서 등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 말이다. 의외였던 점은 위생이라 관념 혹은 규범에 있어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 관련 해 생각했던 것 보다 지금과 같은 인식과 제도가 정착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흑사병이나 콜레라로 인해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본격화 되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위생, 깨끗하고 건강하기 위한 2가지 의미를 다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계급과 관련될 수 밖에 없다(120쪽 관련)는 부분은 다음의 발췌문과도 연결되어 있어 씁쓸해진다.


위생은 점차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세균학은 18세기 사회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개인 위생과 도시 위생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기반이 되었다. (...)세균학은 20세기까지도 인종 차별과 우생학을 지지하는 근거로 쓰였다. 145쪽

문화나 종교보다 위생과 관련된 부분이 계급과 자본에 의해 휘둘린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활자로 직접 마주하니 여전한 현실로 인해 더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오래 전 자원의 활용문제라기 보다는 기후 및 환경과 관련된 부분은 물론 모든 의미의 위생과 관련되어 있는데 과학과 기술이 발전이 이만큼 발전했어도 오히려 계속적으로 쌓이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악취를 해결하고, 전염병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 쓰레기는 새로운 위험 욧호를 드러냈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쓰레기 생산과 처리 방식에 대한 담론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240쪽

쓰레기통이 생겨나고,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직업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물론 쓰레기 무역과 관련된 부분은 이 책 후반부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좋은 논픽션은 늘 스릴러보다 흥미롭다. 이 책이 그렇다.“(표지)는 평은 결코 과하지 않다. 또 챕터 마다 실려있는 아포리즘의 출처를 찾아보는 재미도 놓칠 수가 없었다. 저자가 심각한 내용을 이토록 흥미로운 구성으로 조직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쓰레기 문제가 ’내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본다. 한 도시 혹은 부족의 문제에서 국가 전체를 넘어 이제 ’인류세‘와 더불어 ’쓰레기세‘라고 할 정도다. ’내 문제‘라는 인식이 정말 중요하며, 그런 자각이 흥미롭게 읽힐수록 깊게 다가 왔다는 점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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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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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서평을 포함한 모든 후기에 힘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이 잘 해봅시다!‘라는 마음을 담아 적어본다.

그날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어. 단지 그 교무실에서 한 번은 눈이 마주쳤다는 기억.
‘너도 봉투 받는 애구나.‘ (114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서로 다른 날, 다른 도시에서 태어난 두 사람 권진주와 김니콜라이의 이야기다. 흙수저 혹은 금수저란 비유를 싫어하지만 이보다 더 간략하면서 확실하게 태생 혹은 성장 배경을 표현할 만한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 둘을 흙수저라고 적는다. 이 둘은 그냥 두면 그대로 배경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사회적배려대상자‘인 처지로 다른 이들에게는 배경일지라도 서로에게는 미묘하게 음각 혹은 양각처럼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 둘의 공통점이 또 있었다. ‘불안정한 미래‘랄까.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양귀자의 <모순>을 재독했는데 작품 속 안진진이 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설정이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진진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안의 남자를 만나 두 사람을 떠나가는 모습이거나 셋 보다 더 우울한 미래를 품은 남자를 선택하면서 일어날 미래를 그려보는 재미도, 그렇게 서재와 서재가 결혼하는 것이 아닌 소설과 소설이 결합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왜 책 리뷰에 적고 있는가.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두 사람이 만나서 처음부터 연애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다시 다른 작품을 끄집어 내자면 아사이 료 원작 소설 정욕 속 두 사람의 동거를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134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중에서)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더 어려운 완벽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랄까. 세상의 다른 누구도 아닌 단 한 사람, 서로만큼은 비난이 아닌 포용으로 함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너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보다 더 어려운 ‘너를 부정하지 않을‘ 관계 같았다. 어쩌면 서로 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에서만이 가능한 관계 일지도 모른다.

<무겁고 높은>에서는 역도라는 스포츠가 등장한다. 얼마 전 제자리에서 높이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역도선수임을 증명하는 영상을 보고 다시 떠올렸었는데 역도는 물론 사실 스포츠에 대해서 잘 모른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역도를 내던져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송희가 100킬로그램을 들고 싶었던 그 마음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탐하거나 욕망하는 마음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앞으로 견뎌야 할 혹은 내던지게 될 바벨들의 좋은 시작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사실 언제나 없었지. 적어도 역도대 위에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도 말리지도 않았어. 송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들었거나, 내가 들지 못했을 뿐. 이상하게 말이야.
송희는 그렇게 말하며 바벨에 원판을 더 꽂았다. 그것은 100킬로그램이 되었다.

이제 아무도 밉지가 않아. 261쪽 ( 무겁고 높은 중에서)

송희 나이였을 때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일기장을 펼치지 않으면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 시청자 입장에서 안타까웠던 복싱 드라마 <순정복서>(이 작품은 드라마로만 봐서 원작은 정확히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권숙의 땀방울이 오버랩되어 더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지고 싶다던 이권숙처럼 송희 역시 100킬로그램을 들고 말고를 떠나 어차피 역도를 그만둘 수밖에 없음에도 들어 올리고 싶은 그 마음이 정말 꼭 같았다.

착하게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읽었던 여러 작품 중 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 준 덕분에 중간중간 안타까운 부분이 등장해도 출근 전 독서로 정말 좋았다. 단편집이라 흐름이 덜 끊겨서도 좋았지만 근무하기 전 만났던 니콜라이, 진주, 송희, 로나 그리고 다른 인물들 모두 내게 ‘같이 잘 해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나도 결국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많이 읽어보자고,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지만 그래도 더 많이 읽고 ‘같이 잘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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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영성 생활
전달수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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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마치 사람이 제 아들을 업고 다니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너희를 업고 다니시는 것을 광야에서 보았는데, 그 광야에서도 그렇게 싸워 주셨다 (신명 1,31)

그러나 납작해진 고무풍선에 공기를 불어 넣어 주면 좋은 장난감이 된다. 이처럼 메마르고 딱딱한 사람이라도 영을 받아 그분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면 생기 넘치는 삶을 살고 그리스도다운 사명을 실천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삶을 영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24쪽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시간경(성무일도)를 바쳤던 적이 있을까. 묵주기도를 바치면서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거나 어떤 때에는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데, 영성적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데 다른 사람들이, 환경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때일 것이다. 안또니오 신부님의 <즐거운 영성 생활>은 영적으로 건강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영적건강검진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동안 내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기도를 하면서도 이내 죄에 빠지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는데 신부님은 성인들의 기도생활과 신비가들의 영성생활 그리고 성경에 쓰여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기도가 무엇인지, 그 기도의 힘이 무엇인지 따뜻하게 들려주신다. 따뜻하게 라는 부사를 쓴 이유는 단 한 순간도 신부님의 말씀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이들이나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말씀하실 때 조차 겸손과 감사하는 태도가 그대로 느껴졌다.

어떤 장소에 가거나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 때, 죄를 범할 수 있는 위험을 예상하여 이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는 비겁한 것이 아니다. (...) 이런 과정들을 거친 다음에는 심령이 강건해져 수행 생활이 순조로울 것이다. 이런 시련들을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이들은 아무도 없다. 75쪽

유혹과 악의 공격에서 견디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이며,이 기도는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기도 하다. 다만 기도를 하다보면 응답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당연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분명 성경에는 청하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도는 단 한 번도 응답받지 못했다며 냉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신부님은 아이가 날카로운 칼을 사달라고 졸라도 사줄 수 없는 부모와 같다고 비유하셨다. 또 주님의 방식이 반드시 나의 바라는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마치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순교를 부정했던 베드로처럼 말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8-9)

책의 말미에 신부님께선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일이 기도라고 표현하신다.(227쪽 참조)내게는 이 말씀이 마치 내 생각을 비우고 주님의 생각, 하느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려는 일들을 겸손된 자세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과정이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주님께서 내게 하시려는 일들을 들으며, 그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를 세세하게 따져보고, 흥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기도이자 즐거운 영성 생활이라고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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