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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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1950년대의 이탈리아. 워킹맘 ‘나’는 마흔 셋이며 딸, 아들이 있으며 남편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아주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믿고 있으며 심지어 군살도 없다. 일기장을 숨겨야 하는 그녀의 상황보다 아이가 둘인데 특별하게 운동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군살이 없다’라는 부분 때문에 묘하게 나와 다른 부류처럼 느껴지지만 자녀들과 조금씩 거리를 느끼고 있다는 점, 일기장을 몰래 적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남편과 아이 모르게 피규어 등을 모으고 감추는 나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기도 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전혀 다른 미렐라의 두 모습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생각하다, 문득 딸이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애가 집에서 맡은 역할과 밖에서 맡은 역할 자체가 다른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 중 까탈스러운 쪽이 가족에게 배당된 것뿐이다. 23쪽

위의 문구를 읽고 나의 엄마, 나의 아이 그리고 배우자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적으면 좀 과장된 것이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제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보니 주변의 딸 아이를 둔 엄마들이 한결같이 대화가 안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다. 이제 일곱살이 된 아들도 언젠가 부터 방문을 닫거나 잠궈버리는 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도 새벽에 늦게 귀가하는 것은 그다지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이건 성별과 상관없이 굳이 새벽까지? 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지나고보니 그저 더 많이 놀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새벽까지 서로를 붙들었던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한 사람들이었다는 확신도 없다. 하지만 내 아이도, 누구의 아이들도 이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이미 어른이 된 이후일 것이다.

“고맙지만 괜찮으니 어서 들어가 자도록 해요.”
사실 그렇게 말한 진짜 이유는 선물 포장을 마친 다음에 일기를 쓰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무 슨 말을 하든 일기장의 존재가 느껴진다. 하루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하찮게 생각했다. 49쪽

책을 읽다보면 일기를 쓰게 된 사실이 잊고 싶은 일들을 굳이 기억하게 만든다며 불평하거나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일기를 쓴다는 사실을 그런 괴로움과 혼란을 넘어 ‘순간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형제의 결혼식을 앞두고 체중감량을 위해 물과 영양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먹지 않았던 일주일, 이전에 기록했던 블로그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살았구나’를 깨달은 적이 있었다. 만약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 때 느꼈던 만족과 기쁨,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소중한 순간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다이어트를 하는 내내 점점 나의 정신은 피폐되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그 기쁨을 더 잘 누리고 싶어서 참고 있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게 느껴져서 견딜만 했다. 하지만 그런 마법의 효과가 늘 있는 것은 아니란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언제나 과거에 한 말이나 한 일을 잊는 경향이 있다. 그 말을 지켜야 하는 끔찍한 의무감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망각하지 않으면 인간은 죄다 오점투성이의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하겠다고 약속했던 일과 실제로 한 일, 되고 싶었던 존재와 현실과 타협한 실제 모습과의 간극이 큰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69쪽

최근 기록과 관련된 책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 내가 구매한 필사 혹은 글쓰기 등의 문구가 들어간 책만 해도 다섯 권이 넘는다. 그렇게까지 기록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아니면 망각했던 다짐들을 새로이 붙잡기 위해서?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치유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쓴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타인, 가족 등을 넘어 오롯하게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금지된 일기장’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으로의 초대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것이 서평쓰기, 사진찍기 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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