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태일 평전을 읽고.. 미션을 보았을때 엄마에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릴적부터 일을하며 힘들게 살아 오신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 평전을 쓰기로하고 엄마에게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처음으로 엄마의 입으로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와~, 참 대단하다 등 속으로 여러가지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인생을 산 엄마에 딸로 태어난 나는 참 복받았구나 생각했다.
엄마의 이야기는 정말 책을 한권 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엄마는 1964년 전라북도 감곡에서 태어 나셨다.
집안에서 2남 2녀중 셋째로 태어 나서 위로는 오빠둘, 밑으로는 여동생 하나였다.
전라북도에서 부산으로 내려 온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수정동으로 이사를와 살다가 수정동이 철거를 하면서 반송에 있는 판자촌으로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할머니가 장사를 나가시면 엄마는 학교를 다녀와 동생을 돌보며 키웠다.
그렇게 엄마는 반송초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14살 생업전선으로 뛰어들게 된다.
엄마가 일을하게 된데는 외할아버지의 몫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한마디로 글읽는 선비같은 분이셨다.
나의 어렸을적 기억으로는 할아버지는 굉장히 한자도 잘쓰셨고 영어도 잘 하셨던것같다.
옛 시절 동경유학을 다녀오실 정도로 공부를 하셨던 할아버지는 집안을 잘 돌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의 직업은 부동산 중계일이었는데, 일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생활비는 거의 할머니가 벌으셨고, 결국 엄마도 일을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어린나이였다. 미성년자는 쉽게 일을 할수가 없었고..
결국 회사에서 다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작성하고,
그리고 나서 겨우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시다부터 일을 시작한 엄마는 일을 곧잘 해냈다.
그래서 시다반장까지 되고 하나하나 일을 배워 드디어 미싱사가 되었다.
엄마는 일을 잘하고 5년무결석을 할정도로 성실하셔서 미싱반장까지 맏게되고 자리를 잡게된다.
그렇게 엄마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 자리를 잡는동안 할머니는 여러가지 장사를 하셨다.
할머니는 반송에와서 국수장사도 해보고, 난전떡장사도 해보고, 배추장사도 하셨다.
배추장사를 하시던 할머니는 새벽에 부전시장에 물건을 때러가다 허리를 다치셨고,
몇달동안은 움직일수가 없었고 그때 엄마는 여러모로 힘이드셨다.
그리고 몇달뒤 허리가 나은 할머니는 회사에 다니셨고,
엄마와 할머니의 부지런한 노력덕에 가족들은 학교를 다니고 끼니를 해결했다.
그 노력으로 큰외삼촌, 작은외삼촌, 이모 모두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그런데 20대초반의 엄마에게 큰 일이생겼다. 와사풍이 온것이다.
엄마는 입이 돌아가고 몸의 반을 잘 쓸수없게 되었다. 그병을 고치는데 자그마치 1년이걸렸다.
그렇게 병이나았고 일을하며 몇년을 지내다가 엄마는 아빠를 만나고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1990년5월4일 결혼을 하셨다.
명장동 가게에 딸린 작은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엄마는 화장품가게를 하셨다.
그리고 91년 2월 내가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모와 반송으로 들어오셨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 집을사고, 부업으로 미싱을 시작하셨다.
그러다 99년도 내가 3학년이 되는 해 6월 떡두껍이같은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2007년현재.. 고3이된딸과 개구쟁이 아들걱정에 아침저녁을 살고 계신다.

 나는 이제껏 엄마가 어릴적 자라온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본적이 없다.
만약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앞으로 계속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런 계기로 엄마의 삶을 들어볼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생각했지만 글을 쓰면서도 생각했다.
참 우리엄마 대단 하구나 하고.. 이시대에 이렇게 태어난 나는 절대 하지 못할일이다.
만약 내가 그시절 그때의 엄마가 된다면 그렇게 일을 할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나중에 이글을 읽게 될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참 대단해! 대단한 사람의 딸로 태어난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인것같아..
엄마딸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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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이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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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이 모두 끝이나고 우리가 쓴 글을 마무리하고 두빛나래의 모든활동을 정리하는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추억들 그동안 읽은책들 선생님 두분 아이들의 모습등이 스쳐지나간다.
모든 활동이 끝났다는 그사실이 그다지 몸에 확 와 닫지 않는다. 잘 느껴 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두빛나래를 마치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자니, 느낌이 묘하다.
우리는 항상 마주치고 만나지만 이제 모임을 하지않는다.
그것은 함께있어도 함께하지 못하는 느낌일것이다. 3학년이되면 저느낌을 받지않을까?

 2007년 3월 29일 우리의 첫모임..
처음보는 얼굴도 많았고 어색하기도하고 많이 설래였던 모임..
우리는 그렇게 서로 자기소개를하고 별명을 말하고 얼굴을 알렸다.
그렇게 만난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를 생각해보니 정말 어색했던것 같다.
오죽했으면 내가 한마디도 않했을까..히히
처음 아이들을 만나서 유심히 관찰한 나의결론은 `어이쿠 내가 잘못들어 왔구나!`였다.
관찰결과 아이들이 모두들 한공부씩하게 생겼던것이다.
사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될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나자 내가 혹 뒤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나는 `음메,기죽어`하지않고 `나는 배우러 온거야` 하며 나를 다독였다.
헤헤, 그때를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난다.
이 첫만남을 시작점으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지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왔다.
추억이라는 단어를 쓰자, 많은 추억들이 생각나고 떠오른다.
우리는 한번 만날때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간 추억은 내 마음속에 차고도 넘치게 가득 쌓여있다.
한모임 한모임 모두가 다 추억이었고, 우리의 첫 모꼬지도, 고구마를 캐고 먹었던때도,
야자시간에 매트릭스를 본것도, 화려한휴가를 보고 모두들 눈이 빠져라 울었던때도,
막걸리 마시러 갔다가 빈대떡으로 배를 가득 채웠을때도, 달빛산행을 계획할때마다 날씨가
안좋다며 투정 부렸을때도, 우리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고 코 밑이 다 헐도록
코를 풀며 함께 마음을 나눴던때도, 18년 내 인생에 최고의 여행이었던 마지막 모임도..
모두 추억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셀수도 없을만큼 많은 추억이었다.
우리가 함께 했기에.. 그모든 시간은 추억이었고 행복한 기억이었다.
추억들을 되집어 보다보니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이리도 길고도 깊었나 싶었다.
눈물이 날것 같았다. 멀리 떠나는것도 아닌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얼굴이 또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금세 얼굴들이 떠오르는걸 보니 두빛나래가..
참 내 깊숙히까지 스며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정말 자식처럼 동생처럼 잘돌봐주신 산마루&강난콩 선생님..
또 글을 너무 잘쓰는 깐죽선아, 그리고 은근히 웃겨주시는 복어선주,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체육복선영, 두빛나래 유일 남친소유 류~은진,
노래잘하는 건방진 짱구은지, 노래도 트림도 어느하나 빠지지 않는 트롬희정,
목소리가 참 좋은 향옥, 두빛나래의 참이슬같은 이슬, 우리의 멍애씨 명애,
빨간잠바가 잘 어울리는 깡지, 그리고 나를 두빛나래로 인도한 쑤구까지..
모두를 생각하며 쓰다보니 갑자기 보고싶어진다..
봄방학이 지나고 3월이되면 다시모여 책을읽고 이야기를 나눌것만 같은데..
이제 앞으로는 일상적이었던 그모임을 하지않는다는것이 아쉽고 섭섭하다.
숙제를 제대로 하지않거나 한,두번정도 빠졌던 모임들이 아까워지고 후회가된다.
하지만 지금의 후회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걸 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아까워하는 마음까지도, 후회하는 마음까지도,
아쉬움과 함께 고이접어 마음속에 남겨 두려한다.
그래야지 나중에 내가 여고시절을 떠올려볼때 두빛나래 모든 관계자들과
모든 추억들과 아쉬움들이 가장먼저 떠 오를것이다..

 그렇게 두빛나래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겠지?
나중에 내 여고시절의 한 획을 그은 두빛나래의 많은 추억을 떠올리며,,
히히..난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나 그때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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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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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티재 하늘은 내가 사회를 본 모임이다 이 모임을 한것은 여름방학때였다.
하지만 방학이라 그런지 나는 내가 사회자 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한권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선생님께 호되게 혼이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바보같이 지금에와서 후회할짓을 그때했었다.
책을 다 읽고 사회를 봐도 서툴고 어색해서 잘해내지 못했을것인데,
책을 한권밖에 읽지 않고 사회를 봤으니 당연히 정리도 잘 되지않고 실수투성이였다.
하지만 몇몇의 책을 다읽은 아이들과 조금씩 읽은 아이들이,
내 사회에 장단을 맞춰주고 도와주어서 겨우 모임을 했던 기억이난다.
 
 9번째 모임.. 한티재 하늘 1,2권을 읽고 만나기로한 모임..
모임을 시작하기전..모임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내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다 읽지 못한 책 때문에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것이었다.
쉬는시간에 아이들에게 내가 읽지 못한 부분을 알아보려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처럼 다 읽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뭐하나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번모임은 책이야기도 나누고 모임이 끝나면 영화도 보러가기로한 날이라,
아이들도 나도 또 선생님도 조금은 들떠있었다.
하지만 난 내 잘못이있어 결국 선생님께 실토를 했다.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명색이 사회자인데 선생님께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근조근 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짚으며 우리의 잘못을 알려주셨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나는 왠지 나 때문인것만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기억나는 책의 내용을 모두 떠올리며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쳐진 분위기가 싫어 좀 오버를 하기도 하면서 모임이 시작하기전,
생각했던 차례대로 미션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처음인지라 나름 한다고 해보지만 미션이야기를 시작하려니 좀 막막했다.
평소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누듯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
난 참 어색하게도 입을 여는 순간 말문이 막힌것이다. 평소같지 않은 내가 조금 우스웠다.
그래서 일단 미션1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내생각을 정리했다.
글을 읽으며 가장 맘이 짠해졌던 사람을 생각해 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먼저 내생각을 말을하고 아이들의 말을 듣는 순서가 좋겠다는 생각을해서,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달옥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모두가 기구한 운명에 힘든 삶을 살지만 그중에서도..
모성애가 너무커서 그래서 짠해지는 달옥이 엄마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맞장구를 쳐주며 분위기가 잘 흘러갔다.
그렇게 분위기를 타서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속에는 가슴이 짠해지가 셀수없이 많았고,
생각나는것을 모두 말하려다보니 아이들이 말한것들이 정리가 되지않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도없이 하다보니 시간이 다 가는지도 몰랐다.
사회자가 적당히 끊을지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것을 잘하지 못했다.
결국 선생님께서 적당히 말려주셔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보니 시간이 이미 다 흘러가 있었다.
미션2는 아직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빵점짜리 사회자였다.
눈이 질끈감기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이 말씀 하시는것을 듣는것으로 미션2를 정리하고 나니 정말시간이 촉박했다.
빨리 모임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무리를 할때 나는 아쉬운마음에,
다시한번 기회가 된다면 이번처럼 준비없이 하지 않고 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꼭한번 더 하라고 말끔하시자 우리는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모임은 끝이났다.

 지금에와서 이렇게 정리하는 글을 쓰다보니 정말 그때 모임에 많은 후회가 남았다.
책을 두권다 읽은 지금 만약 두권다 읽고 사회를 봤다면,
더 좋은 더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하는 후회는 정말 부질없지만 후회가 밀려드는건 어쩔수없었다..
그래서 준비성이 부족했던 나를 되돌아 보며 많은 반성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준비를 열심히하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한번 해보았던 경험을 토대로한다면
앞으로 맏게 되는 사회를 잘해낼것이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한티재 하늘, 아쉬움과 반성으로 남은 내 첫 사회경험은 내마음깊이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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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특별하게 소개할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중학교때 여름방학 때 할아버지댁에 다녀온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먼저 우리 할아버지댁이 있는 곳을 소개하자면 이몽룡과 성춘향 하면 생각나는 그 곳!! 남원이라는 곳이다. 중학교 때 할아버지댁 갔을 때 이야기를 쓸까 하는데 그때 유난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보통 가면 3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때가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5시간이나 걸려 할아버지댁에 도착했다. 차에 에어컨은 고장 났지, 차는 밀리지 정말 차 안에서 쪄죽는 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댁에 도착했다. 근데 가는 날이장날이라고 할아버지댁의 동네에서 경로잔치를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맛있는 밥도 얻어먹고, 노래 틀어놓고 춤추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흥겹게 춤추시는 모습을 구경하고 나도 사촌동생들과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같이 놀았었다. 그 때 동네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았었는데, 정말 돼지는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 다. 그리고 굉장히 독특한 걸 먹는 걸 보았는데 닭발과 닭모가지, 닭머리를 요리해서 먹는 것을 보았는데, 닭발은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자주 즐겨 먹고, 닭모가지도 통닭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닭머리를 먹는 것은 정말 처음이고,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먹지 않았다. 옆 에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도시가면 못 먹는 것이라고 나에게 먹으라고 하셨지만, 난 먹지 않았다.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다음날 아침 일찍 밥
을 먹고 서둘러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척들과 함께 뱀사골로 물놀이를 하러 갔다. 뱀사골이라는 곳은 우리 할아버지댁에서 차를 타고 한 20분 정도 걸린다. 도착해서 보니 이런!!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가 않았다. 차를 타고 한 10분 정도 주변을 돌고 난 후 주차할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사촌동생들과 함께 얼른 물 속으로 들어갔다. 뱀사골은 풍경도 멋있고, 물도 상당히 깨끗해서 사람들이 매년 즐겨 찾는다. 사촌동생들이랑 열심히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오빠가 불렀다. 오빠가 있는 쪽으로 갔더니 멋진 걸 보여 준다고 해서 오빠를 따라 갔다. 오빠를 따라 간 그곳에는 폭포가 있었다. 폭포 안으로 들어가 물을 맞으면서 앞을 보았는데, 바로 앞에 무지개가 있었다. 정말 예뻤다. 그 시원함과 내 눈앞에서 보았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조금 물놀이를 하고 놀다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고추밭으로 갔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땄다. 고추가 똑똑하고 잘 따지기도 했지만 잘못 따서 가지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끊어버린 걸 할머니께 들킬까봐 얼른 아무도 안볼 때 버렸다. 그 때 고추 딴다고 얼굴, 목, 팔 다 탔다. 완전 시커멓게 탔다. 그래도 내가 한 자루나 따서 뿌듯하고 기뻤다. 그리고 돌아와서 모두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와서 밤하늘의 별들을 구경했다. 별이 정말 많았다. 부산에서 보는 하늘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할아버지댁에서 보는 하늘이 더 어색했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할아버지댁이 많이 변했다. 흙과 돌로 이루어져 있던 그 길은 이제 아스팔트로 깔려있다. 점점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시골풍경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할아버지댁에 갈 때 설레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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