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고,
나도 너희를 선택하지 않았고,
내 부모를 우리를 ,
우리도 부모를 각각 선택하지 않았다.
단편적인,
엄연한 사실만의 집합체가 우리다.
체계 없는 ..... 아마 의미도!
그럼 누가 우리를 모아 놓은 것인가?
묻지를 말라.
내 눈처럼 마음속처럼
암담했던 저녁
내 생각은 줄담을질쳤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기정 사실인데도
확증된 일인데도
'그럴 리가 없다.'
그때 나는 내 의식이
내 옆에서 소리를 죽이면서
우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어떤 저녁에.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건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는
충분히, 실컷 가깝지 않았었다.
더욱 더욱 가깝게, 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게, 의식까지도 가깝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마치 현실에서의
나의 無用性을
반증하려고
내 잠재의식이
기를 쓰고 활동하는 것같이
내 수면은 반드시 꿈을,
그것도 특이한, 찬란한,
무서운,달콤한,뜻밖의,
무수한 에피소드를 담은
총 천연색 대형 스크린의 꿈을,
수반하는 것이다.
저녁 기도
조용하거라, 공포여, 고통이여.
곧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눈만 감고 가만히 있으면
너는 반드시 가루가 되어 부서질 터이니,
기다리거라, 분노여, 불안이여.
세계가 끝났다고 네가 생각하는 날,
참으로 끝나는 것은 다만 너의
작디작은 심장의 움직임뿐일 것이니,
나를 떠나거라, 애정이여, 동정이여.
네가 집착한 온갖 대상은
손가락으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보다
더 순간만의 것이고 더 無인 것이니
잠자자, 내 감각, 내 피부......
우주의, 신의, 사람들의 고통을
인공적으로라도 덜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