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에서 딱 한 구절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래 구절을 고르겠다. 


⌈ 주체들이 "몰입" 상태가 아닐 때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저항적이며, 행동을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차단한다. 그래서 불행한 주체들은 세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경험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칙센트미하이가 신체와 세상의 친밀성에 기초한 행복의 현상학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만약 세상으로의 몰입에 단순히 심리적 속성만 있는 건 아니라면 어쩔 텐가? 만약 어떤 신체들이 세상을 저항적인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 이유가 세상이 어떤 신체들을 다른 신체들보다 더 잘 "수용"하기 때문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면 우리는 특정 신체들에게는 공간으로의 몰입을 가능케 하는 바로 그 삶의 형식들이 [다른 신체에게는] 스트레스로 느껴진다는 점을 숙고해 봄으로써 행복에 대해 다시 쓰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 경험,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 우리가 속한 공간에 섞일 수 없는 경험이 아마도 행복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지 모른다. ⌋ (29~30) 



왜냐하면 나는 킬조이killjoy이고 싶기 때문이다. ㅋㅋㅋ 


대체로 무엇이든 어디에든 적응을 잘 한다고 여기고 살았으나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성향을 가졌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분위기 깨는 자'에 속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좀은 다른 방식으로 분위기를 깨는 자였던 듯하다. 그러니까 불만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내가 왜 불만을 갖게 되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런 사람. 자연스레 말투는 삐딱해지고 인상은 굳어졌다. 당연하지. 원인을 모르는데 어떻게 불만이라고 말하겠어.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와의 대면에서도 같았다. 말도 행동도 엉뚱할 때가 잦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이해되지 않는 언행들이 그야말로 수두룩... 우리는 진짜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알아채는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나? 억누르는 교육만 받고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간단 말인가... 또르르... 

아무튼지간에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이런 부분들은 알 수 없는(던) 나를 좀 알게 해주고 어떤 면에서는 토닥거려 주기도 한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은, 어떤 사람에게는 매일 말과 글로 보고 들어야만 할 수도 있다. 


+ 몇 가지 언급해보자면. 


- 21쪽 '결혼'에 대한 이야기. 대표적 행복 지표 주자 되시겠다. 뭐 두말 하면 입 아프지. '그래도 해보는 게 낫다'에 격하게 반대합니다. 안 하고 행복하게 사세요.ㅋㅋㅋ 


- 25쪽 긍정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 "스스로의 행복 추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게 주로 여자들에게 강요되는 거잖아. 


- 28쪽 로렌 벌란트 언급됨. "로렌 벌란트는 이런 행복에 관한 판타지를 "어리석은" 낙관의 형태라 부르면서, "특정 형식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에 적응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행복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이거 지금 읽고 있는 <정동 이론>에 나온다. 제목은 "잔혹한 낙관주의". 그러나 말이 어려워서 두 번 읽고도 정리가 안 되고 있음. 이해하고 싶다... 그래도 반가웠다. 로렌 벌란트. 


- 33쪽 각주의 용어 설명. 이것 참 곤란하네. 사라 아메드의 이 책에서 affect를 '정동'이라는 단어 대신 '정서'로 번역한다고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정서'로 생각하고 읽으면 상관없는데 이미 <정동 이론>을 읽고 있어놔서 조금 헷갈림. 


- 41쪽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영화가 결말에서 보여 준 행복한 화해의 이미지였다" 괄호 안의 작은 글자인 이 문장을 보자 수많은 영화의 해피엔딩이 떠올랐지만 그 중 문득 <에에올>의 결말이... 만약에 말이야, 조이가 에블린에게 그래도 반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에블린에게 100% 감정 이입하면서도 결말의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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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04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주문한 책이 왔습니다^^

난티나무 2023-04-04 21:20   좋아요 2 | URL
😍 열공해요 우리~!!!^^

건수하 2023-04-04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동과 정서 가 같은 개념이라니 동-서 반대인데 말이죠 … (썰렁)

저도 좀 킬조이 경향이 있는데, 페미니스트면 다 경험도 그런 경향도 있을듯요. :)

난티나무 2023-04-04 21:22   좋아요 2 | URL
악 동/서!!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어쩐지~~~~~ㅋㅋㅋㅋ

맞아요 비슷하게 그럴 듯해요.^^
수하님도 킬조이! 저는 요즘 집에서는 완전 그렇고요.ㅋㅋㅋㅋ 분위기 깨부수는 자.ㅋㅋㅋ

시에나 2023-04-0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해보는 게 낫다‘에 격하게 반대합니다. 안 하고 행복하게 사세요.ㅋㅋㅋ >>> 아악, 너무 마음에 들어요. 딱 제 마음!! 이 책 2장으로 가면 결혼하면 그래도 행복해질거라고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서 킬 조이!! 해버리는데 으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이런 말들이(저 진짜 이 말 싫어했는데 이유를 알았!!) 어떻게 여성들에게 행복하기를-곧,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를 은연 중에 강요하는지도 말해주고요. 진짜 저의 인생 책입니다!! (같이 읽어가고 싶은데.. 열심히 댓글이나 달아야겠어요)

난티나무 2023-04-06 16:36   좋아요 1 | URL
오 저 지금 1장 다시 읽으면서 버벅거리는 중인데 2장에 대한 희망(?)으로 이겨내야 겠어요.ㅋㅋㅋ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왜 행복을 멀리(?) 했나(그러니까 행복이라는 말과 개념을)를 탐구(?)해보게 될 것 같아요. 답을 찾기보다는 탐구…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