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적 아비투스' 개념을 차용하여 몸의 계급화를 설명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담지체인 몸에 관심을 둔다. 몸은 취향을 계발함으로써 형성된다. 취향이란 "물질적 제약에 근거한 생활양식을 개인들이 자발적인 선택이나 선호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취향은 계급과 자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부득이해진 선택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취향은 생리적, 심리적으로 몸이 섭취하고 소화하며 흡수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조절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통합을 관장하는 하나의 통합된 분류원칙"이다. 」 (190)




문득 2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오른다. 직장에 비치된 인스턴트 커피는 맥* 봉지커피, 무슨 말 끝엔가 중간관리자(?)였던 분이 대장(?)에게 "**(나)은 맥* 안 마십니다."라고 내 '취향'을 말했다. 나는 좀 뿌듯했던 것같다. 모두가 암말않고 타마시던 커피를 나는 안 마신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입맛은 너희와 달라,를 확실히 해두는 동시에 획일적이지 않은 나만의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싶은 심리였을까. 그래봐야 그건 기껏 인스턴트 봉지커피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도긴개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유난 떠네, 다른 척하기는, 하고 뒷담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듣고 싶어하던 말이었겠지. 나는 너희와 달라. 너희가 모르는 걸 나는 알고 느끼지. 헛웃음이 나네. 

그 직장의 대장 부인은 가끔 내 옷차림을 보고도 그랬었다. 내 딸 크면 **처럼 입히고 싶다,고. 그럼 나는 또 뿌듯해했다. 비싼 옷을 사입을 형편은 아니지만 저렴한 옷으로 내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이라 생각했고 누군가가 내 개성을 알아봐준다는 사실이 좋았을 것이다. 그래 그랬지. 그런 말들이 개인의 취향을 유지시키고 더 골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지. 


커피도 옷차림도 다른 것들에도 그나마 내 '취향'이 있던 20대를 지나 외국에서의 생활, 출산과 육아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들은 내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나는 내 '취향'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뭐든 확고하게 지켜지거나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부르디외의 말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 문화"라는 말이 맞다면, 그 '몸'을 통한다는 말이 지금은 '돈'을 통한다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같지만, 어쨌거나 나는 안 그래도 '낮았던' 계급에서 더더 '낮은' 계급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세상에는 아직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인지도. 위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성향/습관/몸에 익은 사회문화적 관습,처럼 나도 그저 위를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인지도.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느끼는 괴리감, 그게 계급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요즘 가끔 한다.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고?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말들 되뇌어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고, 그걸 느껴버리는 내가 싫지만 이걸 안 느끼려면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모자랄 일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이건 또 자괴감과 연결되는 지점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급이라는 건 어떤 상황을 어떤 경험으로 겪느냐의 문제, 흔히 사회에서 권장(강요)되는 방식으로 경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 그 경험의 질과 양의 문제,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물질적 제약' 즉 돈의 문제...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 웃기지 마라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걸로 계급을 나누고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아예 다르다고 말하는 인간들이 글러먹은 거라고 말하고 싶... 나도 예전에는 글러먹었었고 지금도 뭐 크게 안 글러먹은 상태는 아니라 생각되지만 적어도 싸구려 신발을 신었다고 그 사람 자체를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하. 이거 어렵다. 왜냐하면 나도 싸구려 신발 싸구려 옷을 신고 입는 사람이니까.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기는 딱 좋은 조건이구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 사는' 사람들의 기준, 그러니까 비싼 옷/신발/장신구, 비싼 차, 비싼 집, 비싼 교육, 아 늘어놓다 보니 현타 오는데 사실 지금 이 사회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란 그런 사람들 아닌가 말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게 많아야... 잘 살 수 있는 사회. 가진 거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는 관습도 깨어져야 한다. 이거 과연 깨질 수 있을까. 


부르디외는 한 글자도 읽은 것이 없지만 가끔 이렇게 인용되는 구절을 보면 한번씩 마음이 동하기는 한다. 책, 읽어볼까. 그러다 아니야, 그냥 이렇게 인용구만 읽는 것으로 만족하자, 싶다. 읽으려면 모조리 다 읽어야 할 것 같아, 읽어도 이해 못할 거.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구절, 부르디외와 취향, 이렇게 기억하기로 한다. 이 구절이 주는 인상과 생각을 적으려고 시작한 글인데 결국 산으로 갔다. 그러니까 내 취향, 어디로 갔니. 돌아와. 


사람들이 묻는다. 무슨 책 좋아하세요?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심지어 무슨 색이 가장 좋냐는 물음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파랑? 초록? 아니 노랑이던가. 방금 책에 대한 취향이라면 내가 좀 확실하지 생각했다가 책이나 작가 이름을 대지 못하는 내가 떠올라서 생각을 취소했다. 예전에는 소설 읽는 폭이 매우 좁았어도 당당(?)하게 심윤경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장르 중 소설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음 우물 안 개구리라서 그럴 수 있었나? 너무 골고루 안 읽어서 ㅎㅎㅎ 그러나 지금은 아닌가? 생각이 우물 안 개구리. 아무튼, 이렇게 내 취향을 모르겠는 상태가 된 건 20년 외국생활, 이게 크다. 근 15년간 새 옷 새 물건 책(!) 등을 사지 않았(못했)다. 사(하)지 않는 경험은 취향의 퇴화를 불러온다.(그럼 우리는 취향을 돈 주고 사는 건가... 취향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물질적인 것만 대입시키는 나 나쁘다... 그래서 사지, 뒤에 하지,를 넣는다.) 취향은 표현될 수 없게 사라졌지만 보는 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경우 보는 눈과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서 보는 눈을 내 몸에 적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이건 사실 나라는 몸을 너무 낮추어보기 때문이기도 한 것같다. '몸이 섭취하고 소화하며 흡수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조절함'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거지. 물질적인 건 물론이고 정신적인 것까지 같이 섭취, 소화, 흡수. 이게 안 되었던 세월들. 그래서 나는 20대에도 하지 않던 시행착오를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 


'취향은 계급과 자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부득이해진 선택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 뭘 좋아하냐고, 사람들에게 쉽게 물을 수 없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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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7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향에 대한 부르디외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나의 취향이라는것도 내가 쓸 수 있는 돈만큼위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어 질수도 있겠구나 싶다가 그래도 책을 읽는건 또 다르지 않나싶고요. 책은 경제력과 상관없이 좋아하고 누릴수 있으니 갑자기 뭔가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서 벗어난걸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않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말하려면 저도 한참 걸리는데 그게 내 취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아닐까요? 아 작가는 이래서 좋고 저 작가는 저래서 좋고요.

난티나무 2022-09-27 17:12   좋아요 2 | URL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책도 자본주의라고 생각해요.^^;; 독서는 일단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우리야 베셀 거르고 이런 책 저런 책 거르고 하지만 사회에서 잘 팔리고 잘 읽히는 책들은 자본주의의 표상들이니까요. 오늘 아침에도 잠깐 네,블 추천 문학/책 블로그 죽 내려보니 정말 가관이더라고요.ㅠㅠ
돈 없으면 책도 못 본다,가 다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고요. 저도 책 살 돈 없어서 근 10년간 책 못 봤고 ㅎㅎ 어릴 때도 그랬어요. 아 어릴 때 생각하니 도서관이나 돈 말고도 책의 존재와 가치를 알려주는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는 것도 크군요. 하다못해 도서관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ㅎㅎㅎ
이 사회에서 정말 내 의지로(의지라는 게 존재한다면) 할 수 있는, 하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싶어져요.^^

전에도 바람돌이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 듯한데, 꼽지 못하는 이유에 저는 제 감정도 한몫 하는 것같아요. 뭔가를 좋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감탄하는 것에 대한, 그런 감정 표출을 안 하고 살아서 그렇기도 하고 좋은 것을 못보고 살아서?ㅋㅋㅋㅋㅋㅋ 좀 그런 것도 있고요. 분명히 취향은 있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안)해서? 경험이 없었기도 하고요. 습관이 되어버린 것같아요.ㅎㅎㅎ

mini74 2022-10-07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취향도 눈치를 뵜던거 같아요. ㅠㅠ
그래서 난티나무님 에피소드 읽으며 와 멋있다 했던 ㅎㅎ
축하드려요 난티나무님 *^^*

난티나무 2022-10-07 22:46   좋아요 1 | URL
맞아요, mini74님. 취향도 눈치본다는 말씀,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겠죠. 저도 그랬었고요. 지금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몸에 배어버려서.ㅠㅠ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0-0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10-08 04:25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