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지> 책과 관련되는 어떠한 이야기라도 써야 겠다는 (내가 나에게만 부여하는) 의무 혹은 강박비스무리한 감정으로부터 여러 갈래의 생각이 떠돈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는, 왜 낳는 걸까.
이걸 생각해보는 여자들은 얼마나 될까. 질문은 자연스레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왜 낳았지?
옛날에는 가부장의 대를 잇고자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고 치고. 그 명분이 지금은 다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악습의 영향 때문인가? 결혼하면 아이 낳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결혼하셨어요? 아이는요? 안 하셨어요? 왜요? 언제 하려고요? 그럼 둘째는 언제쯤?
계획해야 하는 일을 계획 없이 준비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어디서도 듣고 보지 못했던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모르는 채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최근까지도(아마 많은 경우 지금도) 임신/출산/육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교육이 전무했으니까. 그래서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을 보면 솔직히 말리고 싶다. 임신한 여성을 보면 측은지심이 돋는다. 아니, 애초에 결혼을 말리고 싶다.^^;;;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직은 아니기에(오기는 오나?) 입으로만 그럴 뿐, 뭘 어쩌지는 못하는 일이다.
가끔, 이제는 어른의 몸에 가까운 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날 때 흠칫 놀라곤 한다. 쟤는 어디서 왔을까.
가끔, 아이는 말한다.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들어가서 사라지고 싶어.
출산을 하면, 그것은 한편으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다. 아이가 뱃속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싶어할 때 그 말을 들어줄 수 없다. 내 배에 있다가 나왔다는 이유로 내가 죽을 그 날까지 언제까지나 내가 아이의 엄마여야 한다는 사실이 때론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라는 호칭으로 하루에도 몇십 번씩 나를 부르는 아이가 나를 다른 호칭으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는 것은 그런 일이다. 출산과 육아, 그 지난한, 우울의 나락을 맛보게 되는 경험과 거기 얽힌 수많은 관계의 역학,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문제들을 모두 떠나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세상에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바위 하나를 얹는 일이다. 이미 태어나 살고 있는 내가 길을 도로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렇게 말이다.
생각난 김에 아이들에게 또 말한다. 결혼하지 말고 살아. 니 스스로 상대방과 평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 생각해. 그런데 그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냥 하지 말자. 아이도 낳지 마. 누가 나를 욕한대도 상관없다.